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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76화 (176/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76화

제176화

잠시 후.

나는 간만에 레추자와 상봉할 수 있었다.

아직 이름이 없는 이 녀석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이름 없는 레추자는 어깨 위에서 부리를 콕콕 찍었다.

생각보다 날카로워서 아파 죽겠다.

"아프다. 욘석아."

"구룩. 구루룩~"

아직 어리다 보니, 애정표현에 대한 방식이 좀 서툰 것 같다.

아무래도 친구를 만들어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풍희야~"

약간의 산들바람이 불더니 허공에서 풍희가 뿅하고 나타났다.

요즘 풍희는 환계에 가 있는 것을 즐겼다.

하긴 덩치가 커져서 이젠 내 머리 위에서 지내기도 힘들겠지.

아무튼 녀석의 손에는 먹다 남은 도토리가 들려져 있었다.

아마 식사 중이었나 보다.

"푸우웅~♡"

오랜만에 느껴보는 애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내겐 풍희는 막내딸 같은 녀석이다.

"풍희야. 니 친구를 소개해주마."

"푸웅~?"

먹다 남은 도토리를 든 채 갸웃거리는 풍희.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다.

곧장 어깨에 있는 레추자를 보여주자, 풍희의 얼굴이 호기심으로 물든다.

킁킁.

몇 번 냄새를 맡던 풍희는 레추자의 볼을 살짝 핥았다.

그러자 레추자도 허둥지둥 내려와 날개를 퍼덕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좋아하는 건가?"

동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서 이런 방면에서는 좀 둔한 감이 있다.

그래도 서로 경계하지 않고, 서로의 털을 부비는 걸 보니 다행히 사이는 좋아 보였다.

솔라 녀석은 아직 레추자를 좋아할지 말지 확신이 없어서 안 불렀다.

잘못하면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까.

- 크리스탈: 아버님. 부엉이는 만나셨어요?

아무래도 레추자를 데려온 게 수정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콜로세움에 온다고 하긴 했었지.

- 잭슨: 그래. 만났다. 본선 경기 맞춰서 온다더니 어쩐 일로 빨리 왔냐.

- 크리스탈: 마침 백무열이라는 분의 일행들이 콜로세움에 간다고 하더라구요. 저한테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묻길래 함께 왔어요. 아, 참. 그리고 아드님도 함께 왔어요. 저희 지금 묵고 계시는 곳 근처에 다 와가요.

"흐음. 정현이 녀석…."

그놈을 이곳으로 부른 건 나다.

하지만 설마하니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진짜 꿈에도 몰랐다.

온갖 고생을 하며 두세 달 뒤에나 만날 수 있을 줄 알았거늘….

"뭐, 무열이 녀석이 어련히 알아서 굴렸으려고."

아까 담배를 필 때 백무열이 지나가듯 얘기했었다.

우연히 정현이를 만났었는데, 정말 필사적으로 굴리고 굴렸노라고.

그는 그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랬다고 한다.

삼청 교육대 시절을 떠올렸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가 자부심을 가지고 말한 만큼 믿어도 되리라 생각한다.

곧장 창문을 열고 천장에 거미줄을 연결해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풍희는 허공에 두둥실 뜬 채 따라왔고, 아직 이름이 없는 레추자도 날개를 퍼덕거리며 따라왔다.

양쪽에 하나씩 있으니 뭔가 든든한 느낌이다.

그렇게 땅에 닿을 때 즈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님~!"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김수정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면면을 훑다가 어느 한 곳에서 멈추었다.

최정현은 나를 봤는지 쭈뼛거리고 있었다.

"…못난 놈 같으니라고."

나는 뒷짐을 지며 그곳으로 걸어갔다.

* * *

현재 시각 밤 10시.

아크 스타 전문 채널에는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아스라 중계'.

아크 스타를 즐기는 모든 유저가 그것을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것은 많은 소식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커뮤니티의 갖가지 소식을 1~10위까지 순위를 매겨서 다루었으니까.

-오늘의 4위입니다. 최근 파르타 공국에서 엄청난 양의 돈을 훔쳐간 도둑의 정체에 관해 많은 이야기가….

아스라 중계는 그야말로 핫한 이슈들만 다뤘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은 며칠을 집밖에 나가지 않고, 두문불출했던 세계 랭킹 1위.

최고의 검사라고 칭송받는 마이클이었다.

-파르타 공국의 돈은 하늘로 솟았고 다시는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많은 NPC들의 공분을 산 것으로….

"…별일이 다 있군."

이어지는 화면은 파르타 공국의 돈이 하늘로 치솟는 장면이었다.

얼마 전 사냥을 하러 갔었는데, 저런 일이 있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 대도시의 돈을 몽땅 훔쳐 달아나다니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화면은 마도 공학의 정수로 이루어진 레이저 공격들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돈을 찾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이번 일을 새로운 스타 프루츠의 능력자가 일으킨 범행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요?

"스타 프루츠 능력자…."

요즘 조금씩 강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최근까지 스타 프루츠를 먹었다고 알려진 8인의 초신성들이 그렇고, 방금 화면에서 보았던 파르타 공국의 돈을 훔쳐간 자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 마이클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한 사람이었다.

"…다크울프."

많은 이들이 그때 윈디아를 구한 자를 그렇게 불렀다.

항상 1등과 화제를 놓치지 않았던 그에겐 생소한 일이었다.

그날 일 때문에 처음으로 아스라 중계에서 1위를 놓쳤으니까.

그 뒤로 마이클은 집에서 칩거 생활만을 했다.

밖으로 나가면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집에는 가정부인 레이나 아주머니가 있어서 굶어 죽을 걱정은 없었고, 마이클은 푹 쉴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제우스 길드의 간부인 레이나와 이름이 같았는데, 정말 성격은 정반대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자신이 레이나를 더 싫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은 3위입니다. 며칠 전 제우스 길드의 간부 중 하나인 라인하르트가 무역도시 포트렌에서 진행되는 콜로세움에 참가해 엄청난 무용을 과시했습니다. 화면을 보시죠.

"라인하르트…?"

마이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데미안이 포트렌에 놀러 가지 않겠냐고 하던 것이 생각났다.

아마 자신이 거절하니 다른 간부들을 데리고 간 모양이었다.

"아니, 암시장에만 갈 거라더니…."

-4명까진 필요 없다. 나 라인하르트 하나면 족하다! 핵주먹!!

라인하르트의 일격필살 스킬 핵주먹.

사실 저 스킬의 진짜 이름은 핵주먹이 아니다.

라인하르트는 그저 스킬의 시동어를 핵주먹으로 했을 뿐이었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쿠구궁! 하는 소리와 함께 경기장의 무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크하하하! 쉽게 끝났구만! 우하하하하!

라인하르트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화면은 다시 아스라 중계로 이어졌다.

-정말 굉장한 위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우스 길드는 진정 명실상부한 1위 길드로 자리매김을 한 것 같습니다. 한데, 이번 콜로세움에 주시해야 할 인물이 한 명 더 있습니다.

-그게 누구인가요?

여자 MC의 물음에 남자 MC가 대답했다.

-그건 바로 8인의 초신성 중 한 명인 중국의 권왕 견소룡입니다.

-와~! 정말 놀라운데요?

-현재 콜로세움의 우승자는 두 사람 중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스.라 커뮤니티 사이에서도 뜨겁습니다. 심지어 콜로세움 16강전에 대한 표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많은 유저들이 그 둘의 대결을 기대하는 중이라더군요.

-우와, 저도 궁금한데요? 과연 누가 이길까요? 명실상부 최고라고 불리는 제우스 길드의 메인 탱커 라인하르트와 8인의 초신성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권왕 견소룡의 대결이라니. 정말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도 못 잘 것 같아요!

-하하. 그래서 저희 아스라 중계에서는 그날의 콜로세움 경기를 독점 중계하기로 했습니다. 아마 각국의 기자들도 참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 출신인 라인하르트와 중국 출신인 견소룡의 대결인 만큼 각국의 정상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이어지는 화면은 보잘것없는 자막 투성이였다.

콜로세움의 경기를 자정에 맞춰서 생방송으로 독점 중계할 것이라는 내용.

마이클에게 그런 것은 흥밋거리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콜로세움의 경기는 좀 궁금했다.

최근 슬럼프에 빠진 자신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았으니까.

그곳에 가면 오랜만에 길드원들도 만날 수 있을 테지.

"우선 자야겠군."

마이클이 침대에 몸을 뉘었다.

오랜만에 접속을 한다는 두근거림과 함께 그는 눈을 감았다.

* * *

짜악!

멀거니 들려오는 채찍 소리.

살을 때리는 찰진 소리가 머릿속을 헤집는 것 같다.

알몸의 사내들이 철조망이 쳐진 자갈밭 사이를 기어 다녔고, 나 또한 그곳에서 채찍을 맞고 있었다.

"크아악!"

"아아악!"

"죽어라. 이 새끼 돼지들아!"

끔찍한 비명이 난무했고, 피 냄새와 섞인 흙탕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채찍을 든 사람에게 그만하라고 외치지만 닿지 않는다.

나는 빛이 되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파도가 치는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었다.

쏴아아-

굽이치는 파도.

그곳에서 나는 모래주머니를 찬 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바위를 꽉 쥔 것은, 오직 지옥 같은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어이, 새끼 돼지들. 이래 가지고 빨갱이 새끼들 때려잡을 수 있겠어?! 하앙?!"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는 교관의 얼굴.

순간 나도 모르게 오금이 저려와 고개를 돌렸다.

옆에는 추위에 떤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동생의 얼굴이 보였다.

친동생은 아니지만, 그녀와 나는 그곳에서 서로를 의지했다.

그녀는 짓쳐오는 파도에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오라버니. 미안해. 나 먼저 갈게."

나는 그녀를 살려달라고 교관에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떨어지는 것이 먼저였다.

결국, 그녀는 파도에 집어 삼켜져 버렸다.

깊어가는 절망감 속에서 나는 외쳤다.

"안 돼-!!"

벼락같은 외침과 함께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곳은 콜로세움 참가자들을 위한 숙소.

2층에 위치한 내 방이었다.

아마 4시간도 채 자지 못해서 꿈을 꾼 모양이다.

"허억. 허억…."

제길. 하필 최악의 꿈을 꾸다니.

어째 꿈자리가 뒤숭숭한 건 착각일까.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나와 같은 콜로세움 참가자이자, 40년 지기인 백무열.

그러고 보니 어제 이 녀석이랑 같이 자기로 했던 것이 생각났다.

어제 무열이 놈도 불러서 일행들과 한잔했었다.

근데 이놈은 왜 침대 머리맡에 앉아서 날 보고 있는 걸까.

"너 뭐 하냐."

백무열이 헛기침을 했다.

"큼. 아니 뭐, 네가 잠꼬대를 심하게 하길래. 신기해서 보고 있었지."

"…잠꼬대?"

"그래. 자꾸 '미안합니다.'와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면서 울더군."

"……."

순간 부끄러움에 양 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말들은 내가 소년 북파공작원으로 훈련을 받던 시절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그 끔찍한 일을 남과 함께 공유하는 건 내겐 아직 힘든 일이었다.

악마의 시기를 버티기 위해서 악마가 되어야 했으니까.

그때의 난 악마였다.

"요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일은 무슨. 별일 없다."

백무열의 걱정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일어났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다른 애들은?"

"손자가 잡은 숙소에 갔지."

"아, 그랬지."

어제 백성찬은 대출로 많은 돈을 땄다고 자랑했었다.

백만 달러를 빌렸는데, 원금을 갚고도 150만 달러가 남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초대박이라며 좋아했고 녀석은 일행들을 초호화 호텔로 안내했다.

아마 둘째 놈도 그곳에 있겠지.

이따가 전부 경기 관람을 하러 오기로 했다.

성찬이가 미리 표를 사둔 덕이었다.

"빨리 일어나라. 곧 콜로세움 경기 시작이야. 그 전에 한 모금 땡겨야지."

백무열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손가락으로 담배 피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철부지 어린아이 같아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마침 옆에는 새장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이름 없는 레추자가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이름을 지어줘야 하는데."

"이름?"

"그래. 아직 이 녀석 이름이 없거든. 여자애래."

수정이의 말로는 이 녀석이 여자라고 했다.

그러면 풍희처럼 그에 맞는 이름을 지어 주는 게 마땅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하지만 막상 생각하니 떠오르질 않는다.

그때 옆에 있던 백무열이 말했다.

"뭘 그렇게 고민하고 그러냐. 쉽게 해. 쉽게."

"그럼 니가 지어보든가."

"그 뭐시냐. 레초자?"

"레추자."

"크흠. 그래. 그럼 '춘자' 어때?"

"춘자?"

춘자라….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곧장 상태창을 조작해 녀석의 이름을 써넣었다.

한 땀 한 땀. 혹여나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당신의 부엉이의 이름은 '춘자'입니다.]

['춘자'가 당신이 지어준 이름을 좋아합니다.]

"구루룩-."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곧장 새장 사이로 생닭을 던져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담배나 피러 가자."

우리는 옥상으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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