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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74화 (174/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74화

제174화

빛의 속도로 1층으로 내려온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호랑말코 같은 놈들의 꽁무니를 쫓아왔는데,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놓쳐버렸다.

"이 망할 놈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게야."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는 게 이런 걸 두고 한 말인가 보다.

그놈들이 하늘로 꺼졌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알 수가 없다.

젠장. 이렇게 놓치고 마는 건가?

그럼 미도는….

"오! 이렇게 또 보는군! 반갑다! 크하하하!"

제법 시끄러운 목소리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은 목소리였다.

이곳에서 내게 반말을 하면서 호탕하게 부를 수 있는 놈은 딱 두 놈뿐이다.

하나는 무열이 놈.

그리고 다른 하나는….

"라인하르트."

"오, 내 이름을 기억해주는 건가! 고맙다!"

아무래도 이놈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저번에 대놓고 거미줄을 발사했는데도, 이 녀석은 내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하긴 그때 거미줄을 거의 안 쓰긴 했지만….

아니, 모를 만도 한가.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건 카지노를 위해 드레인이 만들어준 옷이었다.

저번에 미노타를 잡을 때 입었던 건 황제펭귄의 옷이었는데, 나는 잠깐 정체를 숨기기 위해 다른 옷을 입은 상태였다.

"근데 어딜 가는 거지?"

라인하르트는 하얀 목욕가운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꽤 큰 가운인데도 옷의 틈새로 울긋불긋한 근육들이 보인다.

완전 양놈들 같은 근육질 몸매구만.

"우하하! 온천을 갈 거다!"

"온천…?"

마침 잘됐다.

나도 거기에 볼일이 있는데.

"흐흐. 그렇다. 너도 같이 가지 않겠나!"

"좋지. 근데 어디 있지?"

"하하! 날 따라와라!"

그렇게 녀석을 따라갔다.

라인하르트가 향한 곳은 아까 그 호랑말코 같은 놈들을 놓친 구석에 위치한 골목.

그곳엔 덩그러니 벽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것도 없는데…?"

"이곳엔 비밀이 있다! 자 봐라!"

별안간 라인하르트가 벽을 향해 몸통 박치기를 했다.

그런데, 쿵! 하며 소리가 날 줄 알았던 벽은 그대로 녀석을 통과시켰다.

순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불쑥 라인하르트의 머리가 벽에서 나왔다.

"어서 들어와라! 목욕하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왜 이딴 곳에 온천을 숨겨둔 게야.

그러니 못 찾고 헤매지.

나는 곧장 빠른 속도로 지하로 내려갔다.

빛의 속도로 환복을 마쳤고, 라인하르트와 함께 남탕으로 들어섰다.

물론, 중요 부위는 수건으로 가렸는데, 가면을 쓴 채 이렇게 있으니 좀 변태 같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게 다 우리 미도를 위해서니까.

드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여니, 곧장 연기가 모락모락 거렸다.

"어허이. 좋다."

"시워언~ 하다!"

"천국이 따로없구만!"

그곳엔 많은 이들이 있었다.

모두가 콜로세움에 참가했던 16강 진출자들.

주변을 둘러봤지만, 2조의 일원은 없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온천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찾는 그 망할 놈들은….

"…저깄군."

제일 구석에 위치한 탕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 * *

박태현은 김현우를 이끌고 지하에 위치한 온천탕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역시 커뮤니티에선 제법 유명한 곳이라 이건가.

"야, 태현아. 사람 너무 많은데…? 우리 그냥 돌아가자. 응?"

"뭔 소리야. 여기까지 와놓고. 얌마. 너도 한배를 탔거든?"

"아냐. 아직 돌아갈 순 있잖아. 그래. 역시 돌아가는 게 좋…."

박태현은 김현우의 말을 무시한 채 구석에 위치한 탕으로 향했다.

저 멀리 손을 흔드는 박태현을 보며 김현우는 자그마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래도 되는 건가 모르겠네."

그는 고개를 저으며 구석에 위치한 작은 탕으로 들어섰다.

[지하 온천, '요정의 연못'에 들어왔습니다.]

[생명력 회복속도가 3배 상승합니다.]

[마력 회복속도가 3배 상승합니다.]

[3분 정도 있으면 모든 피로도가 풀립니다.]

[10분간 있을 경우, 하루 동안 모든 능력치가 +10 증가합니다.]

이곳의 이름은 요정의 연못.

그 이름답게 주변은 요정들이 사는 것처럼 아름다운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바로 뒤에는 자그마한 집이 있었는데, 사람은 없고 그냥 씻을만한 도구를 팔고 있었다.

때밀이 장갑이라던가.

비누라던가.

이런 것들 말이다.

"어으, 따뜻해. 온몸의 피곤이 싹 풀리는 거 같네. 안 그러냐 현우야?"

"어? 으응…. 그래. 좋네."

"야, 뭘 그렇게 쫄고 있어. 임마. 형만 믿어. 내가 아무런 준비도 안하고 왔겠냐? 다 안 들키는 방법이 있다. 이 말씀이야."

"안 들키는 방법…?"

박태현이 기고만장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흐흐. 보기나 해라. 짜샤."

갑자기 일어난 그는 세상 커다랗게 생긴 나무 벽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저 뒤로는 여탕이 있는데, 이곳은 훔쳐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그 벽의 크기가 아파트 15층 높이나 되었다.

듣자 하니 이곳 자체가 마법사 길드가 아닌 마녀들이 만들었다고 하던데….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 부분이긴 하다.

근데 저걸 어떻게 뚫겠단 거지.

"자, 이걸 이렇게 붙이고. 이렇게…."

박태현은 풀숲에 가려져 안 보이도록 교묘하게 기계를 설치했다.

기계에서 뻗어 나온 빛이 벽을 비추자 동그란 원이 생겨났다.

그러자 뜨는 메시지.

[호시탐탐 영사기가 작동합니다.]

[앞으로 5분 뒤, 벽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벽 너머의 상대방은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카운트 다운이 시작됩니다.]

[04:59]

……

벽에 비춰진 동그란 원에 카운트 다운 숫자가 새겨졌다.

'뭐야. 이게…?'

김현우가 허탈하게 웃었다.

도대체 이런 걸 어디서 구해온 거지.

"야, 너 이런 건 어디서 구해 온 거야?"

"흐흐. 며칠 전에 내가 파르타 공국 갔었잖냐. 거기 마도 공학이 하도 유명해서 내가 몇 개 좀 유용한 걸 샀지. 오늘을 위해서 말이야."

"…넌 진짜 미친놈이 틀림없다."

"칭찬으로 알아들을게."

그렇게 박태현은 다시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온천에 들어왔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뿐.

온천의 열 때문인지 아니면 기대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표정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뭐야. 왜 이리로 오는 거야.'

이곳으로 오는 것은 검은 늑대의 가면을 쓴 남자였다.

온천에서는 가면을 벗을 법도 하건만,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제기랄. 여기로 오면 안 되는데?

"커흠!"

가면을 쓴 남자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자신의 양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리곤 이쪽을 힐끗 보더니,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온천의 앞에 위치한 집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가져나온 것은 엄청난 양의 비누들.

박태현과 김현우는 동시에 갸웃거렸다.

"야, 현우야. 저 사람 좀 이상하지 않냐?"

"그러게. 웬 비누를 저렇게 많이…."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아까 그 가면을 쓴 남자가 탕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가 있는 위치에선 설치했던 기계는 교묘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두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주고받았다.

"야, 박태현. 이제 어떡할 거야?"

"뭘 어떡해. 미친놈아. 못 먹어도 고지."

"어우, 이 미친 새끼야."

"닥쳐. 이제 1분 남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1분이 지났다.

박태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곤 옆에 있는 김현우에게 말했다.

"야, 나 먼저 간다. 천천히 와라."

"아니, 야. 얌마. 박태현…!"

김현우가 조그만 목소리로 박태현을 불렀다.

하지만 이미 그는 온천을 나간 뒤였다.

닿지 않는 목소리 사이로 김현우의 한숨이 흐를 즈음.

웬 동그란 형체가 일직선의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것이 향한 곳은 박태현의 다리가 있는 곳.

아니, 다음 발자국을 떼었어야 했을 위치였다.

그것은 비누였고, 그것을 밟은 그는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졌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사고에 박태현은 꽤 큰 데미지를 입었다.

"으윽, 이거 뭐야. 씨이…! 갑자기 비누가 왜…!"

박태현이 눈을 부라리며 비누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엔 검은 늑대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손에 비누를 던졌다 받고 있었다.

* * *

사실 처음부터 저 풀숲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내겐 초감각으로 올라간 시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맨몸이라도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무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옆에 있는 조그만 집에 있는 비누.

콜로세움을 위해선 거미줄은 최대한 아껴야 했다.

그래도 만약이란 것이 있으니까.

작고 가벼운 비누는 거미줄 대용으로 던질 만했다.

나는 그것을 한가득 들고 와 온천 주변에 내려놓았고, 던졌다.

결과는 지금 보는 그대로.

"너 이 씨…! 뭐야. 어?! 미쳤어?!"

나는 한 손으로 비누를 던져 받으며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박태현의 생명력은 1/3이 닳아있었다.

방어구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까 넘어진 것이 꽤 타격이 커 보였다.

하긴 머리도 바닥에 부딪혔으니까 아프긴 하겠네.

"실수였어. 미안하네. 비누 좀 주워 주겠나?"

사실 실수는 아니지만, 먼저 미안하다고 하니 녀석도 할 말이 없어보였다.

박태현은 씩씩거리더니 비누를 구석으로 던졌다.

"비누 겁나게 많잖아요! 그거 써요! 에이씨 진짜."

그는 쿵쾅거리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함께 탕 안에 있던 김현우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치였다.

저놈은 내가 일부러 던진 걸 봤을 텐데 왜 가만히 있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한 번 더 비누를 던졌다.

거미줄을 많이 쏴보기도 했고, 초감각이 있었기에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서 비누를 던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쿠웅!

이번에도 고꾸라진 박태현.

그가 노호성을 터트렸다.

"으윽. X발…! 이 미친 새끼야!!"

이번엔 김현우도 반응이 있었다.

"저기요. 왜 일부러 비누를 던지시는 거죠?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다 봤다구요."

흐음. 이놈도 덤비려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또 한 번 비누를 온천물에 적셨다.

찰박찰박.

그러면서 동시에 말했다.

"니들 뭐하려고 했냐."

"예…?"

당황하는 낯빛의 김현우.

나는 그를 쏘아붙였다.

"미도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냐고."

"그, 그게 무슨…. 저흰 아무것도…. 아니, 그보다 미도랑 무슨 사이시죠?"

"그건 알 거 없고, 저 뒤에 있는 건 뭐냐."

"……."

김현우가 입을 다물었다.

정곡을 찔리니 할 말이 없는 모양이군.

마침 박태현이 씩씩거리며 이곳을 향해 걸어왔다.

나는 녀석을 향해 또 한 번 비누를 던졌다.

하지만 이번엔 피했다.

"야, 이 개새야!!"

그의 오른손엔 작은 마력의 기류가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놈은 무기가 없어도 스킬을 쓸 수 있는 모양이다.

거미줄은 최대한 안 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우선 비누를 미끼로 하나 던지고….

퓻. 퓻. 퓨웃.

단, 세 발의 거미줄로 박태현은 가볍게 제압되었다.

다리에 하나, 양팔에 하나, 입에 하나.

곧장 김현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꺼져라. 이곳에 얼씬거리면 그땐 죽여버리겠다."

사실 지금 죽여도 되긴 했지만, 그럼 미도에게 안 좋을 것 같았다.

미도 또한 이곳에 스타 프루츠를 얻기 위해 왔을 테니까.

오늘은 일단 봐주는 걸로 해야겠다.

"당신 그 거미줄…. 혹시? 다크 울프?"

아무래도 미도에게 내 능력에 대해 얼핏 들은 모양이다.

이거 참 유명해져도 피곤하다니깐.

"알면 가라. 미도 할아버지가 내게 미도를 부탁한다고 했으니까."

"아, 그, 그런…."

뭐, 이놈들은 내 목소리를 모르니까 굳이 헬륨 슬라임의 핵은 안 먹어도 될 것이다.

사실 먹을 수도 없다.

이곳은 인벤토리를 열 수조차 없고, 장비도 착용할 수 없거든.

"죄, 죄송합니다."

김현우는 내게 고개를 숙이더니, 사지와 입이 제압당한 박태현을 들쳐메고 온천을 나섰다.

괴성을 지르는 박태현의 발악이 귓가를 울린다.

"으읍! 으으읍!"

나는 그제야 몸을 편안히 뉘일 수 있었다.

후우. 이제야 좀 개운하네.

사실 아까는 온천에 들어왔어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온통 신경이 미도에 관한 일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을 처리하고 나니 노곤함이 밀려오는 것 같다.

"음?"

문득, 아래쪽에 깜빡거리는 것이 보였다.

[백무열님에게 온 귓속말이 7개 있습니다.]

"…아, 내가 답장을 못했나?"

순간 미안함에 곧장 귓속말 창을 열었다.

- 잭슨: 야. 담배는 있다가 피자.

- 백무열: 뭐야? 이러기냐?

- 백무열: 왜 답장이 없누.

- 백무열: 야.

- 백무열: 이 썩을 놈아! 자냐?!

- 백무열: 네 방으로 쳐들어간다!

- 백무열: 망할 놈의 새끼. 안 핀다. 안 펴. 에잉.

- 백무열: 내일 아침에 말 걸지 마라. 뚝배기 터트려버릴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에게 답장을 남겼다.

-잭슨: 미안하다. 한 30분만 있다가 피자. 갑자기 일이 생겼어.

우선은 온천이 먼저다.

이왕 왔는데, 제대로 피로를 풀어야지.

"어우, 시원해라."

밀려오는 노곤함과 함께 나는 눈을 감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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