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73화
제173화
고풍스럽게 지어진 호화로운 대저택.
이곳은 귀족 중 제일가는 부를 가졌다는 에이단의 저택이다.
그리고 그런 에이단의 방에는 각종 성직자들과 마법사들이 들락거렸다.
평소 부유한 귀족들만 초대하던 그였지만, 오늘만은 예외였다.
"죄송합니다. 제 힘으로는 도저히 소생이 불가합니다."
"달과 마법의 여신 헤카티아나님의 마법으로도 치유할 수 없군요."
"소생과 바람의 여신 후에라님의 가호가 함께하길 바라겠습니다."
에이단은 그들을 초대해 자신의 중요 부위를 소생시킬 방법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뱉는 말은 하나같이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젓는 것뿐.
그것이 그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다 꺼져! 꺼져버려!! 이 쓸모없는 새끼들아!!"
짙은 분노가 섞인 고성에 초대된 성직자와 마법사들은 입맛을 다시며 물러났다.
오기만 해도 돈을 준다니까 우르르 몰려와서는 저따위 대답을 내놓다니.
진짜 하등 쓸모가 없는 자들이다.
제기랄. 돈만 축냈군.
"크으윽."
아직도 아랫도리가 아려온다.
도대체 일이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꼬였던 걸까.
아니, 어쩌면 그날 이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옆 동네 촌장이라며 쓰레기촌에서 망신을 주었던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
"제길…."
떠올리기만 해도 화가 울컥 치민다.
순간 너무 힘을 줬더니, 아랫도리에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에이단의 낯빛이 하얗게 물들었다.
"크으윽."
소뿔에 받혀 중요 부위를 다친 후 에이단의 인생은 완전 180도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여자를 봐도 아무렇지가 않다는 것.
그것 때문에 지금 밥도 넘어가지 않는다.
어떤 호화로운 것을 먹어도 입맛이 없고, 삶에 대한 의욕도 잃었다.
남은 것은 깊은 절망감과 분노라는 감정뿐.
"죽일 테다. 죽이고 말 테다…. 고자라니…. 내가 고자라니…!!"
방금 나간 놈들은 전부 자신에게 그렇게 선고했다.
성직자들은 성호를 그으며 각종 신들의 축복을 중요 부위에 걸었고, 마법사 길드에서 온 놈들은 이상한 시약을 만들어 먹이기도 했다.
마법도 써봤지만 소용없었다.
에이단은 지금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X발…! X바아아아아알!!!!!!!"
에이단은 침대에 누운 채 고성만 질러댔다.
이건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가진 재산을 모두 털어서라도 고쳐야 한다.
잘못하면 가문의 대가 끊어질 위기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빨리 결혼하라고 했을 때 하는 거였는데.
"후우…."
문득 그날이 떠오른다.
카지노에서 잭팟이 터졌던 날.
그때 가면을 쓴 자의 정체가 자신에게 수모를 안긴 그 노인네였던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순순히 보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가뜩이나 돈을 뜯겨서 기분 나쁜데, 지금은 오로지 죽여야겠다는 일념밖에 남지 않았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그렇게 1분 정도 지났을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끼익- 문이 열리더니 들어온 것은 자신의 집사인 로랭.
그는 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가문의 수발을 들고 있는 자였다.
"…무슨 일이지. 로랭."
에이단이 좌절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누군가 찾아왔습니다. 도련님."
"누구? 또 성직자랑 마법사들인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내쫓아버려."
"아닙니다. 좀 이상한 자인데…."
"이상한 자…?"
에이단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로랭이 말했다.
"최불룡이라고 하면 도련님께서 아실 거라더군요. 지금 저택 밖에서 당당하게 들어오려 하길래. 사병들이 막고는 있습니다만…. 어떡할까요? 아시는 분 맞으십니까?"
최불룡, 최불룡이라….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인데.
어디서 들어봤….
아! 그때 의뢰를 맡긴 녀석인가?
"들어오라고 해. 아는 사람이다."
"알겠습니다."
로랭은 문을 닫고 나가려했다.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 로랭…?"
"예. 도련님."
"올 때, 망우초 우린 차 한잔 부탁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로랭이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갔다.
에이단은 욱신거리는 아랫도리를 부여잡으며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가 향한 곳은 평소처럼 앉아 있곤 했던 푹신한 의자.
그는 전혀 아프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그곳에 앉았다.
"아직은, 아직은…. 인정할 수 없어. 후우…."
에이단은 억지로 미소를 쥐어짰다.
자신이 고자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면서.
* * *
처음 저택에 들어갔을 때는 쉽게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외로 그렇지 않았다.
이곳의 경비는 그야말로 철통이었고, 엄청난 사병의 숫자가 이곳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었다.
"거참. 나 여기 손님이라니까?!"
수많은 병사들이 갑옷을 입은 채, 길 한 가운데를 우뚝 막고 있다.
그 모습이 최불룡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억지로 들어갈 수야 있겠지만, 그러면 전면전이다.
자신은 이렇게 많은 NPC를 상대로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
"에이, 씨댕. 진짜."
하늘을 보며 열불을 터트리고 있는데, 별안간 병사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걸어오는 것은 무수히 많은 성직자들.
한눈에 보아도 고풍스러운 옷이 고위급 인사들로 보였다.
'저놈들이 왜 여기서 나오는 거지.'
압도적인 그들의 포스에 최불룡도 옆으로 비켰다.
문득, 하늘 위로 무언가 지나가는 듯하더니, 마법사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허공에 두둥실 뜨기도 했고, 빗자루를 타기도 했다.
'뭐야 대체?'
도대체 저만한 NPC들이 왜 에이단의 저택에 모였던 것일까.
최불룡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성직자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허허. 저자의 상황으로 보면 성직자를 하면 딱일 텐데 아쉽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안 되었습니다."
"뭐, 신의 가호가 있다면 부활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 또한 신의 뜻이겠지요."
"모두 조심히 가십시오. 갓블레스유."
최불룡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신의 뜻. 성직자. 부활.
지금 나오는 단어들이 대체 에이단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그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무슨 지가 예수도 아니고….
그나저나 저들 손에 들린 묵직한 돈은 대체…?
"그대는 누구시오. 여기서 왜 소란을 피우는 거요."
갑자기 나타난 노신사가 자신을 향해 정중하게 물었다.
아무래도 그는 말이 통할 것 같다.
저 새대가리 같은 병사들보다는.
"손님입니다."
"손님…?"
"에이단 님께 최불룡이 왔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럼 아실 겁니다."
"흐음."
노신사는 턱수염을 쓸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그렇게 기다리길 10분.
아까 기다리라고 했던 노신사가 이곳을 향해 걸어왔다.
그가 병사들을 향해 뭐라고 하더니 좌우로 갈라졌다.
노신사가 자신에게 말했다.
"따라오시오."
최불룡은 그를 따라 저택으로 들어섰다.
에이단의 저택은 처음 와보는데 진짜 억 소리가 난다.
완전 궁궐이 따로 없군.
과연 커뮤니티에서 떠돌던 소문 그대로의 모습이다.
'근데 하녀는 겁나 많네.'
에이단은 시종을 거의 여자들만 쓴다고 들었다.
아마 눈앞에서 걷고 있는 이 노신사가 유일한 남자일 것이다.
소문이 맞다면 그의 이름은 로랭.
대대로 에이단의 가문을 지켜온 집사일 것이다.
"이곳이오. 지금 많이 민감하시니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주시오."
"…아, 예."
로랭은 그렇게 멀어졌다.
최불룡은 어깨를 으쓱였다.
"왜 예민한 거지…."
잘은 모르겠지만 우선 그의 말을 듣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차피 부탁을 하러 온 건 자신이었으니까.
최불룡은 지금 그에게 최대한 잘 보여야 했다.
가뜩이나 암살도 실패했는데, 심기를 거슬렀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 줄 알고.
똑똑-!
곧장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라."
평소와 같은 에이단의 낮은 음성.
최불룡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어젖혔다.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하얀 가운을 입은 채, 소파에 앉아 자신을 응시하는 에이단의 눈.
어째 평소보다 더 광기가 어린 것 같다.
커뮤니티에서는 미친놈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진짠가.
"오랜만에 뵙습니다. 에이단 님."
"음, 잘 왔네. 앉지."
에이단이 턱짓으로 옆에 있는 소파를 가리키자, 최불룡은 재빠르게 그 자리에 앉았다.
그는 다짜고짜 물었다.
"어떻게 됐지?"
"예?"
"내가 의뢰한 것들 말이야."
"아, 그것이…."
최불룡이 입을 떼려는 순간.
또 한 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끼익- 하며 열리더니 들어온 것은 아까 봤었던 로랭.
그의 손에는 정성스러운 차 한 잔이 있었다.
그가 에이단의 앞에 차를 내려놓고는 다시 나갔다.
익숙한 향기.
망우초를 우린 차인 모양이다.
"말해봐."
에이단이 차를 홀짝였다.
최불룡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래. 참자 참아.
여기서 화를 냈다간 말짱 도루묵이다.
"실은…."
떨리는 고해성사가 시작됐다.
* * *
콜로세움에서 살아남은 16인은 모두 각자의 숙소를 배정받았다.
그곳은 바로 포트렌에서 제일 비싸기로 유명한 고풍스러운 여관.
아니, 이 정도면 여관이 아니라 호텔에 더 가까울 것이다.
완전 궁전이구만 궁전. 허허.
지금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다.
"푹신하고 좋군."
우리들은 각자 조별로 층을 배정받았다.
견소룡은 1조여서 1층에 머무르고 있고, 나는 2조여서 2층에 배정받았다.
미도를 포함한 그 호랑 말코 같은 놈들은 3층.
마지막으로 무열이 녀석은 꼭대기인 4층이었다.
나는 드넓은 창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경치 조오~타!"
약수터에서나 하던 것처럼 앞뒤로 박수를 쳤다.
진짜 경치가 좋은 산에 온 기분이다.
특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이 멋진 야경이 진짜 최고다.
가끔 이렇게 쉬는것도 좋구만.
- 백무열: 춘택아~
이놈이 징그럽게 왜 이러지.
- 잭슨: 왜.
- 백무열: 옥상으로 따라와.
뭐지.
이 썩을 놈이 한판 뜨자는 건가.
이런 대사는 영화에서나 보던 건데.
- 잭슨: 피곤하다. 내일 붙자.
- 백무열: 붙긴 뭘 붙어. 담배나 같이 피자니까.
아~ 그 얘기였구만.
나는 녀석을 만나자마자 망우초 담배를 나누어주었다.
백무열은 담배를 보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이게 땡길 때가 많았는데 없어서 곤란했다나 뭐라나.
하여튼 멋대로 말하는 건 여전한 모양이다.
- 잭슨: 알았다. 지금 올라간다.
곧장 귓속말을 닫고 방을 나와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3층에 도착하자, 누군가와 마주쳤다.
"엇, 안녕하세요!"
갑작스러운 인사에 나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다.
뭐여, 미도가 여긴 어떻게….
아, 여기 3층이구나. 흠흠.
"아, 안녕하십니까."
차마 목소리를 바꿀 시간이 없어서 일부러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다행히 미도는 별 의심을 하지 않는 듯했다.
"목소리가 조금 다르시네요. 감기 걸리셨어요?"
"아, 예. 뭐. 크흠. 그렇습니다."
"어떡해요. 괜찮으시면 있다가 온천이라도 가보세요~ 여기 지하에 온천이 유명하다고 커뮤니티에서 그러더라구요."
…온천이 있었나? 잘됐구만. 있다가 가봐야겠군.
"정보 감사합니다."
"헤헷. 전 지금 가는 중이에요. 전 먼저 가볼게요. 감기 조심하세요~"
그렇게 미도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다시 4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빨리 따라와 미친놈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훔쳐보겠냐."
"미도가 알면 우리 죽는다고."
익숙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이 목소리를 잘 알고 있다.
미도의 주변에서 알짱거리던 늑대들.
앞장서 오는 놈은 박태현이라는 놈이었고, 강제로 끌려오는 놈은 김현우라는 놈이었다.
나는 3층과 4층의 경계에서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엿들었다.
"흐흐흐. 얌마. 형이 널 남자로 만들어줄게. 따라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짜식이. 다 좋은 게 좋은 거야. 내가 책임진다니까? 팍씌. 따라와."
김현우라는 놈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아래층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웬지 심상치 않은 느낌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남자로 만들어준다는 말과 책임진다는 말.
그리고 훔쳐본….
"잠깐만. 훔쳐본다고?"
순간 양 주먹이 꽉 쥐어지며 부들부들 떨렸다.
이 썩을 놈들이 감히 지금 누구를 훔쳐본다는 거지.
혹시?
"이 시부럴 놈들이 미쳤나…!"
- 잭슨: 야. 담배는 있다가 피자.
나는 쿵쾅거리며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