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70화
제170화
윈디아의 동남쪽에 위치한 메테우스.
이곳은 지금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쓰레기촌의 주민들이 가세하자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이루었고, 수많은 판잣집이 들어섰다.
그것은 수많은 화젯거리를 낳았고, 아.스.라 커뮤니티는 갑자기 나타난 NPC들이 빠른 속도로 집을 짓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현재 이곳은 입주를 원하는 유저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는 것은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진 헬레나.
에이단의 부인이었던 그녀는 유저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그녀는 최초의 쓰레기촌 출신 귀족이었고, 아.스.라 커뮤니티는 어떻게 그녀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걸로 의견이 분분했다.
"와, 진짜 여장부네."
김수정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헬레나는 오자마자 마을의 살림을 담당했다.
확실히 쓰레기촌에서 사람을 부려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그녀의 진두지휘는 그야말로 터프함 그 자체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남자들 사이의 그녀는 그야말로 사극에서나 보던 여왕. 그 자체였다.
"거기 남자들! 떠들지 마요!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되네. 증말."
"헛. 죄, 죄송합니다."
"크흠. 미, 미안하오."
헬레나의 일갈에 남자 유저들이 입을 싹 닫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입주할 유저들의 신상명세서를 작성했다.
"…겁나 카리스마 있어."
김수정에겐 저런 로망이 있다.
여자가 살면서 저렇게 남자들을 한번 부려봐야 되는데….
"자, 다음 사람~"
"아싸, 805호다."
입주를 완료한 유저가 싱글벙글 웃으며 판잣집을 향해 뛰어갔다.
현재 판잣집은 1~999호까지 있다.
그러니까 총 999명의 유저만 받기로 했다는 뜻이다.
근데 판잣집이 그렇게 좋은가….
판잣집을 짓는 건 헬레나가 마음대로 정한 것이지만, 그녀는 현재 임시로 이곳의 촌장직을 맡고 있다.
처음 이곳으로 떠나올 때 아버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뭐, 아마도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내버려 두라고 하셨으니까.
"부럽다. 부러워. 흐으읏."
김수정은 기지개를 켜며 다시 진료실로 돌아왔다.
어째 환자들의 방문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아까부터 파리가 왱왱 날아다니는데 귀찮아 죽겠다.
에이씨 이놈의 파리들 진짜.
"아오. 저리 좀 가."
왜애애애앵~
"좀 가라고."
왜애애애앵~
[반딧불성, 카미유가 파리들 좀 잡으라고 말합니다.]
"알았어. 잡으면 되잖아."
김수정은 신성 형화 침술을 전개했다.
곧장 손에 야광 빛이 아른거렸고, 그녀의 손엔 형화의 침들이 생겨났다.
곧장 파리를 향해 있는 힘껏 그것을 던졌다.
마치 표창을 날리듯이. 퓨퓻.
"어쭈. 이걸 피해?"
김수정은 계속해서 침을 던졌다.
하지만 파리는 계속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점점 벽에 꽂히는 형화의 침 개수가 늘어났다.
"아악, 짜증 나!!"
[반딧불성, 카미유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아무래도 던지는 데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아니거든? 그때 조폭한테 던진 건 잘 맞췄거든?"
[반딧불성, 카미유가 그건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나 잘 맞춘다고! 봐봐!"
하지만 계속 던져도 맞지 않는다.
이젠 열불이 터질 지경이다.
아오, 대체 문제가 뭐지.
그런데 그때였다.
"구우우욱!!"
별안간 문 쪽에서 부엉이가 나타나더니,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약 올리던 파리를 부리로 낚아챘다.
그 모습이 마치 강력한 독수리처럼 보이기도 했고, 날렵한 매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이 부엉이는 아직 새끼였으니까.
"구룩~"
"어머, 너 또 새장에서 나왔니? 어떻게 그렇게 잘 빠져 나오지?"
분명 이 부엉이는 새장에 가둬놨었다.
저번에 받았던 생닭을 매 끼니 챙겨주고 있었는데, 갑갑한지 또 이렇게 나왔다.
근데 도망갈 기미는 없어 보인다.
"얘, 네가 그 레추자인가? 그런 종류의 부엉이라면서?"
이 말은 아버님께 들었다.
진짜 귀한 부엉이니까 꼭 잘 보살펴달라는 말과 함께.
"구룩. 구루룩."
이름 없는 레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이름 없어서 심심하겠다. 내가 지어줄까?"
"구룩-?"
"음. 레츄 어때? 괜찮지 않아? 아, 너 근데 남자인가?"
"구루우욱!"
레추자가 화를 냈다.
아무래도 남자는 아닌 모양이다.
그럼 여자라는 소리인데….
아니, 근데 다시 봐도 신기하네.
어떻게 사람 말을 척척 알아듣지.
김수정은 인벤토리에서 생닭을 꺼내 던져주었다.
레추자는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생닭을 쪼아먹었다.
"흐음, 일단 네 이름은 좀 더 고민해볼게."
"구룩. 구룩."
그때였다.
벌컥- 하는 소리와 함께 진료실의 문이 열렸다.
숨을 헐떡이는 사람은 바로 아버님의 둘째 아들 최정현.
어제 그와 종일 같이 다니며 이곳의 지형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물론, 이곳에서 하루는 현실에서 4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허억. 허억. 수정 씨…."
"네…?"
"우리 지금 콜로세움 갈 건데, 같이 가지 않을래요?"
* * *
콜로세움의 관중 대기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삼삼오오 모여 수정구슬을 쳐다보고 있다.
그들은 왜 이렇게 경기가 늦게 시작되냐면서 투덜거렸고, 그 소란 속에서 백성찬이 나타났다.
일행들에게 이곳으로 오라는 귓속말과 함께.
- 묵사발: 야, 안 그래도 그 말 기다리고 있었다. 심심해 죽는 줄 알았어. 임마. 왜 이렇게 늦게 불렀냐? 우리가 얼마나 콜로세움 가고 싶었는데.
- 레이벨트: 뭐, 전 그냥 할아버지 뜻에 따른 것뿐이에요.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구나 싶어서요. 근데, 아무 생각 없으시더라구요. 하하. 미안해요. 형님.
- 묵사발: 아놔, 진짜…. 야 잠만. 대화 좀.
- 레이벨트: 넵.
묵사발은 삼촌이 아니라 형님이라고 부르는 걸 좋아했다.
삼촌은 너무 아재 같다나 뭐라나.
아무튼 말투는 아재지만, 백성찬은 형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사실 나이 차이로는 삼촌뻘인 건 비밀이지만.
- 묵사발: 큭큭. 야, 방금 정현이 자식. 그 여의사한테 달려갔다. 내가 지금부터 콜로세움으로 갈 거니까. 같이 갈 생각 있냐고 물어보고 오라고 보냈어.
- 레이벨트: 이야. 징검다리 놔주시는 거예요? 결과는요?
"하핫, 하여튼 재밌는 형님들이라니까."
백성찬이 코를 쓱 문질렀다.
내심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아, 젠장 왜 이렇게 귓속말이 안 오지.
뭐야. 뭐야. 어떻게 된 거야.
- 묵사발: 야. 왔다.
- 레이벨트: 오, 같이요?
- 묵사발: 그래. 근데 이상한 부엉이 한 마리도 같이 왔는데?
- 레이벨트: 아마 펫 아닐까요?
- 묵사발: 흠, 그렇겠지?
"오올, 대박~"
있다가 만나면 놀릴 거리가 하나 생겼다.
흐흐. 이상하게 놀리기 좋은 삼촌이라니깐.
- 묵사발: 아무튼 우리 이제 출발한다. 있다가 보자.
- 레이벨트: 옙. 있다가 봐요. 형님.
곧장 창을 닫고 주변을 살폈다.
커뮤니티에 따르면 이곳 관중 대기실엔 달러 대출을 해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최대 대출 금액이 100만 달러인데, 갚을 때는 무려 30%를 더 붙여서 갚아야 한다고 한다.
완전 바가지가 따로 없다.
"하지만 나한텐 상관없는 얘기지. 흐흐."
방금 할아버지가 참가자 대기실을 향해 들어갔다.
5분의 혈투(?) 끝에 할아버지는 겨우 이길 수 있었고, 결론만 얘기하자면 겨우가 아니라 너무나 손쉽게 이겼다.
바리깡에 머리를 밀린 남자는 멘탈이 붕괴되었고, 할아버지의 매질에 곤죽이 되었다.
결국, 그는 뚝배기가 터져서 사망했다.
할아버지는 당당히 그 자리에서 표를 받을 수 있었다.
입구를 지키던 NPC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지만.
"하여튼 내 할아버지지만 대단하다니까."
소싯적엔 어떤 모습이셨을지 궁금하다.
나중에 시간 나면 물어봐야겠다.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참.
"빨리 돈 걸어야겠다."
마침 사회자의 방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시간이 지체된 관계로 4조의 경기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4조의 선수들입니다!
작은 수정구슬에 20명의 선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제일 마지막에 있었다.
순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영감탱이잖아?"
"엄청 약해 보이는데?"
"스읍. 보통 노친네들은 게임 잘못하지 않나?"
그들은 각자 누구에게 걸지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할아버지에게 걸 생각은 못했다.
뭐, 사실 이게 당연한 모습이다.
유니온은 노인들에게 혜택을 주며 관대한 편이었지만, 유저들 사이에서 노인은 트롤이라며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하긴. 우리 할아버지가 정상은 아니지."
백성찬은 서둘러 돈을 빌리는 곳으로 갔다.
그곳의 이름은 달러 대출 상담소.
인생 첫 대출이지만, 과감하게 지른다.
할아버지 어록에 따르면 남자란 자고로 한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거든.
"100만 달러 대출."
"흐음. 확실하오? 못 갚으면 귀족들의 수발을 들어야 하오. 거부한다면 강제 노역소로 보내지지. 그곳에서 3개월을 보내야 하오."
"괜찮으니까 주세요."
"으음. 잠시만 기다리시오."
직원이 사라지더니, 탁자에 100만 달러를 턱! 하며 올렸다.
새삼 처음 만져보는 큰돈에 심장이 쿵쿵 뛴다.
하지만 따면 그만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할아버지가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거든.
-마지막 4조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 관중 여러분들은 돈을 걸 사람을 선택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며 각자의 창구에 돈을 올렸다.
1~20번의 창구였는데, 할아버지는 당연히 마지막 20번이었다.
백성찬은 아무도 줄을 서지 않는 그곳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100만 달러를 턱! 하며 올렸다.
"올인."
* * *
-자, 그럼 이제 마지막 4조의 경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룰은 데스 매치입니다! 살아남으십시오. 장외는 탈락입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흐음."
백무열은 턱수염을 매만졌다.
자신에게 돈을 건다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어쨌든 끝난 모양이다.
나한텐 몇 명이나 걸었으려나.
웅장한 나팔 소리와 함께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울렸다.
과아아앙!
"흐흐. 우리는 3명이 같은 편이다. 덤빌 테면 덤벼봐라! 영감탱이!"
별안간 옆쪽에서 못생긴 놈들 3명이 달려들었다.
아마, 자신이 나이가 많아서 먼저 죽이려는 속셈인가보다.
백무열은 꽃다발의 탈을 쓴 목검을 쥐었다.
'우선 가볍게 몸이나 풀어볼까.'
곧장 그들을 향해 마주 달렸다.
몽둥이의 가호는 쓰지 않았다.
그저 가벼운 몸풀기였으니까.
가끔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휘둘러봐야 훈련이 되는 법이지. 허허.
아, 그래도 이건 꺼내야겠네.
혹시라는 게 있으니까.
위이이잉-!!
품속에서 꺼낸 마력이발기가 사납게 울었다.
"뭐야? 저 조합은?"
"목검이랑 바리깡??"
"죽으려고 작정했나 본데? 하하!"
그렇게 우리는 맞붙었다.
백무열은 그저 입꼬리만 올린 채, 그들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했다.
목검으로 공격을 빗겨내고, 마력이발기로 그들의 구레나룻을 모조리 밀어버렸다.
서걱. 서걱. 서거걱!
"미, 미친 이거 뭐야?!"
"이런 젠장!!!"
"이거 뭐야!! 아아악!! 내 구레나룻!!"
목검을 휘두를 필요도 없어 보인다.
놈들의 공격은 그야말로 허점투성이였다.
백무열은 그 틈새로 계속해서 마력이발기를 휘둘렀다.
그들은 순식간에 빡빡이가 되었고, 상태 이상 '동공지진'과 함께 멘탈은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백무열은 그들의 엉덩이를 밀었다.
3인방은 눈물을 흘리며 장외로 밀려났다.
"……."
"……."
"……."
침묵을 가로지르는 정적.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백무열은 무대의 정중앙을 향해 말없이 걸어갔다.
그저 적막한 발소리만이 경기장을 조용히 울렸고, 백무열은 마침내 중앙에 멈춰서 꽃다발….
아니, 목검을 빼 들었다.
"덤벼라. 이 허접 쓰레기들아."
쿠구구구구.
[성좌스킬, '몽둥이의 가호'가 발동합니다!]
"한 수 가르쳐주마."
백무열이 딛고 선 땅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