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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68화 (168/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68화

제168화

순간 너무 당황했다.

아니, 미도가 여길 어떻게 온 거지.

이걸 반가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근데 저 옆에 졸졸 따라다니는 놈들은 뭐지…?

옆에 있던 견소룡이 어리둥절했다.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십니까?"

"손녀."

"예? 손녀요?"

"그래. 저기 걸어오는 아이가 내 손녀다."

견소룡은 내가 가리킨 곳을 보더니, 흥미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손녀를 두셨군요. 수련을 하면 잘 할 것 같습니다."

"보통은 닮았다, 안 닮았다를 보통 생각하지 않냐?"

"아, 그렇군요. 그럼 하나도 안 닮은 것 같습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이지만 오른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할 수만 있다면 꿀밤을 먹였을 텐데.

이걸 지금 때릴 수도 없고….

"우하하! 그러고 보니, 너는 아까 전 내 공격을 버텼던 녀석이로군! 반갑다! 라인하르트라고 한다!!"

고릴라처럼 서 있던 라인하르트가 다짜고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곧장 그의 손을 잡았다.

손이 엄청 큰 녀석이다.

내 작은 손과 비교하면 무려 2배의 차이.

진짜 무두르가 인간으로 태어나면 이런 모습이 될 것 같다.

녀석은 다짜고짜 내 등을 팡팡! 쳤다.

"나는 강한 남자를 좋아한다! 내 공격에 버틴 걸 보면 그래도 제법 실력이 있다는 뜻이겠지! 아까 요행 없이 내 공격을 버틴 걸 보면서, 3명 중 제일 실력이 출중하다는 걸 알았다! 음하하!"

사실 요행이었는데, 이놈은 오해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살아남은 이들을 모두 봤다니 꽤 눈썰미가 좋은 녀석이다.

근데 좀 살살 쳤으면 좋겠는데….

아까부터 생명력이 0.5%씩 닳고 있다.

무슨 힘이 이렇게 세지.

[취이익. 재밌군. 이 자랑 붙고 싶다.]

'조금만 참아라. 어차피 붙게 될 테니.'

[흐흐흐. 기대하겠다.]

어째 내 주위엔 싸움 광들만 있는 것 같다.

내 옆에 있는 견소룡도 그렇고, 무두르도 그렇다.

왠지 모르겠지만, 저 라인하르트라는 녀석도 아마 같은 부류일 것이다.

피곤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자, 3조의 선수들은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룰은 간단합니다. 살아남으십시오. 단, 4명이 남을 때까지 경기는 계속됩니다. 16강에 진출하는 것은….

사회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무대는 이미 완벽하게 원상 복구된 상태.

아까 전 나타난 마법사들이 지팡이를 휘두르더니, 정말 마법처럼 새것이 되었다.

저 멀리 미도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나는 초감각을 끌어올려 시력에 집중했다.

제일 먼저 본 것은 당연히 미도의 얼굴.

저번에도 만났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기분이 든다.

그땐 모르는 척 연기를 해야 했었는데, 지금은 그저 이렇게 바라보기만 하면 되니까.

어떻게 봐도 예쁘구만. 허허.

이어서 본 것은 미도의 옆에 있던 남자들.

나는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저놈들이었구나."

얼핏 TV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난 저놈들을 살생부에 기록했다.

굵은 글씨로 쓰고 밑줄까지 그어놨지.

이젠 별표도 그려놔야겠다.

"…천천히 알아가봐야겠군. 허허."

살벌하게 웃으며 너털웃음을 흘리는데, 견소룡이 말을 걸었다.

"아는 사람이 또 있으십니까?"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천천히 알아갈 생각이지."

"그렇군요. 이제 경기가 시작하나 봅니다."

나는 무대를 바라봤다.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 *

한낮의 포트렌.

그곳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입구에 적혀있는 무역도시라는 글자답게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길가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다양한 복장을 한 NPC와 유저들이 많았다.

백무열은 주변을 보며 감탄했다.

"여긴 부산이랑 비슷하구나."

백성찬이 어리둥절했다.

"건물은 완전 서양식인데요? 그래도 배가 정박해있고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걸 보면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요."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와 바닷가에 정박해있는 수많은 배를 보면서 백무열은 옛날 생각을 했다.

그는 부산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 춘택이도 마찬가지겠지.

'동백아….'

자신과 최춘택.

그리고 김동백은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다.

우린 셋 다 고아였고,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잘 맞는 사이였다.

자신은 목검을 잘 다뤘고, 춘택이는 발차기를 잘했다.

그 녀석은 뭘 더 숨기고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그랬다.

동백이는 커다란 주먹으로 싸우는 것이 특기.

우리 셋은 의기투합해 부산의 상인들을 돕기로 했다.

'다리 없는 새'라는 별명을 지녔던 춘택이를 중심으로 우리들은 그렇게 최초의 무각회를 세웠다.

"할아버지. 저 잠깐 장비랑 가죽 좀 팔고 올게요."

"그래. 알았다."

백성찬이 사라지자, 백무열은 드넓은 바다로 시선을 옮겼다.

그것은 너무도 넓어서 그날이 생각나는 것 같았다.

누구보다 사이좋았던 우리 셋 중 동백이가 죽었던 그날을.

"흐음…."

이제는 꽤 오래된 이야기지만, 백무열은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자신은 그날의 동백이에게 아직 얽매여 있는지도 모른다.

그 녀석의 유언은 춘택이를 부탁한다는 것이었으니까.

춘택이는 그 뒤 조직을 나가 평범하게 살았고, 자신은 동백이처럼 행동하며 두 사람의 빈자리를 채웠다.

원래는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그 녀석 때문에 성격이 바뀐 것이다.

어쩌면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건 동백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곧 그 녀석의 기일이구나."

동백이는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이브에 죽었다.

그날도 눈이 내렸는데, 백무열은 그 때문에 눈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성찬이 아비와 어미도 눈이 오는 날 죽었으니까.

"저 왔어요. 할아버지. 이제 콜로세움으로 가요."

백무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그렇게 입구에 도착했고,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그런데 빠르게 뛰어나오는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백무열은 인상을 찡그렸다.

어깨를 부딪친 남자 또한 마찬가지.

"뭐야. 씨댕. 너, 누구…."

"……."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

백무열은 살짝 놀랐다.

"불도마뱀?"

"패, 패죽 영감?"

설마 이놈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허허. 악연도 인연이라더니.

"네놈이 왜 여기 있는 거냐."

"그, 그, 그건 내가 할 말인데? 아니, 영감탱이가 왜 여깄어?"

"쯧쯧. 말버릇은 여전하구나. 죽고 싶냐?"

"큭…."

아마 이놈은 덤비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자신을 죽였다간 무각회가 가만있지 않을 거니까.

그나저나 석두 녀석이 얘기한 게 맞군.

이쪽에서 뭔가 일을 꾸미는 것 같다더니….

"시발. 영감탱이 다음에 봐. 내가 지금은 바빠서 그냥 지나가는 거야. 알아? 항?!"

별안간 최불룡이 멀어지더니 이곳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

뭐라고 외치는데, 뭐라고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저것도 이젠 귀여울 지경이다.

뚝배기를 한 대 후려칠 걸 그랬나….

"아는 사람이세요?"

미간을 찌푸린 손자의 손이 검 손잡이에 가 있다.

아마 버릇없게 욕을 해대니 욱했던 모양이다.

백무열은 피식 웃었다.

"뭐, 내가 알아서 하마. 어서 들어가자."

"…네."

백성찬은 최불룡의 뒷모습을 한 번 흘겨보더니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들은 여러 곳을 기웃거렸고, 콜로세움 참가를 할 수 있는 곳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입구에 웬 남자 NPC가 서 있다.

"콜로세움 참가를 원하십니까?"

"그렇네."

"음, 당신들의 수준을 가늠해보겠습니다."

눈앞의 남자는 푸른 눈을 일렁이더니 자신과 손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잠시 뒤 말했다.

"당신들의 수준은 이곳과 맞지 않습니다. 입장이 불가합니다."

* * *

그 무렵.

나는 3조의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제일 걱정되는 건 역시 미도.

혹시나 다칠까 싶어서 나도 모르게 노심초사하며 보게 된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괜찮은 것 같다.

저 호랑말코 같은 놈들이 미도를 제법 잘 지키고 있었으니까.

"미도야. 버프!"

"알았어요!"

아까부터 주먹질을 하던 놈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마 이름이 '박태현'이었던가.

아무튼 미도는 그에 맞춰 버프를 걸어주었다.

저번에 내가 받았던 '바디페인팅'이라는 스킬.

버프를 받은 박태현이 땅으로 주먹을 내리쳤다.

라인하르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의 균열을 만들며 균형을 잃게는 만들 수 있었다.

콜로세움 참가자들이 중심을 못잡은 채 흔들리자, 뒤에 있던 놈이 빛의 화살을 날렸다.

아마 이름이 '은정혁'이었던가.

"빛의 폭포!"

은정혁이 하늘을 향해 빛의 화살을 빠르게 쏘았다.

TV에서 봤던 스킬을 눈앞에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퓨퓨퓨퓻!

빛의 화살들이 땅으로 떨어지며, 일정 범위의 적들에게 화살 세례를 퍼부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제일 앞에서 공격을 받아내고 있던 녀석.

이름이 아마 '김현우'였던 걸로 기억한다.

한국에서 랭킹 100위안에 든다고 했나?

아무튼 정도가 그렇게 얘기했었다.

그는 하얀 갑옷에 새하얀 검신을 가진 한손검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김현우가 하늘을 향해 점프하더니, 적들의 한 가운데 검을 꽂았다.

"그랜드 크로스."

쿠구구구.

새하얀 불꽃이 십자가의 형상을 띄더니, 아까 화살을 맞은 적들을 향해 퍼져나갔다.

그리고 땅에서 갑자기 하얀 불기둥이 치솟았다.

콰아아아-!

순식간에 사라지는 적들. 그야말로 기가 막힌 연계플레이였다.

호흡이 제법 좋은 걸 보니,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모양이다.

그래도 질투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쯧."

상황이 변한 건 그때였다.

별안간 웬 삐에로 하나가 허공에 단검을 5자루 띄운 채 공중으로 도약하더니, 미도를 향해 단검의 세례를 퍼부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들도 당황한 듯했다.

"미도야. 피해!"

아까 활을 쏘았던 은정혁이 미도를 밀치더니, 단검 5자루에 대신 맞고 말았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 것이 상황은 좋지 않아 보인다.

"큭…. 이거 맹독이야. 조심해!"

"오, 오빠. 괜찮아요?!"

미도는 쓰러진 은정혁을 부축했다.

망할 놈의 삐에로는 단검을 다시 마법으로 만들어내더니, 빠른 속도로 미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순간 나도 울컥했다.

이 시부럴 놈이 감히 우리 손녀를 공격해?

"…육시랄 놈 같으니라고."

나는 망할 삐에로에게 거미줄을 쏘았다.

하지만 너무 멀었다.

거미줄은 닿지 못한 채 땅에 떨어지고 말았고, 나는 뒷골이 땡겨오는 것 같았다.

염병하네.

"킥킥킥. 죽어라!!"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삐에로는 여전히 미도를 노렸고, 박태현과 김현우는 단검을 쳐내기 바빴다.

하지만 버거워 보인다.

그들의 움직임은 느렸고, 삐에로의 움직임은 불규칙했다.

그는 이상하게 이런 싸움에 익숙해 보였다.

"후우우."

일단은 침착해야겠다.

심호흡을 하며 냉정을 되찾았다.

나는 머릿속을 회전시키며 도울 방법이 없을까 떠올렸다.

"형님."

"……?"

견소룡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그 거미줄 더 크고 강하게는 못 쏘는 겁니까?"

"더 크고 강하게…?"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래. 일단 뭐라도 해보는 수밖에.

"한번 해보마."

나는 정신을 집중하며 거미줄을 만들어냈다.

머릿속으로 커다랗게 발사되는 거미줄 뭉치를 떠올렸다.

스스스슷.

한 올씩 모이던 거미줄은 조그만 공부터 시작하더니, 이내 사과 크기의 거미줄 뭉치가 되었다.

팔목에서 올라온 거미줄은 끈적거리는 이질감이 있었다.

[영웅 스킬, '고탄력 거미줄'이 강화됩니다.]

[새로운 하위 능력 '거미줄 폭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곧장 망할 삐에로를 향해 손목을 겨냥했다.

"간다. 이 썩을 놈아."

파아앙!

작은 파공음과 함께 거미줄 폭탄이 날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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