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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65화 (165/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65화

제165화

나는 한참이나 케레노스에게 바람 다루는 법을 배웠다.

근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눈 감고 도자기를 빚는 느낌이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람을 어떻게 만지란 거야.

빌어먹을.

"오, 영감님 잘하셨습니다."

지금 내 눈앞엔 어렵게 만들어 낸 바람의 칼날이 있다.

케레노스의 것과 비교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제법 심혈을 기울였다.

"이제 저걸 저기로 던져보세요."

곧장 반월형의 바람의 칼날을 근처에 있던 숲을 향해 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바람의 칼날은 그곳에 있던 나무 한 그루를 싹둑 베어버렸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는 큰 소리를 내며 땅으로 쓰러졌다.

이 정도면 꽤 쓸 만한 위력이다.

"허허."

실없게 웃고 있는데, 케레노스가 다가왔다.

"훌륭합니다."

"쯧. 네놈 거에 비하면 코딱지 만하구만 무슨."

"저랑 비교를 하시면 안 되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스승님께 훈련을 받았는데요."

"스승님? 스승님이 있었냐?"

"제가 말씀 안 드렸습니까?"

다시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그럼에도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아무래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 난 처음 듣는 얘기다만."

"그렇군요. 제 스승님의 이름은 '뮤겐'입니다. 과거에는 '창신'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계셨지요. 전 그분께 폭풍의 창술을 사사 받았습니다."

"음, 뮤겐이라…."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엔 없는 이름이다.

아마, 그때의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대단하신 분입니다. 젊었을 땐 성좌들과도 자웅을 겨룰 정도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계셨다더군요. 뭐, 직접 보진 못했지만요."

"그래…?"

생각보다 엄청난 힘을 가진 노인네였나보다.

성좌들과 자웅을 겨룰 정도였다니.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네.

[취이익. 이봐. 그 노인네 아직 살아있나?]

이놈이 또 병이 도졌군.

'왜 나랑 싸우는 거 보고 싶냐?'

[크큭. 잘 아는군. 난 싸우는 걸 보고 싶다. 여긴 너무 심심하다.]

'쯧. 어차피 곧 많이 보게 될 거다.'

[오, 그래? 취이익. 기대하겠다.]

그러고 보니, 슬슬 콜로세움에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소룡이 녀석의 말에 따르면 참가 신청은 오늘 밤까지 받는다고 했으니까.

이제 출발해야겠네.

"넌 그만 메테우스로 돌아가 봐라. 난 콜로세움으로 가야겠다."

"큼. 영감님 그 전에 뭐 잊으신 거 없으십니까?"

"잊은 거? 뭐?"

"이러실 겁니까?"

케레노스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이놈이 왜 이러지.

순간 뭔가가 떠올랐다.

아, 혹시 그거 말하는 건가.

"기다려봐라."

"흐흐흐. 알겠습니다."

케레노스가 양손을 비볐다. 나는 녀석에게 10만 달러를 건네주었다.

아까 전 약속했었던 수업비.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호탕하게 웃었다.

돈이 그렇게 좋은가.

아마 지금 내가 수천만 달러 가까이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 놀라 자빠지겠지.

"고맙습니다. 영감님. 하하하!"

"쯧. 받았으면 메테우스로 썩 꺼져라. 바쁘니까."

"흐흐. 혹시 그 콜로세움 같이 가도 됩니까?"

"음, 같이? 뭐하러."

"아니, 뭐 그냥 영감님이 아직 바람을 잘 못 다루시니까요. 봐 드리기도 할 겸 포트렌도 구경하고, 또 풍희도 지켜야 하니까…?"

"흐음."

좀 수상쩍긴 하지만, 뭐, 괜찮겠지.

경호원 정도로 생각해야겠다.

이놈이 옆에 있으면 도움이 되긴 하니까.

곧장 풍희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아네모네를 쓰고 나면 풍희는 금세 잠이 들곤 했다.

"당장 움직이자."

"알겠습니다."

케레노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별안간 바람의 마력이 휘몰아치더니, 내 발을 휘감았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바람 마법, '헤이스트'를 받았습니다.]

[30분간 이동속도와 공격속도가 1.5배 상승합니다.]

"제가 깨달음을 얻고 나서 이런 것도 가능하더라구요. 하하."

"…실없긴. 빨리 가자."

"옙."

나와 케레노스는 콜로세움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저번에 누렁이를 타고 포트렌을 빠져나오면서 위치를 확인해뒀는데, 콜로세움은 포트렌의 가장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누렁이는 뭐하나 모르겠네.

아까 수정이랑 메테우스로 보내긴 했는데.

참고로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레추자도 수정이에게 맡겼다.

콜로세움이 시작되면 내가 챙겨주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맞다. 수정이."

갑자기 잘 달리다가 멈추자, 케레노스도 함께 멈추었다.

녀석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잠깐만 기다려라."

나는 곧장 귓속말 창을 열어 수정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잭슨: 수정아. 부탁한 건 알아봤니?

아까 전 그녀에게 바람의 신전 공사에 대한 진척도를 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무려 후에라의 축복이 걸린 일이니, 빨리 보상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왜 답장이 없는 거지.

나는 곧장 망우초 담배를 꺼냈다.

저번에 최불룡이 죽으면서 떨어뜨린 것인데, 장비 말고 꽤 쓸 만한 것을 떨어트렸다.

안 그래도 담배가 필요한 순간이 많았는데, 이놈이 떨어트릴 줄이야. 허허.

"솔라야."

"해해. 나 불렀냐. 주인아!"

곧장 불꽃을 흩트리며 나타난 솔라에게 망우초 담배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한 모금 땡겼다.

쭉 빨아 들여지는 연기가 현실과 제법 비슷하다.

아니,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망우초 담배를 피셨습니다.]

[당신의 모든 능력치가 3분간 5% 감소합니다.]

[니코틴이 쌓일수록 감소 시간이 더 증가합니다.]

"음, 아주 좋군."

니코틴이 쌓일수록 감소 시간이 증가한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뭐 3분 정도야.

그렇게 한 모금 더 태웠다.

수정이에게 답장이 온 건 담배를 거의 끝까지 태웠을 무렵이었다.

- 크리스탈: 엇, 아버님 죄송해요. 지금 워낙 정신이 없어서요.

- 잭슨: 아니다. 바빴나 보구나.

- 크리스탈: 네, 갑자기 응급 환자가 있어서요. 키스가 좀 크게 다쳤어요.

- 잭슨: 뭐? 어쩌다가??

키스가 다쳤다니 의외다.

또 뭘 했길래 다친 거지.

- 크리스탈: 음…. 뭐, 작은 사고였어요. 하하.

- 잭슨: 이젠 괜찮은 거냐?

- 크리스탈: 네, 다행히요. 아, 그리고 바람의 신전은 진척도가 59%였어요. 그런데, 쓰레기촌의 주민들이 가세하니까 속도가 엄청 올랐어요. 아마 완공까지 일주일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더 빠를 수도 있구요.

일주일이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쓰레기촌의 주민들이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네.

사실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무작정 조셉의 말만 믿고 허락했던 일이니까.

- 크리스탈: 아, 그리고 여기 아버님 지인이 계세요.

- 잭슨: 지인?? 누구 말하는거냐.

- 크리스탈: 성함이 백무열이라고….

- 잭슨: 뭐야??

아니, 그놈이 언제 아크스타를 시작한 거지?

기가 찬다.

나한테는 전화 한번 없더니.

허.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아니, 내가 메테우스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지?

- 크리스탈: 그리고 아버님의 아드님도 같이 계세요.

- 잭슨: 엥??

- 크리스탈: 저번에 병원에서 뵀던 기억이 나요. 아마 성함이 최정현이라고….

아니, 그 녀석은 언제 메테우스로 온 거지. 그보다 무열이 놈이랑 같이 있다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대체 둘은 어떻게 만난 거고 어째서 메테우스에 함께 있다는 말인가.

당장 메테우스로 가서 물어보고 싶지만, 지금은 콜로세움의 신청이 먼저다.

늦었다가는 소룡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테니까.

- 크리스탈: 아버님을 만나러 왔다는데 어떡할까요?

- 잭슨: 일단 포트렌의 콜로세움으로 오라고 해라. 거기서 보자고 전해줘.

- 크리스탈: 아드님도 같이 말이죠?

"잠깐만. 둘이 같이 있는 건가…?"

순간 고민이 들었다.

원래 내 의도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하려던 것.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 이참에 두 사람을 붙여놓으면 이것 또한 좋은 일이겠지.

허허. 아주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군. 좋구만 좋아.

- 잭슨: 둘째 놈한텐 거기서 꼼짝 말라고 해라. 오면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려버릴 거라고 해.

* * *

"그렇…게 전하라는데요?"

김수정은 있는 그대로의 말을 눈앞의 사람들에게 전했다.

그러자 유독 최정현의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다,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린다구요?"

"하하…. 네. 그리고 저한테 잘 부탁하신다네요?"

"그, 그래요? 아버지가요? 하하…. 하…."

별안간 뒤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엔 최정현을 제외한 일행들이 웃고 있었다.

"크하하하! 하여튼 춘택이 녀석도 한 성질 머리한다니까."

백무열 또한 호탕하게 웃었다.

인상은 엄청 무섭지만 성격은 호탕한 분인 것 같다.

"그래. 포트렌의 콜로세움으로 오라고 했다고?"

"아, 네. 거기로 오라고 하시네요. 안 그래도 거기서 누구랑 싸우시기로 하셨거든요."

"싸운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아, 그게 아버님께서…."

김수정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그저 견소룡이라는 사람과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콜로세움이라는 곳에서 붙기로 했다는 이야기만 했다.

모든 것을 들은 백무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그런 녀석이 있다고? 춘택이 녀석 혼자만 재미를 보다니. 쯧. 가서 좀 때려줘야겠구만."

"하하…."

김수정이 허허실실 웃었다.

일행들도 흥미롭게 들은 듯했다.

그들은 갑자기 앞으로 나서며 서로가 함께 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할아버지. 저도 갈래요."

"저도 가겠습니다. 영감님. 묵사발을 빼놓으면 섭하지."

"뭐, 묵찌빠 형제는 한몸이니까. 이번엔 응해드리죠."

"바로크…. 가고 싶다."

"하하하! 콜로세움이라니 재밌겠군! 머리털이 곤두서는 짜릿한 경기들이 많겠지?"

"저희들도 가고 싶습니다. 영감님."

하지만 백무열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됐다. 너희는 전부 여기 있어라. 사냥이나 좀 하고 있어. 성찬이는 나랑 가자."

"아싸리요!"

백성찬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했다.

나머지 일행들은 모두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최정현은 여전히 얼굴이 창백해진 채 멍한 표정을 지었고, 백무열은 곧장 문을 향해 걸어갔다.

"할아버지. 같이 가요~!"

백성찬이 뒤를 따랐다.

이윽고 두 사람이 사라지자, 김수정이 화들짝 놀랐다.

"아, 맞다! 콜로세움은 레벨 100이 넘어야 신청된다던데?"

서둘러 문을 열고 나가 두 사람을 찾았지만, 이미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그야말로 귀신처럼 사라졌다.

김수정은 다시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저 혹시 방금 나가신 두 분한테 콜로세움은 레벨 100의 제한이 있다고 귓속말 좀 해주시겠어요?"

하지만 일행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제일 먼저 대머리 NPC 두 사람이 흩어졌다.

"크흠! 사냥이나 하러 가야겠군. 몬스터들의 머리털을 모조리 뽑아버려야겠어."

"같이 가자. 머머리."

묵찌빠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쳇. 우리를 버리고 가다니, 그 노인네도 당해봐야지."

"그동안 우리를 괴롭혔으니 한번 당할 때도 됐죠."

"바로크…. 삐졌다."

그렇게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나가버렸다.

남은 것은 하얗게 질려있는 최정현이라는 남자뿐.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는 지금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아버지께서….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린다니…. 설마 그때, 그 스토커처럼…?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지. 그래. 아닐 거야…. 아니겠지? 아닌가…?"

"……."

어째 정상인이 없어 보이는 건 착각일까.

"정신과는 내 전공이 아닌데…."

멘탈 케어부터 해야 하나.

김수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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