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56화
제156화
최불룡은 동생들을 이끌고 쓰레기촌으로 향했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제법 쌀쌀하기도 했다.
우수수 떨어진 낙엽들이 나부끼는 걸 보니, 이곳도 벌써 겨울이다.
그러고 보니, 곧 크리스마스구나.
"형님. 제복이 정말 저대로 두실 겁니까?"
"…제복이?"
옆에서 함께 걷고 있던 한불이의 물음에 최불룡은 잠깐 고민에 빠졌다.
김제복.
분명 영감탱이를 잡기 위해 데려온 놈인데,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완전 제멋대로에 미친개라는 별명답게 유저가 보이는 족족 강제로 PK 해버린다.
그 손속이 조금 잔인해서 최불룡도 미간이 찌푸려질 지경.
아까 귓속말을 했는데 설마 자신까지 차단해놨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동안 한 번도 자신을 차단한 적은 없었거늘….
"형님까지 차단해놨다는 건 완전 예의에 어긋나는 겁니다. 있다가 캡슐에서 나오면 단단히 혼을…."
"얌마. 그러다 너 칼빵 맞아."
그 말이 제법 섬뜩했는지, 한불이가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래도 형님. 아무리 그놈이라도 이건 좀…."
"일단 이용할 때까진 해보고 버려야겠지. 너무 걱정 마라.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전 형님만 믿습니다."
"그래."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드디어 쓰레기촌에 도착했다.
그 이름처럼 정말 가난해 보이는 마을이다.
하지만 곧 없어질 마을.
누군가를 짓밟는 죄책감 따윈 이미 버린 지 오래다.
최불룡은 등 뒤에 있던 대검을 뽑으며 스킬을 발동했다.
[영웅 스킬, '불타는 광염 검'을 발동합니다.]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광염 데미지가 추가됩니다.]
[일정 마력을 소모하면 광염의 검기를 날릴 수 있습니다.]
[광염은 엄청난 온도와 가연성을 자랑합니다.]
[발화가 더욱 쉽게 일어납니다.]
"잘 봐라. 아그들아."
뒤에 있던 동생들이 자신을 쳐다본다.
그동안 레벨업을 하며 스킬도 강화가 되었는데, 이름도 '화염'에서 '광염'으로 변했다.
자신의 직업은 대륙을 한때 불바다로 만들었던 화염의 광전사.
그 이름처럼 미친 화염을 다루는 영웅 클래스의 직업이다.
화염에 대해서는 제법 강력한 권능을 가지고 있는데, 저번에 그 영감탱이는 예외다.
빌어먹을.
다시 생각해도 열 받네.
그 영감탱이는 대체 뭐였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영감에게는 자신의 화염이 통하지 않았다.
설마 자신의 화염보다 상위의 화염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하지만 이젠 지지 않는다.
자신의 힘이 광염으로 진화하며 더욱 강해졌으니까.
그 날 이후로 자만도 하지 않는다.
그때 얻은 교훈은 제법 값졌다.
"광염의 투사."
[영웅 스킬, '광염의 투사'를 발동합니다.]
[온몸에 광염의 갑옷을 입습니다.]
[피격 시 공격 대상에게 광염 데미지를 반사 시킵니다.]
[공격을 당할 때마다 공격속도와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이것 또한 성장하며 얻은 스킬 중 하나다.
영감을 없애겠다는 일념으로 화염 내성을 100%까지 올렸더니 쓸 수 있었던 스킬.
화염의 광전사라고 불렸던 '베르세르크'의 흔적을 쫓아가다 우연히 얻은 것이었다.
"흐읍!"
최불룡은 미친 화염에 휩싸인 채, 불타는 대검을 휘둘렀다.
소량의 마력이 빠져나가며 뻗어 나가는 광염의 검기.
그것은 허름한 쓰레기촌의 외벽으로 날아가 부딪혔다.
콰콰콰쾅-!
"가자, 얘들아."
뒤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함께 최불룡은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 * *
쿠구구.
환자들을 재우고 잠깐 쉬고 있던 김수정은 옅은 진동을 느꼈다.
그녀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환자들은 여전히 잠을 자고 있다.
뭐지? 잘못 들은 건가?
하지만 한 번 더 진동이 울렸다.
쿠구구구.
아까보다 더 선명하게 들려오는 진동음.
아크스타에는 각종 자연재해가 존재한다.
저번에 있었던 화산 폭발도 그중 하나겠지만,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지진도 있다.
하지만 지진이라니, 조금 갑작스러운데. 진짜 지진일까?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반딧불성, 카미유가 눈을 비비며 일어납니다.]
"미안해. 깼어?"
[반딧불성, 카미유가 진동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녀는 낡은 침대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주변에서 함성과 뒤섞인 폭음이 들려오더니,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내 그것은 누군가의 비명으로 이어졌다.
"꺄아아악!"
"뭐, 뭐야…?"
김수정은 비명이 들리는 곳으로 뛰었다.
저 멀리 꽤 많은 숫자의 남자들이 닥치는 대로 건물을 부수고 있다.
그녀는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꺅! 사, 살려 주세요!"
"흐흐흐. 헬레나는 어디 있지?"
헬레나? 헬레나는 대체 왜….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구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아차, 그렇지."
김수정은 곧장 '형화의 눈'을 발동했다.
그녀의 시야가 형광으로 물들며 밤눈을 밝혔다.
적외선 기능과 약간의 투시 기능이 있어서, 지금 같은 어둠 속에서는 아주 유용한 스킬이다.
그녀는 곧장 여인을 위협하는 남자의 뒤에 형화의 침을 던졌다.
퓻.
"윽…. 뭐야?"
일직선으로 날아간 형화의 침은 남자의 혈도를 정확히 찔렀다.
신성 형화 침술에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도 있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혈 또한 존재했다.
물론, 맞추기는 굉장히 힘들다.
지금은 다행히 남자가 방심한 것 같지만.
[신성 형화 침술이 대상을 마비시킵니다.]
[침이 사라질 때까지 마비는 지속됩니다.]
[침이 사라지기까지 남은 시간 60초, 59초….]
지속시간이 있어서 빨리 죽여야 한다.
김수정은 근처에 떨어진 커다란 돌을 집어 들었다.
자세히 보니 무너진 건물의 잔해.
이걸로 머리통을 내리치면….
"아냐. 아냐."
김수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자신의 본업이 의사다.
돌로 얼굴을 내려치는 건 너무 잔인한 것 같다.
조금 덜 잔인하게 죽일 방법이 있을 것이다.
파르르르.
그녀의 곁에 있던 큰 반딧불이 남자의 몸 어딘가를 가리켰다.
한눈에 보아도 카미유가 조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역시나 메시지가 도착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이런 혈은 배우지 않길 원했다고 말합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무고한 사람을 구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가르쳐 주겠다고 말합니다.]
"응…. 고마워."
김수정은 남자의 정면에 섰다.
"너, 넌…?"
크게 놀라는 남자의 얼굴.
하지만 김수정의 개의치 않고 남자의 사혈(死穴)에 침을 꽂았다.
[악명 높은 살인자, '육십팔불이' 님을 죽였습니다.]
[당신의 명성이 500 상승하였습니다.]
피도 튀지 않고 깔끔하게 절명한 남자는 그대로 아이템을 떨어트리고 로그아웃했다.
김수정은 재빨리 그것을 주워들었다.
하지만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신발이네. 잠깐만 근데 누구라고…?"
육십팔불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다.
그리고 굉장히 익숙한 이름.
언젠가 이런 사람들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아! 그때 날 납치했던 조폭들이구나!"
[반딧불성, 카미유가 조폭이 뭐냐고 묻습니다.]
"음, 그게 뭐냐고 물으면 내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지…. 하하…."
"저기…."
"……?"
고개를 돌리니, 아까 비명을 질렀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뭘요. 다친 데는 없어요?"
"아, 그게…."
여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허벅지에 가벼운 찰과상이 있다.
김수정은 씩 웃으며 그것을 치료해주었다.
그녀에겐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자, 됐죠? 우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있으세요. 전 다른 사람에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아, 네. 언니. 힘내세요!"
그렇게 말한 여인은 사라졌다. 김수정은 피식 웃었다.
언니. 언니라….
들어보니, 나쁘지 않네.
자신에겐 남동생만 있지 여동생은 없다.
그런데 막상 들어보니 여동생이 있으면 제법 귀여워 해줬을 것 같다.
그렇게 또 다른 비명이 들리는 곳으로 뛰어가는데, 메시지가 떴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조폭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합니다.]
하여튼 호기심이 많다니까.
김수정은 간단히 말했다.
"그냥 나쁜 놈들이야. 그것도 아~~주 아주. 알았지?"
[반딧불성, 카미유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당신을 응원합니다.]
"고마워~ 아차. 아버님께도 알려드려야겠다."
김수정은 귓속말 창을 열었다.
* * *
그 무렵 나는 일행들과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조셉과 상의 끝에 마차를 하나 대여하기로 했고, 우리들은 마차에 짐을 실었다.
중화제 100개.
트롤의 피가 담긴 병 100개.
남은 것은 하르셀이라는 약초였는데, 그것은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마침 약초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곳이 포트렌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모든 짐을 싣고 우리들은 마차에 올랐다.
물론, 나는 조종석에.
"흠…."
"왜 그러십니까?"
물어오는 조셉에게 나는 되물었다.
"여긴 왜 말이 아니라 소냐?"
포트렌에서 대여한 마차는 조금 특이했다.
말이 끄는 것이 아니라, 소가 끌고 있었다.
그것도 평범하게 생긴 소가 아니라 이마에 눈이 하나 더 달린 '삼안소'라는 것이었는데,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뭔가 말이 아니니까 운전할 맛이 안 난다고나 할까.
"하하. 그건 포트렌이 무역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아무래도 무역품이 많은 도시 특성상 이곳은 많은 짐을 싣기 위해 말보다는 소를 주로 이용합니다."
"아, 그런 이유였구만. 으흠."
나는 다시 흥미로운 눈으로 소의 등을 쳐다보았다.
저걸 보니 문득, 장인어른 농사 도와주던 누렁이가 생각난다.
그놈은 순해서 등에 올라타도 말 참 잘 들었는데….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닌가.
"자, 출발한다."
살짝 고삐를 흔들자, 누렁이가 "음머~" 하면서 출발하기 시작했다.
화려한 대도시 사이를 가로지르는 소라니, 조금 웃기긴 한다.
근데 왜 이렇게 느려…?
"야, 조셉아."
"예."
"이거 원래 이렇게 느리냐?"
"예. 뭐…. 현실 반영된 거죠. 하하."
"염병하네. 뭘 이런 것까지 현실 반영하냐. 쯧."
툴툴거리며 혀를 차는데, 문득 귓속말이 도착했다.
- 크리스탈: 아버님.
- 잭슨: 어, 그래. 수정아. 별일 없지?
- 크리스탈: 아뇨. 별일 있어요.
- 잭슨: 으잉?
별 일이 있다니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거 어째 불길한데.
- 크리스탈: 그 조폭들이 쳐들어왔어요.
- 잭슨: 조폭?
- 크리스탈: 저번에 절 납치했던 놈들이요.
저번에 수정이를 납치했던 놈들이라면 하나밖에 없다.
하아, 이거 어째 계속 악연으로 이어지네.
바퀴벌레 같은 놈들.
- 잭슨: 알았다. 최대한 빨리 가마.
그 말을 마지막으로 창을 닫았다.
하지만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지금 이 속도로는 엄청 늦게 도착할 것 같아서.
하지만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어쩌면…?"
나는 인벤토리에서 한 아이템을 꺼냈다.
그것은 미노타를 잡고 얻었던 타오르는 뿔.
이것은 화염 내성을 50%나 올려주는 옵션이 있다.
하지만 스킬도 하나 붙어있다.
"크, 크고 아름다운 뿔이여…?"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뭔 스킬 이름이 이따구지.
[전설 스킬, '크고 아름다운 뿔이여!'를 발동합니다.]
웃기지도 않는다.
'전설' 스킬이라니.
등급이 아까울 지경이다.
[모든 소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가진 뿔로 소들의 우상이 됩니다.]
[당신보다 능력치가 높은 소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굴복시킨 소는 당신에게 복종합니다.]
"허허. 이걸 쓰면 어떻게 되려나. 궁금하구만."
나는 곧장 앞에 있는 누렁이에게 말을 걸었다.
"누렁아."
"음머~?(날 불렀냐?)"
오, 진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네.
신기하군.
머릿속으로 소들의 언어가 들리는 느낌이다.
나는 소에게 말했다.
"그래. 널 부른 게 맞다."
"음~모오~(신기하다. 인간이 내 말을 알아듣다니.)"
"나도 신기하다. 이놈아. 그나저나 좀 빨리 갈 순 없냐?"
"음머어~(갈 수는 있다. 근데 좀 흔들릴 텐데 괜찮냐모~?)"
"괜찮으니까. 좀 빨리 달려봐."
"모오~~!(알았다모!)"
갑자기 눈앞의 누렁이가 멈추었다.
그리고 별안간 콧김을 한 번 뿜더니, 바닥을 긁기 시작했다.
난 이 장면을 어디서 본적이 있다.
분명 어디 외국 영화에서 투우들이 이랬던 것 같은데….
"음모오오옹!!!(간드아아앗!!)"
어이씨. 이거 아닌 거 같은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