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55화
제155화
카지노를 나온 조셉은 물건들을 사고 있었다.
처음으로 구한 것은 바로 지혈 효과와 몸의 재생력을 도와주는 트롤의 피.
이것은 꽤 유명한 마법 재료인지라, 포트렌의 번화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어서 구한 것은 중화제였는데, 이것 또한 포트렌에 있는 마법사 길드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고 나니 남은 돈은 약 2,400만 달러.
그 어마어마한 액수에 절로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흐흐흐. 내가 줄 하나는 잘 잡았다니까."
역시 사람은 줄을 잘 골라야 한다.
그 줄이 동아줄이 될지, 썩은 줄이 될지는 잘 봐야겠지만, 어쨌든 자신은 동아줄을 골랐다.
설마하니 이런 떡고물이 떨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조셉은 당분간 분유값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있다가 와이프랑 소고기 먹어야지. 흐흐흐."
새삼 그런 큰돈을 쿨하게 넘겨준 어르신의 배포가 놀랍다.
앞으로 그분이 걸어갈 행보가 궁금해진다.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만 떠올려보아도 범상치 않은 분이니까.
아마, 어르신의 정체가 밝혀지면 아.스.라. 커뮤니티는 물론 모든 매체가 주목하게 되리라.
[인벤토리가 가득 찼습니다.]
[가방을 비워주십시오.]
"흐음. 근데 양이 좀 많네. 마차를 하나 구해야 하나."
이곳 포트렌에서 쓰는 마차는 대여비를 받는다.
무역이 활발한 곳인지라, 마차를 영구적으로 팔았다가는 무역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여비가 좀 비싼 거 같다.
하루에 10만 달러라니. 윈디아랑 비교하면 완전히 바가지다.
"하아.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어르신이 주신 돈에 비하면 이까짓 10만 달러 정도야."
조셉은 두리번거리며 마차대여소를 찾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별안간 귓속말이 도착했다.
- 잭슨: 어디냐.
"흠? 무슨 일 있으신가?"
- 조셉: 저 지금 트롤의 피 사고, 마법사 길드에서 중화제 사고 나오는 길입니다. 근데 아무래도 양이 많아서 마차를 대여해야 할 것 같네요.
- 잭슨: 음, 고생했다. 근데 잠깐 이리 좀 와봐라.
- 조셉: 예? 무슨 일 있으십니까?
- 잭슨: 그건 와서 설명해주마. 여기가 어디냐면….
조셉은 진지한 눈빛으로 귓속말을 들었다. 혹시 또 떡고물이 떨어질지 모르니까.
* * *
나는 조셉에게 이곳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아마 녀석이라면 무슨 방법이 있을 거다.
그래도 협박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놈이니 이런 방면에는 빠삭하겠지.
"오우, 누구한테 귓속말을 한 거예요?"
"조셉."
"아하, 그 친구가 있었죠?"
드레인이 깜빡했다는 듯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미국에서 살았던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둘은 제법 친했다.
그도 조셉이 파파라치로 활동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그놈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겠지."
하지만 드레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근데…. 조셉도 초등학생을 협박해본 적이 있을까요?"
"……."
잠깐의 정적이 일었다.
나는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니까 기다려보자."
그렇게 우리들은 조셉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녀석이 도착했다.
"두 분이 같이 계셨네요? 여기서 뭐하십니까?"
그가 우리를 보며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본론부터 말했다.
"묻고 싶은 게 있다."
"갑자기요?"
"초등학생 협박해본 적 있냐?"
"예…?"
조셉의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진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다.
나는 녀석에게 드레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미간에는 주름이 깊어졌다.
긴 이야기가 끝나자 조셉이 말했다.
"흐음. 이거 참 난감한 상황이네요. 그러니까 저 초등학생이 드레인 어르신에게 사기를 쳤고, 복수는 하고 싶은데, 아이라서 망설여진다. 그거죠?"
"그래, 맞다. 여기서 난리를 피웠다간 다른 병사들도 올 거 같거든."
사실 게임이니까 상관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어린 학생이다.
왠지 내가 나서서 혼내면 청소년 관람 불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 일단은 조언을 구해보는 것이다.
"돈을 돌려달라고는 해보셨어요?"
조셉이 드레인을 향해 물었다.
드레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우, 아직 말도 못 꺼내봤어."
"그럼 가서 당당하게 돌려달라고 해보는 건 어떨까요? 혹시 모르잖아요. 아이니까 겁먹어서 돌려줄지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래. 아직 어리니까 돌려줄지도 모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그렇게 해보는 게 좋겠다. 가자. 드레인."
나와 드레인은 베니스의 잡동사니라는 간판 앞으로 걸어갔다.
앞에 병사들이 있었지만, 제지받지 않았다.
아마 손님으로 착각한 모양.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다양한 물건들이었다.
생각보다 안은 넓어서 조금 놀랬다.
이게 저 꼬마 녀석이 운영하는 상점이라고…?
마침 앞에서 걸어가던 드레인이 우뚝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앞을 보니, 아까 그 꼬마 놈이 있다.
아무래도 물건의 개수를 세는 것인지, 한 손엔 연필이, 다른 손엔 종이가 들려져 있었다.
드레인이 나를 보자, 어깨를 으쓱였다.
"후우. 후우."
별안간 드레인은 몇 번 심호흡 하더니, 베니스라는 꼬마 녀석 앞으로 걸어갔다.
"오우, 보이?"
"……?"
베니스는 물건을 세던 손가락을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 뒤돌았다.
조금은 앳되어 보이는 얼굴.
아무리 봐도 중학생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 12살, 13살…?
"나 기억하죠?"
"……."
베니스는 말이 없었다.
그저 드레인의 얼굴을 바라만 볼 뿐.
제법 말똥말똥한 눈동자가 귀여운 면도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함이 드는 건 왜일까.
"누구시죠?"
"……."
이번에 말문이 막힌 건 드레인이었다.
나도 어안이 벙벙했다.
혹시 진짜 기억 못 하는 건가…?
곧장 그들의 곁으로 걸어갔다.
"꼬마야."
이번엔 베니스가 나를 보았다.
"네가 이 친구에게 물건을 속여 팔았다고 들었다."
"……."
"돌려주지 않겠니? 그럼 우리는 아무 일 없이 돌아가마."
또 한 번 정적이 흐른다.
그 찰나 속에서 베니스가 입을 열었다.
"전 기억이 안 나는데요."
옆에서 드레인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꼬마야. 네가…."
갑자기 베니스가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곳은 바로 가게 앞을 지키던 병사가 있던 곳.
꼬마 녀석은 그들에게 뭐라 뭐라 말하더니, 이곳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이거 어째 불안한데….
갑자기 입구를 지키던 두 병사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더니 말했다.
"좋게 말할 때 나가시오."
"……."
나는 침묵했다.
여기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차라리 이놈들을 때려눕히고, 저 꼬마 놈의 볼기짝을 때려야 할까?
아니, 그러면 오히려 일이 커질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게 안에도 병사가 지키고 있다.
썩을.
무슨 CCTV도 아니고 곳곳에 있냐.
- 조셉: 아무래도 실패하신 것 같군요. 그냥 나오십시오.
- 잭슨: 그냥 나오라고…?
- 조셉: 예.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
-잭슨: 그래?
밖으로 시선을 옮기니 조셉이 손을 휘적거리는 게 보인다.
어서 빨리 나오라는 손짓.
나는 드레인에게 말했다.
"돌아가자."
"……."
그는 말이 없었다.
그저 베니스의 눈만 쳐다만 볼 뿐.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그를 가게 밖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돌아가던 중, 별안간 드레인이 뒤돌았다.
역시 베니스를 향해서였다.
"보이. 난 네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
"아마 무슨 사정이 있겠지. 사실 돈은 됐고, 그저 사과만 받고 싶었어."
베니스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도 언젠가 알겠지만, 우리처럼 나이가 들면 오늘만 살게 된단다. 그렇게 생각하면 용서 못 할 것도 없고, 이해 못 할 것도 없지."
확실히 연륜은 무시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 녀석도 나름대로 세상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 있었다.
드레인이 말을 이었다.
"다음에는 서로 웃으며 봤으면 좋겠어. 보이. 씨유어게인."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드레인은 가게를 나갔다.
베니스의 동공은 잘게 떨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잘된 건가…?
* * *
찌르르 울리는 풀벌레 소리 사이로 바람이 분다.
이곳은 바로 쓰레기촌 옆에 위치한 언덕.
허름한 마을을 배경 삼아 창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케레노스.
그는 그동안 배워왔던 폭풍창의 묘리들을 떠올리며 되돌아보고 있었다.
'흐음. 뭔가 알 것 같은데도 어렵군.'
지금 그가 여기 있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폭풍창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제공한 건 다름 아닌 뒤에 두둥실 떠 있는 풍희.
케레노스는 창을 땅에 꽂으며 땀을 닦았다.
"푸웅! 푸웅!"
풍희는 뭐가 그리 좋은지, 창을 휘두를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렇게 쉴 때면 다가와 바람의 마력을 공급해주곤 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풍희랑 있으면 무한한 바람의 마력을 공급받는 기분이다.
또, 바람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달까?
아무튼 어려운데 그런 느낌이다.
우우웅.
바람의 마력이 자신을 감싸는 소리.
우리 둘은 아까부터 이런 작업만 반복하고 있다.
풍희는 만족스러운 듯 배시시 웃었다.
이 녀석이 어머니 방에 있던 그 알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케레노스는 풍희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풍희도 자신에게 털을 부볐다.
"푸우웅~♡"
"하하. 너 대단한 녀석이구나."
사실 폭풍창의 묘리를 펼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바람의 마력이 필요하다.
근데 그것은 쉽게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승님이야 그 경지까지 오르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으시기도 했고, 우연한 기회로 바람의 마력이 충만한 곳에서 수련하셨다고 했지만, 케레노스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이 있다면….
"푸웅! 푸웅!"
"음? 왜 그러냐."
별안간 풍희가 갑자기 어딘가를 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케레노스도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야. 저건?"
꽤 많은 수의 무리들이 쓰레기촌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저들은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무기를 들고 있었고, 그들의 눈빛은 마치 굶주린 짐승들 같았다.
"습격인가…?"
그렇다면 당장 돌아가야 한다.
이유야 어떻든 그는 이곳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그때, 케레노스의 미간이 찌푸렸다.
무리들 중 누군가 거대한 대검에 화염을 운용하더니, 마을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걸 본 것이다.
대검에서 뻗어 나온 화염의 검기가 콰콰쾅-! 하며 소리를 냈다.
허무하게 무너지는 쓰레기촌의 외벽.
"…습격 맞네."
케레노스가 창을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