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52화
제152화
암시장의 경매는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처음으로 나온 것은 웬 이상한 도끼였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뱀파이어들이 있는 '다크문'이라는 곳에서 얻은 거란다.
설마 그곳이 아직까지도 있을 줄 이야.
별안간 밑에 있는 사람들이 번호판을 들기 시작했다.
에이단이 내게 말을 건 것은 그때였다.
"혹시 무기에 관심은 없으십니까?"
그는 왠지 내가 관심이 있길 바라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나는 무기를 거의 쓰지 않는다.
써도 이미 무기가 있다.
그림자 단검이랑 포크 숟가락.
내겐 이 두 개면 충분하다.
"관심 없습니다."
"흐음. 아쉽군요."
- 자, 10개. 11개 있으신가요? 없으십니까? 그럼 낙찰하겠습니다.
땅땅.
도끼가 낙찰된 모양이다.
10코인이라. 대략 100만 달러인가? 어마어마한 가격이군.
이어지는 두 번째 경매.
이번에 올라온 것은 꽤 멋스러운 디자인을 자랑하는 갑옷이다.
아니, 집중해서 보니 갑옷만이 아니라 풀 세트인 것 같다.
나는 아이템 정보를 살펴보기 위해 확대 마법이 걸린 안경을 썼다.
곧장 갑옷의 정보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치지 않는 신념의 갑옷]
등급: 영웅
내구력: 400/400 방어력 189
건강+30 민첩+30
-지치지 않는 신념의 각반
-지치지 않는 신념의 건틀렛
-지치지 않는 신념의 휘장
-지치지 않는 신념의 투구
지치지 않는 신념을 가졌던 오르카의 영웅 브륜힐트가 썼던 갑옷이다.
생전 그는 검에 기사의 긍지를 담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고 한다.
꽤 오래되어 퇴색되었지만, 우연히 동굴에서 그의 시체를 발견한 드워프들이 수리를 하여 새롭게 태어났다.
*세트 효과가 있는 장비입니다.
-4개의 세트를 모두 모을 경우 모든 능력치가 +30 증가.
-세트를 모두 착용 시 특수 스킬 : '기사의 긍지' 사용 가능.
-드워프의 축복: 피격 시 일정 확률로 '슈퍼 아머'가 발동합니다.
"호오."
나는 작게 감탄했다.
생각보다 좋은 갑옷이다.
갑옷만 봤는데도 이 정도라면 다른 장비는 볼 것도 없지.
이건 어디서 구한 거람.
엄청 좋네.
"오, 이번엔 관심이 있으십니까?"
꽤 작게 중얼거린 것인데 들었던 모양이다.
나를 보는 에이단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린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관심 없는 척했다.
아까부터 나를 흘깃거리는 게 부담스러워 죽겠거든.
"뭐, 그럭저럭. 허허."
"끙. 그렇군요."
에이단의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다시 무대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경매에 집중했다.
- 이것은 한 도둑이 드워프의 보물창고를 털어서 훔친 것입니다. 뭐, 원래 이런 불법 장물은 경매가 안 되지만, 저희는 암시장이잖아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의 웃음이 터졌다.
저 젊은 처자는 이런 경매에 익숙한 듯했다.
옆에서 에이단이 말했다.
"저 여인의 이름은 '라냐'라고 합니다. 앞에 '마담'을 붙여서 마담 라냐라고 하지요. 이곳 암시장의 경매사로 일하고 있는데, 미모가 출중해서 꽤 유명한 편이지요."
"그렇군요."
"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원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지요. 하지만 얕보다간 큰코다칩니다. 가시가 많은 장미거든요. 후후."
…뭐, 어쩌라는 건지.
나는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
물론 저 처자의 미모가 아름답긴 하지만 그뿐.
내겐 오직 한 사람뿐이다.
이번 생에도, 그리고 다음 생에도 나는 아내를 만날 것이다.
- 그럼 경매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시작가는 20코인부터 해보겠습니다. 입찰을 원하시는 분은 번호판을 들어주십시오.
동시에 1층의 사람들이 번호판을 들기 시작했다.
마침 내 옆에도 번호판이 있길래 한번 들어보았다.
에이단의 기대감 어린 시선이 옆에서 느껴진다.
그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
"……."
그리고 다시 번호판을 내려놨다.
에이단의 이마에 주름이 깊어졌다.
* * *
결국, 나는 4번의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단 한 번도 번호판을 들지 않았다.
물론, 몇 번 괜찮은 유혹이 있었지만, 참을 수 있었다.
그래도 그중 가장 유혹이 컸던 것을 꼽으라면 [피로 얼룩진 초대장]이라는 것.
이것은 뱀파이어들의 영지라고 불리는 '다크문'으로 정식으로 초대받아 귀빈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인데, 듣자 하니 새로 취임한 뱀파이어 여왕이 발행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만 있으면 뱀파이어의 영지에서도 공격받지 않고,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500년이 흘렀으니 '다크문'도 많이 발전한 모양이다.
원래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사람 피나 빨아먹는 모기 같은 놈이었는데 말이지.
한번 가고 싶었는데 아쉽군.
그 초대장은 무려 80코인에 팔렸다.
무슨 해외여행 가는 것도 아닌데, 더럽게 비싸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중에 손님으로 말고 불청객으로 가야겠다.
그놈들은 꽤 좋은 물건들을 창고에 숨기고 다니거든.
- 잠깐 10분의 휴식을 가진 뒤, 마지막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마담 라냐의 방송과 동시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옆에 앉은 에이단이 물었다.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괜찮으시다면 디저트를 시켜드리겠습니다."
디저트라.
간만에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다.
집중해서 뭔가를 봤더니, 단 게 댕기네.
"디저트는 얼마입니까."
"후후. 쌉니다. 5코인이면 됩니다."
싸긴 개뿔.
"전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흠, 뭐 그러시다면야."
에이단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병사 한 명에게 손짓했다.
그는 이런 일이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들고 온 것은 푸짐한 치즈 케이크.
에이단이 우아하게 포크를 들더니 치즈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맛있는 모양이다.
"음, 과연 미랭의 치즈 케이크는 일품이군."
미랭?
미랭이라면 아까 그….
"정말 안 드시겠습니까? 이거 요즘 제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입니다. 아까 그 레스토랑의 요리사가 만든 것이지요. 아주 맛있습니다."
나는 에이단이 내미는 치즈 케이크를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한번 먹어 보고 싶긴 하다.
왠지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을 것만 같은 느낌.
과연 랭킹 1위 요리사가 만든 건 어떤 맛이려나….
"한 조각에 1코인만 받겠습니다. 포크도 드리지요."
…염병하고 자빠졌네.
진짜 먹을 걸로 저러는 건 아닌 것 같다.
1조각에 1코인이라니.
10만 달러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큼. 아닙니다."
"정말요?"
"다이어트 중입니다."
"다이어트? 그게 무슨 뜻입니까."
"살 빼는 중입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럼 괘념치 않고 먹겠습니다."
그러더니 또 한 조각이 에이단의 입으로 들어갔다.
볼이 빵빵한 게 더 얄밉다.
시부럴 놈 같으니라고.
내가 반드시 저 대갈통에 포크 숟가락을 꼽고 말 거다.
퉁퉁.
마이크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그때였다.
- 이제 마지막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내빈 여러분께서는 자리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과 동시에 사람들이 착석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세상에도 마이크가 있구만.
아마 저것도 조셉이 말한 것처럼 파르타 공국에서 들여온 기계 문물 중 하나겠지.
요즘 이곳 포트렌은 편리한 기계 문물들이 인기라고 한다.
마법이나 전투를 잘하지 못하는 포트렌의 귀족들에게는 안성맞춤이었겠지.
아무튼 조셉은 여기도 조금씩 기계 문명에 물들고 있다고 했다.
이곳 포트렌이 오르카 왕국에 속한 곳이 아니라 따로 독립된 국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드디어 마지막 경매군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이것을 보기 위해 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라냐의 말과 동시에 에이단이 말했다.
"드디어 폭염 심장의 경매가 시작될 모양이군요."
그는 기대감 어린 얼굴로 안경을 쓴 채 무대를 내려 보고 있었다.
나 또한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침 라냐가 중앙으로 물품을 가져왔고, 곧장 확대 안경을 쓰고 그것을 보았다.
…음, 과연 진품이 맞군.
막상 힘겹게 잡은 전리품을 이렇게 경매장에서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오랫동안 투닥거리다가 정이 들어버린 친구를 만난 기분이랄까?
어쨌든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런 느낌이다.
"과연 얼마에 팔릴지 기대되는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물어오는 에이단에게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탐욕에 젖어있던 그의 눈도 조금 사그라져있었다.
아마 4번의 경매가 진행된 동안 한 번도 번호판을 들지 않으니, 포기한 모양이다.
[취익. 망할 소고기의 염통이로군. 씹으면 쫄깃하겠어.]
'…넌 머릿속에 먹을 것밖에 없냐?'
요즘 무두르가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딱 세 가지다.
첫째, 싸움이 벌어졌을 때.
둘째, 배고플 때.
셋째, 먹을 것이 나타났을 때.
그리고 지금 이 녀석이 말을 걸어온 건 분명 세 번째 이유가 틀림없다.
[크륵. 짐은 많이 먹어야 힘을 쓸 수 있다.]
'웃기고 있네. 힘쓸 데도 없는 놈이. 쯧.'
[없긴 왜 없나. 요즘 집 앞에 벚나무가 있길래 뽑아서 휘두르는 연습 중이다.]
…이 미친놈이 또 기행을 벌이기 시작했군.
며칠 전에는 심심하다며 별 다방의 건물을 부수고 싶다고 그랬는데, 먹을 것으로 간신히 말렸다.
참고로 이놈은 성좌가 아니었기에, 내가 직접 먹어야 했다.
다행히 적은 양을 먹어도 녀석의 포만도를 채울 수 있었는데,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크륵. 어쨌든 저걸 먹고 싶다. 영감탱이.]
'시끄럽다. 잠이나 자라.'
[밥!!!!!!]
'자라.'
[바아아아압!!!!!!!]
귀청 떨어지겠네. 시부럴.
마침 경매가 시작되고 있었다.
50코인부터 시작되는 걸 보니 억 소리가 난다.
- 56코인! 57코인! 58코인!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코인들.
시작 가격은 50코인이었지만, 순식간에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물론, 단점은 있지만.
"오, 빠르게 올라가는군요. 큭큭."
옆에서 에이단이 실실 쪼개고 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네.
[바아아압!!!!!!]
'시끄럽다. 이놈아! 정신 사납다!!'
[밥!!!!!!!!]
아, 이 자식을 어떻게 달래지.
이렇게 징징댈 때는 뭔가를 입에 물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저 폭염 심장을 먹을 수도 없는 노릇.
하지만 그때였다.
-…100, 100코인! 100코인 나왔습니다!
"하하. 오늘 최대 입찰액이군요."
에이단의 말에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100코인이면 1천만 달러인가.
지금 내 손에 쥐어진 돈은 7천만 달러다.
코인으로 환산하면 무려 700코인.
저걸 사려면 살 수 있겠지만, 과연 무두르 놈을 먹일 가치가 있을지…. 잠깐.
꼭 무두르를 먹일 필요가 없잖아?
좋은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리고는 에이단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입찰을 하고 싶습니다."
"오! 좋습니다. 제가 도와드리죠."
그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싱글벙글 웃었다.
그리고는 살짝 손짓을 하더니, 마침 대기하고 있던 직원을 불렀다.
에이단이 다시 물었다.
"입찰금은 몇 코인으로 하시겠습니까."
"가볍게 110코인으로 하죠."
직원은 들고 있는 무전기로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방송이 울려 퍼졌다.
-어…. 귀빈실에 손님께서 부르셨습니다. 110코인.
[후후. 영감탱이. 드디어 내게 굴복하기로 한 거냐.]
'뭔 개소리냐. 저거 네 거 아니다.'
[취이이익! 그게 무슨 말이냐!]
나도, 무두르도 먹을 수 없지만, 먹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아니, 사람이라 하기도 뭐 하군.
아무튼 녀석이라면 폭염 심장의 단점을 모두 장점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저건 솔라한테 먹일 거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