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49화
제149화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눈초리.
다시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내가 잭팟이라니. 살면서 로또는 가끔 재미로 사본 적은 있지만, 그땐 당첨에 대한 것은 일절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그것이 일어났다.
"오오오!! 브라더!! 초대박이에요오오!!!"
드레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점프하며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다.
누가 보면 왜 저리 방정 맞냐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저 반응이 정상이다.
나도 지금 꾹 참고 있으니까.
"하하핫. 축하드립니다! 와우!!"
조셉도 신난 듯 축하 인사를 건네왔지만, 그럼에도 나는 좋아할 수 없었다.
사실 이건 내 돈이 아니니까.
난 그저 키스의 인도 아래 이 자리에 잠깐 앉았을 뿐이다.
곧장 키스와 눈이 마주쳤다.
"야, 이거…."
"하하. 조금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큰형님 가지세요."
"하? 뭔 소리냐 이건 네가…."
"쉿."
키스가 자기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사실 120배를 노린 건데, 실수로 잭팟을 터트린 겁니다."
"뭐야…?"
이건 뭐 미친놈인가 싶다.
실수로 잭팟을 터트리다니.
진짜 이놈의 행운이 높긴 높은가보다.
근데, 왜 120배를 노린 거지?
"실은… 잭팟을 터트리면 이곳의 주인을 만나야 하거든요."
"주인? 이곳의 주인이라면…."
"마침 오네요."
순간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카지노 직원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길을 만들더니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짐짓 엄숙해 보이는 그 길 사이로 왕이 행차하듯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저놈은."
익숙한 얼굴이다.
아니, 잊을 리가 없지.
저놈은 내가 발가벗겨서 사진을 찍었던 에이단이었다.
난 저놈의 사소한 점이 어디 있는지까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뭐, 그만큼 불편한 사이란 말이지.
그건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두 내 뒤에서 딴짓을 하고 있다.
빌어먹을 놈들. 나보고 어쩌라고.
"마담. 잭팟의 주인공이 누구지?"
"이분이십니다."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나를 가리켰다.
에이단은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씰룩 올렸다.
아마 내가 돈 좀 있어 보이는가 관찰하는 건가 보다.
"축하드리오."
"큼, 고맙소."
나는 일부러 강하게 보이기 위해 중후한 목소리를 냈다.
차마 헬륨 슬라임의 핵을 먹을 시간도 없었다.
뭐, 가면을 썼으니까 괜찮겠지.
잘못 먹어서 여인의 목소리나 아이의 목소리가 나오면 오히려 난감한 상황이니까 좋게 생각해야겠다.
"음, 당첨금이…."
에이단은 코인이 쌓여있는 곳을 슬쩍 보더니 내가 돌렸던 슬롯머신으로 시선을 옮겼다.
"흐음. 꽤 많군.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주름을 만들었다.
이 망할 놈은 내가 많이 따서 심사가 꼬인 모양이다.
보는 사람만 없었다면 포크 숟가락을 확 꽂아버렸을 텐데 아쉽군.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아무튼 돈은 저희 쪽에서 곧 마련해드릴 겁니다. 그나저나 저랑 사업 얘기나 좀 나눠 보시겠습니까?"
"사, 사업?"
갑작스런 제안에 짐짓 당황스럽다.
협박을 했던 놈 앞에서 이렇게 연기를 하려니 목소리가 다 떨린다.
뒤를 돌아보니, 일행들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고 있었다.
시부럴 놈들.
나를 사지로 보낼 생각이구나.
"하하. 그렇게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그저 간단하게 몇 마디 나누는 것이니까요. 제가 좋은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어쩔 수 없지. 알겠소."
그때, 뒤에서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근데, 얼굴이 익숙한데. 잠깐만. 이놈은 또 왜 여깄지…? 오늘 무슨 날인가?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에이단 님."
"음, 그래. 내가 의뢰한 것 잊지 말라고."
"물론입니다. 그럼."
최불룡과 이름 모를 남자가 고개를 숙이더니 멀어져 갔다.
그동안 뭐하며 지내나 궁금하던 차였는데, 여기서 마주칠 줄이야.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에이단이 말을 걸었다.
"그럼 가실까요?"
* * *
에이단과 헤어진 최불룡과 윤서원은 곧장 바깥에 일행들이 있는 술집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돌아가면서 아까 있었던 엄청난 광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와, 형. 아까 뜬 화면 봤어요?"
"미친. 억세게 운 좋은 놈이네. 아까 얼마였지?"
"1억 9천 2백만 달러요."
"와씨. 거진 2억이네. 환전하면 10억 가까이 되는 돈이잖아."
"제 람보르기니 한 대 값이네요.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내 람보르기니 박살냈던 꼰대 생각나네. 아오."
"돈 있다고 자랑질이냐?"
"하하, 우리도 그렇게 벌면 되죠. 제가 벌게 해드릴게요. 형."
"그래. 말이라도 고맙다."
그렇게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동생들이 있다는 술집 근처에 다다랐다.
마침 미리 귓속말을 받고 나와 있던 부두목 한불이가 보였다.
"애들은?"
"하하. 사고 안 치고 아주 잘 먹고 있습니다."
한불이는 조금 취기가 올랐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음, 제복이는 어쩌고 있냐."
"하아. 말도 마십쇼. 그 또라이 새끼는 또 뭔가를 찌르고 싶다며 아까부터 몬스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미친 새끼가 또 귓속말을 차단해놨어요."
김제복.
1달 반 전쯤 그 망할 영감탱이에게 된통 당하고 나서 불렀던 놈이다.
부산에서 '미친개'라는 별명으로 유명한데, 이놈은 정말 그 별명대로 미친개였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은 일단 물고 보니까.
"흐음. 일단 놔둬라. 그래도 돈만 주면 약속은 칼 같이 지키는 놈이니까."
뭐, 말 안 들으면 버리면 되고.
"예. 형님. 그나저나 길드 등록은 무사히 마치셨습니까?"
"그래. 등록하자마자 의뢰가 들어왔다. 네 말대로 정말 담배를 주면서 영업하니까. 효과가 좋던데? 대박 건수 하나 물어왔다."
"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하하하."
담배를 주면서 영업을 해보라는 것은 한불이의 생각이었다.
녀석은 나름 머리가 비상한 면이 있어서 종종 이런 의견을 내곤 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옆에 있는 윤서원 보다 더 좋은 것 같다.
분명 대학도 나왔을 텐데….
역시 타고난 머리는 어쩔 수 없는 건가.
"형. 나 이만 가볼게. 아버지한테 보고 드려야겠어."
"그래. 윤 회장님께 안부도 좀 전해드리고."
"오케이~"
윤서원이 사라지자, 한불이가 말했다.
"형님 안으로 드시죠. 날씨가 쌀쌀합니다. 동생들한테 맥주 한 잔씩 주셔야죠."
"그래. 들어가자."
최불룡도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가려던 때였다.
띠링-!
별안간 메시지가 도착하는 소리가 났다.
최불룡은 갑자기 뜬 메시지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을 옮겼다.
[알림 신청하셨던 물품의 경매가 곧 시작될 예정입니다.]
[경매 시간은 오후 9시입니다.]
[늦지 않게 도착하시길 바랍니다.]
[장소 – 포트렌 카지노 지하에 있는 경매장]
"에이씨. 이게 오늘이었네."
보통 경매장에 있는 물품 중 싼 물건은 예약의 기능이 없다.
싸기도 하고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웅 등급 이상의 아이템은 다르다.
워낙 고가이기도 하고 구하기조차 힘들다.
그래서 미리 경매 물품 현황을 올려놓고 예약을 받는데, 며칠 전부터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아이템의 경매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야. 한불아. 너네끼리 마셔라. 나 어디 좀 급히 가야겠다. 곧 9시라서."
최불룡은 빠르게 뒤돌아 아까 그 카지노를 향해 빠르게 뛰었다.
뒤에서 당황한 한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어딜 그리 급히 가십니까?!"
최불룡은 간단히 대답했다.
"암시장!"
* * *
그 무렵 나는 에이단의 방을 나올 수 있었다.
노블레스 룸인지 뭐시기였는데,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그곳을 무사히 나왔다는 것이다.
에이단은 내게 포트렌의 각종 사업에 대해 투자 의향을 물었는데, 그것은 제법 솔깃한 제안들이었다.
포트렌에 세울 각종 관광지에 대한 주식을 준다거나.
각종 값비싼 무기들을 내어주겠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모조리 거절했다.
내게 무기는 필요 없었고, 주식은 솔직히 조금 혹했지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옛날에 월운정(月雲停)을 운영하면서 약간이지만 사업을 경험해봤기에 신물이 난 것도 한몫했다.
"뭐, 그 이유도 이유지만 망할 놈이 내게 돈을 뜯어내려는 것 같았단 말이지."
에이단은 계속 내게 뭔가를 유혹해 돈을 뜯어내려는 것 같았다.
내가 자기 돈을 따가려니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후우. 그래도 이 돈은 잘 지켜냈네."
지금 손에 들린 가방에 잭팟을 터트리고 얻은 어마어마한 당첨금이 있었다.
짜증 나는 건 카지노의 규율상 30%의 세금을 공제했다는 것이다.
1억 9천 2백만 달러가 약 1억 3천 5백만 달러로 둔갑한 건 순식간이었다.
"망할 놈. 머리통에 포크 숟가락 꼽고 싶은 거 간신히 참았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묵직한 가방을 들고 일행들이 있는 곳을 찾았다.
그들은 아까 슬롯머신을 했던 자리 그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 많던 코인 산이 벌써 치워졌군.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조셉이었다.
"오셨습니까."
"드레인은?"
"잠깐 둘러보고 오겠다며 어디 가셨습니다. 금방 올 거라고 하셨으니 곧 오실 겁니다."
"흐음. 그래."
나는 곧장 뒤에 있는 키스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는 여전히 여인들 틈에 끼여 헤실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너 정말 이 돈 필요 없냐?"
"아~ 형님. 오셨군요. 하하하."
"필요 없냐고."
"뭘요?"
"뭐긴 뭐야. 이놈아. 이 돈이지."
나는 아까 받았던 당첨금이 든 가방을 흔들었다.
하지만 키스는 시큰둥해 보였다.
"형님 가지세요. 어차피 전 또 따면 되니까."
이거 진짜 미친놈일세….
이건 뭐 1등 로또를 자기가 찍어 놓고 친구한테 줘버리는 상황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조셉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지가 싫다는데 어쩔 수 있나.
"조셉아."
"예."
"네가 이 돈 갖고 수정이가 얘기했던 것들 사 가지고 돌아가라."
나는 그에게 2천 5백만 달러를 건네주었다.
조셉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이렇게 큰돈을요? 돈이… 많이 남을 텐데요?"
"남는 건 쌍둥이들 분유값."
그 말과 동시에 녀석의 눈이 순간 '$'로 보였다.
내가 뭐라 말을 잇기도 전에 조셉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벤토리에 돈을 집어넣었다.
하여튼 이놈도 난 놈은 난 놈이라니까.
"오, 브라더! 당첨금은 잘 받았어요?!"
마침 드레인이 반색하며 이곳으로 뛰어왔다. 나는 그에게도 2천만 달러라는 거금을 묵직하게 얹어주었다.
역시나 그는 당황했다.
"브, 브라더. 이걸 왜 내게…."
"그동안 만들어 준 옷값.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 줄 옷값."
"오우, 브라더…. 나 감동했어요. 반해도 되요?"
"반하지는 마라. 징그러우니까."
나는 레이저처럼 쏘아지는 녀석의 시선을 피하며 남은 돈을 살폈다.
4천 5백만 달러를 나누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9천만 달러.
여기서 수정이에게 2천만 달러를 주어도 남는 것은 7천만 달러였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흠. 남는 건 어디다 쓰지.
그래도 키스가 도와줘서 딴 거니깐 일부는 쓰레기촌에 돌려줘야겠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건 나중에 생각해야겠군.
어차피 지금 당장은 해야 할 일이 있다.
서둘러 암시장으로 가 물건을 사고 돌아가는 게….
"아직 안 가셨군요. 다행입니다."
"……?"
갑작스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에이단이 서 있었다.
이놈이 또 왜 이러지…?
그는 여전히 내게 탐욕 어린 시선을 하고 있었다.
에이단이 내 손의 가방을 흘겨보더니 입맛을 다셨다.
"저랑 함께 가실 곳이 있습니다."
"또 어딜…?"
"이왕 따셨는데 쇼핑도 하셔야죠."
이게 뭔 개뼈다귀 같은 소리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