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47화

제147화

-안타깝네요! 행운의 여신이 당신을 보지 못했나 봐요!

"아아아. 이런 엿 같은…."

결국 내 예상대로였다.

리플레이의 결과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아니, 처참하다는 말로도 부족해서 뭐라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눈을 감은 채, 의자에 몸을 축 늘어뜨리며 하늘을 보고 있었다.

별안간 조셉의 얼굴이 내 시야를 가렸다.

"큼. 그…. 어르신?"

"…왜."

"너무 낙담하지 마십시오. 원래 인생이 그런 법 아니겠습니까."

"네가 나보다 오래 살았다면 위로가 됐을 것 같은데, 지금 하나도 안 되는 것 같다만."

"크흠. 그럼 제 걸 좀 나눠드릴까요?"

"됐다. 난 이제 손 털련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다신 도박 안 해야지.

만약 둘째 놈이 또 도박을 한다고 하면 두들겨 패서라도 말릴 거다.

후우. 시부럴. 다시 생각해도 열 받네.

"하하하!"

조금 떨어진 곳에서 키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혼자만의 목소리는 아니었고, 다른 여인들의 웃음소리도 뒤섞여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거리고 있다.

"키스가 또 땄나보네요."

"음?"

조셉의 말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엄청난 NPC입니다. 확실히 네임드가 맞는 것 같아요. 아까부터 계속 따고 있습니다. 미친 사람처럼요."

"그래…?"

순간 호기심이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땄길래 저러는 걸까.

나와 조셉은 키스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키스가 있는 곳은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여인들이 녀석의 주위에 서서 환호를 하고 있었다.

"어머, 역시 키스 오라버니가 짱이라니까!"

"호호호. 오빠 이번엔 내 손으로 한 번 눌러줘요."

"좋지. 하하하. 손 이리 줘봐."

키스가 한 여인의 손목을 잡고 버튼을 눌렀다.

기계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화면이 이내 삐걱거리며 멈추었다.

하트가 3개. 무려 4배다.

"꺄아아악~♡ 어떡해~ 4배가 나왔어!"

"어머~ 부럽다. 키스 오빠 이번엔 나도 해줘. 응? 해줘어어~"

"하하하. 자자, 한 명씩 하자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얼척이 없었다.

아니, 누군 힘들게 2,000코인 씩 투자해서 어렵게 12만 코인을 벌었는데, 저놈은 대체 얼마를 넣고 돌린 건지 4배임에도 끊임없이 코인이 흘러나왔다.

"히야. 놀랍네. 놀라워."

옆에 있던 조셉이 코웃음을 치며 웃었다.

왠지 그의 심정을 알 것만 같다.

아마 나랑 같은 심정이겠지.

진짜 어이가 없네.

"하하하. 자, 이건 아일린한테 갚아야 할 돈~"

"호호호. 오빠 진짜 짱이다. 이따가 술이라도 한잔하러 갈래?"

"어머, 얘는 안 돼! 나랑 선약이 있단 말이야."

"무슨 소리야. 키스 오빠는 내 꺼거든?"

"자자, 진정해 얘들아. 이번엔 이 오라버니가 돌린다~"

우리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마침 키스도 우리를 봤는지, 손을 흔들었다.

"하하하. 형님들 오셨습니까. 많이들 따셨습니까?"

그의 물음에 조셉은 말없이 자신의 바구니를 들었고, 나는 초라하게도 보여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키스는 잠깐 나를 흘겨보더니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크흠."

무안해하고 있는데 마침 뒤에서 환전소에 갔다 온 드레인이 돌아왔다.

그가 내 바구니를 보며 어리둥절했다.

"음? 브라더. 코인들 다 어쨌어요?"

"큼큼. 어흠! 흠! 어험! 험!"

내가 계속 헛기침을 하자, 조셉이 눈치채고 드레인에게 귓속말을 했다. 역시 눈치는 빠른 놈이다.

"아~ 그랬군요. 돈 워리! 하하."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또 코인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소 그림이 그려진 것이 첫 번째 칸에 나왔다.

배율로 따지면 2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진짜 미쳤네.

촤라라라라락.

바구니 하나로 모자라서 2개의 바구니를 써서 코인을 받는 키스의 모습.

그 옆을 보니 수북이 쌓인 또 다른 바구니들이 보였다.

한 3개가 더 있는 걸 보니 얼추 50만 달러는 되는 것 같다.

"와우…. 지저스는 여기 있었네."

드레인도 방금 광경을 봤는지 감탄했다.

키스와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진짜 이놈이 네임드 NPC가 맞긴 하구만. 매력과 행운 능력치가 높은 NPC랬지 아마.

어느새 바구니에 코인을 쌓은 키스가 내게 바구니를 내밀었다.

"자~ 이건 우리 큰형님 드리겠습니다."

"음? 됐다. 그냥 너 해라."

"하하하.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받으세요."

"아니다. 됐다. 너나 해라. 난 재능이 없어서."

"음~ 그렇다면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자, 이쁜이들 비켜보세용~"

키스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방금 전 내밀었던 바구니를 들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어딘가로 움직였다.

그곳은 바로 슬롯머신에 코인을 던져 넣는 곳. 그런데 놈의 행동이 좀 이상하다.

쏴아아아아.

"저, 저런…!"

나도 모르게 기함했다.

코인을 넣는 곳은 고속도로에 동전을 집어 던지는 곳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키스는 지금 그곳에 자신의 모든 코인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얌마, 너 미쳤냐?!"

"하하하. 원래 인생은 한방 아니겠습니까!"

진짜 미친놈이다.

이놈은 진짜 미친 게 틀림없다.

이건 확신이다.

-입금 완료! 당신에게 행운의 여신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저 망할 기계의 헛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멍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건 옆에 있던 두 사람도 마찬가지.

너무나 엄청난 상황에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지금 눈앞에 뜬 코인의 숫자는 무려 60만 코인.

드레인이 말을 더듬었다.

"브, 브라더. 내가 지금 잘못 본 거 아니죠?"

"나도 모르겠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제가 볼 땐 현실인 것 같은데요. 허어. 미친."

나와 일행들은 각자 입을 벌린 채 닫지 못하고 있었다.

키스가 나를 당긴 건 그때였다.

너무도 갑작스러웠지만, 이미 충격으로 몸이 굳어버린 상황이라 순순히 녀석의 앞으로 끌려왔다.

"자~ 이쁜이들. 우리 큰형님의 손에 내 전재산이 걸렸다~! 하하하하!"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아니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너, 너 돈은 다 갚고 이따위 짓을 하는 거냐?"

"음? 하하하. 당연하죠. 돈은 방금 전에 다 갚았습니다."

"휴우우우."

나와 일행들은 동시에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이놈이 완전히 생각 없는 놈은 아닌 모양이다.

아니, 근데 다시 생각해도 열 받네.

딱콩!

"짜식아. 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라."

"하하하. 그건 좀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 이곳에 놀러오면 즉흥적인 성격이 되어서요. 근데 깜빡이가 뭡니까…?"

진짜 대책 없는 놈이다.

순간 겁이 났다.

내가 이놈을 마을에 받아들이면 감당할 수 있을까….

키스가 내 손목을 덥석 잡은 건 그때였다.

"자~ 우리 큰형님 운을 한번 보자~! 하하하!"

녀석이 내 손목을 잡더니 그대로 기계의 손잡이를 내렸다.

주변에 있던 여인들이 꺄르르거리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륵.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화면.

그것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쿵. 쿵. 어우 미치겠네.

내가 지금 긴장하긴 했나보다.

온몸에 있는 피가 순환하는 것이 느껴지는 걸 보면 말이다.

키스가 내 손등을 포개며 말했다.

"자, 우리 큰형님 손 떨리시는데 긴장하지 마시고요~"

"호호호! 긴장하지 말아요~"

"키스 오라버니가 잘해줄 거예요~"

"후훗, 엄청 귀엽네. 이 남자."

"얼굴이 궁금하다."

"엄청 잘 생겼을 것 같아."

뒤에 있는 여인들은 각자 입을 가리며 서로 소근거렸다.

어디서 뭐하는 여인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키스가 후리고 다니던 어느 여염집 귀족의 자제겠거니. 그런 추측만 할 뿐.

그 무엇도 지금 뛰고 있는 내 심장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자~ 저만 믿으세요. 갑니다~!"

탁.

키스가 내 손을 움직여 첫 번째 버튼을 눌렀다.

나온 것은 [소].

여인들의 함성이 터졌다.

"꺅~ 역시, 오라버니야. 아무래도 2배가 되겠는걸?"

"와, 이게 다 얼마야? 120만 달러? 호호호."

"오빠. 이거 따면 나 머리 좀 하게 10만 달러만 주라."

"하하하. 그래. 그래. 따면 줄게~"

키스와 여인들은 웃고 있지만, 나는 아니었다.

어우, 염통이 다 쫄깃하네.

그래도 다행히 2배로 마무리가 될 것 같다.

후후. 120만 달러라.

상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탁탁.

키스가 내 손을 또 한 번 움직이더니, 나머지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화면이 멈추기 시작했고, 그것은 생각보다 길게 흘러갔다.

너무 집중을 해서 그런 모양이다.

누구는 1분이 1초 같았다고 그러는데, 나는 1초가 1분 같았다.

흐르는 긴장감 속에서 화면이 완전히 멈췄다.

[소][소][소]

"이런 미친 개[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기계에서 뭐라고 하는데, 뭐라고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알겠다.

지금 내가 무지하게 화났고, 엄청난 욕설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것.

지금 나는 뚜껑이 열려 버렸다.

"이 시부럴. 엿 같은 빠칭코가 감히 날 놀려먹어?! 항?!"

순간 나도 모르게 옆에 있는 의자를 거꾸로 들었다.

내가 기계를 내리치려 하자, 조셉이 나서서 나를 막았다.

드레인도 함께였다.

"지, 진정하십쇼!"

"브, 브라더. 참아요!"

"이거 놔라! 내 오늘 저 망할 놈의 빠칭코와 사생결단을 내고 말 것이야!!"

사람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내가 입 밖으로 형언할 수 없는 욕설을 내뱉은 순간.

빠칭코를 하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그때, 누군가 내 입을 틀어막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부라리며 아래를 보니, 키스였다.

이 시부럴 놈이.

"혀, 형님. 여기선 조용하셔야 한다구요. 하하하…. 죄송합니다. 다들 일들 보세요. 하하하…. 경호원 분들 가셔도 됩니다. 훠이훠이."

그는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주변인들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나는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서 제지를 물리치고 놈의 멱살을 잡았다.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하하…. 진정하세요. 큰형님. 아직 기회는 남았잖아요…?"

"남긴 뭐가 남아! 난 한 번도 리플레이로 딴 적이 없는데! 이놈 시키 너 오늘 잘 걸렸다.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내 오늘 너를 그냥…!"

팔을 걷어붙이자 드레인과 조셉이 또 한 번 나를 막았고, 밀쳐진 키스의 주위를 아까 그 여인들이 막았다.

그녀들은 내게 화를 냈다.

"아니, 우리 오라버니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요?!"

"이 사람 진짜 안 되겠네!"

"빨리 사과해요! 우리 오빠한테!"

어우, 골머리야.

나는 오랜만에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떽떽거리는 여인들의 잔소리가 귓가에 꽂힌다.

후우우우. 참자. 참아보자.

"큼…. 좀 진정 되셨습니까?"

키스의 눈꼬리가 초승달처럼 휘어있다.

나는 잠깐 눈을 감고 냉정을 되찾았다.

"크흠. 미안하다. 내가 좀 흥분했군."

"괘, 괜찮습니다. 뭐, 한 두 번 도 아닌데요. 하하…."

"뭐 인마?"

"큼. 아니에요. 자~ 어디 리플레이를 해볼까요?"

…완전 능구렁이가 따로 없네.

키스는 다시 자리에 앉더니 막대기를 내리며 슬롯을 돌렸다.

촤르르륵거리는 소리가 이젠 무서울 지경이다.

마침 키스와 눈이 마주쳤다.

"뭘 봐."

"한 번만 더요."

"뭐…?"

덥석.

키스가 내 손목을 잡더니 나를 자신의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내 손을 이용해 첫 번째 버튼과 두 번째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나는 아연실색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는 게 이런 뜻이었구나.

삐리리리리-!

철컹. 철컹.

[7][7]

"우오오오오-!"

주변에서 함성이 터졌다.

뭐지…? 이 [7]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건데.

그것의 정체는 드레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와우! 브라더! 이 [7]은 정말 많은 배율을 가지고 있어요! 그거 알아요?! [7][7][☆]이 나오면 무려 120배라구요!"

"1, 120배…?"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120배라니. 지금 걸려있는 코인이 얼마였지.

아, 60만이구나. 그러니까 지금 이거에다가 120을 곱하면….

"7천 2백만 달러."

대답은 조셉이 했다.

역시 돈을 좋아해서 그런지 녀석은 계산이 빠른 편이었다.

미친. 7천 2백만 달러라니.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나는 말을 더듬으며 조셉에게 물었다.

"마, 만약 [☆]이 아니라 다른 게 나오면…?"

"꽝이죠."

"지, 지저스…."

나도 모르게 드레인의 말투를 따라 하고 말았다.

내가 알기론 하나님이라는 뜻이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부처님이라도 찾아야 한다.

아니, 함께 찾아야만 한다.

"나, 나무아멘타불…."

심장이 펌프질한다.

120배다. 120배.

별 모양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하나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이름 모를 신님, 조상님. 사이비라도 좋으니까 제발 도움을 좀….

턱.

"……."

키스와 눈이 마주쳤다. 지금 내 손에 포개진 것은 키스의 손.

나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꿀꺽.

"갑니다."

"뭐, 뭐…? 이렇게 갑자기?!"

부우웅.

순간 세상이 슬로우 모션에 걸린 줄 알았다.

내 손이 날고 있다.

아니, 지금 내 몸이 앞으로 쏠린 거구나.

키스는 나를 잡아당겨서 내 손을 세 번째 버튼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 닿았다.

턱.

삐리리리리리-!

그곳에 있는 모두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드레인은 옆에서 아까부터 계속 "제발."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고, 그 간절한 기도 속에서 마침내 돌아가던 화면이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특. 특.

트득.

특. 특!

철컥.

띠링-!

[7][7][7]

응…? 이건 뭐지?

주변을 돌아보니, 키스를 제외한 모두의 입이 쩍 벌어져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직원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끈으로 된 바리케이트를 치더니 우리들을 향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지금.

"짝짝짝! 축하드립니다. 고객님."

"예…?"

"방금 잭팟을 터트리셨습니다."

"잭, 잭팟…? 그게 무슨…."

촤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순간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코인들이 내가 앉은 슬롯머신에서 쏟아졌다.

그것은 너무나도 많아서 이미 산을 이룰 정도였다.

순식간에 쌓인 코인을 보며, 내 입은 땅까지 닿을 정도로 쩍 벌어졌다.

"이, 이게… 몇 배…."

"320배입니다."

슬롯머신이 돌아가며 정확한 액수를 화면에 띄웠다.

촤라라라라라락- 챙!

[경축) 잭팟! 192,000,000달러]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