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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46화 (146/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46화

제146화

나는 오른발에 강한 힘을 실었다.

눈앞에서 시시덕거리는 저 망할 놈의 엉덩이를 걷어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

그는 바로 드레인. 그가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봐요. 무슨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생각이 있다고? 저게…?"

"적어도 난 그래 보여요."

"흐음…."

일단은 기다려봐야겠다.

그래도 드레인은 세심한 면이 있어서 사람을 꽤 잘 보곤 했다.

옷을 만들다 보니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겼다나 뭐라나.

아무튼 프로메테우스가 저리되지만 않았다면 내가 통찰로 그냥 봤을 텐데.

이래저래 불편한 게 많은 것 같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놈이 어쩔 생각인지 보기로 했다.

"하하하. 얘들아 다들 반갑네. 돈 좀 빌려줄래?"

"어머, 오라버니 게임 하시려구요?"

"후후, 전 좋아요. 몇 배로 갚을래요?"

"나도 줄게요. 오라버니라면 믿을 수 있어요."

"여기 5만 달러요. 나 오늘 다 잃었지 뭐예요. 오빠가 좀 도와줘요."

"그래. 그래. 다들 고맙다. 하하하."

맙소사.

대체 저놈의 뭘 믿고 저렇게 큰돈을 빌려주는 거지…?

키스의 손에는 순식간에 엄청난 돈이 모였다.

10명 정도의 여인들에게 받았는데, 무려 40만 달러.

바람의 신전 공사비가 100만 달러였던 걸 생각하면 꽤 큰 금액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정도 돈이라면 손쉽게 그 입장권이란 걸 살 수 있을 텐데 조금 아쉽구만.

"자, 자, 다들 날 따르라~!"

우리들은 우르르 몰려 키스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구석에 있던 환전소.

키스는 40만 달러를 카운터에 턱 올리며 말했다.

"아저씨. 오랜만입니다?"

"음, 키스로군. 자넨 항상 이곳에서 돈을 따갔었지."

"하하. 이거 전부 코인으로 바꿔주세요."

"젠장. 오늘 꿈자리가 안 좋더라니. 살살하라고, 자네만 오면 직원들이 항상 혼난단 말이야."

"오늘은 살살 할게요."

촤르르르.

꽤 많은 코인이 책상에 올려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에서 나는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돈을 따갔다라는 말.

혹시 이놈이 그 말로만 듣던 타짜라도 되는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어느새 코인을 쓸어 담은 그는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들 손들은 멀쩡하시죠?"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뭔 소리냐. 알아듣게 말해라."

"같이 게임이나 하자구요."

"게임?"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 녀석의 눈은 그 어떤 별보다도 영롱하게 빛났다.

"제가 운이 좀 좋거든요."

* * *

잘그락.

동전 들어가는 소리가 멀거니 들려온다.

눈앞의 기계는 방금 전 무려 2,000달러짜리 코인을 집어삼켰다.

고작 이거 한 번 내리는데 이만한 돈을 처먹다니. 개 같은.

삐링-!

-입금 완료! 당신에게 행운의 여신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제기랄. 뭔 개소리야. 입금한 적도 없구만."

입금 완료라고 하니까 뭔가 정기 적금을 드는 기분이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걸 보면 이것도 상술이 분명하다.

고얀 놈들 같으니라고.

철컥.

옆에 있는 막대를 내리니 눈앞의 화면이 세 갈래로 갈라지며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촤라라락.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눈앞에 있는 3개의 버튼을 천천히 눌렀다.

제법 간절하게. 이번에는 될 거라는 마음을 가지면서. 마침내 화면이 멈추었고, 결과가 드러났다.

[☆][◇][♡]

-아~ 아깝네요! 행운의 여신이 당신을 보질 못했나 봐요!

"이런! 제에에엔장!"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울분을 터트렸다.

이게 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행운의 여신은 개뿔. 이 세상에 그런 여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후우. 이거 이래도 되는 건가 모르겠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임은 슬롯머신이라는 게임이다.

나 같은 노인에게는 빠칭코라는 이름으로 더욱 익숙한 그 게임.

나는 이 게임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왜냐면 둘째 녀석이 이거 하다가 나한테 뒷덜미를 잡혔거든.

"정현이 녀석이 왜 이거에 빠졌는지 알겠네."

이상하게도 오기가 생긴다.

고작 1평 남짓도 안 되는 이 조그만 기계 따위가 날 이렇게 열 받게 하다니.

정현이 녀석도 나를 닮아 꽤 다혈질인데, 아마 화를 많이 냈을 것 같다.

이게 뭐라고 내 자존심을 박박 긁고 있냐.

후우, 좀만 쉬다가 할까.

"브라더 좀 땄어요?"

꽤 많은 코인이 담긴 바구니를 한 아름 들고 있는 걸 보니 드레인은 제법 딴 모양이었다.

눈대중으로 어림잡아도 내 바구니보다 2배 정도 많았다.

제기랄. 완전 자존심 상하네.

"넌 얼마나 땄냐?"

"후후, 나의 이 섬세한 터치로 8만 달러가 아직 남았어요."

"아~ 딴 게 아니라 남았다고?"

"네. 후후. 선전했죠."

우리들은 키스에게 각각 10만 달러씩 나눠서 받았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 눈앞의 드레인은 2만 달러를 잃었다는 거다.

그리고 내 바구니의 코인이 2배 정도 적어 보이는 걸 보면 난 6만 달러를 잃었다는 거겠지.

아, 이렇게 보니까 더 열 받는다.

"자자, 이러지 말고 한 번 더 해보자구요. 마침 여기 자리 났네요? 오우, 나이스 타이밍."

드레인은 내 옆에 앉더니 코인을 넣기 시작했다.

역시나 최소금액인 2,000코인.

더 걸 수 있지만, 나는 중독될 것 같아서 더 걸지 않았다.

나도 함께 코인을 넣었고, 역시나 입금 완료라는 말과 함께 행운의 여신이 함께하길 바란다는 그따위 개소리를 지껄였다.

그런 말 따윈 가볍게 무시하며 막대기를 내렸다.

철컹. 삐리리리리-!

…후우, 긴장되네.

눈앞의 화면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흘러간다.

초감각으로 시력이 너무 좋아지다 보니, 가끔 이런 현상이 일어나곤 한다.

물론, 지금의 나에겐 좋은 현상이지만 왜 맞추질 못하냐고.

"여기다. 으라차차!"

탁탁탁.

박자감 어린 손목 스냅으로 버튼 세 개를 차례대로 눌렀다.

조금씩 멈추기 시작하는 기계음이 웅얼거리듯이 들려왔다.

하트, 다이아몬드, 클로버, 스페이드.

키스에게 들은 설명에 따르면 하트가 4배, 다이아몬드가 8배, 클로버가 16배, 스페이드가 무려 64배라고 한다.

당연하겠지만 3개가 같은 모양으로 나왔을 때만 저 배율을 받을 수 있다.

트득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다가온다.

이윽고 화면이 멈추었다.

[소][♧][♤]

-축하드려요! 행운의 여신이 보고 있었나 봐요! 2배를 드릴게요!

"후우. 망할 소 새끼."

그래도 4,000코인은 벌었다.

저 망할 소 그림이 첫 번째 슬롯에 나오면 배율은 2배로 쳐준다.

소가 3개 나오면 리플레이라고 다시 슬롯을 돌릴 수 있는데, 좋은 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돌려서 꼭 잘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지금의 나에겐 1개가 나온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짤랑! 짤랑!

바구니에 쌓이는 코인이 몇 번 짤랑거리지 않는다.

…뭔가 엄청 초라하네.

축 처진 눈꼬리로 바구니를 보는데, 갑자기 옆에서 짝! 거리는 소리가 났다.

"지저스 크라이스-!!"

삐리리리리링-!

옆에 있던 슬롯머신이 요란하게 울린다.

화면을 보니 익숙한 그림이 보인다.

무려 스페이드가 3개.

미친. 64배다.

"우하하하! 브라더! 보여요?! 스페이드! 하하하하!"

그동안 봐왔던 녀석의 모습 중에 제일 해맑아 보인다.

이 자식 이거 완전 빠진 거 같은데.

촤라라라락.

코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내 바구니는 아니고, 드레인의 바구니에.

2,000코인을 넣었으니, 64배면 12만 8,000코인인가?

겁나 부럽네.

"으하하하! 지저스!"

이곳에서 1코인은 1달러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지금 드레인은 방금 12만 8000달러를 번 거다.

적자를 면하고 흑자로 돌아선 것이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이야~ 드레인 어르신 제대로 한방 터트리셨네요? 하하. 축하드립니다."

"땡큐! 이걸로 옷감을 새로 하나 사야겠어. 홍홍홍♡"

말을 걸어온 것은 조금 떨어져서 슬롯머신을 하던 조셉이었다.

들고 있는 바구니가 제법 수북한 걸 보니, 이 녀석도 꽤 많이 딴 것 같다.

그나저나 드레인 녀석은 암시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걸 잊은 건가.

"드레인. 10만 달러는 남겨둬라. 갚아야 할 돈이니까. 잊은 건 아니겠지?"

"아아, 이런 깜빡했군요. 나의 실수! 아임 쏘리!"

하아. 도대체 행운의 신은 왜 이런 철부지 놈에게 64배를 주시고 나에겐 고작 2배를 주시는가.

이곳엔 없는 신이지만, 만들어서라도 원망하고 싶다.

"조셉. 넌 얼마나 땄냐."

"하하, 전 운 좋게 4,000코인 넣고 클로버가 두 번 터져서 적자는 면했습니다."

클로버면 16배인가.

이 자식도 꽤 많이 벌었네.

짤랑거리는 소리를 따라가 보니, 아직 드레인의 바구니에 코인이 떨어지고 있다.

젠장. 내 자리에 무슨 마가 낀 것도 아니고.

"후후. 오늘 아주 럭키한 날이군요. 난 이제 그만 해야겠어요. 환전소가 어디… 아, 저깄군요. 홍홍. 갔다올게요."

드레인이 코인을 챙겨 일어나자, 나는 잽싸게 그 자리에 앉았다.

"그래. 마가 낀 게야. 허허."

이 자리는 왠지 좋은 느낌이 드니까 딸 수 있을 것 같다.

곧장 코인을 넣고 슬롯을 돌렸다.

촤르르륵.

이번에도 꽝.

이 미친 빠칭코가 돌았나.

쾅! 쾅!

분노의 발차기에 흔들린 빠칭코의 화면이 지직거린다.

멀리 서 있던 거한이 이곳으로 걸어왔고,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시죠?"

"넌 뭐ㅇ…."

[Lv. 300 경호원 NPC 베어그리스]

"험험."

나도 모르게 갑자기 공손해진다.

레벨이 무려 300이다.

저 험악한 얼굴을 보니 덤비면 왠지 허리가 접혀질 것만 같다.

아니, 무슨 카지노에 이런 무시무시한 경호원들이 배치돼있다냐.

"큼. 그냥 돈을 먹은 것 같아서 말 일세…."

"그러시군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아닐세. 허허. 뭐 이 정도 가지고."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그래. 신경 써줘서 고맙네."

"그럼."

베어그리스라는 놈이 멀어지자,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하하, 어르신도 무서워하시는 게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얌마. 사람이 나설 때랑 안 나설 때를 잘 구분해야 되는 거여."

방금 내가 화를 냈다면 분명 귀찮은 일이 생겼을 것이다.

저놈이랑 붙으면 쉽게 지진 않겠지만, 경호원은 저놈 하나가 아니란 게 문제다.

"하하. 그렇군요. 또 하실 겁니까?"

"당연하지."

이번엔 조금 많은 코인을 넣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이 아니다.

젠장. 내가 언제 이만큼 넣었지?

생각 없이 넣다 보니 남아있던 3만 코인을 몽땅 넣고 있었다.

미친. 이게 그 유명한 도박 중독이라는 건가….

"이야, 역시 어르신은 통이 크시군요."

"왜 안 말렸냐. 썩을 놈아. 실수로 넣은 건데."

"아, 그렇습니까? 전 일부로 넣으신 줄 알았습니다."

하아. 한숨부터 나온다.

이걸 어떡한다?

사실 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이 망할 빠칭코가 입금 완료라는 말을 하고 있거든.

"에이. 모르겠다. 남잔 한방이여."

철컥. 삐리리리리-!

화면이 움직인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버튼에 손을 올렸다.

이번엔 꼭 따야 한다.

그래야만 적자를 면할 수 있다.

내 자존심도 걸었고, 체면도 걸었다.

세상이 느리게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떨리는 심장소리와 함께 첫 번째 버튼을 살포시 눌렀다.

[소]

"이야!! 하하하!! 야, 조셉 봤냐?! 하하하!!"

"오~ 축하드립니다!"

이걸로 2배는 확정이다.

3만 코인이 들어갔으니, 대충 누르기만해도 6만 코인.

이걸로 적자 털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거다.

그래! 그러는 거다!

탁. 탁.

빠르게 누른 나머지 두 버튼.

조금씩 화면이 느려지더니 이내 모든 화면이 멈추었다.

그리고 나는 그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소][소][소]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 3개는 리플레이다.

즉, 다시 돌려야 한다는 거지.

근데 그게 쉽냐고.

시부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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