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45화
제145화
날이 저물고 달이 뜨자, 나와 일행들은 쓰레기촌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굳이 낮이 아닌 밤이 되어 포트렌으로 향하는 이유는 에이단의 저택에서 훔친 보석들을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장물이다 보니 낮에 팔게 되면 어디서 얻었는지 출처를 분명히 해야 하지만, 암시장에 내놓으면 그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암시장이 열리는 것은 달이 뜨는 밤뿐이다.
이것을 말해준 건 지금 내 앞에서 말하고 있는 조셉이다.
"우선 포트렌의 암시장은 길거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곳은 감시를 피하기 위해 다른 간판을 걸고 위장을 하고 있고, 실제로 자주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현재 그곳의 위치는…."
대충 요약하자면 이랬다.
현재 암상인들이 둥지를 튼 곳은 카지노.
며칠 전 케레노스가 돈을 땄다던 그곳이었다.
따뜻한 물을 마시던 케레노스가 놀라서 기침을 했다.
"켁! 거기가 암시장이 있는 곳이었다고?"
"예. 그곳 지하에 꽤 넓은 암시장이 있습니다."
"큼! 어우 사래 한 번 제대로 들렸네. 아니, 그런 정보는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그건…."
조셉이 눈을 굴리더니 검지를 입에 가져가 댔다.
"비밀입니다."
흐음. 뭐, 굳이 비밀이라는데 억지로 캐고 싶지는 않다.
우선 중요한 건 그 암시장이라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 암시장으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감시를 피해 위장도 하고 옮겨 다닐 정도라면 보안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정확히 보셨습니다. 아시다시피 포트렌은 자본주의를 추구하고 있죠."
"결국, 돈이냐?"
"예. 그런데 문제는…."
"뭐냐."
"그 카지노의 주인이 에이단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뭔가 일이 꼬이는 느낌인데….
에이단의 감시를 피하려 암시장을 찾았건만, 그 암시장이 있는 카지노가 에이단의 소유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었다.
"그럼 그 암시장도 '에이단'의 소유냐?"
"다행히도 그건 아닙니다. 대신 그는 포트렌에서 상왕 다음가는 권력과 재력을 가진 만큼 암시장을 눈감아주고, 그곳의 주인인 마담에게 세금을 받아먹고 있지요."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만약 암시장이 에이단의 것이었다면 조금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지노만 놈의 것이라면 희망은 있다.
"오빠. 그럼 그 암시장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드라마에서 보면 막 이상한 암호 같은 거 대던데."
김수정이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녀는 내게서 가져간 만드라고라 잎으로 환자들을 재우고 한숨 돌리는 중이었다.
어차피 잎은 내게도 쓸모없었기에 흔쾌히 그녀에게 주었다.
"하하. 여긴 좀 달라. 그곳에 들어가려면 암시장의 독특한 화폐가 하나 필요해. 그 화폐가 곧 입장권이 되는 셈이지."
"아~ 그렇구나."
"그런데…."
이번엔 조셉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또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젠장. 불길한데.
"또 뭐가 문제냐."
"그 화폐 하나의 가격이 꽤 비싼 편입니다."
"얼만데?"
"10만 달러요. 1인 가격입니다."
"뭐가 그리 비싸?"
내가 투덜거리며 묻자 조셉이 말했다.
"암시장에서 얻는 이익을 생각하면 싼 편입니다. 그곳은 세금을 전혀 내질 않으니까요. 사실 바깥에서 일반적으로 판매하면 세금이 무려 30%나 붙습니다. 그만큼 가격이 더 오르는 거죠."
"염병. 더럽게 비싸네."
"그래서 의식이 좀 있는 부유층 귀족들은 알게 모르게 암시장을 이용합니다. 세금이 없기 때문에 싼 물건은 더 싸게 살 수 있고, 비싼 물건은 더 비싸게 팔 수도 있거든요. 그곳에서 싸게 대량 구매한 다음 낮에 세금까지 붙여서 비싸게 팔아버리니 하층 서민 계급들과 중층 평민 계급들은 죽어 나가는 겁니다."
"…빌어먹을 자본주의."
하여튼 돈이 많아도, 없어도 문제다.
뭐, 그렇다고 없는 게 좋다는 건 아니다.
있으면 좋지.
"그래. 그 화폐, 아니 입장권은 어떻게 얻는 거냐."
건너편에 앉아 이야기를 듣던 키스가 일어났다.
그는 왠지 모르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건 제가 설명할게요."
* * *
-여러분의 꿈과 돈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당신의 행운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포트랜드! 세상 모든 도박을 이곳에 담았습니다! 마력의 정기와 천혜의 자연이 숨 쉬는 최고의 시설과….
제법 낭창하다고 할 만한 여인의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울려 퍼졌다.
이곳은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카지노가 있는 포트렌.
천혜의 자연이라는 말처럼 주변에 펼쳐진 울창한 숲들이 제법 싱그러워 보였다.
그리고 지금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남자.
최불룡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옆에는 새로운 인물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다른 동생들은 현재 술집에서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저 목소리는 들을 때마다 짜증나네."
"형. 그래도 실제로 보면 제법 이쁠 것 같지 않아요?"
"…미친놈. 관심 있으면 소개시켜줘?"
"큼. 그래주시면 저야 좋죠."
"짜식. 광대 승천한 것 봐라."
"흐흐흐."
지금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자의 아이디는 코카인.
본명은 윤서원으로 성신 그룹의 회장 윤석철의 막내아들이었다.
그와는 정말 우연히 카지노에서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행운이었지.'
윤서원과의 첫 만남은 지하로 향하는 암시장 입구에서였다.
그는 그곳을 지키는 경호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입장권인 화폐가 없었다.
최불룡은 그를 한눈에 알아보고 도움을 주었고, 서로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는 매스컴에서도 꽤 유명한 인사였는데, 성신 그룹의 꼴통. 해외로 도피한 마약쟁이 등.
좋지 않은 것들만 한 가득이었지만, 그럼에도 최불룡은 그와 친하게 지냈다.
사람의 일이란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리고 마침내 그 결실이 찾아왔다.
'큭큭. 내게도 드디어 이런 기회가 찾아오는구나.'
윤서원과 자신은 함께 담배를 제조해 암시장에 파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마침 성신그룹의 윤 회장이 막내인 윤서원을 갱생시키기 위해 우리가 하는 사업을 전폭 지원해주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아직 독점권이 없어서 암시장을 통해서만 간간히 수입을 유지하고 있지만, 최불룡은 이미 자신의 미래를 떠올리고 있었다.
한 그룹의 회장실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자신. 그 이름하야.
"불룡 그룹. 흐흐흐."
"예? 뭐라고 했어요. 형?"
"알거 없다. 인마. 넌 짜식아 형님 잘 만난 줄 알아."
"아이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전 언제나 형님만 믿습니다."
"그래. 넌 인마 내가 특별히 아낀다."
"흐흐. 저두요."
"징그러운 놈."
두 사람은 어느새 거대한 포트랜드 앞에 섰다.
거대한 라스베이거스를 연상시키는 화려함의 극치.
오늘 두 사람은 이곳에 길드 등록을 하러 왔다.
암살자 길드로 시작해 커가는 꿈을 두 사람은 함께 꾸고 있었다.
"가자. 서원아."
"예. 형."
화려한 불빛이 흐르는 그곳을 향해 둘은 발걸음을 내딛었다.
두 사람의 손엔 담배 몇 보루가 들려져 있었다.
* * *
화려한 불빛들이 수놓인 포트렌의 번화가.
나와 일행들은 쫙 빼입고 그곳에 나타났다.
모두 드레인의 작품.
지금 함께하는 사람은 총 3명이다.
첫 번째는 포트렌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진 조셉. 그리고 두 번째는 드레인이었다.
그는 암시장에서 옷감들을 싸게 사고 싶다며 졸랐고, 어쩔 수 없이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카지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키스.
그는 가진 돈을 불리기 위해 카지노에 자주 들락거렸다고 한다.
자신을 데려가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라나 뭐라나.
믿기진 않지만 두고 보면 알겠지.
케레노스는 쓰레기촌을 지킬 겸 풍희와 함께 있고 싶다며 남았다.
마침 풍희도 능력 개화에 대한 단서가 필요한 참이었는데 잘됐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수정이는 환자들을 돌봐야해서 오지 못했다.
"와우, 이곳이 그 유명한 포트렌의 카지노로군요! 판타스틱!"
드레인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감탄사를 뱉었다.
확실히 놀랄만하다.
살면서 이렇게 화려한 곳은 처음 보는 것 같으니까.
"확실히 멋있긴 하네."
돈으로 지랄하면 안 되는 게 없다. 특히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포트렌이라면 더더욱.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입구에 각자 가면이 준비되어 있을 겁니다. 물론, 공짜니까 염려는 마시구요. 흐흐."
키스는 뭐가 그리 좋은지 입꼬리를 올리며 실실 웃었다.
그가 앞장서 걸었고, 우리는 그의 안내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가 말했던 가면 대여소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상냥한 여인이 데스크에 선 채 물었다.
"어서 오십시오. 처음이신가요?"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가면을 받고 싶네."
"이 중에서 하나 고르시면 됩니다. 대여 가격은 1만 달러입니다."
"1만 달러…?"
그와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키스에게 꽂혔다.
그는 무안한지 헛기침을 했다.
"큼큼. 한 달 전에 왔을 때는 분명 공짜였던 것 같은데…."
작게 중얼거리는 그를 보며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진짜 이놈을 믿어도 되는 걸까….
잠시 뒤, 우리는 각자 마음에 드는 가면을 착용했다.
사실 착용 안 해도 상관은 없었는데, 우리는 최대한 정체를 숨겨야하는 입장이었다.
나는 검은 늑대의 가면을 골랐고, 얼굴 전체를 가려주는 것이 제법 착용감이 괜찮았다.
조셉은 눈 주위만 가릴 수 있는 소박한 부엉이 가면을, 드레인은 하얀 여우 털이 수놓아진 가면을 골랐다.
그리고 망할 키스 놈은 그중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나비 가면을 골랐다.
"쯧. 저놈은 꼭 지 같은 걸 골랐네."
"큼. 원래 이런 곳에선 화려하게 놀아야 하는 겁니다. 촌장님."
나는 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악. 왜 때려요?!"
"시끄럽다. 이놈아. 촌장이라고 부르지 마라."
"아, 맞다. 큼. 죄송합니다.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우리들은 최대한 조용히 암시장으로 잠입해야 했다.
카지노는 보는 눈이 많아서 에이단에게 들키면 큰일이었다.
나는 떠나기 전 일행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는데, 이놈이 벌써 잊어먹은 모양이다.
"그냥 형님이라고 해."
"정말입니까?"
"그래."
"때리거나 그러진 않을 거죠?"
"…그래. 일단은."
"후후후. 알겠습니다."
잘생긴 얼굴로 저렇게 말하니 더 믿음이 안간다.
뭐랄까 잘생긴 사기꾼을 대면한 기분이랄까.
뭐, 어쨌든 지금은 형님이라고 불러주는 게 나로서도 이득이다.
우리들은 가면을 쓴 채 카지노 안으로 들어섰다.
시끌벅적한 기계음과 사람들의 환호 소리에 어안이 벙벙하다.
"여긴 언제와도 적응이 안되네요."
조셉의 말에 나도 맞장구쳤다.
"나도 그렇구나. 예전에 둘째 놈을 이런 곳에서 잡은 적이 있었지."
"둘째요?"
"가정사니까 깊게 알려고 하지 마라. 다친다."
"아, 예. 하하."
우리들은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관찰했다.
드레인은 옆에서 연신 "와우"라는 감탄사를 반복했고, 키스는 신이 나는지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저 망할 엉덩이를 걷어차든가 해야지.
제일 앞장서 걸으면서 부담스럽게 엉덩이를 흔들고 있다.
진짜 확 걷어 차버릴까 싶었는데 그냥 참았다.
일단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이야. 이쁜이들!"
시벌 깜짝이야.
갑자기 키스가 어딘가를 향해 양손을 흔들었다.
그곳엔 네 명의 여인들이 부채를 든 채 서 있었고, 그들도 키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꺅~ 오라버니!"
"키스 오라버니. 정말 오랜만이에요!"
"왜 이제 왔어요. 우리가 얼마나 찾았는데."
"오라버니. 우리 안 보고 싶었어요?"
"하하하! 보고 싶었지. 너네 없어서 죽는 줄 알았다!"
여인들은 키스의 품에 안겨 연신 하하호호 거렸다.
마치 물 만난 제비처럼 자유로운 화술로 그들을 사로잡는 것이 새삼 이놈이 카사노바가 맞구나 싶었다.
헬레나가 이 광경을 봤어야 했는데….
"호호호. 오라버니 오늘은 누구 만나러 온 거예요?"
"응? 그냥 너네 보고 싶어서 놀러 왔지. 하하하. 어이! 거기 이쁜이! 오랜만이야!"
"어머! 오라버니!"
주변의 여인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 썩을 놈이 내가 시선을 끌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턱.
키스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 얘들아. 여긴 내가 아끼는 형님이야 잘 부탁해. 알았지? 하하하. 어이 거기 이쁜이!"
…드디어 이게 미친 건가.
예상보다 빠른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