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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44화 (144/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44화

제144화

마침 둘째 녀석에게 연락이 와서 '메테우스'라는 마을로 오라고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포트렌과는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쓰레기촌에 정착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첫 번째로 한 것은 빼앗은 무기와 방어구들로 주민들을 무장을 시키는 것.

낡고 녹슨 무기 대신 녹 따윈 찾아볼 수 없고, 새것처럼 빛나는 검과 창들을 그들에게 쥐여주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들은 체계적으로 무기술에 대한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었고, 그렇기에 좋은 무기가 있어도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문제는 내가 케레노스에게 부탁해서 해결하는 중이다.

지금 쓰레기촌의 주민들은 케레노스의 통제하에 훈련을 받고 있다.

그것도 내 앞에서.

"하나하면 찌른다. 하나!"

"어, 어이…!"

"윽. 누가 때렸어."

"어이쿠. 이런 미안해."

아무래도 시간은 좀 걸릴 것 같다. 자세가 완전 엉망이다.

케레노스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보니 미안함이 밀려온다.

쓰레기촌 주민들은 먹지 못해서 그런지 멸치처럼 마른 상태였는데, 근력도 부족하고 순발력도 부족했다.

훈련은 그렇다 치더라도 일단 뭐라도 먹여야 할 것만 같다.

"후우. 바쁘구만 바빠."

약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김수정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다친 주민들에 대한 치료는 현재 진행 중.

저 많은 인원을 수용할 곳이 없어서 땅바닥에 눕혀 놓고 있는 건 함정이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그곳으로 걸어갔다.

"뭐, 부족하거나 필요한 건 없니?"

"아, 아버님. 실은 약초가 조금 부족해요. 생각보다 여기 사람들이 면역력이 약해서 내상 치료가 더뎌지고 있어요."

"면역력이라…. 만드라고라 깍두기로 어떻게 안 될까?"

"음, 그건 효과가 조금 느릴 것 같아요. 차라리 약으로 먹는 게 효과가 빠를 거예요."

아무래도 부족한 약을 구해다줘야 할 것 같다.

"필요한 게 뭐냐. 내가 포트렌으로 가서 구해보마."

"음, 잠시만요. 카미유에게 물어볼게요."

그녀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더니, 여러 가지를 묻기 시작했다.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그녀는 옅은 한숨과 함께 내게 말했다.

"휴. 아무래도 조금 많을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음, 일단 말해봐라."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녀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3가지.

첫 번째는 병자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하르셀이라는 이름을 가진 약초였다.

두 번째는 지혈의 효과와 몸의 재생력을 북돋는 트롤의 피.

이것은 독성이 있어서 그냥 먹을 수 없기에 독성을 중화시켜주는 중화제가 세 번째였다.

"중화제는 보통 마법사 길드나 연금술사 길드를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해요."

김수정이 말을 마치자 뿌듯한지 흐뭇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그게 다 100개씩 필요하다고?"

"네. 조금 많…죠?"

"흐음. 어쩌겠냐. 구해봐야지."

마침 우리 이야기를 들었는지,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촌장 아이노와 그의 딸 헬레나.

그리고 바로 옆에서 촌장을 부축하는 키스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아이노를 장인어른 대하듯 조심스럽게 부축하고 있었다.

…허 참. 사람이 이렇게 달라 보일 수가 있나.

이래서 선입견이란 무서운 것이다.

처음 그의 만행을 사진으로 접했을 땐 그저 바람이나 피우며 마을 재정이나 빼돌려서 도박이나 하는 망나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렇게 번 돈들이 모두 쓰레기촌의 주민들에게 향했다고 한다.

물론, 바람둥이 기질은 여전한 것 같지만.

빠악-!

"키스! 내가 여자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말랬죠!"

"윽, 뭐… 뭐? 내가 왜?! 난 아무것도 안했는데?"

"방금 크리스탈 님을 음흉하게 쳐다봤잖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난 그냥…."

"시끄러워요!"

"크흠흠."

아이노가 헛기침을 하고서야 두 사람은 싸움을 멈추었다.

키스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헬레나는 삐진 듯 입을 삐죽 내밀며 새초롬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이노가 말했다.

"우연히 들었습니다. 저희들을 위해 약을 구하러 포트렌으로 가신다구요."

"아,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저희는 이렇게 도움만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괜찮습니다. 나중에 잘되면 마을끼리 동맹이나 좀 맺어주십시오."

"동맹이요?"

"그렇습니다."

마을 정보창을 살피며 알게 된 사실인데, 주변의 마을이나 도시와 동맹을 체결하면 교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더욱 늘어나고, 각종 문화와 경제적인 것들이 크게 발전하여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고 한다.

물론, 이건 모두 조셉이 알려준 정보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쓰레기촌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분야에 재능 있는 이들이 많다고 했거든.

전투만 빼고.

"물론입니다. 당연히 그러고 싶습니다. 아니, 오히려 저희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노가 고개를 푹 숙였다.

나도 그를 따라 함께 고개를 숙였고, 그가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포트렌에서 판매되는 것은 꽤 비싼 편인데 알고 계십니까? 세금도 그렇고 아무래도 자본주의다 보니…."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말을 끊은 것은 옆에서 걸어오던 조셉이었다.

그가 인벤토리에서 가방을 꺼내더니 우리들 앞에 들고 흔들었다.

"이거 팔면 되니까요."

그건 에이단의 저택에서 훔친 보석들이었다.

* * *

에이단의 저택, 2층 헬레나의 방.

그곳에 무수히 많은 유리와 각종 귀중품이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군가 본다면 억 소리 날 정도로 비싼 것들.

무참히 깨지는 그 모습에 하녀들이 입맛을 다셨다.

'저럴 거면 나를 주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으아아아아아!!!"

에이단의 처절한 포효.

그는 지금 차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어젯밤 일을 떠올리며 표출만 할 뿐.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다.

그때, 하녀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어젯밤 일을 두고 자신을 비웃는 것이리라.

스릉.

에이단이 벽에 걸린 세검을 뽑았다.

"네년. 지금 무어라 지껄였느냐."

"예, 예?"

"방금 나를 비웃지 않았느냐."

"아, 아니옵니다. 소녀는…."

촤아악.

오른쪽 어깻죽지에서 왼쪽 아랫배까지 크게 베인 하녀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다.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하녀를 향한 칼부림.

촤아악.

"사, 살려줘. 꺄아악!"

촤아아악.

하나씩 하나씩.

자신을 비웃는 하녀들을 베고 또 베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10명이 넘는 하녀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에이단은 그제야 진정이 되었는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시선이 텅 빈 헬레나의 방을 향한다.

"후우. 헬레나…."

이제 흠모했던 그녀는 없다.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고, 철천지원수가 되었다.

내가 선물해주었던 억 소리가 나는 보석과 반지들도 없고, 그의 분노는 이제 오직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헬레나. 널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저벅저벅 걸어서 복도를 빠져나왔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분주히 달려온 병사가 바닥에 널브러진 하녀들의 시체를 보며 기함했다.

"흡!"

"이봐."

"예, 예!"

"마차를 대기시켜라."

"목적지는 어, 어디로…?"

에이단이 피 묻은 칼을 힘껏 땅에 꽂은 채, 소파에 주저앉았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암살자 길드."

"네…?"

"암살 의뢰를 해야겠다. 카지노로 가자."

에이단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뒤틀렸다.

* * *

아침 일찍 납골당을 다녀왔다.

오늘은 성찬이 아비와 어미의 기일. 백무열은 손자와 오랜 시간 그곳에서 보냈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다시 가상현실의 세계.

저물어가는 들판의 석양을 보면서 백무열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싸늘한 바람이 뺨을 간질인다.

솨아아아-

황혼에 물든 바람의 언덕은 꽤 운치 있는 경치를 자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누군가의 모습 같아서.

마지막을 앞둔 누군가의 인사 같아서.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것 같아서.

더욱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

뒤에서 손자인 백성찬이 걸어왔다.

"그래. 괜찮냐?"

"네. 제법 오래됐잖아요. 무뎌질 때도 됐죠."

"……."

백무열은 말없이 손자를 보고는 다시 앞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석양은 멀거니 사라지고 있었다.

약간은 어스름해진 하늘을 보며 멍한 기분이 들었다.

백무열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말이다…. 너무 무뎌지진 말 거라."

백성찬은 말없이 백무열의 옆모습을 보았다.

"살다 보면 자신의 힘듦을 누군가에게 얘기하기가 미안할 때가 있더구나. 나 말고도 각자의 사정으로 다 힘들 텐데, 뭐 그렇게."

"……."

"그렇게 혼자 생각하고, 혼자 삭히고…."

"할아버지."

백성찬이 말을 끊었다.

"그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그 말에 백무열은 말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마 긴 이야기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성찬이도 이제 다 컸고, 알아들었을 테니까.

"그리고 생일 선물도요."

오는 길에 새로운 캡슐을 구매했다.

이왕 쓰는 거 좋은 걸로 주고 싶어서 최신형으로 골랐다.

성찬이는 제법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거, 되게 늦게 오시네."

"오셨습니까. 영감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두 사람이 보인다.

머머리와 타르모.

그들은 NPC라서 이 근방에서 기다리기로 했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서 잘 찾아왔구만.

"오래 기다렸냐?"

"아,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래도 썩 괜찮았습니다. 몬스터들 잡으면서 꽤 강해진 것도 같구요."

"호오. 그래? 확인해볼까?"

그 말과 동시에 머머리와 타르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흐흐흐. 좋지요."

"저도 좋습니다."

우리들은 저물어가는 석양을 등지며 대련을 펼쳤다.

머머리는 창의 긴 사거리를 이용해 견제했고, 타르모는 쌍수 단검을 빠르게 휘둘러 공격의 우위를 점했다. 그리고 백무열은….

"몽둥이의 가호."

[성좌 스킬, '몽둥이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거머쥔 목검의 공격력이 2배로 증가합니다.]

[나무 목검이라 공격속도가 3배로 증가합니다.]

[이것을 사용하는 한 목검은 부러지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 힘이 소폭 상승합니다.]

그 모든 것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퍼퍼퍼퍼퍼퍼퍽-!

황금빛 오오라가 휩싸인 몽둥이가 휘날렸다.

머머리와 타르모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엇. 여, 영감님 잠깐만요."

"아니, 이거 큭. 반칙 아닙니까?"

"지랄. 그게 목검을 든 사람한테 할 소리냐?"

"이런 미친!"

"으아악!"

결과는 일방적인 승리.

빡빡이들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크흠. 힘 조절을 한다고 했는데 잘 안 되네.

그나저나 이거 진짜 사기 스킬이구만.

몬스터를 두드려 팰 때는 몰랐는데, 이 두 놈을 패보니 조금 알 것 같다.

이건 정말 자신을 위한 스킬이나 다름없었다.

[성좌스킬, '몽둥이의 가호'를 종료합니다.]

[현재 이 스킬을 얻은 사람은 당신을 포함해 3명입니다.]

[해당 스킬의 성좌가 당신을 지켜보는 중입니다.]

[잦은 사용으로 인해 해당 성좌에 대한 정보가 일부 공개됩니다.]

[당신을 지켜보는 존재는 '몽둥이를 좋아하는 성좌'입니다.]

"아이고. 허리야. 죽겠네."

"어우씨. 내가 꼭 이기고 만다."

머머리가 얼굴을 붉히며 열의를 보였다.

하지만 백무열은 언제든 환영이었다.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그래. 언제든 덤벼라. 썩을 놈들아. 껄껄."

그렇게 시간이 좀 더 지나자 한 사람씩 모이기 시작했다.

자칭 묵찌빠 형제.

묵사발, 지킬, 바로크도 왔고, 가장 늦게 도착한 것은 최정현이었다.

그가 걸어오면서 손을 흔들자, 백무열도 함께 손을 흔들었다.

다가온 최정현이 말했다.

"아버지한테 연락 왔습니다."

"그래? 춘택이는 지금 어디 있다냐."

"윈디아 옆에 메테우스라는 마을로 오라는데요? 근데 그런 마을이 있다는 건 처음 듣는데…."

"뭐, 가보면 알겠지."

백무열은 다시 고개를 돌려 넓은 들판을 바라봤다.

이제 해가 온전히 지고 어두운 땅거미가 내려앉아 있었다.

저녁이 되면 몬스터들은 더욱 사납게 날뛰는 법.

하지만 개체 수 또한 늘어난다.

"일단 레벨업부터."

바야흐로 사냥의 시작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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