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42화
제142화
예상외로 싸움은 빨리 끝났다.
물론, 우리의 승리였고 그것은 모두의 공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은 에이단의 얼굴.
그는 온몸이 발가벗겨진 채 입에 재갈을 물고, 밧줄에 묶여 있었다.
물론, 다른 병사들도 무릎을 꿇고 무장을 해제당한 상태.
나는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읍! 으으읍!"
"거 참 시끄럽네. 가만히 좀 있어라."
찰칵. 찰칵.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조셉의 카메라다.
헬레나가 말하길, 지금 여기서 에이단을 죽이면 그의 친척들이 병사를 이끌고 올 것이라고 했다.
그의 집안은 모두 포트렌의 요직에 종사하고 있었고, 모두 돈을 주고 관직을 샀다고 한다.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라고.
찰칵.
"으으으읍!!"
그리고 지금 내가 이놈의 알몸을 찍는 이유는 약점을 잡기 위해서다.
조셉이 귓속말로 그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해주었고, 그는 자신이 나서서 찍을 순 없으니 대신 찍어달라며 카메라를 빌려준 것이었다.
물론, 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찰칵. 찰칵.
- 조셉: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 잭슨: 뭘, 새삼스럽게.
"으으읍!! 으으으읍!!"
"이노무 짜슥이. 시끄럽게."
짜악!
후려친 손바닥이 그의 뺨에 자국을 만들었다.
에이단은 꽤 아팠는지 눈물을 글썽였고, 나는 몇 번 더 그의 뺨을 후려쳤다.
자리에서 일어서니 헬레나가 다가왔다.
"에이단. 당신이 이번 일로 쓰레기촌을 위협한다면 우리들은 당신의 알몸 사진을 포트렌 전역에 뿌려버릴 거예요. 그럼 다음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으으으읍!!"
에이단의 눈빛이 매섭게 헬레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도 지금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손바닥을 들자, 그의 눈꼬리가 내려갔다.
"이제 당신과의 연도 끝이에요. 다시는 이곳에 얼씬거리지 말아요."
쓰레기촌 주민들은 서로 에이단을 때리겠다며 몽둥이를 들고 왔지만, 헬레나가 나서서 막았다.
이미 만신창이긴 하지만, 자칫 그가 죽어버린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리니까.
"모두의 마음은 잘 알지만 여기까지 해야 해요. 그래도 이제 우리를 괴롭히진 못할 거예요."
"쳇, 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분하지만 참으마."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뒤편을 돌아보았다.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는 김수정의 모습.
미처 보호막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곁으로 걸어갔다.
"다들 좀 어떠냐. 차도는?"
"음…. 생각보다 내상이 심해요. 아무래도 장기까지 다친 사람도 있어서…."
"치료가 가능하겠냐?"
"최선을 다해봐야죠."
치료에 전념하는 그녀의 등이 생각보다 커 보였다.
역시 그녀의 천직은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였던 모양이다.
처음 그녀의 성좌를 골라줄 때, 직업을 고려했던 것은 역시 최고의 선택이었다.
"후우우우우."
짙은 술 냄새.
이건 분명 케레노스의 한숨이다.
근데 이놈은 왜 여기 누워서 환자인 척하는 거지.
"여기서 뭐 하냐."
"후우우. 보시면 모릅니까. 술 깨는 중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하필 여기서 이러냐고. 환자 치료 중인데."
대답은 옆에서 들려왔다.
수정이었다.
"마력이 역류했어요."
"마력이 역류해…?"
"네.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무리했나 봐요."
"…멀쩡해 보이는데."
곧장 누워있는 케레노스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퍼억! 하는 소리가 제법 찰지다.
"아욱…. 영감님! 뭐 하는 짓입니까! 환자한테!"
"멀쩡하구먼."
나는 껄껄 웃으며 뒷짐을 지고 다른 곳으로 갔다.
이번엔 헬레나의 아버지가 있는 곳.
마침 그곳에 헬레나도 있었다.
그녀는 키스를 닦달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무릎 꿇은 키스의 머리에 큰 혹이 나 있었다.
"아니, 어쩌자고 그런 무책임한 행동을 했어요!"
"…미안."
"지금 당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알아요?"
"미안해…."
"하아, 진짜 이만하길 다행인 줄 알아요! 다음에 또 그러면 내가…."
"큼큼. 이보게들."
화들짝 놀란 헬레나가 공손히 손을 모았다.
"아, 저 죄송…. 아니, 감사해요. 성함이…."
"잭슨이네."
"감사합니다. 잭슨 님."
헬레나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이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뭐, 조금 갑작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제 저들을 어쩔 생각인가?"
"…돌려보내야겠죠. 그 방법뿐이니까요."
"정말 여길 안 떠날 생각인가?"
"네. 아마도…."
그녀가 슬쩍 아버지의 눈치를 본다.
헬레나의 아버지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장님이지만, 정확히 내가 있는 곳을 아는 듯했다.
"다시 한번 마을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군요."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나선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군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아, 제 이름은 아이노라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이 마을의 촌장을 맡고 있지요."
나는 아이노가 내미는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여기서 지내도 괜찮겠습니까? 아무래도 우리의 도움이 절실해 보여서 말입니다. 다친 사람들도 치료를 해야 하고…."
"그래 주신다면 저희가 영광입니다. 그런데 누추한 곳인지라…."
"걱정 마십시오. 노숙에 익숙하니까. 껄껄."
환한 보름달이 내리쬐었다.
나는 잠깐이지만 이곳에 정착하기로 했다.
…뭐, 이것도 보람된 일이 될 수 있겠지. 조용히 수련하기도 좋고.
풀벌레 소리가 찌르르 울린다.
밤이 무르익어 간다.
* * *
[당신은 훈련소의 교관을 전역하였습니다.]
날이 밝자마자 백무열은 곧장 훈련소를 전역했다.
모두가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이곳은 그저 무기를 얻기 위한 곳이었고, 처음부터 여기에만 박혀 있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고생 많으셨습니다."
쿤타가 악수를 건네오자 백무열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가 다시 한번 아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교관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래. 나도 나이가 있어서 말이야."
"흐음. 정말 아쉽군요. 아, 이거 받으십시오."
[뮬란의 명예 교관 수료증을 획득하였습니다.]
"음? 이게 뭔가?"
"저번에 고생해주신 것에 대한 보답입니다. 원래는 1년간 교관으로 활동해야 받을 수 있는 거지만, 유적에서의 활약도 있으셨고, 감사의 의미로 드리는 겁니다."
"험, 뭘 이런 것까지. 고맙네."
백무열은 싫은 척하면서 기분 좋게 받았다.
사실 누가 주는 것을 내빼는 성격은 아니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던 속설이 있는데, 그는 믿지 않는 편이었다.
곧장 수료증의 정보창을 열었다.
[뮬란의 명예 교관 수료증]
등급: 영웅
1년간 뮬란의 교관으로 활약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수료증.
이것만 있다면 어떤 마을을 가도 쉽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운이 좋다면 꽤 높은 직위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24시간 동안 어떤 훈련소라도 무료 이용 가능!
띠링-!
[임시로 뮬란의 명예 교관 지위가 주어집니다.]
[뮬란의 군사들 사이에 당신의 용맹에 관한 소문이 파다합니다.]
[명성이 3000 상승하였습니다.]
[당신의 명성이 '이름없는' -> '제법하는'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흐음. 고맙군."
"그나저나 무기는 그것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흑단나무로 만들긴 했지만, 그래도 목검인데…."
백무열은 전역하며 받는 무기로 공격력이 좋은 목검을 요청했다.
그래서 받은 것이 단단한 흑단 나무로 만든 목검이었고, 사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저번에 늑대를 때려잡았을 때 손맛이 너무 좋았거든.
"뭐, 괜찮네. 나는 목검이 있어야 더 힘이 나는 편이라."
이게 다 몽둥이의 가호인지 뭐시기 때문이지만.
"흠. 그렇다면 더 권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음. 뮬란의 주변에 몬스터들이 많습니다. 의뢰를 받아 치안을 유지하는 일을 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이곳의 수비대장인 필로스가 제 친구인데 추천서를 써드리겠습니다."
"오, 그것도 주게."
쿤타가 책상에 종이를 끄적이더니 백무열에게 내밀었다.
[쿤타의 추천서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럼 이제 정말 작별입니다. 아, 아마 나가시면 꽤 반가운 얼굴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어르신께 반했다는군요."
"음? 그게 무슨 소리지?"
"후후. 그건 나가시면 아실 겁니다.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백무열은 그의 인사를 받았고, 이내 훈련소를 나왔다.
'이제 정말 작별이구나. 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재미난 일들이 대부분이었지….'
그렇게 입구로 나오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해바의 얼굴.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특훈을 함께했던 3명. 묵사발, 지킬, 바로크.
그들은 약속했던 대로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다.
이미 친구 등록도 해놓은 상태.
그런데, 그 뒤로 2명의 얼굴이 더 보인다.
'뭐지, 저놈들이 왜 여깄지…?'
빡빡이 두 놈이 걸어온다.
햇빛에 반사되는 걸 보니 뭔가를 바른 모양이다.
머리털도 없는 놈들이 관리를 하다니 웃기는 일이다.
"뭐냐. 머머리, 타르모. 인사하러 온 거냐?"
이제는 교관의 신분이 아니라서 그들에게 막 대해도 상관없었다.
머머리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거, 언제든 도전을 받아주신다면서요. 저희 전역했습니다. 영감님보다 일찍."
"그래서 덤비겠다고?"
대답은 타르모에게서 들려왔다.
"하하. 질 게 뻔한데 뭐하러 덤빕니까. 저흰 그냥 저번에 용맹하게 싸우던 모습을 보고 반해서 따라가는 겁니다. 세상 구경도 할 겸요."
"흐음…."
미간을 찌푸리는데, 저 멀리 손자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녀석은 무기로 칼을 받았는지, 제법 폼이 났다.
"할아버지."
"오, 그래. 어디 갔다 왔냐."
"그냥 뭐 이것저것 방어구 둘러보고 왔어요."
"쯧. 원래 그런 건 허접들이나 차는 거다. 성찬아."
"알아요. 근데 이 사람들은…?"
성찬이가 익숙한 얼굴을 보고 갸웃거린다.
"큼. 함께 여행하게 된 머머리일세."
"난 타르모. 영감님의 손자라고 들었네. 잘 부탁하지."
"아, 예…."
성찬이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눈짓으로 묻는다.
하지만 백무열은 대답할 수 없다.
이놈들이 다짜고짜 나선 거니까.
'쿤타가 말했던 반가운 얼굴이 이놈들이었던 모양이군….'
하나도 반갑지가 않다.
두 빡빡이 놈들과는 악연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마력 이발기로 머리를 밀고 싶지만, 그럴 머리털도 없어 보인다.
더군다나, 타르모는 약간 남아있는 머리털마저 잃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쯧. 어쩔 수 없나.
"발목이나 잡지 마라."
"하하, 걱정 붙들어 매십쇼. 저희가 이래 보여도 무기를 들면 제법 강하거든요."
"어이고. 어련할까."
그들이 거머쥔 무기가 빛났다.
머머리는 역시 예상대로 창을, 타르모는 짧은 단검 두 개를 썼다.
우리들은 자리를 옮겼고, 우선 그 수비대장이라는 자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러다 문득,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음? 저놈이 여긴 또 왜 있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