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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38화 (138/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38화

제138화

[성단, '네페무크 성당'에서 퇴장하였습니다.]

간결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내가 성단과의 연결을 끊는다면 자연히 두 사람은 멀어질 테니까.

물론, 추측이었지만 그것은 제법 효과가 있는 듯했다.

[취익. 한참 재밌어질 참이었는데 아쉽게 되었군. 쯧.]

다행이다.

아쉬워하는 무두르의 목소리를 들으니 아무래도 제대로 작동한 모양이다.

후우, 진짜 십년감수했네.

옆에서 김수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버님. 아까 그 오크 정체가 뭐냐고 카미유가 묻는데요?"

뒤를 돌아보니, 우리를 뒤따라오던 키스와 헬레나도 우두커니 멈춰있었다.

조셉과 드레인 또한 마찬가지였고, 네 사람은 멀뚱한 눈으로 우리가 뭐하는 것인지 쳐다보고 있었다.

흐음. 하는 수 없나.

나는 약간의 한숨을 쉬며 김수정에게 말했다.

"일단 가던 길 가자. 귓속말로 얘기해주마."

나는 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 *

대륙 최대의 경매장.

실시간 라이브 경매로 유명한 이곳에서 일행들이 깔깔거리며 나왔다.

그 일행에 끼어있던 최미도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있었다.

"푸하하하! 거봐 내가 그랬잖아. 한 명도 손을 안 든다니… 악!"

박태현이 김현우의 발길질에 옆으로 나동그라진다.

김현우는 미도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아. 뭐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 너무 낙심하지 마. 다음엔 꼭 팔리겠지."

"……."

미도는 그럼에도 손을 내리지 못했다.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설마 처음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두 번이나 연속으로 내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을 줄이야.

그녀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그동안 쌓아왔던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느낌.

그래. 그런 느낌이었다.

"아우씨…. 야 김현우 좀 살살 차지?"

박태현이 한 손으로 허리를 잡은 채 일어섰고, 뒤에 있던 은정혁이 한숨을 쉬었다.

"아오. 이 눈치 없는 새끼야."

"뭐 인마?"

"미도 좀 그만 괴롭혀라."

"아, 내가 뭘? 사실이잖아. 큭큭. 설마 또 한 명도 손을 안 들 줄은…."

스윽.

칼 뽑히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김현우의 허리춤에 있는 잘 벼려진 칼 소리가 아니었다.

뭐랄까.

약간은 피에 절여진, 그래서 좀 더 으슥한 공포에 가까운 소리.

그 칼의 주인인 미도의 손에는 피의 도살자가 흉흉하게 서려 있었다.

그녀가 말없이 박태현에게 걸어갔다.

"하하. 야 미도야 삐졌나? 야. 미안하다 야. 야?"

그리고 휘둘렀다.

스륵.

날카로운 검날에 박태현의 앞머리가 서늘하게 휘날렸다.

박태현은 목울대를 꿀꺽 삼켰다.

"미, 미도야…?"

"그냥 죽으세요."

눈물이 맺힌 그녀의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미도는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으아악! 미도야! 그만! 미안해! 미안하다고!!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화 풀릴 때까지 뭐든지 해줄게! 미아아안!"

그렇게 한 2분이나 되는 시간 동안 검을 휘둘렀지만, 미도는 그에게 상처하나 입힐 수 없었다.

그도 당연한 것이 그녀는 서포터 계열의 직업이었고, 박태현은 격투가 계열의 클래스였다.

애초에 힘과 민첩의 차이도 많이 날뿐더러. 자신을 제외한 모든 간부가 영웅 클래스를 가지고 있었다.

미도는 심통이 나서 볼을 풍선처럼 부풀렸다.

"정말 뭐든지 다 할 거예요?"

"그, 그래.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냐? 내가 사줄게."

"아니요. 먹는 건 됐어요."

"그, 그럼…?"

"이리 가까이 와봐요."

"응…?"

미도는 박태현이 다가오지 않자, 선뜻 먼저 다가갔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붓과 팔레트를 꺼냈다.

"뭐, 뭐 하려고…?"

박태현이 긴장된 표정으로 묻자, 미도가 대답했다.

"이러려고요."

사사사삭.

빠르게 움직이는 손.

그녀의 붓이 향한 곳은 박태현의 얼굴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뒤에서 폭소가 터졌다.

은정혁과 김현우의 웃음소리였다.

"푸하하하! 큭큭큭."

"크흠. 흠."

박태현의 얼굴은 웃긴 바보 분장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마에는 '똥멍청이'라는 글자가 크게 써져 있었다.

평소 외모를 자주 관리하는 그답게 인벤토리에서 거울을 꺼내더니 얼굴을 보고는 기함한다.

"이, 이게 뭐야!"

미도는 도도하게 뒤돌았다.

"그게 벌이에요. 한 3일 동안 그러고 계세요."

"뭐, 뭣?!"

"지우려고 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이거 꽤 강한 유성물감이거든요. 제 손에 있는 마력 세정제가 아니면 지우기 힘들어요."

그녀는 한 손에 마력 세정제를 흔들면서 멀어졌다.

뒤에서는 계속해서 폭소가 만발했다.

"푸하하하하!"

"큭큭큭. 야 진짜 대박이다."

"야, 김치 해봐 김치~"

"아 치워 이 새끼야!"

"크하하하-!"

미도는 씩 입꼬리를 올렸다.

"다음에 잘 팔면 되지. 뭐."

하늘의 달이 미소 짓는다.

* * *

[반딧불성, 카미유가 뾰로통하게 오크를 쳐다봅니다.]

다행히 카미유와 무두르는 가까스로 화해를 했다.

약간의 오해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무두르는 밖이 추워서 안에서 잠을 잤던 것뿐이었다.

근데 왠지 이 평화는 오래 이어지지 않을 것 같다.

[크륵. 이봐. 영감탱이. 이 꼬맹이 죽이면 안 되나?]

'썩을 놈이. 죽고 잡냐?'

[크흐흐. 농담이다. 어차피 이런 꼬맹이랑은 싸울 맛도 나지 않는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무두르에게 메롱을 합니다.]

…아이고 두야.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른다.

그만큼 방금 전 있었던 상황은 긴박했다.

김수정은 내 얘기를 듣고 놀라워했고, 그것은 카미유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걸어가던 조셉이 멈춘 것은 그때였다.

"잠깐만요. 앞에 무언가 있습니다."

"음?"

나는 초감각을 확장해 높아진 시력으로 앞을 훑었다.

저 앞에 웬 원숭이들이 있다.

뭐야 저게?

"아무래도 보름달이 떠서 '앵그리 몽키'들이 조금 사나워진 모양입니다. 원래 여기까지는 잘 나오지 않는데…. 흐음."

레벨을 확인해보니 80~90 언저리에 머무는 몬스터다.

어차피 콜로세움을 위해 실전 훈련도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잘됐군.

이제 일주일도 안 남았지만, 뭐, 괜찮겠지.

"키스."

"네?"

"너는 헬레나를 지켜라."

"아, 예."

드레인은 익숙하게 뒤로 빠졌고, 나는 비천기상무를 췄다.

내 양발은 어둠 속에서도 찬란하게 타오르며, 해 오름을 피웠다.

그 모습에 김수정을 제외한 모두가 감탄했다.

조셉이 걸어왔다.

"저도 돕겠습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는데?"

"뭐, 괜찮을 겁니다. 위험하면 은신이나 실명 플래시를 터트리면 되니까요. 그리고 꽤 도움 될 겁니다. 제가 괜히 죽음의 파파라치가 아니니까요. 하하."

"뭐, 그렇다면야."

나는 김수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

이젠 제법 듬직해진 모습이다.

우리 세 사람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솔라를 불렀다.

풍희는 내 주위를 맴돌았다.

"풍희야. 위험하니까 환계로 가있을래?"

"푸웅!"

싫은 모양이네.

보통 풍희와 같은 신수들은 환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지금은 아직 어리고 몸집이 작아서 작은 환계인 소(小)환계에 있지만, 언젠가 크면 대(大)환계를 왔다 갔다 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건 나중의 일이고.

"그럼 위험하지 않게 주변에 숨어 있어야 한다?"

"푸우우웅♡"

하얀 목도리처럼 내 목을 휘감는 풍희의 몸.

태어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어느새 제법 족제비 같은 모양새를 갖추었다.

뭐, 원래 크기에 비하면 아직 한참이나 작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성년 족제비라 할만하다.

그나저나 여기만 있는 걸 보면 이곳이 더 좋은 모양이다.

오죽하면 스킬 설명에 있는 지속시간이 '내키는 대로'일까.

"푸우우웅~"

한껏 애교를 부리는 풍희.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금 지나자 아까 보았던 '앵그리 몽키'들의 무리가 보였다.

나는 빠른 속도로 뛰었고, 그대로 날아 제일 앞에 있던 원숭이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콰아앙-!

한 방에 터져버린 원숭이의 머리. 원래라면 제법 많이 때렸어야 했지만, 그동안 나도 제법 강해졌다.

올라간 지식으로 인해 해 오름의 위력이 증가했고, 그것이 꿰뚫지 못하는 것은 없었다.

"우끼끼-!"

5마리의 원숭이들을 연속으로 죽이자, 또 다른 원숭이들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그런데 옆에서 자꾸 찰칵거리는 소리가 거슬린다.

찰칵. 찰칵.

고개를 돌리니 조셉이 달려오는 원숭이들을 향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너 뭐하는 거냐."

"아, 이거요? 죽음의 마크를 새기는 중입니다."

"죽음의 마크?"

"보실래요?"

찰칵-!

또 한 번 셔텨음이 울리더니, 달려오던 원숭이들의 머리 위에 해골 표시가 떠올랐다.

그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제 때려보세요. 추가 데미지가 붙을 테니까."

"추가 데미지라고?"

"예. 이게 제 또 다른 능력 중 하나입니다."

30마리쯤 되는 원숭이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렇단 말이지.

나는 솔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왕 소환했으니, 솔라에게도 활약할 기회를 줘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솔라야. 그 뭐시냐. 썬 익스플로젼? 그거 한 번 써보자."

"알겠다. 해해! 잠깐만 기다려라!"

[태양의 정령, '솔라'가 <썬 익스플로젼>  을 준비합니다!]

화륵! 화르륵!

점점 커지기 시작하는 솔라.

그 크기가 제법 거대했다.

하긴 솔라도 어느새 100레벨을 넘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솔라는 성인 남성 한 명 정도되는 크기의 지름으로 자라났다.

아마 이 정도가 솔라의 한계인 듯하다.

"나를 던져줘! 주인아!"

"던지라고?"

"웅! 그럼 저기 가서 내가 콰콰쾅! 하고 폭발할 거야! 해햇."

현실에서 들었다면 굉장히 심각했을 이야기를 솔라는 너무도 당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뭐, 여긴 가상의 세계니까 상관없으려나.

근데 이렇게 큰 걸 어떻게 던지라는 거야. 그것도 땅에서.

"흐음."

나는 턱수염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원숭이들과의 거리는 어느새 50M.

우끼끼거리며 뛰어오는데, 엄청 화난 것 같다.

웃긴 놈들.

"어쨌든 널 저기로 보내면 된다 그 말이지?"

"그렇다. 주인아!"

"그럼 방법이 있지."

나는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렸다. 마침 뒤에 김수정이 있었고, 의아하게 보던 그녀가 물었다.

"어쩌시려구요?"

"별거 아니다."

"네?"

"손이 아니면 발로 하면 돼."

그와 동시에 나는 내달렸다.

그리고 솔라의 엉덩이를 힘차게 걷어찼다.

콰아아앙-!

폭발 소리와 함께 솔라는 허공을 날았다.

힘차게 솟던 솔라는 잠시 정지하더니 이내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고, 의도적으로 원숭이들이 있는 방향을 향해 몸을 틀며 이내 부딪혔다.

콰콰콰쾅-!

엄청난 소리.

그 여력이 얼마나 거센지 뜨거운 바람이 사위를 감싼다.

찬란한 업화의 불꽃은 주변의 정경을 잠식하듯 퍼져나갔다.

화륵. 화르륵.

잠깐 눈을 감았다 뜨자, 원숭이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있었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타닥거리는 잿더미를 보며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짜식들 까불고 있어."

뒤에서 딸꾹질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딸꾹!"

키스와 헬레나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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