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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37화 (137/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37화

제137화

깊어가는 밤.

고풍스러운 저택에 한 남자가 책상을 쾅! 내려친다.

이곳은 포트렌에서 다음 대 상왕(商王)으로 가장 유력하다고 꼽히는 '에이단'의 거처.

그는 눈앞에 있는 사병의 보고를 들으며 노기를 터트렸다.

"네놈은 뭐 하는 녀석이야!!"

"죄, 죄송합니다!"

헬레나의 경호라고 붙여놓은 사병이 거듭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 돈값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이달 치 월급은 없다."

"하, 하지만…."

"밖에 누구 없나!"

그 노호성에 밖에 있던 사병 하나가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섰다.

에이단이 눈앞에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당장 이놈을 끌어내라!"

"예!"

"아, 안됩니다! 한 번만 봐주십시오! 에이단님! 저희 가족들이 굶고 있습니다…! 제발 봐주십시오!"

눈앞의 남자가 바짓단을 잡고 늘어졌다.

에이단은 그를 매몰차게 밀어냈고, 눈앞의 남자는 병사들에게 끌려 나갔다.

문이 닫히자, 에이단은 미간을 찌푸리며 바짓단을 털었다.

"쯧. 이래서 쓰레기촌 출신들은…."

아까 그 병사는 헬레나와 같은 쓰레기촌 출신이다.

그래서 고용을 한 것이었고, 모두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한 포석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녀에게 점수를 딴다면 언젠가 내게 마음을 열고 몸을 허락할지도 모르니까.

에이단은 온전히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출신이 천한 탓일까.

그녀는 계속 바깥을 나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추적 마법이라도 걸어놓는 건데….

"잠깐. 쓰레기촌? 쓰레기촌이라…."

헬레나는 쓰레기촌 출신이다.

그리고 장님인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다.

그녀는 쌀 300석에 팔려왔어도 아버지를 탓하지 않았다.

그만큼 효심이 지극하니까.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고향으로 몰래 내려가곤 했던 게 아닐까.

며칠 전 헬레나에게 붙인 파파라치의 말에 따르면 그녀에게서 바람 핀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 그러면 이해가 되지.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동안 그녀가 몰래 집을 나갔던 것이 그런 이유라면 모두가 설명이 된다.

아마 그녀는 아버지를 보러 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에이단이 방문을 열어젖히며 병사를 찾았다.

"여봐라! 누구 있느냐!"

"예, 여기 있습니다!"

"지금 당장 사병들을 끌어 모아라."

"몇 명을 끌어 모을까요?"

"음…."

쓰레기촌의 주민들은 포트렌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가난한 그들은 부유층에 빌붙어 먹고 살기 위해 다양한 기술들을 갖추었지만, 먹지 못해서 그런지 유독 삐쩍 말랐고 힘은 약했다.

그래도 꽤 많은 숫자라서 위협하려면 2,000명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2,000명. 아니지, 500명 더 추가해라."

"옙! 알겠습니다."

병사가 멀어지자 에이단은 특유의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헬레나. 널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겠다."

* * *

낭만 있는 불빛이 가득한 시끌벅적한 번화가.

이곳은 대륙 최대의 무역도시 포트렌이다.

그곳에 한 폭의 수채화를 옆구리에 낀 미녀가 돌아다닌다.

미도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도도하게 걸었다.

'다들 보는 눈들은 있어가지고.'

지금 그녀가 향하는 곳은 대륙에서 가장 큰 경매장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었다.

사실 그림을 팔려면 주변에 있는 남자들에게 대충 말빨로 후려쳐서 팔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그녀는 진정 예술적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그림을 팔고 싶었다.

물론, 아직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 미도야. 여기다!"

누군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곳엔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카루스의 간부들.

그녀는 길드의 홍일점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오빠들. 전부 휴학했다면서요?"

"벌써 그렇게 소문이 났냐? 엄청 빠르네."

길드에서 격투가 클래스로 활약하고 있는 박태현의 말에, 길드장 김현우가 말을 받았다.

그는 탱커 겸 전사를 담당하는 성기사 클래스를 가지고 있다.

"원래 타는 말보다 입에 있는 말이 빠른 법이니까."

"뭐 그렇긴 하지. 근데 그거 사실이야? 이번 콜로세움에 1등 상품 말이야."

박태현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은정혁이었다.

그는 빛을 이용해서 싸우는 마법 궁수의 클래스를 가지고 있다.

"사실이야. 스타 프루츠가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그거 믿을만한 거냐고. 대체 누구한테 얻은 정보인데?"

이번엔 김현우가 말을 받았다.

"아르고스의 눈."

"뭐? 그 베일에 싸인 비밀 단체에서 얻은 정보라고?"

"그래. 꽤 값을 지불했으니까 확실한 정보야."

"난 그놈들 못 믿겠던데. 전부 정체도 모르는 놈들이잖아. 그런 놈들한테 뭘 믿고 의뢰를 해?"

"그래도 고레벨 유저들 사이에선 꽤 유명해. 좀 비싸도 일처리는 확실하니까 말이야."

아르고스의 눈.

미도 또한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아르고스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온몸에 100개의 눈이 달린 거인을 일컫는 말.

그들의 상징은 기묘한 눈동자들이 팔 방위를 차지한 형태였는데, 마치 누구라도 자신들의 눈을 피해갈 순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그들의 정체 또한 베일에 싸여있었지만, 비싼 만큼 일 처리는 확실하다고 들었다.

"아르고스의 눈이라면 확실할 거예요. 저도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으니까요. 너무 걱정 마요. 태현 오빠."

"큼. 그래. 미도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아무튼 오빠들 경매 시작하기 전에 빨리 들어가요. 내 것도 등록해야 되니깐 일찍 들어가야 되요."

박태현이 한쪽 귀를 후볐다.

"거 참. 저번처럼 아무도 안 사서 유찰될 게 뻔한… 억!"

김현우가 박태현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하지만 미도는 그 말을 모두 듣고 말았다.

"흥! 태현 오빠 미워!"

미도가 쿵쾅거리며 경매장으로 들어갔다.

일행들도 하는 수 없이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 * *

그 무렵 우리들은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퀘스트를 수락했고, 다행히 아직은 밤이라 기자들이 주둔해 있진 않았다.

하지만 또 모르는 거라 조셉에게 주변 정찰을 부탁했다.

그의 카메라는 적외선 투시 기능이 있는 만능 카메라였기 때문이다.

열 감지가 되는 만큼 은신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조셉이 돌아왔다.

"다행히 기자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음, 그래."

함께 쓰레기촌으로 향할 사람은 나와 김수정, 조셉, 그리고 키스와 헬레나. 마지막으로 드레인.

이렇게 총 6명이다.

견소룡은 수련에 집중하는지 귓속말을 차단한 상태였고, 연락이 닿지 않는다.

뭐, 어차피 포트렌에서 만날 예정인데 상관은 없겠지.

그리고 케레노스 놈은….

"드르러어어어엉-! 푸우우…."

코골이 한번 더럽게 심하네.

살다 살다 이렇게 코를 심하게 고는 놈은 처음 본다.

나는 의자에 대자로 드러누운 녀석의 곁으로 다가가 볼을 찰싹 때렸다.

"예끼. 이놈아."

"으음…. 음냐. 내 돈…."

"일어나봐. 이눔아!"

찰싹찰싹.

"돈 갚아요…. 음냐 음냐."

참나.

돈 뺏긴 게 억울하긴 했나 보다.

얼마나 심하면 꿈까지 꾸는 건지.

양 싸대기를 때려도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일어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모양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끼리 가자."

"쟤는 술을 왜 저렇게 많이 마셨대. 마시지도 못하면서."

김수정이 피식 웃으면서 그의 뺨을 찰싹 때렸다.

평소에 한번 때려보고 싶었던 모양인지 그녀가 꺄르르 웃었다.

하지만 곁에는 부단장인 베커가 째려보고 있었다.

"옴마. 깜짝이야. 하하…. 고생하세요오오."

기어가는 목소리를 하며 뒷걸음질 치는 그녀.

나는 베커에게 다가갔다.

내가 없는 동안은 그가 임시로 이곳을 맡아줘야 했다.

케레노스가 지금 저런 상태니까 어쩔 수 없지.

"베커. 마을 사람들의 입단속을 부탁하겠네."

"걱정 마십시오. 철저하게 지키겠습니다."

"그래. 자네만 믿네."

나는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었다.

그에게 부탁한 것은 바로 마을 사람들이 내 정체에 대해서 일절 함구하는 것.

아직은 병사들이 입구를 막고 통제하고 있지만, 마을 완공이 완료 되었으니, 내일 아침이면 사람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계속 저럴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도 하는 수 없었다.

그저 마을 사람들의 입단속을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그가 꾸벅 고개를 숙였고, 나는 일행들을 이끌고 마을을 나섰다.

오늘은 보름달이 가득한 밤.

찌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 사이로 발소리만이 가득했고, 무안했는지 김수정이 다가와 주먹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성단을 열어볼까요. 아버님?"

"좋지."

피식 웃으며 주먹을 맞대자 성단(星團)이 열렸다.

띠링-!

[성단, '네페무크 성당'에 입장하셨습니다.]

오랜만에 들어가보는 성단.

프로메테우스는 잠든 상태였지만, 다행히도 입장은 가능했다.

곧장 카미유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당신에게 인사합니다.]

"오랜만이다. 카미유."

[반딧불성, 카미유가 사정은 들어서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꼭 쓰레기촌 사람들을 구하자고 말합니다.]

메시지 너머로 그녀의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역시 칠성협(七星俠)의 일원이라 그런지 의협심이 넘친다.

"그래. 최선을 다해보자."

고개를 끄덕이는 그때, 또 다른 메시지가 떴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조금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깜짝 놀랍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프로메테우스 옆에 못생긴 오크가 자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무두르 녀석이 별다방에 있었지.

아마 저번에 성단에 들어갔을 때 못 봤던 건, 무두르가 별 다방의 끝을 알아보기 위해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무두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륵. 뭐야 이 쪼끄만 여자애는.]

제길.

아무래도 마주친 모양이군.

"아버님. 방금 메시지 보셨어요? 못생긴… 오크라는데요?"

[취익. 감히 짐에게 못생기다고 하다니. 팔다리를 뜯어먹어야겠군. 그나저나 이 쫑알쫑알 시끄러운 꼬맹이는 뭐냐? 어이 영감.]

동시에 물어오니 어디부터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일단 앞에 있는 김수정에게 말했다.

사실 그녀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었으니 먼저 말하는 게 옳았다.

"크흠. 그게 사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전투를 준비합니다!]

어? 시부럴? 이러면 안 되는데…?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는 자명하다.

무두르는 등성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1등성을 넘보는 힘을 가졌다.

"이, 이봐. 멈추게! 카미유!"

[재밌군. 지금 나랑 해보자는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이 몸은 대 오크제국 라이카의 수장….]

"이, 이런 썩을 놈들이…!"

나는 결단을 내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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