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36화
제136화
해가 저물었다.
찌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가 달빛을 머금은 채 울었고, 내가 이름을 지었던 '메테우스' 마을은 분주했다.
모두 축제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나를 포함한 일행들도 준비를 도왔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어느새 우리들은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와, 이거 진짜 맛있어."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미녀가 양손으로 고기를 쥐고 뜯는 것은 꽤 보기 힘든 광경이다.
그녀의 이름은 헬레나.
아까 전 조셉을 따라 납치된 귀부인이다.
"키스. 이것 좀 먹어봐요. 아~"
"아~"
헬레나는 몸이 불편한 키스를 대신해 고기를 찢어서 먹여주고 있다.
차마 눈 뜨고 못 볼 광경이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파락호 같은 놈이 뭐가 좋다고 저러는지. 쯧쯧.
"음~ 맛있는걸? 누가 찢어줬는지 진짜 맛있네."
"호호호."
헬레나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좋은가….
그녀가 처음 오자마자 한 것은 키스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수정이가 있는 병원(?)으로 안내하였고, 마침 누워서 요양… 아니, 묶여 있던 키스는 그녀를 보자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떨어지지 않고 계속 저 상태다.
주변은 의식하지 않은 채 애정행각을 벌이는 게 젊은이들다웠지만, 난 여전히 눈꼴사나워 죽겠다.
니미럴. 누군 없어서 못 하는데….
띠링-!
[요리의 이름을 정해주십시오.]
"오? 명물인가?"
전에도 한 번 이런 메시지를 본 적이 있다.
분명 고르바가 있던 오크 마을에서였던 것 같은데….
지금 나는 미노타의 막창을 비롯한 여러 부위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굽고 있다.
팔면 꽤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겠지만, 나는 축제를 위해 스스럼없이 내놓았다.
사실 너무 커서 팔 수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럴 바에는 내가 요리해서 먹는 게 낫겠다 싶어서.
"고기가 열리는 나무."
[요리의 이름이 맞습니까?]
내가 이런 이름을 지은 이유는 눈앞의 독특한 모습 때문이다.
저번에 미노타를 잡고 얻은 거대한 상체 뼈를 부숴 척추와 갈비뼈를 분리해 나무처럼 이어붙였다.
거미줄을 이용하니 손쉽게 붙었고, 그 모습이 마치 나무처럼 생겨서 나는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근데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옛날에 배가 너무 고파 고기가 열리는 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었지….
확인을 누르자 창이 떴다.
띠링-!
[명물! 고기가 열리는 나무!]
요리사여 꿈을 꿔라!
길이 이끄는 곳을 가지 않고, 길이 없는 곳에 자취를 남기는 요리사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요리다.
꿈이란 미래의 아름다움을 믿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어렸을 적의 동심을 잊지 않은 요리사의 순수함이 깃든 요리다.
거대한 미노타의 뼈로 다시 태어난 이것은 가히 마을의 명물이라 할만하다!
-맛 스타: ☆☆☆☆☆☆
-생명력 회복: 600 마력 회복: 600
효능: 이 요리를 먹는 이들은 온몸에 활력이 돋습니다. 지친 이들을 다시 뛰게 하고, 피곤한 사람은 눈이 번쩍 뜨이게 합니다. 한번 먹으면 오랫동안 포만도가 유지됩니다.
30분 간 모든 능력치가 10% 증가합니다.
최대 생명력 40% 증가.
타우루스 계열 몬스터에게 선공을 받지 않습니다.
*태양의 가호: 30분간 힘 60%, 방어력 60%, 화염 공격력 60%, 화염 내성 60% 증가합니다.
*바람의 가호: 30분간 민첩 60% 바람 공격력 60% 바람 내성 60% 증가합니다.
나는 정보창을 읽으며 감탄했다.
"이야. 처음으로 맛 스타가 6개 나왔네."
과연 별 6개가 붙을 만한 효능을 가진 요리답다.
고기 나무 위에서 고기를 굽던 솔라와 풍희가 쪼르르 내 옆으로 날아왔다.
둘은 불과 바람이란 속성 때문인지 호흡이 제법 잘 맞았다.
"해해! 주인아 맛있는 요리가 만들어졌다!"
"푸웅! 푸우웅!"
나는 씩 웃으며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허허. 고생 많았다."
솔라와 풍희는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고기가 열리는 나무'의 레시피가 등록되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명물 요리를 만들고 전수 할 수 있습니다.]
[명물 요리의 창조가 늘어날수록 특별한 일이 발생합니다.]
[현재 만든 명물 요리의 숫자: 2]
"흐음. 명물 요리를 만들수록 특별한 일이 발생한다라…."
무엇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에도 없는 것이었다.
그 특별한 일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넘겨야겠다.
"아마 전수는 못하겠지."
아직 이 마을에는 내 요리를 감당할 만한 변변찮은 요리사들이 없다.
오크 마을에 전해준 것은 그저 간단한 요리였기에 상관없었지만, 이것은 고기 요리인 만큼 제법 많은 노하우가 필요했다.
"이야~! 촌장님이 또 엄청난 요리를 만드셨어!"
"역시 우리 촌장님만한 요리사가 없다니까!"
"난 처음부터 보고 있었는데, 진짜 맛있어 보여!"
어느새 마을 사람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이미 나를 촌장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어디 보자. 이거부터 꺼내야겠군.
나는 고기 나무에 꽂힌 막창을 비롯한 각종 부위들을 꺼내 접시에 담았다.
고기 나무에 있는 뼈들은 그저 대용량으로 굽기 편하게 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먹거리들을 접시에 담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무렵.
또 다른 메시지가 떴다.
[고기가 열리는 나무의 뼈를 이곳에 남겨두시겠습니까?]
[이것은 메테우스 마을의 명물이 되어 많은 이들의 방문을 초래할 것입니다.]
[지나가는 여행자들이 고기를 꽂아 구울 수도 있습니다.]
"오호."
많은 이들이 방문한다면 마을의 경제가 좋아질 것이다.
아마 입소문을 타면 꽤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테지.
나는 지체 없이 승낙을 눌렀다.
그리고 일행들이 모인 곳으로 가 앉았다.
"고생하셨어요. 아버님. 그리고 죄송해요. 저희가 도와드려야 하는데."
김수정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다.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걸 하는 거지 뭐. 나도 즐거웠다. 껄껄. 미안해하지 말거라."
그렇게 말하며 주변에 놓인 나무 잔을 하나 들었다.
윈디아의 전통 술인 보리 맥주.
이미 케레노스는 만취해서 코를 고는 상태였다.
내가 돈을 갚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화가 식지 않는다며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저래 보여도 술은 약한 모양이다.
"어르신."
"오, 그래. 조셉. 너도 고생 많았다."
나는 그와 잔을 부딪쳤다.
조셉이 고개를 돌리며 깔끔하게 맥주를 털어냈고, 말을 이었다.
"이제 어쩌실 작정이십니까."
"음? 뭐가 말이냐."
"저 여인 말입니다."
그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헬레나와 키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맥주를 입에 가져갔다.
"어차피 돌아가면 될 일 아니냐?"
"안 돌아가겠답니다."
푸후우우웁-
너무나 갑작스러운 말에 정면에 있는 수정이의 얼굴에 맥주를 뿜고 말았다.
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사과했다.
"어흠. 이, 이걸 어쩌냐. 미안하다. 내가 실수로 그만…."
"하하…. 괜찮아요."
"그래도…."
"정말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물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얼굴을 씻으려는 모양이다.
제길. 표정이 안 좋던데….
문득, 둘째 놈과의 맞선이 걱정된다.
[크하하하! 노인네 꼴 좋구만! 크하하하하!]
무두르의 웃음소리가 크게 다가온다. 이상하게 열 받는다.
'조용해라. 썩을 놈아.'
[웃기는구만! 웃겨! 크하하하!]
빌어먹을….
나는 애써 그 웃음소리를 외면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조셉을 향해 다시 물었다.
"크흠. 미안하다. 아까 그 말이 무슨 뜻이냐. 돌아가지 않겠다니."
"들으신 대로입니다. 그녀는 이곳에 남겠답니다."
"흐음…."
미간이 찌푸려졌다.
만약 그녀가 이곳에 남는다면 그 에이단이란 놈이 이곳으로 쳐들어올지도 몰랐다.
듣자 하니 추적 마법이 걸린 은장도를 가지고 있다던데….
조셉이 말하길 그건 반대로 이곳의 위치를 추적할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그것은 마법사 길드에 따로 문의를 해야 하고, 이틀이나 걸린다고 했지만,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이곳은 세워진 지 얼마 안 된 신생 마을.
조셉은 그 '에이단'이란 놈의 성격이 포악하다고 했었다.
아마 이 사실을 알면 마을에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이유야 어떻든 우린 놈의 아내를 납치한 것이니까.
"아잉. 키스도 참. 간지러워."
"후후. 뭐 어때 보는 사람도 없는 데."
고개를 돌리니 둘은 여전히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보는 사람 있다. 이놈들아."
"꺄아아악-!"
놀란 헬레나의 목소리가 귓가를 찌른다.
생각보다 목청이 좋네.
마을 사람들은 잠깐 이곳을 보더니, 별일 아니자 다시 제각기 떠들기 시작했다.
헬레나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무, 무슨 일이시죠?"
"안 돌아간다며?"
"네, 네 그런데요?"
"안 돌아가면 우리가 곤란한데."
"그, 그건…."
키스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안 됩니다! 그녀를 보낼 수 없습니다!"
"…왜지? 안 돌아가면 여기가 공격받을지도 모르는데. 자네가 책임질 건가?"
"그, 그건…."
키스가 입술을 오물거렸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책임지지 못할 말은 함부로 내뱉지 마라. 그리고 헬레나 자네는 내일 아침 일찍 떠나도록 하게."
그렇게 말한 후 뒤돌았다. 하지만 헬레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잠깐만요!"
"……?"
고개를 돌리니 울 것만 같은 그녀의 표정이 보였다.
제길.
난 여자의 눈물에 약한 편인데….
"부탁이에요. 절 쫓아내지 마세요. 전 키스와 함께 있고 싶어요."
그 광경을 보던 조셉이 걸어오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추적 마법이 걸린 은장도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알기로 그건 왕국의 마법사 길드에 의뢰하면 이틀 안에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그, 그건 거짓말이었어요. 이건 평범한 은장도에요. 당장 내가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나도 살길은 열어놔야 하잖아요."
옆에 있던 조셉이 "허 참."이라는 말을 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당돌하구만. 하지만 명석해.
그런 위기 속에서도 그런 말을 했었다니 제법 대담한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키스 놈이 여자 하나는 제대로 골랐구만.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머물게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안…."
"우리 마을 사람들을 여기로 데려오고 싶어요."
"응?"
"전 쓰레기촌 출신이에요. 저희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포트렌의 부유층들에게 핍박받으면서 살아왔어요. 부탁드려요. 제발 저희 마을 사람들을 구해주세요."
띠링-!
[쓰레기촌의 주민들을 구하라!]
난이도: A
무역도시 포트렌에는 다양한 계층이 존재한다. 그중 가장 최하층민으로 분류되는 쓰레기촌.
포트렌의 귀족 에이단의 둘째 부인 헬레나는 이 쓰레기촌 출신이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이 이곳으로 와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들을 구해 무사히 이곳으로 데려오자.
-완료 조건: 쓰레기촌의 주민들의 메테우스 정착 0/1
-보상: 쓰레기촌 주민들의 호감도에 따라 다름.
…젠장. 일이 점점 꼬이는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