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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35화 (135/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35화

제135화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나는 옆에 있는 정현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말들이 달리기 시합을 하고, 돈을 벌었다며 좋아할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경마장.

아무래도 이 망할 놈이 도박을 끊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정현이 놈의 목이 로봇처럼 돌아간다.

낯빛은 하얗게 변해 있었고, 나는 조용히 띠를 풀어 서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순수한 눈동자가 호기심이 어린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웅? 하라부지 힘드러…?"

"아니다. 잠시만 기다리렴. 허허."

나는 눈웃음을 유지한 채, 천천히 정현이에게 걸어갔다.

하지만 녀석은 계속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 살기를 느낀 모양이다.

"아, 아버지. 그게 말이죠…."

"됐다. 더 말할 것 없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사실…."

"…이노무 짜슥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파라라락-!

허공을 날았다.

등산복이 펄럭거리며 소리를 냈고, 다리를 뻗었다.

회전력이 실린 540도 돌려차기가 정현이의 얼굴에 꽂혔다.

퍼어어억-!

뒤에서 지켜보던 강현이와 며느리는 입을 쩍 벌렸다.

* * *

우리는 정상까지 올라가지도 못한 채 다시 내려와야 했다.

그게 다 이 망할 둘째 놈 때문이다. 지금 나는 녀석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있다.

정현이 놈의 뺨에 신발 자국이 선명하다.

"네가 지금 제정신이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경마장을 들락거려?!! 이 썩을 놈이 진짜 다리몽둥이를 그냥…!"

"아버지. 고정하세요."

"참, 참으셔요. 아버님. 서희가 다 보고 있어요."

서희가 보고 있다는 말에 울컥하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 날라차기를 서희도 다 봤을 것이다.

나도 이렇게 화난 건 처음이라 조금 무안해졌다.

그동안 아무리 화가 났어도 애들을 때린 적은 없었는데…. 뭐, 맞을 짓을 하긴 했지.

"쓰읍…. 그래도 정정하셔서 다행이네요."

정현이가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놈이 자꾸 말을 돌리…."

"할부지 바부! 아빠 때리지망! 때리지 말라구우우!"

툭. 툭.

발밑에서 조그만 주먹으로 투닥거리는 서희를 보니, 다시 화가 가라앉았다.

일단 이성부터 되찾아야겠다.

후우. 하지만 저놈의 얼굴을 보니, 계속 화가 치민다.

어떻게 서희를 데리고 경마장으로 갈 생각을….

"죄송합니다. 아버지. 다신 안 그럴게요."

정현이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지가 잘못한 건 아는 모양이다.

그래도 이놈이 효자긴 하다. 도박에 미쳐서 그렇지.

나는 심호흡하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서희를 데려간 건 너무했다."

"예. 잘못했습니다."

"두말하지 말고, 당장 캡슐부터 구매해라."

"네. 네? 그럼 저 도장은…."

"쓰읍. 어차피 사람도 없잖냐."

"네…."

공기 반 소리 반 섞인 들숨으로 노려보니, 정현이의 어깨가 푹 주저앉았다.

그렇게 우리들은 산을 내려왔고, 서희는 지금 며느리에게 안겨 있었다.

서희가 정현이에게 삿대질을 했다.

"아빠. 몽총이!"

* * *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아크 스타에 접속했다.

둘째는 캡슐을 구매하는 대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고,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한 열기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우선 뭐라도 해야겠다. 제기랄. 뭐라도 두들겨 패야 이 열불이 가라앉을 것 같다.

시야가 트이며 익숙한 정경이 보였다.

[마을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있습니다.]

"음?"

접속하자마자 보인 것은 메시지 창이었다.

나는 곧장 그것을 열람했다.

[이름 없음][마을]

군사: 96 / 경제: 27 / 문화: 22

기술: 31 / 종교: 10 / 정치: 5

위생: 31 / 치안: 35% / 발전도: 51

인근 지역 영향력: 16%

- 현재 세금: 없음

- 마을 재정: 68,123 달러

- 종합 평가: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인 마을입니다.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따라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현재 새로운 바람의 신전을 짓고 있고, 많은 종교인들이 당신의 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피드 기사단이 거주 중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당신이 보낸 깍두기를 먹으며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올랐습니다.

당신은 현재 '촌장' 겸 '농부'입니다.

마을 완공에 대한 진척도가 '97%'에 임박했습니다.

마을의 이름을 짓는다면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음, 뭐가 많구만."

대충 읽어보니 전체적인 수치들이 상승했다.

가장 비약적으로 오른 것은 군사와 치안, 그리고 위생이었다.

다른 것도 조금씩 소폭 상승한 것을 보니 전체적으로 마을이 발전했다는 느낌이 든다.

저번에 만들어 준 깍두기에 대한 것도 적힌 걸 보니, 케레노스가 마을 사람들에게 골고루 잘 나눠준 모양이다.

"마을 완공 진척이 97%에 임박했군. 서둘러 이름을 지어야겠는걸."

잠깐 고민에 빠졌다.

마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볼까.

아니, 어차피 그들의 신뢰도는 이제 많이 쌓인 상태다.

내가 아무렇게나 지어도 마을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따를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5분을 고민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메테우스. 그래. 메테우스가 좋겠구만."

지금의 내가 이렇게 버젓이 돌아다닐 수 있는 건 모두 프로메테우스 덕분이다.

그 녀석이 희생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도, 윈디아도, 그리고 여기 마을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죽은 게 아니라 추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해보고 싶었다.

"어디 보자…."

나는 창을 열어 마을 이름을 입력했다.

독수리 타법으로 하나하나 쳐가며 힘겹게 써넣었다.

다행히 오타는 없었다.

띠링-!

[마을의 이름은 '메테우스'입니다.]

[메테우스의 주민들이 당신이 지은 이름을 좋아합니다.]

[축제를 열면 마을 사람들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축제라. 뭐 괜찮겠지.

이곳을 떠나기 전 잠깐 마을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화딱지가 나서 술이 필요한 참이니까.

-마을 축제 : 소요 비용 30만 달러

마을 사람들의 충성도와 문화가 대폭 상승합니다.

"시불. 근데 돈이 없네."

인벤토리를 열어 소지금을 확인해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했다.

평소 식재료와 향신료를 사고 그 외 잡다한 곳에 여러 가지 돈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빌릴 수도 없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돈을 빌리는 것이다.

돈이란 빌려줄 땐 앉아서 빌려줘도 받을 땐 서서 받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한 친구에게 큰돈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해서 큰 곤혹을 치룬 적이 있었다.

그때, 마누라가 얼마나 날 박박 긁었던지….

"마누라. 보고 싶구먼."

하마터면 그때 이혼당할 뻔했지만, 우리들은 전우애(?)로 이겨냈다.

이 나이쯤 된 사람들은 알 거다.

사랑보다는 전우애로 산다는 것을.

"흠…. 그나저나 조셉 이놈은 왜 연락이 없는 게야."

* * *

조셉은 마을로 돌아가고 있었다.

분명 출발할 때는 빈손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묵직하다.

그의 손에 쥐어진 가방에 값비싼 보석들이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그가 뒤돌아 외쳤다.

"좀 더 빨리 못 걷나?"

"헉, 허억.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되요?"

그가 말을 건 사람은 헬레나였다.

그녀는 자신을 따라오겠다고 했다.

기절에서 깨어난 그녀는 '키스'의 생사를 확인하고 싶다고 했고, 돈을 내놓으라니까 달러는 없다며 집으로 들어가 보석을 몽땅 털어 왔다.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걸 팔면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안 된다. 지금 나보고 붙잡히라는 뜻인가?"

어느새 날이 밝았다.

아마 지금쯤 에이단의 저택도 난리가 났겠지.

어쩌다 보니 조셉은 진짜 납치범이 되어버렸다.

그 납치의 대상은 지금 태연하게 납치범과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

"허억. 아, 더 이상 못가요! 여기서 좀만 쉴래요."

헬레나가 털썩 주저앉았다.

조셉도 어쩔 수 없이 쉬어야만 했다. 그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근데 왜 하필 지금 따라나선 거지? 에이단이 싫어할 텐데."

"저 원래 그 사람 싫어해요. 마을 사람들을 협박해서 강제로 결혼한 거거든요. 전 그 사람이랑 아직 잠자리도 한 적이 없어요."

갑작스러운 잠자리 고백에 조셉의 낯빛이 붉어졌다.

"큼. 아무리 그래도 지금 따라갈 이유는 없었을 텐데?"

"이유가 없다뇨?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키스뿐이에요. 그리고 핑계대기 좋잖아요? 납치당했는데."

"뭐? 그럼 일부러 납치당했다고? 우리가 당신을 어쩔 줄 알고?"

"딱 보니 돈이 목적인 것 같은데. 전 당신들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어요. 물론, 그 조건은 저와 키스를 살려주는 거구요."

듣고 보니 말이 되긴 한다.

그녀가 키스를 사랑하고 있고, 그의 목숨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많은 도움을 준다면 어쩌면 예상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모두는 쌍둥이들의 분유 값을 위해서다.

"크흠. 걱정마라. 키스는 우리가 잘 데리고 있으니까."

"흥. 그걸 어떻게 믿어요?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어요."

"믿던가 말던가."

"그리고 날 건드릴 생각은 말아요. 내 은장도엔 '추적' 마법이 걸려있으니까요. 버튼만 살짝 눌러도 제 위치가 저택의 경비들에게 전송될 거예요. 그럼 당신들도 끝이라구요."

순간 조셉의 몸이 움찔거렸다.

'설마 저런 걸 갖고 있을 줄이야. 과연 똑똑한 여인이군. 그냥 온 건 아니라는 건가.'

조셉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엉덩이를 털며 말했다.

"알았으니까. 그만 가지. 이제 거의 다 왔다고. 네가 좋아하는 키스도 곧 만날 수 있을 거다."

"흥. 힘들지만 어쩔 수 없죠. 이게 다 그를 위해서니까요."

새침한 헬레나의 표정이 도도하다.

그녀는 곧장 입고 있는 드레스 치마를 들어 올리며 우아하게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투명한 구두는 진흙에 범벅이 된 상태다.

구두는 대체 뭐하러 신고 온 건지. 에휴.

어느새 마을이 보였고, 조셉은 고개를 저으며 귓속말을 보냈다.

- 조셉: 어르신. 어디십니까.

* * *

팟. 파팟. 팟!

지금 나는 아까 있었던 화기를 다스리기 위해 수련 삼매경에 빠져 있다.

풍희는 꽃밭에서 아이올리아를 뜯어 먹고 있고, 저 멀리에는 케레노스가 풀숲에 드러누워 돈주머니를 던지며 짤랑거리고 있었다.

제법 신경이 거슬렸지만, 그래도 수련에 빠져들었다.

돌려차기, 뒤차기, 옆차기….

짤랑-!

"저 썩을 놈이. 자꾸 신경 쓰이게 만드네."

나는 땅에 떨어진 두툼한 돌 하나를 그놈의 머리통으로 집어 던졌다.

거리가 멀어서 안 맞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힘이 좋아진 모양이다.

딱-!

"윽! 누구야?!"

"나다. 이놈아! 시끄럽게 돈 소리 좀 내지 마라. 수련에 방해되니까."

"커흠. 흠. 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영감님."

케레노스는 기침을 두어 번하며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 돈주머니는 뭐냐? 자꾸 짤랑짤랑거리기나 하고."

"아, 이거요? 하하. 포트렌의 카지노에 갔다가 슬롯머신으로 돈을 땄던 게 오늘 아침에 들어왔지 뭡니까. 무려 제 봉급의 2배입니다. 하하하.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을 더 거는 거였는데."

저 망할 돈주머니를 보니 또 울컥 화가 치솟는다.

그러고 보니, 케레노스 놈이랑 둘째 놈이랑 조금 닮은 것도 같다.

어쩐지 조금 편하다 했더니…. 내가 썩 꺼지라고 말하려는 순간 귓속말이 도착했다.

- 조셉: 어르신. 어디 십니까.

- 잭슨: 저번에 그 농장이다. 넌 어디냐.

- 조셉: 이제 거의 도착해갑니다. 후문 쪽으로 들어올 것 같습니다.

- 잭슨: 음. 고생했다.

- 조셉: 저 근데….

- 잭슨: 왜, 뭔 일 있냐?

- 조셉: 그게… 협박을 했던 귀부인이 따라왔습니다. 본인 말로는 일부러 저한테 납치됐다는데요.

- 잭슨: 뭐…?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 조셉: 일단 직접 만나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잭슨: 알았다. 후문에서 보자.

귀부인이 직접 따라오다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원래 내가 의도했던 것은 그냥 돈만 뜯어내는 것이었는데.

흐음. 일단 가봐야겠군. 나는 서둘러 밭을 걸어 나왔다. 케레노스가 나를 발견하고는 뒤따라왔다.

"어디가 십니까. 영감님."

"후문에."

"후문에요? 뭐하러 가십니까?"

이 썩을 놈이…. 아까부터 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야?

"네놈은 왜 자꾸 날 졸졸 쫓아다니는 거냐. 할 일 없냐?"

비아냥거리는 내 말에 케레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일 없는데요. 윈디아라면 몰라도 여긴 밑에 애들이 다 알아서 치안을 담당하니까 제가 할 일이 없습니다."

진짜 할 일이 없다니깐 할 말이 없다. 나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어휴. 게을러터진 놈 같으니라고. 어째 그렇게 똑 닮았는지."

"예? 제가 누굴 닮았습니까?"

"그런 게 있다. 이놈아! 따라와라!"

"아, 예~ 예~ 갑니다. 가요."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후문으로 향했다.

5분 정도 기다리자,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포트렌으로 보냈던 조셉.

하지만 그 뒤에 있는 것은 기품 있어 보이는 젊은 여인이었다.

약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우선 나는 조셉에게 다가갔다.

일단 얻어온 돈을 확인해봐야 했으니까.

"고생 많았다. 돈은…?"

"아, 그게… 없습니다."

"없다고?"

"예. 대신 보석들을 잔뜩 가져왔습니다. 비싼 거라 팔면 꽤 많이 나갈 겁니다."

"이 씨부럴."

"……?"

조셉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축제를 열 수 없음에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오랜만에 한껏 취해 화를 누그러뜨릴까 했는데, 그것마저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침 뒤에서 케레노스가 짤랑거리며 걸어왔다. 그의 허리춤엔 두툼한 돈주머니가 있었다.

"이야. 고생 많았네. 하하. 나 있다가 한 잔 할 건데 어때? 같이 가겠나?"

"하하. 좋죠. 저도 술 좋아합니다."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도박으로 얻은 저 망할 돈주머니를 올바르게 쓸 수 있는 방법.

"술 좋지."

나는 잽싸게 케레노스의 허리춤에 있는 돈주머니를 강탈했다.

그리고 곧장 마을 재정으로 넣어버렸다.

"악!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시끄럽다. 이놈아!"

나는 허공을 두드리며 창을 조작했다.

잠시 뒤, 메시지가 떴다.

띠링-!

[메테우스 마을의 첫 번째 축제가 시작됩니다!]

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게 젊은이들 말로는 그 뭐시냐.

'골든벨'이라던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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