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다 젊은이-133화 (133/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33화

제133화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조셉은 다시 포트렌으로 보냈다.

이제 소룡이와 약속한 콜로세움 날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슬슬 준비해야 했다.

밭을 갈며, 새로운 작물들을 심으니 힘과 민첩이 약간이지만 상승했다.

지금 나는 쪼그려 앉아 만드라고라 깍두기를 버무리고 있었다.

물들어가는 석양이 들판을 싱그럽게 물들였다.

스륵. 스륵.

거대한 대야에 깍둑 모양으로 썰린 만드라고라가 이리저리 움직인다.

이곳 세상은 김장할 때 쓸 장갑이 없어서, 지금 나는 맨손으로 깍두기를 만지고 있었다.

"염병하네. 어떻게 고무장갑 하나가 없냐."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일이었지만, 내심 짜증나는 것은 사실이다.

현실에서 고무장갑은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이었고, 이곳은 아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열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도독.

"퉤. 드럽게 맛없네."

아직 액젓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렇다.

그나저나 액젓을 사러간 케레노스 놈은 뭐하느라 이렇게 늦는….

"이랴! 워워."

푸르륵거리는 말발굽 소리.

아무래도 케레노스인 모양이다.

그는 바로 옆에 있는 윈디아에 액젓을 사러 갔었다.

마침 영주를 만나러 간다길래 내가 심부름을 보낸 것이다.

어느새 걸어온 그가 내 앞에 멈춰서자,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뭐 하느라 이제 와?"

"후우. 윈디아에는 말씀하신 액젓이 안 팔더군요. 그래서 포트렌까지 다녀왔습니다."

"흐음, 그래?"

포트렌까지 갔었다니 미안함이 밀려온다.

그래도 티 내지는 않았다.

그가 손에 쥐어진 무언가를 건네며 말했다.

"여기 말씀하셨던 엔젤 피쉬의 액젓 입니다. 이거 엄청 어렵게 구했어요."

[엔젤 피쉬의 액젓]

등급: 고급

거대한 아틀란 해 얕은 곳에 서식하는 엔젤 피쉬를 소금에 절인 액젓이다.

바다에서 하늘로 튀어오르는 날갯짓처럼 먹으면 정력에 굉장히 좋은 효과가 있다.

-꾸준히 먹을 경우,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감소합니다.

-꾸준히 먹을 경우, 영구적으로 힘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음, 맞구나. 잘 구해왔다."

엔젤 피쉬의 액젓은 생전 알렉서스가 처음으로 개발한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많은 요리에 쓰곤 했는데, 아마 깍두기에 쓴 것은 내가 처음일 것이다.

다행히 500년이 지난 지금도 존재하는 모양이다.

나는 곧장 두 큰 술 떠서 여러 대야에 흩뿌렸다.

양이 양인만큼 제법 많은 액젓을 써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던 메시지가 떴다.

띠링-!

[진국! 만드라고라 깍두기!]

가을무는 보약이다!

숙성된 삶을 살았던 날씨 요리사의 깊은 손맛이 깃들었다.

이것을 먹으며 우리네 삶은 잘 숙성되었는지, 인생은 맛있는지 돌아볼 기회를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조금 덜 숙성 되서 신맛이 강하다.

만드라고라는 신진대사를 활성화 시키고 마비를 푸는 효과가 있다.

-맛 스타 : ☆☆☆☆

-유통기한: 20일

-생명력 회복: 400 마력 회복: 400

효능: 이 요리를 먹으면 각종 질병에 걸린 확률이 대폭 감소합니다.

먹는 이의 힘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소폭 증가합니다. (1회 한정)

각종 상태이상을 일시적으로 해제합니다.

식물 계열 몬스터에게 선공 당할 확률 30% 감소.

30분간 모든 능력치가 3% 상승

최대 생명력 50% 증가.

*실온에 4시간 남겨둔 뒤 먹으면 더욱 맛있습니다.

"오, 제법 괜찮은 요리가 나왔군."

솔라와 풍희를 이용하지 않아서 날씨의 가호에 대한 옵션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자체의 효능이 너무나도 좋은 편이었다.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을 감소시키는 것은 물론 상태이상의 해제.

그리고 일시적이지만 모든 능력치의 3% 상승까지.

하지만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힘 능력치가 소폭 상승한다는 문구였다.

그것도 영구적으로 말이다.

"1회 한정이라…. 놓칠 수 없지."

나는 한 입 크기의 깍두기를 베어 물었다.

아삭.

[온몸의 신진대사가 활성화됩니다.]

[당신의 정력이 소폭 좋아집니다.]

[힘 능력치가 +8 증가하였습니다.]

"이야. 8이나 올랐네."

비록 가상현실의 세계지만, 정력이 좋아졌다니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케레노스에게도 한입 건네주었다. 근데 이 썩을 놈이 왜 도로 뱉는 거여….

"어우. 영감님 이거 뭡니까? 엄청 매운데요?"

"닥치고 먹어라. 정력에 좋은 거니까."

"아…. 큼큼. 그래요?"

케레노스는 말없이 다시 깍두기를 입에 넣었다.

그는 이상하게도 힘이 조금 오른 것 같다며 좋아하는 중이었다.

곧장 대야 하나를 내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래도 어렵게 만들었는데 두고두고 먹으면 좋지 않겠는가.

나는 케레노스를 향해 말했다.

"네가 이걸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줘야겠다."

"음? 제가요? 이거 엄청 많은데요?"

"그래. 난 잠시 여길 떠날 생각이다."

"갑자기요? 어딜 가신다는 겁니까."

"포트렌에 볼일이 있어서."

"아니, 대체 무슨 볼일인데 마을을 비우신다는 겁니까?"

"누구랑 싸우려고."

"……."

갑자기 정색하는 케레노스를 보며, 누구랑 무슨 이유로 싸우는 것인 지 말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그 콜로세움이란 걸 나가시겠단 말입니까? 그 견소룡이라는 친구랑 대결을 하기 위해서요?"

"그래."

"흠…. 콜로세움이라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 포트렌에 한 갑부 귀족이 세운 거대한 결투장이라더군요. 자신이 베팅한 사람에게 돈을 걸어 이기면 돈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돈을 거는 것도 있었나…?

그런 것이 있다는 건 몰랐다.

그래도 뭐 상관은 없다.

어차피 내 목적은 소룡이 녀석과의 대결이었으니까.

"아무튼 이거 마을 사람들한테 나눠줘라. 네 놈 혼자 먹지 말고."

"제가 앱니까? 꿍쳐두고 혼자 먹게."

"쯧. 젊은 놈이 투덜거리기는. 아무튼 이제 수련을 해야겠으니 들고 사라져라."

일어선 나는 근처 강에서 퍼온 식수로 손을 씻었다.

그리고 일부러 남겨둔 25평 남짓한 밭의 한 가운데 섰다.

이곳은 일부로 작물을 심지 않고 남겨두었는데, 내 개인 수련장으로 쓸 생각이었다.

"시작해볼까."

펄럭-!

저물어가는 노을 속을 날아다니는 노인이 있었다.

* * *

상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대도시.

온 세상의 무역이 이곳을 거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업의 중심지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조셉.

하지만 그의 복장은 평범함과는 조금 거리가 먼 복장이었다.

그는 지금 한 건물의 옥상에서 포트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온통 검은색으로 칠 된 은밀함이 강조된 복장은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이 나는 듯했고, 그의 목에 걸려있는 검은 마스크가 펄럭이며 자유롭게 나부꼈다.

고요한 달빛 아래 조셉이 입을 열었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진짜 어마어마하다니까."

그의 아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야경은 LA의 라스베거스를 연상시키는 듯했고, 실제로 카지노도 존재했다.

이곳은 상업도 유명했지만 각종 도박, 유흥. 그리고 광산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아크 스타에는 많은 나라들이 존재하고, 그만큼 많은 체제가 존재한다.

입헌군주제를 하는 나라.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나라. 공산주의나 공화국을 채택하는 나라….

하지만 이곳 포트렌은 조금 특이한 체제를 추구한다.

'자본주의라니….'

오로지 돈이 최고이며, 돈만 있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심지어 왕도 될 수 있다.

현재 이곳은 57대 상왕(商王) 키리우스가 다스리고 있는 곳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상업에 뛰어들었고, 많은 돈을 축적해 대륙 제일의 거상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곳에 정착해 왕이 된 것이다.

"빌어먹을. 누구는 돈 많아서 왕도 하는데. 난 이게 뭐람."

키리우스의 부가 어느 정도냐고 묻는다면, 아마 돈으로 나라도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조셉이 만나려는 사람은 그가 아니다.

"후우. 떨리지만 어쩔 수 없지. 참 살다 살다 별일을 다해보네."

현재 그가 포트렌에 온 이유는 명백하다.

그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추스르며 목에 걸린 검은 마스크를 썼다.

마침 기다리던 곳에서 비단 헝겊을 뒤집어 쓴 여인이 분주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그의 뺨을 간질였다.

"이게 다 우리 쌍둥이들 분유 값을 위해서니까."

조셉이 검은 두건으로 이마를 질끈 묶었다.

그는 오늘 밤 납치범이 될 것이다.

* * *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어느 날.

누군가 거대한 저택의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왔다.

그녀의 이름은 헬레나. 에이단 상단의 주인이자, 차기 상왕(商王)으로 가장 유력하다고 불리는 에이단의 둘째 부인이었다.

그녀는 몰래 만들어 둔 통과의 시약을 벽에다 뿌리며, 경비병들 몰래 저택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들키지는 않았고, 헬레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얼굴을 가리던 비단 헝겊을 걷었다.

"휴. 이 짓도 쉽지 않네."

최근 에이단의 의심이 두드러졌다.

며칠 전 사랑하는 키스를 만나기 위해 잠깐 밤에 자리를 비웠는데, 그가 방에 들이닥쳤던 것이다.

놀란 그녀는 잠깐 답답해 바깥을 구경하고 왔다고 둘러댔지만, 그의 의심은 더욱 심해졌다.

"내가 아무리 쌀 300석에 팔려왔다지만, 너무한 것 아니야? 난 쓰레기촌 출신이라고. 저택에만 있으라고 하면 어쩌라는 거야."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그녀는 쌀 300석에 에이단과 정략결혼을 하고 말았다.

누군가 그녀의 아버지를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쓰레기촌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 편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장님이신 아버지가 더욱 걱정될 뿐이었다.

"오늘은 키스가 이 근처 숲에서 기다린댔지."

키스와 헬레나는 쓰레기촌에 있을 때부터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와는 강가에서 처음 만났고, 처음엔 그가 낚는 물고기를 얻어먹으며 친해졌다.

키스는 강가에서 얻은 물고기로 쓰레기촌의 사람들을 먹여 살렸고, 그렇게 헬레나는 그에게 빠졌다.

에이단이 쓰레기촌을 불태우겠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었지만, 키스는 그럼에도 그녀를 사랑해주었다.

몰래 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커져갔고, 오늘은 그가 몰래 비둘기에 엮어 보낸 쪽지가 날아왔다.

그녀와 키스는 서로 비둘기에 조그만 쪽지를 엮어 안부를 주고받곤 했는데, 에이단의 감시가 심해져 통 며칠은 주고받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쪽지가 날아온 것이다.

-사랑하는 헬레나

남쪽에 있는 숲으로 나와.

그곳에 내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오늘 밤 물고기를 안주로 네가 좋아하는 술을 나눠 먹자.

"후훗. 키스도 참."

그녀는 쪽지를 보며 볼을 발갛게 물들였다. 그가 어떤 술을 가져 왔을지 뻔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입술….

"드디어 나타났군."

"꺄아아아악-!!"

헬레나가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비명을 질렀다.

뒤에서 다가온 남자가 키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남자는 검은 복면에 검은 복장을 입고 있었다.

그래. 마치 암살자처럼.

"누, 누구세요…? 절 죽이러 오신 건가요?"

그래. 아마 그럴 것이다.

비록 정략결혼으로 그에게 묶여 있지만, 그녀는 에이단의 둘째 부인이었다.

아직 그와는 잠자리도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누군가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위치였다.

"아니. 난 납치범이다."

"납, 납치범이요…? 그, 그럼 절 납치하러 오신 건가요?"

헬레나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죽음의 공포 앞에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키스. 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

그가 보고 싶다.

조금 일찍 나온 감이 있지만, 아마 그라면 지금 이 근방을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납치범의 말이 이어졌다.

"아니."

"네? 그, 그럼 누구를 납치하실…거죠?"

헬레나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납치범이 말했다.

"키스."

"네…?"

"너의 연인 키스를 내가 납치했다."

헬레나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