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25화
제125화
"으아아아악!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한 남자의 비명이 진료실을 가득 울렸다.
그의 허리에는 수많은 침들이 무수히 꽂혀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형광색 고슴도치 같다.
"거의 다 됐으니까. 참으세요."
"젠장. 너 돌팔이지? 왜 내 몸이 안 움직이는 거야?! 정말 성직자 맞아? 내 평생 이런 치료는 처음 듣는다고! 그 커다란 벌레들은 뭐야!"
돌팔이란 말에 발끈한 김수정이 말했다.
"성직자 맞으니까. 조용히 하세요. 자꾸 그러면 목소리가 안 나오게 만들 거예요. 그리고 얘들은 벌레가 아니라 반딧불이에요. 아저씨의 치료를 도와줄 애들이니까, 함부로 얘기하지 마세요."
"그, 그런…!"
생각보다 냉정한 그녀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김수정은 카미유를 통해 배운 스킬, 형화의 눈을 사용했다.
[성좌스킬, '형화의 눈'을 사용합니다!]
[밤눈이 밝아지고, 시력이 1.5배 증가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대상이 형광으로 보입니다.]
[약간의 투시 효과가 있습니다.]
스킬을 사용하자, 누워있던 남자의 몸이 반딧불이가 내뿜는 빛처럼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형광을 감싼 채 걸어 다니고 있었다.
마치 투시가 가능한 적외선 안경을 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작해볼까."
눈앞의 남자는 허리에 대한 고질병이 있다.
성직자들이 가진 신성력으로 외상은 빠르게 치료할 수 있지만, 이런 종류의 내상 치료는 조금 힘든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하려는 신성 형화 침술은 침을 꽂고, 그곳에 반딧불이 가진 신성력을 주입하는 방법.
이렇게 한다면 좀 더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다고 카미유가 말해주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돕겠다고 말합니다.]
"고마워. 부탁할게."
카미유는 아직 반딧불 조종이 미숙한 그녀를 위해 직접 보조를 해주곤 했다.
그녀가 형화의 침을 꽂으면 카미유가 조종하는 반딧불이 직접 신성력을 주입하는 방법이었다.
"어디 보자, 일단 5번 척추 쪽에 문제가 있으시네요."
형화의 눈으로 보면 색깔이 붉게 나타나는 곳이 있다.
그곳은 신체적인 통증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붉은 기운을 잡아주면 이 남자의 고질적인 요통은 치료가 된 것이었다.
김수정이 카미유에게 배운 대로 신성 형화 침술을 하기 시작했다.
[신성 형화 침술이 요통에 좋은 부위를 정확히 찔렀습니다!]
[대상의 요통이 조금씩 완화됩니다.]
[신성력이 주입되고 있습니다.]
[요통의 완전한 치료를 시작합니다.]
반딧불이 내뿜는 신성력이 침으로 향하자,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아파도 참으세요. 조금씩 좋아지는 중이니까."
"미, 믿어도 되는 거 맞아?"
"조금씩 허리 아픈 게 가시는 것 같지 않으세요?"
"어? 그러고 보니…."
남자가 말꼬리를 흐리자 김수정이 웃었다.
"아파도 조금만 참으세요. 이게 이래 보여도 효과는 직빵이거든요."
"으흐흐, 고맙군. 있다가 내가 아주 귀한 걸 주지. 먹으면 기분이 끝내줘. 진짜 맛있다구. 내가 직접 재배한 거야. 한번 먹어볼래?"
"…있다가 먹어볼 테니까 일단 치료부터 할게요."
그는 습관적으로 코를 훌쩍였다.
김수정은 속으로 생각했다.
'감기인가…?'
일단 허리 치료가 먼저니, 그녀는 집중하기로 했다.
김수정은 다음 부위를 향해 침을 옮겼다.
그런데, 카미유가 말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거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어…. 여기가 아닌가? 하하. 미안."
아직은 배우는 단계라 모든 것이 익숙하진 않았다.
가끔 침이 엉뚱한 곳을 찾아가면 이렇게 카미유가 메시지로 따끔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옆에 있던 반딧불이 커다란 더듬이로 한곳을 가리켰다.
김수정이 민망한지 너털웃음을 흘렸다.
"하하. 거기였구나…. 고마워."
[반딧불성, 카미유가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말합니다.]
"처, 처음이라 그래!"
[반딧불성, 카미유가 한순간의 실수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나도 안다고…. 미안해. 더 노력할게."
[반딧불성, 카미유가 빨리 치료를 이으라고 말합니다.]
"그, 그래."
김수정이 한숨을 쉬었다.
'꼭 레지던트가 된 것 같네.'
혈액 공포증이 생긴 이후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걸 치료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직업인 외과의는 영원히 포기해야 했다.
영상을 판독하는 부서로 보직을 옮기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녀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환자를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치료하며 함께 웃는 것이 좋았다.
그러던 중 카미유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건 내가 해볼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야.'
침술은 피를 보지 않고도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
그녀를 담당하는 정신과 언니에게 물어보니, 긍정적인 치료 활동을 많이 하다 보면 혈액 공포증이 치료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적극 추천했고, 김수정은 밤새도록 이것을 파고들었다.
[신성 형화 침술이 요통에 좋은 부위를 정확히 찔렀습니다.]
[요통이 한층 더 완화됩니다.]
[신성력이 요통을 치료중입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김수정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치료는 잘 끝났고, 형화의 눈에 비쳤던 붉은 기운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3분도 안 되서 일어난 일이었다.
남자가 허리를 움직여 보더니 기뻐했다.
"우히히! 허리가 완전히 씻은 듯이 나았어! 정말 고맙다고! 으하하! 으하하하!"
뭐가 그리 좋은지 남자는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과한 반응에 김수정이 피식 웃었다.
'아까는 그렇게 죽일 것 같더니, 이젠 춤까지 추네. 이상한 사람이야. 혹시 취한 건가…?'
보통 환자들은 치료받고는 고맙다며 고개를 숙이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이 남자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뭐, 조금 특이한 사람이겠지. 그나저나 환자가 조금 더 많으면 좋을 텐데….'
이곳 사람들이 건강한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의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환자가 필요했다.
노크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자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백발을 한 노인이었다.
"임상 실험자를 데려왔다."
* * *
나와 조셉은 쓰러진 키스를 둘러메고 수정이가 있는 곳을 찾았다.
그녀는 빈 건물 하나를 얻어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었고, 아직 개발이 덜 된 마을이라서, 이런 빈 건물들은 무수히 많았다.
나는 키스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침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아무래도 치료를 하고 있었던 모양. 나는 본론부터 말했다.
"임상 실험자를 데려왔다."
"임상 실험자요? 그게 무슨…."
"환자를 데려왔다고."
"아~ 어딨는데요?"
그녀가 바깥으로 나오더니 화들짝 놀랐다.
맨바닥에 피를 철철 흘리는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 사람 왜 그래요? 두부 손상이 있네요. 뭔가 날카로운 것에 찍힌 것 같은데…."
"크흠! 글쎄다. 아무튼 치료를 좀 해다오."
김수정이 상처 부위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외상이라 크게 이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하필이면 머리를 다친 거라…. 일단 치료해볼게요."
그녀의 주위를 맴돌던 반딧불들이 상처를 향해 빛을 뿌리자, 금세 아무는 것이 보였다.
역시 카미유의 능력은 치료계 성좌들 중 으뜸이라 할 만했다.
"으음…."
키스의 눈꺼풀이 흔들리며 잠깐 뒤척이더니, 상반신을 일으켰다.
"여긴 어디지…?"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어디긴 이놈아. 네놈을 치료하러 온 거지."
"어…. 근데 당신은 누구시죠?"
"뭐?"
순간, 이놈이 뭐를 잘못 먹었나 싶었다.
그런데, 그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누구신데, 절 여기로…. 그리고 여긴 어디죠? 전 누구죠?"
나는 뭔가를 직감했다.
이 녀석 혹시….
옆에 있던 김수정이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을 잃은 것 같네요."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네? 그게 무슨 말이세요?"
"저놈 완전 난봉꾼이거든."
그 말과 동시에 키스가 김수정의 손을 덥석 잡기 시작했다.
소처럼 깊은 그의 두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치료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대의 바다 같은 두 눈에서 헤엄을 치고 싶군요. 허우적허우적! 이렇게. 하하하."
미친놈. 언제 적 작업 멘트를….
내심 그녀를 둘째 녀석의 며느리로 점찍어두었는데, 수작을 거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분노하고 말았다.
빡!
꿀밤을 얻어맞은 키스가 말했다.
"으윽. 당신은 아까부터 누구신데, 절 때리세요? 예? 저 아세요?"
"알다마다."
나는 또 한 번 포크 숟가락을 꺼내 그의 뚝배기를 때렸다.
이번엔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때렸다. 김수정이 말렸다.
"그, 그러지 마세요. 머리를 다쳤잖아요."
"이놈은 맞아도 싼 놈이다."
"안 돼요. 제 환자라구요."
그녀의 말에 키스가 코를 훌쩍이며 불쌍한 척을 했다.
…진짜 밉상이네. 더 때릴 수도 없고. 어휴.
어딘가 분풀이를 한다면 좋겠지만, 그럴만한 곳도 없다. 순간, 몬스터들 뚝배기나 터트릴까 싶었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치료를 받던 남자다.
"크흐흐. 아가씨 정말 고마워. 나중에 농장으로 놀러와. 내가 아주 기가 막히는 걸 줄게."
"네. 조심히 가세요."
김수정이 인사했고, 남자는 떠나려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생김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보게."
그가 돌자, 나는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지런한 농부 헨리]
…생각보다 빨리 만났군.
나는 거머쥔 포크 숟가락에 힘을 줬다.
옆에 있던 조셉과 눈을 마주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능청스럽게 행동했다.
"자자, 만나서 반가워요. 내가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어줄게."
"흐흐, 사진? 좋지. 잘 찍어주쇼."
"자, 하나, 둘, 셋. 김치~!"
"크흐흐. 김치~"
팡-!
섬광탄처럼 터지는 빛과 동시에 헨리가 고통을 호소했다.
조셉이 카메라에 있는 실명효과가 있는 플래시를 터트렸기 때문이다.
"끄아아악!! 내, 내 눈!"
나는 재빨리 그의 곁으로 다가가 숟가락으로 뚝배기를 때렸다.
요리사의 분노 효과가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사, 살려줘! 아아악!"
"시끄럽다!"
딱! 딱딱! 딱!
"으으윽. 왜 그러는 거요? 당신 촌장 아니야?!"
"그렇다면 어쩔 건데."
"크윽! 마을 사람들에게 나를 폭행했다고 다 불어버릴 거야!"
"그러던가. 어이쿠. 나도 모르게 찔러버렸네?"
그렇게 나는 한참이나 그의 뚝배기를 찔… 아니, 때렸다(?).
잠시 후. 그는 얼굴에 있는 멍 자국과 함께 무릎을 꿇고 있었다.
김수정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저 사람이 마약상이라구요??"
"그래. 저놈은 자기 농장에서 만드라고라를 키우는 놈이다. 잎은 수면제 효과가 있고, 과실은 마약으로 만들어지지. 저놈은 뿌리는 안 캐고 계속 과실만 따면서 몰래 팔고 있더구나."
"어쩐지 좀 이상한 사람 같더라니…."
그녀도 처음엔 못 믿었지만, 조셉이 찍은 사진을 보더니, 금세 수긍하는 것 같았다.
나는 헨리에게 말했다.
"네놈은 마을에서 퇴출이다."
"크으윽."
"목숨은 살려줄 테니 꺼져라."
고개를 까닥이자, 그가 마을 밖을 향해 움직였다.
멀리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드시 복수할 테다!!"
…저걸 확 그냥.
순간 울컥했지만 참았다. 마침 메시지가 뜨고 있었다.
[마을 주민, 부지런한 농부 헨리가 쫓겨났습니다.]
[색다른 방법으로 퀘스트의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당신의 지식이 +1 올랐습니다.]
[그가 관리하던 농장은 당신에게 소유권이 이전됩니다.]
[퀘스트 <베일에 싸인 촌장> 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촌장으로서 119명의 마을 사람들에게 완전한 인정을 받았습니다.]
[향후 마을의 이름을 직접 지을 경우 추가적인 호감도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추가적인 호감도라. 뭐, 중요한 건 아니군.
김수정이 물었다.
"만드라고라? 그건 어쩌실 거예요? 마약이라면 아무래도 마을을 위해서 없애는 게 나을 것 같긴 한데."
"글쎄다. 우선 밭으로 가 직접 보면서 생각해봐야겠구나."
인기척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저 멀리 키스가 살금살금 움직이며 도망을 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림자놀이를 사용해 조용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턱.
"으아악! 귀, 귀신이다!"
"이봐."
"ㄴ, 네, 네?"
"너 기억 잃은 거 아니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키스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그의 고개가 기계처럼 돌아간다.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넌 짜식아 고문 좀 당해야겠다."
일명 간지럼 고문.
들어는 봤나 몰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