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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24화 (124/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24화

제124화

화기애애한 식사시간이 끝나고, 나는 조셉을 집무실로 데려왔다.

사실 집무실이라 말하기도 뭐했지만, 아무튼 단둘이 이야기하기엔 아주 좋은 곳이었다.

"그래. 자세히 얘기해봐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무슨 말이냐."

나는 의자에 앉으며 팔짱을 꼈고, 조셉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가 턱을 매만지더니 꺼낸 것은 몇 장의 사진이었다.

"이게 뭐냐?"

"제가 도와 드릴 수 있는 것이죠."

"그래?"

눈에 이채가 어린 나는 곧장 집중해서 사진을 살폈다.

기품 있어 보이는 여인의 사진이 여러 장이었다.

"이런 악취미를 가진 놈인 줄은 몰랐는데. 너 요즘 이런 거나 찍고 다니냐?"

"변태로 오해하지 마시고 계속 넘겨보세요."

"…변태 맞구만. 뭐."

"아니라니까요."

그렇게 여러 장의 사진을 넘기던 중 아는 얼굴이 나왔다.

내 눈은 어느새 커져 있었다.

"이놈은…?"

아주 잘 아는 놈이었다.

모를 수가 없다.

그는 내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만난 녀석이었으니까.

"키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사진 속 여인과 밤에 은밀하게 만나는 것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 조심스러워 보였다.

"저랑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십니까?"

"뭘 말이냐."

"저한테 여기에 온 이유가 뭐냐고 물으셨던 거요."

곧장 머릿속을 되짚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는 이곳에 어떤 조사를 하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조사란 바로….

"설마, 귀족의 부인이랑 바람을 핀다는 놈이 이 녀석이냐??"

"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피식 웃으며 계속 사진을 넘겼다.

난봉꾼도 이런 난봉꾼이 없었다.

웃긴 것은 그가 귀부인 말고도,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내가 아는 얼굴도 있었다.

"설마 이 여자도…?"

"네. 어르신이 말씀하신 그 다이애나라는 여자도 그 낚시꾼에게 넘어간 것 같더군요. 두 사람은 매일 밤 밀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마을 여자와 만나는 사진도 있구요."

"다른 마을? 다른 마을 여자도 있다고?"

"이 남자가 만나는 여자만 수십 명입니다. 완전 카사노바예요."

그 말과 동시에 메시지가 떴다.

띠링-!

[낚시꾼 키스의 진정한 정체는 희대의 카사노바입니다.]

[그는 매우 높은 매력과 행운 능력치를 보유한 네임드 NPC입니다.]

[그를 마을에 정착시킨다면 수많은 여자들이 그를 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할 것입니다.]

…물고기가 아니라 여자들을 낚고 있었구먼.

네임드 몬스터는 들어봤어도, 네임드 NPC라는 게 있을 줄은 몰랐다.

정황상 분명 일반 NPC들보다는 훨씬 좋은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저에게 이 의뢰를 했던 건 포트렌에서 제법 큰 부를 가진 귀족 에이단이었습니다. 두 번째 부인이 외도를 하는 것 같으니, 조사를 좀 해달라더군요. 원래는 이 사진을 그 귀족에게 팔 생각이었습니다. 얼굴이 잘 나온 사진은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럼 저는 큰돈을 벌 수 있지만, 이 남자는 죽을지도 모릅니다. 귀족의 부인과 외도를 했으니, 아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이려고 할 거예요. 성격이 좀 괴팍하거든요."

그의 말에 잠깐 망설임이 생겼다.

…죽을지도 모른다라.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다.

만약 이 사실이 그 귀족에게 알려진다면 가정의 평화는 물론이고, 한 남자의 인생 또한 위험천만해질 것이다.

비록 싸가지가 없는 놈이지만, 인간이 아닌 NPC라도 생명이란 귀한 것이다.

"흐음. 살리면 이득이긴 한데…."

이 녀석을 살리게 된다면 내게 이득이 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네임드 NPC의 활용.

그를 마을에 정착시키면 수많은 여자들이 방문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언젠가 마을의 완공이 끝난다면 누군가의 방문이 있기는 있어야 했다.

그래야 여기 사람들도 먹고 살 테니까.

…그리고 아직은 모르지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더 있을지도 모르지.

둘째, 평화였다.

만약 아내가 외도한 사실을 그 귀족이 알게 된다면, 내게 압력을 행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듣자 하니, 포트렌에서 제법 큰 거부인 것 같은데, 그는 내가 키스를 내놓지 않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았다.

조셉의 말대로 정말 성격이 괴팍하다면 말이다.

내가 턱수염을 쓸며 고민이 하자, 조셉이 말했다.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긴 한데…."

"말해봐라."

그가 눈알을 굴리더니 말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 * *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땅거미가 진 어둠이 몰려왔고, 나와 조셉은 방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곧장 다이애나를 만났는데, 그녀는 계속해서 외도를 한 적이 없다고 우겼다.

알고 보니, 그녀는 계산을 잘했고, 키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마을의 돈을 세탁해 건네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 눈치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뭐, 어쨌든 괘씸한 건 마찬가지라는 사진을 내밀며 약간의 으름장(?)을 놓았다.

"한 번만 더 그러면 이 사진을 온 세상에 뿌려 불륜을 했다고 소문낼 것이다."

"흑흑! 죄송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마을 주민 다이애나가 당신에게 복종합니다.]

[퀘스트의 내용이 색다른 방법으로 충족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지식이 +1 증가하였습니다.]

…역시 이럴 땐 협박만 한 게 없지.

신뢰를 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충성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협박은 아주 유용한 수단이다.

곧장 다이애나의 집을 나왔고, 입구에 팔짱을 낀 채 기다리는 조셉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피식 웃었다.

"저보다 협박을 더 찰지게 하시던데요?"

"원래 이런 건 찰지게 해야 잘 먹히거든."

"많이 해보셨나 봅니다."

"내가 왕년에 좀 무서운 사람이라서."

"에이. 농담이시죠?"

"…농담 같냐?"

내가 정색하며 말하자, 그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 모습에 그만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껄껄껄! 농담이다. 이 녀석아. 그런데 넌 정말 그거면 되냐?"

그는 아까 전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했는데,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제가 결혼하고 한국에 정착한 지 얼마 안 되서 아직 제대로 된 실적이 없거든요.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고 이렇게 파파라치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번듯한 직장이 있으면 좋긴 하잖아요. 커리어도 쌓고, 쌍둥이들한테 자랑스러운 아빠도 되고 좋죠. 뭐. 혹시 알아요? 특종을 터트리면 퓰리처상을 탈지."

그가 제안했던 것은 내가 언젠가 정체를 밝힐 경우, 독점 인터뷰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의 내 생활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내 취재를 독점하고 싶다는 것. 물론, 지금은 말고 나중이 되겠지만.

그가 약속만 지켜준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알아둔다면 좋은 친구야.

인맥을 쌓으려 사람을 만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가 좋았다.

지난 6일간 봐왔던 조셉은 성실했고, 순박한 쌍둥이 아빠였기에 믿을 수 있었다.

가끔 그가 아이들의 사진을 자랑할 때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넌 위험한 곳을 어떻게 그리 잘 돌아다니는 거냐? 몬스터에게 들키기도 할 텐데 위험하지도 않냐?"

"아, 그거요?"

그가 조그맣게 중얼거리더니 어느새 투명하게 변했다.

그가 투명해진 몸으로 말했다.

"기자들은 이렇게 은신스킬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요. 대부분 암살자 계열의 직업을 택하거든요."

어느새 돌아온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 조금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 더 위험한 곳을 갈 수 있긴 하죠."

"직업 이름이 뭔데?"

"죽음의 파파라치요."

"…섬뜩한 이름이구만."

"자, 보세요."

조셉이 목에 메고 있던 카메라를 들더니, 지나가던 한 고양이를 찍기 시작했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눈부신 플래시가 터지더니, 고양이가 괴성을 지르며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보시다시피 제 카메라가 좀 특이한 거라 실명효과를 줄 수 있어요."

"…동물 학대하지 마라. 이놈아."

"하하, 5초 뒤면 풀릴 거예요. 미안하다. 고양아."

"미야오오오!!!"

정말 5초 뒤 고양이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두 가지 능력이면 웬만해선 잘 도망치겠구나."

"뭐, 감도 중요하죠. 가령 은신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 몬스터를 마주하거나 실명이 안 통하면 전 죽은 목숨이거든요. 물론, 이 능력만 있는 건 아니지만요. 하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낚시터에 이르렀다.

이곳은 키스가 자주 출몰하는 곳. 떡밥을 던지며 밤낚시를 즐기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평소처럼 행동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왜 오셨죠?"

말본새 하고는… 쯧.

소처럼 맑은 눈으로 쳐다보니, 나도 모르게 혹할 뻔했다.

남자도 홀리다니…. 이거 진짜 위험한 놈이네.

"한 가지만 묻자."

"…뭘요?"

"넌 왜 나 안 좋아하냐?"

내가 너무 당당해서 웃겼는지, 옆에 있던 조셉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키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냥 느낌이 그래."

"전 남자를 싫어하는 것뿐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맞고 자라서요."

"……."

갑작스러운 가정사 고백에 당황한 것은 나였다.

왜 신뢰를 얻지 못하나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을 줄이야.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가 여러 여자들과 밤마다 밀회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중엔 포트렌의 귀부인도 있다지?"

"그, 그걸 어떻게…?"

옆에 있던 조셉이 사진을 건네줬다. 나는 카드처럼 한 손에 촤락 펼치며 말했다.

"네놈 아주 난봉꾼이더구나. 그 많은 여자들을 꼬드겨서 돈을 뜯어내, 고작 도박에다가 쓰다니, 쯧쯧. 듣자 하니 마을 재정도 조금 빼다 썼다면서?"

그런 내 말에 키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마 정곡을 찔린 것이겠지.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겁니까. 제기랄.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냐고. 잘 생긴 게 죄입니까? 에이, 차라리 제 발로 나갑니다!"

살다 살다 잘생겨서 죽고 싶다는 놈은 처음 본다.

누구는 저런 얼굴로 하루만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쯧.

나는 오랜만에 알렉서스의 포크 숟가락을 꺼냈다.

이것은 크기 조절이 가능해서 평소에는 숟가락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따악-!

숟가락의 밑동이 키스의 이마를 강타했고, 그가 노호성을 터트렸다.

"이 망할 영감탱이야!!"

"이놈이…!!"

딱! 딱! 딱!

키스의 머리에 조금씩 혹이 늘기 시작했다. 심지어 혹 위에 혹이 생기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푹!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맞다. 이거 포크 숟가락이었지.

"…어우, 음, 야. 미안하다."

푸슈슛.

피가 솟구쳤다. 그의 이마에는 포크 숟가락이 직각으로 꽂혀 있었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떴다.

[마을 주민 키스를 굴복시켰습니다.]

[색다른 방법으로 퀘스트의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당신의 지식이 +1 올랐습니다.]

나는 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수정이한테 데려다줘야겠군."

좋은 임상 실험자가 생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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