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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22화 (122/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22화

제122화

많은 사람들이 중앙에 있는 널따란 곳으로 모였다.

아까 내게 시비를 털다가 욕을 먹은 낚시대를 든 청년도 보였고, 깔깔거리며 웃던 순박한 아이들과 여인들도 보였다.

그들 모두가 나무로 된 단상에 올라 있는 나를 보며 어리둥절했다.

케레노스가 외쳤다.

"이분이 앞으로 이곳의 촌장이 되실 분이시다. 윈디아의 수호자이시니 다들 예를 갖춰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윈디아의 수호자…?"

"그게 뭐지?"

"그냥 평범한 노인네 같은데?"

"쉿, 듣겠다 조용해."

그와 동시에 한 기사가 칼을 뽑았다. 그는 단상 밑에 서 있던 기사 데일이었다.

"거기 너! 무엄하다! 감히 수호자께 무슨 망발이냐!"

갑작스러운 위협에 마을 사람들이 무서워했고, 나는 곧장 한숨을 쉬며,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빠악!

"으억!"

"…함부로 칼 뽑지 마라. 썩을 놈아."

"죄, 죄송합니다!"

데일이 곧장 칼을 넣으며 고개를 숙였다.

케레노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데일. 기사는 누군가를 지키는 데만 칼을 뽑는다. 저들은 우리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다. 명심하도록."

"죄송합니다! 단장님!"

"있다가 군장을 메고 마을을 돈다."

"알겠습니다!"

데일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케레노스가 옅은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수하들 교육을 잘못시켰나 봅니다."

"아니다. 그쯤 했으면 됐다."

사실 케레노스의 잘못이 없지는 않지만, 나는 그의 상관이 아니다.

어차피 시시콜콜 따지는 것은 내 성미와 맞지도 않다.

하지만 기사들이 누군가를 지키는 데만 칼을 뽑아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했다.

…군대가 지켜야 할 자들에게 칼을 뽑으면 그건 독재가 되지.

한창 젊었을 적.

어렵게 고국에 돌아왔을 때는 유신의 독재가 지속되던 나날들이었다.

나는 그 참상을 보고 자랐기에 독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앞으로 걸어간 나는 군중들을 향해 말했다.

"촌장이올시다. 어쩌다 보니, 귀찮은 일을 떠맡게 되어 여기로 왔고, 편하게 알고 지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끝맺음과 동시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내 앞에는 또 다른 메시지가 뜨고 있었다.

[유저 최초로 <촌장>  이 되셨습니다.]

[이름이 지어지지 않은 마을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당신을 의심 어린 눈으로 바라봅니다.]

[아직 당신은 그들에게 진정한 촌장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띠링-!

[마을 퀘스트 - 베일에 싸인 촌장]

등급: B+

아직 이름이 없는 마을에 촌장으로 부임한 당신! 마을 사람들은 당신의 능력을 미심쩍어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법을 쓰든 마을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십시오.

그들은 당신의 행보를 주시할 것입니다.

-완료 조건: 일주일 안에 마을 사람들 전체의 인정 0/120

-보상: 마을 사람들의 충성

-실패 시: 촌장의 직위에서 퇴출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치안이 악화됩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마을 사람들이 내 행보를 주시할 것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일정 시간 안에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촌장의 직위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고 한다.

…젠장. 이건 뭐, 대놓고 신뢰를 보이라는 말이네.

"질문이 있습니다!"

생각지 못한 누군가의 외침에 이채가 어렸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아까 내게 욕을 먹었던 그 청년이었다.

잘생긴 외모인지라, 유독 눈길이 갔다.

"질문이 뭐지…?"

"저 뒤에 있는 자들은 건축공들 같은데, 무엇 때문에 온 것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바람의 신전을 지을 예정이라네."

"신전이요…?"

또 한 번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마을 사람들. 그들은 모두 놀랍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군중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나는 입을 열었다.

"그게 내가 이곳에서 할 첫 번째 일이라네."

* * *

연설을 마친 나는 아까 그 청년의 안내로 허름한 집으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일행들은 마을을 좀 둘러보고 싶다며 각자 산책을 떠났고,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것은 아까 질문을 했었던 청년과 하얀 머리칼에 숨은 풍희 뿐이었다.

그는 임시로 이곳의 대표를 맡고 있었는데, 평범한 낚시꾼이라고 했다.

이름은 키스.

"이곳에서 마을에 대한 전반적인 업무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개발도 덜된 조그만 마을이라 할 일은 거의 없을 테지만요. 서류는 다 옮겨놓은 상태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럼 전 바빠서 이만."

키스가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담담하게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구시렁거렸다.

"어른이 가라고 하지도 않았구만. 저, 저, 싹퉁머리 없는 놈. 쯧쯧."

나는 혀를 끌끌 차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조그만 방이 있었고, 누울만한 침대 하나와 조그만 책상 하나가 그곳의 전부였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려는데, 갑자기 창이 떴다.

[마을에 대한 정보를 열람하시겠습니까?]

"흐음. 서류가 아니라, 이렇게 볼 수 있나보군. 좋구만."

떠 있는 메시지를 누르자, 곧바로 마을에 대한 정보창이 떴다.

[이름 없음][마을]

군사: 76 / 경제: 26 / 문화: 16

기술: 21 / 종교: 0 / 정치: 0

위생: 16 / 치안: 24% / 발전도: 31

인근 지역 영향력: 12%

- 현재 세금: 없음

- 마을 재정: 1,068,123달러

- 종합 평가: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인 마을입니다. 어떻게 개발을 하느냐에 따라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아직 몬스터들의 습격이 잦지 않고 강하지 않은 편입니다. 세금은 '소도시'로 승격 후에 거둘 수 있습니다.

"흠. 군사 빼고는 다 낮군."

아마, 저것이 높은 이유는 이곳을 개발하려면 몬스터들의 습격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은 윈디아의 동문에서 북동쪽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산을 등지고 있어서 습격 같은 것에 대비하기도 아주 좋은 곳이었다.

참고로 이곳과 정 반대쪽에는 오크들의 마을이 있다.

듣자 하니, 처음엔 오크들과의 전쟁을 대비해 군사요충지로 만들려고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나저나, 마을 이름을 짓긴 해야 할 텐데…."

그냥 편하게 지어버릴까 생각했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소주를 붙여서 [소주 마을]이라던가, 오래 살고 싶으니까 [장수 마을]이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내 이름을 붙일까도 싶었다. 그런데, 난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된 사람이다.

가뜩이나 마을 사람들이 의심스럽게 보는데, 이름마저 이상하게 지어버린다면 촌장의 자리에서 쫓겨날지도 몰랐다.

…뭐,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잠깐 근데 이건 뭐지?

마을에 대한 종합 평가 밑에 또 다른 것이 있었다.

-당신은 마을의 촌장입니다. 마을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부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단, 히든 직업은 얻을 수 없고, 마을과 관련된 직업만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능력이 출중하다면, 2가지 부직업을 동시에 병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고, 취미로 할 만한 것을 추천합니다.

"흠, 부직업이라…."

마지막에 취미로 할 만한 것을 추천한다는 문구가 마음에 걸렸다.

잠시 골몰하던 나는 창을 닫았다.

"일단 마을이나 좀 둘러봐야겠구만."

지금 바로 결정할 수는 없는 것들이다. 우선 마을의 상태를 좀 살펴보고,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나는 곧장 집을 나섰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작은 소란이 들려왔다.

"아, 거참 좀 들어가자니까?!"

"그러니깐 안 된다고 했잖아. 나도 명령을 받았다고."

"에헤이, 돈 필요해? 자, 여기 이거 받고 들여보내줘. 저번에는 잘 들여 보내줬잖아."

"아, 글쎄 오늘은 안 된다니까. 윈디아에서 높은 분들이 오셔서 걸리면 큰일 난다구. 내 목이 걸린 일이라 절대로 안 돼."

"아니, 잠깐이면 된다니까 그러네. 이렇게 부탁할게. 어?"

"미안하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안 돼."

누군가 마을 입구에서 제지를 받고 있었다.

꽤 젊어 보였는데 이제 갓 서른 즈음 접어든 청년처럼 보였다.

나는 가면을 쓰고 다가갔다. 헬륨 슬라임의 핵을 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헬륨 슬라임의 핵을 섭취하셨습니다.]

[당신의 목소리가 랜덤하게 변합니다.]

"대체 무슨 일인…."

…젠장. 목소리가 왜 이따구지.

목소리가 랜덤하게 변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여자 목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다.

두 사람이 멀뚱히 나를 쳐다봤다.

빌어먹을.

"큼. 목소리를 변조하는 약을 먹었네. 근데 무슨 일이지?"

그제야 그들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 게슴츠레하게 보던 눈빛과는 사뭇 다른 눈빛이었다.

"이 친구가 자꾸 이곳으로 들어오려고 해서 막는 중이었습니다. 케레노스 님께서 기자들이 오면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라고 하셨거든요."

"케레노스가…?"

"예, 아까 전에도 들어오려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막느라 혼났습니다. 근데 이 친구는 아직 안 가고 버티고 있더라구요. 제가 은신을 감지하는 구슬을 마침 가지고 있는데, 은신을 쓰고 몰래 들어오다가 딱 걸렸습니다."

…흠, 내가 그 생각을 못하고 있었군. 케레노스 녀석 꽤 세심한 면이 있다니까.

만약 기자들이 들이닥쳤다면, 제법 피곤한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그의 발빠른 대처에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나저나 둘이 아는 사이인가? 친구라고 하는 걸 보니 잘 아는 듯 한데."

"아, 예 뭐…. 사실 이 친구는 여기 자주 왔었습니다. 저희 마을 사람들하고는 꽤 친하지요. 가끔 와서 일도 도와주고 그랬었습니다."

"호오, 그래…?"

기자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편견이 조금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녹화용 수정구슬을 띄우고, 플래시를 터트리기 바빴으니까.

사실 그런 것이 싫었던 것인데, 눈앞의 청년은 그런 것이 없었다.

잠깐 생각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올해 몇이지?"

"예?"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서, 서른넷입니다만…."

…흐음, 수정이보다는 두 살 많군. 우리 막내딸이랑 동갑이네.

어제 저녁에 영상통화로 봤던 막내딸이 생각났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서 요즘은 계속 집에 있다고 했다.

내 얼굴을 보며 좋아하던 외손주 민찬이가 떠올랐다.

"결혼했나?"

"아, 네."

"한국인이지?"

"예? 그렇긴 합니다만…."

"따라오게."

병사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길을 열어주었다.

어리벙벙한 표정의 청년이 멍하니 쳐다봤다.

"오기 싫으면 돌아가든지."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그제야 따라붙기 시작하는 청년. 그가 뒤따라오며 말했다.

"당신은 생각보다 친절하신 분이군요!"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포춘쿠키 같은 소리하지 마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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