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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21화 (121/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21화

제121화

"검은 그렇게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자, 이렇게 해보도록."

짧게 목검을 쥔 백무열은 젊은 훈련병의 옆에 서더니, 화려한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다른 훈련병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백무열의 표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이렇게만 해서는 실력이 늘지 않아.'

젊은이들은 그저 바라보며 좋아하기만 할뿐. 검술이라는 것에는 영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실 여긴 가상현실 속이니, 대충 배워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그게 백무열의 눈살을 찌푸려지게 만들었다.

'무언가 계기가 필요해.'

지금 눈앞에 있는 청년들에겐 그 계기라는 것이 없었다.

이럴 때 동기부여가 될 만한 것들이 있다면 좋을 텐….

"여, 백무열 교관. 열심히로군."

뒤에서 말을 걸어오는 것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 솜털도 보이지 않는 깨끗한 민머리.

등 뒤에 멘 기다란 봉.

며칠 전 자신과 결투를 벌였던 '머머리'교관 이었다.

그는 주변의 훈련병들을 둘러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여긴 어쩐 일이지…?"

머머리는 교관으로 임명된 자신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위도 아니고, 아래가 밀리다니….

듣자하니 스스로 밀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동정심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머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크윽. 내가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건 미안하게 됐구만. 그나저나 어쩐 일이지?"

"받아라. 그때 약속했던 것이다."

[마력 이발기를 획득하였습니다.]

뭐야. 이걸 왜 내게 주는 거지. 이 자식 변태인가?

"그때 있었던 일은 내가 진 것으로 하겠다. 약속했던 대로 이건 그대에게 주지."

아, 퀘스트 보상이구나.

마침 눈앞에 퀘스트 완료라는 메시지가 떴다.

"…필요 없는데."

백무열은 돌려주려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마력 이발기는 백무열의 소유가 되었다.

…젠장. 더러워 죽겠네.

머머리는 뒤쪽에 있는 훈련병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들은 바로 머머리가 담당하는 8조의 훈련병들.

"내가 담당하는 훈련병들이 곧 무기 훈련을 끝마칠 예정이라서 말이야."

뚱딴지같은 그의 말에 백무열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그대와의 싸움에선 내가 졌다. 하지만 내가 키운 훈련병이 그대보다 낫다는 것은 인정할 수가 없군."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대결을 제안하고 싶다."

"대결…?"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떴다.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이벤트가 발생했습니다.]

[<특별 퀘스트 – 머머리 교관의 자존심>  을 시작합니다.]

'특별 퀘스트…?'

며칠 전에 히든 퀘스트를 했는데, 설마하니 비슷한 것을 또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자존심이라니, 어지간히도 분했던 모양이네.

백무열은 창을 열었다.

[특별 퀘스트 – 머머리 교관의 자존심]

난이도: B+

당신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머머리 교관은 아직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패한 것이 한순간의 실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그는 이겼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그를 꺾어 당신을 증명하십시오.

-완료 조건: 머머리 교관과의 내기에서 승리 0/1

-보상: 머머리의 굴복.

'빌어먹을. 보상이 왜 이따구지.'

저 빡빡이 놈의 굴복을 받을 생각을 하니, 등 뒤로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백무열은 생각보다 잘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동기부여가 필요하던 차였는데,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

"좋네. 지금은 좀 힘들고 일주일 뒤가 어떤가? 난 아직 훈련을 더 시켜야 해서 말이야."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그럼 2주일의 시간을 주지. 그때, 소장님을 비롯한 다른 교관들이 보는 앞에서 하자고. 후후. 그때가 바로 우리 훈련소의 꽃인 뮬란의 밤이거든."

"…좋아 그럼 그때로 하지."

[퀘스트의 내용이 일부 갱신되었습니다.]

[대결은 앞으로 2주일 뒤입니다.]

또 저번처럼 모두가 둘러싼 곳에서 대결을 펼칠 생각을 하니, 조금 꺼림칙했지만, 옆에 있는 젊은이들에겐 괜찮은 자극이 될 것이다.

그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특훈을 시작한다."

* * *

어느덧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윈디아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화산재로 뒤덮인 들판들은 조금씩 푸른색을 되찾았고, 불타버린 곡식들도 새싹을 틔웠다.

이 모든 것이 디모르테에서 퍼져나간 소생의 바람 덕분이었다.

나는 마차에 몸을 실은 채 바깥을 바라봤다.

불어오는 바람이 썩 기분 좋았다.

"시워언하다!"

그런 내 모습에 건너편에 앉아있던 김수정이 웃었다.

"이제 여기도 겨울인데요…?"

"원래 나이 먹으면 추위를 잘 못 느끼는 법이다."

"어디 아프고 그러시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요즘 카미유한테 여러 가지 배우는 중이거든요. 침술이 이렇게 매력적일 줄은 몰랐어요."

그녀와 견소룡은 윈디아에 도착했을 때 생각지 못한 참상에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그때 미노타를 쓰러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그아웃해서 잘 몰랐지만, 그녀의 말에 따르면 피를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고 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견소룡은 다시 포트렌으로 돌아갔지만 그녀는 남아서 의술을 펼쳤다고 한다.

다행히 카미유는 그녀에게 의술을 전해줄 생각인 모양이다.

"많이 배우거라. 카미유는 의성(醫聖)에게 사사 받았으니까."

[반딧불성, 카미유가 자신의 스승을 거론하자 깜짝 놀랍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어떻게 알았냐고 묻습니다.]

"그는 유명하니까."

내가 하늘을 향해 답하자, 김수정이 의심 어린 눈초리로 물었다.

"그것도 공부하신 거예요?"

"…큼. 뭐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공부로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제길. 이놈의 입방정.

"지금은 묻지 말아다오. 나중에 차근차근 설명해주마."

"알겠어요. 무슨 사정이 있으시겠죠."

그렇게 말한 그녀는 다시 침술 연구에 돌입했다.

손에 쥐어진 형화의 침이 길어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신성 형화 침술은 그야말로 동대륙과 서대륙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획기적인 치료법.

만약 저것을 수정이의 것으로 만든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곳에서 한 참이나 떨어진 동대륙은 보통 침이나, 뜸을 주로 사용해 사람을 치료하지만, 이곳 같은 서대륙은 성직자들의 신성력으로 다친 사람을 치료했다.

의성(醫聖)은 그 두 장점을 집대성해 자신만의 의술을 개발했다.

물론 그는 신성력을 타고난 자가 아니었기에, 개발만 했을 뿐 직접 사용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카미유는 달랐다.

…의성(醫聖)은 말년에 죽기 전 카미유를 제자로 들였었지.

그녀가 의술을 배운지는 얼마 안됐지만, 타고는 천재였기에 금세 신성 침술을 숙달할 수 있었다.

마침내, 죽은 사람마저 살리는 경지에 이르렀고, 그녀가 죽어 성좌가 되었을 땐 신성 형화 침술로 바뀌어 더욱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수정이가 그것을 얼마나 숙달할 수 있을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물론, 굉장한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당장 눈앞의 그녀는 꽤 즐거워 보인다.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짓자, 옆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커커컥!"

숨이 넘어가던 케레노스가 뒤척이더니, 눈을 떴다. 부끄럽긴 한가보네. 헛기침을 하는 걸 보면.

"커험!"

나는 그에게 물었다.

"촌장으로 가는 건 난데 넌 왜 따라 오는 거냐…?"

지금 타고 가는 마차는 내가 촌장으로 부임할 마을을 향해 가는 중이다.

아직 개척이 진행 중인 마을이었기에 이름도 없었다.

케레노스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이유를 모르십니까…?"

나는 그의 옆에 있는 창 손잡이로 그의 머리를 때렸다.

"으악! 왜 때리십니까!"

"망할 놈.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아니,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지. 왜 때리시냐구요."

"시끄럽다. 이놈아!"

그렇게 나는 두 번이나 더 그의 몸을 때렸다.

김수정의 폭소가 터졌고, 조금 진정이 된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케레노스가 입을 열었다.

그는 혹이 난 머리를 문질렀다.

"아니, 당연히 그 족제비 때문이죠. 뭐겠어요."

"풍희다. 이 녀석아. 네 여동생 이름을 아직도 모르냐?"

"아니, 쟤가 어떻게 제 여동생입니까?"

"네 어머니 집에 있었으니, 여동생이지. 이눔아!"

케레노스의 표정이 굳었다.

순간 나는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크흠. 내가 말이 심했군.

아직 플로라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미안함에 무안한 표정을 지을 때 머리 위에 있던 풍희가 두둥실 떠올랐다.

"푸우우웅♡"

풍희는 케레노스를 위로하려는 듯.

조그만 혀로 그의 뺨을 쓸었다.

다행히 그는 웃었고, 큼직한 손으로 하얀 털을 쓸어주었다.

"풍희는 윈디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후에라 님의 바람을 타고난 신수 아닙니까. 만약 이 아이가 없다면, 윈디아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겁니다. 물론, 바람의 신전이 다시 지어진 다음에는 모르겠지만요."

"…귀찮은 짐이 하나 늘었구먼."

현재 바람의 신전에 대한 공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건축가들을 불러 회의를 했고, 그 결론은 좀 더 안전한 곳에 짓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짜증나는 건 내가 촌장으로 부임할 마을에서 짓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금 마차의 뒤로는 건축공들이 함께 따라오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놈은 오늘 왜 이리 조용하지…?

'야. 무두르.'

[크륵. 짐의 단잠을 깨우지 마라. 인간.]

'넌 요즘 왜 잠만 자냐?'

[취이익. 그건 내 마음 아닌가…? 왠 참견이지?]

…아, 또 뚜껑 열리게 만드네.

걱정 되서 말을 걸었는데, 또 시비를 털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꿀밤 100대는 때렸을 것이다.

'내 몸에서 나가는 법은 아직 모르는 거냐?'

[흥.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고 뛰쳐나가고 싶다.]

'그건 내가 할 말인데.'

[취이익.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간다면 널 내 손으로 찢어 죽일 것이다.]

'…꼭 그래라.'

요즘 이렇게 살해 협박을 받는 게 일상이다.

당장에라도 이 미친놈을 떼어놓고 싶어서 며칠 전 고르바를 찾아갔지만, 그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물론, 그것보다는 믿지 못하는 게 더 컸던 것 같지만 말이다.

'고르바. 내 몸에 무두르가 살고 있다.'

'취이익? 갑자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무두르의 영혼이 내게 빙의된 것 같다.'

'오오! 정말인가! 그분께서는 뭐라고 하시는가!'

'널 찢어버리고 싶다는군.'

'…….'

그 뒤로 고르바는 날 이상한 벌레 보듯 바라봤다.

그의 말에 따르면 태초의 오크인 무두르가 그런 천박한 말을 할리 없다고 했다.

아마 녀석은 진짜 무두르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

그 뒤로 그곳에 있는 '오크 주술사'에게도 조언을 구해봤지만, 그들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들에겐 '블러디 오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어쩌면 그곳에만 있었던 것일지도.

일단 이것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북극은 언젠가 다시 가야 할 곳.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였다.

마침, 마차가 멈추었다.

"도착한 모양이군요."

케레노스의 말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일행들이 내렸고, 나도 내렸다.

뒤따라오던 마차에서는 드레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내 옷을 수선하는데 집중하고 싶다며, 혼자 마차를 타고 싶다고 했었다.

드레인이 내게 걸어와 익숙한 것을 내밀었다.

"다 수선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스 실크로드는 복구하지 못했어요."

"고맙다."

"천만에요."

나는 그동안 입고 있던 [지그마 정장 세트]를 벗고, 곧장 그가 건네준 옷을 착용했다.

이름 앞에 '수선'이라는 수식어가 추가적으로 붙어있었다.

안타깝게도 정말 아이스 실크로드 스킬은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마을의 입구로 들어서자 메시지가 떴다.

[이름 없는 개척 마을에 입장하셨습니다.]

[당신은 오늘부터 이곳의 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명령을 내릴 수 있다라. 어떤 명령을 내린담.

주변은 온통 논밭 투성이였다.

허름한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이곳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순박해보였다.

그때, 허름한 옷을 입은 청년이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낚싯대가 쥐어져 있었고, 남자치고는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얼굴은 곱상한 것이 기생오라비 같이 생겼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대체…."

흐음. 싸가지가 없군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촌장님이라고 불러라. 썩을 놈아."

내 첫 번째 명령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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