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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20화 (120/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20화

제120화

'없어졌다'라는 말과 '없애버렸다'라는 말은 꽤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나는 방금 전 바람의 신전을 '없애버렸다'고 표현했다.

영주성에 도착한 나는 꼬마 영주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옆에는 케레노스가 팔짱을 낀 채 함께 서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바람의 신전을 없애버렸다고…?"

"예. 뭐,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그래. 확실히 고의는 아니다.

나 때문에 없어지긴 했지만, 그것은 명백한 후에라의 선택이니까.

하지만 앞에 있는 에드워드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아니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화산폭발에도 끄떡없던 신전이 없어진 거야? 이제 우리는 신성한 바람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되었어. 알아? 이리 와서 제대로 설명해!"

에드워드는 씩씩거리며 근처에 있는 푹신한 의자에 앉았다.

조그만 키 때문에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옆에서 케레노스의 시선이 느껴졌다.

…뭘 봐. 인마.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그도 함께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 둘은 함께 에드워드의 건너편에 앉았다. 이거 참 귀찮네.

"머리 위에 그건 뭐야? 족제비야?"

에드워드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예. 족제비입니다. 이 아이를 깨우려고, 바람의 신전으로 갔었습니다."

그런 내 말에 케레노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그럼 그 족제비가…?"

"그래. 네 여동생이다. 이름은 풍희."

"…여동생이요? 아니, 근데 이름이 왜 그렇습니까?"

갑자기 생긴 족제비 여동생에 케레노스의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은 에드워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저는 그곳에서 바람의 여신을 만났습니다."

"예…? 정말입니까?"

"후, 후에라 님을…?"

두 사람은 짐짓 당황스러워 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지금 내 말이 믿기지 않는 것이겠지.

충분히 이해는 간다.

원래 천궁에 있는 신들은 인간계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신들은 인간계에 내려오고 싶어도, 금제(禁制) 때문에 많은 제약이 있다.

활동 범위가 신전으로 제한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용무가 아닌 이상,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두 사람이 놀라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뭐, 나라도 드넓은 천계를 두고 인간계로 내려오지는 않았을 테지.

200평이 넘는 아파트가 있는데, 고작 10평도 안 되는 원룸에서 뭘 하겠는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신전이 없어진 것은 후에라 님의 의지였습니다. 이 아이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신전을 포기하셨지요. 그곳에 있는 바람의 힘을 모조리 끌어다 쓰셨습니다. 그래서 신전을 보호하던 보호막이 없어진 겁니다."

"도대체 그 족제비가 뭐길래 그래…?"

에드워드가 미심쩍은 눈으로 묻자, 나는 씩 웃었다.

"윈디아의 미래입니다."

"뭐…?"

"저를 디모르테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십시오. 신성한 바람을 공급하겠습니다."

여신의 첫 번째 부탁을 들어줄 시간이다.

* * *

세상엔 누구나 기댈만한 안식처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것이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돈이 되기도 하고, 길가에 피는 꽃이 되기도 한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윈디아에게 안식처는 평화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평화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많이도 파괴되었군.

북쪽에 있는 디모르테로 가는 내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의 주민들은 영주의 행차에 고개를 숙였지만, 그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중앙 광장은 이미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로 가득했고, 피를 흘리며 붕대를 감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은 중앙으로 갈수록 더욱 극심해졌다.

"내가 조금만 강했더라면 윈디아가 이런 일을 겪지는 않았을 텐데…."

눈앞에 있는 에드워드가 마차 안에서 한숨 섞인 한탄을 했다.

나는 그의 건너편에 마주 앉아있었다.

불끈 쥐어진 그의 두 주먹을 보니, 제법 분한 모양이다.

"영주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알아.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계실 때,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걸. 주민들은 아마 날 안 좋아할 거야."

"그런 소리 마십시오. 앞으로 더욱 잘하시면 됩니다. 아직 어리시니까요. 주민들도 알 겁니다."

"정말 그럴까…?"

"분명합니다."

그때, 머리 위에서 자던 풍희가 뒤척이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흔들리는 마차의 진동에 깬 모양이다.

"푸웅…? 푸웅풍풍!"

"껄껄. 욘석아 간지럽다."

하얀 족제비의 따뜻한 혀가 내 볼을 간지럽혔다.

풍희는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허공에 두둥실 떠 있었다.

그 모습에 에드워드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나, 나도 만져 봐도 돼?"

"물론입니다."

에드워드 쪽으로 풍희를 밀자, 이번에는 에드워드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얀 족제비의 혀는 그의 뺨을 위로하듯 간질이고 있었다.

"으하핫. 너 엄청 귀엽다. 잭슨, 얘 나한테 주면 안 돼…?"

"…안 됩니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 아이를 준단 말인가.

그리고 꼭 그 이유만도 아니었다.

풍희는 태어나자마자 나를 보았다.

이미 부모로의 각인이 끝난 상황이었기에, 아마 풍희가 싫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푸웅!"

에드워드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풍희가 화를 내며 내게로 날아와 안겼다.

하얀 족제비의 털이 내 뺨에 부벼졌다.

그 모습에 에드워드의 양 뺨이 부풀었다.

"…나 삐졌어."

입을 쭉 내밀며 토라진 에드워드.

역시, 애들은 피곤하다.

…손주들은 빼고.

잠시 뒤, 마차가 멈추었다.

우리들은 서둘러 내렸고, 말을 타고 따라오던 케레노스도 우리를 따라왔다.

저 멀리 거대한 풍차가 보였다.

다행히 디모르테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불행 중 다행이지만, 다른 곳은 예외였다.

"아이올리아 꽃밭이 완전 엉망이 됐군요."

그런 내 말에 에드워드가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화산폭발에 대한 피해가 생각보다 커서 성한 곳이 없어. 윈디아를 대표하는 꽃이었는데, 이젠 만나기조차 힘들어."

주변에 있던 아이올리아는 이미 싱그러움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어떤 것은 화산재 때문에 검게 변했고 시들어버린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꽃들도 있었다.

마치, 꽃 같은 인생을 잡초처럼 버티는 것처럼.

"꽃을 만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뭔지 아십니까?"

"세 가지…? 글쎄. 잘 모르겠는데."

골똘히 생각한 에드워드의 대답에, 나는 이어서 말했다.

"첫 번째는 꺾어서 화병에 넣고 감상하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꽃을 만나러 떠나는 것이지요."

어느새 풍차 앞에 도달하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풍차의 날개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다.

그 모습이 제법 웅장하다.

…저기에 신성한 바람을 뿌리면 되는 건가.

이곳으로 오는 동안, 마차 안에서 디모르테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인 칼리아 백작은 매년 신성한 바람을 신전에서 얻어와 저곳에 흩뿌렸다고 한다.

그렇게 흩어진 신성한 바람은 이곳을 싱그럽게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머리 위에 있는 풍희의 정보창을 열었다.

[바람의 신수 – Lv.1 풍희]

등급: 전설

마력 소모: 없음 쿨타임: 없음

지속시간: 내키는 대로

최고신 유피테르의 신수이자, 요리왕 알렉서스의 동지였던 아이올로스의 알에서 태어난 새로운 영혼. 부드러운 바람의 여신의 성격을 닮아 온화하고, 순수하고, 장난기가 많다. 날씨 요리술에서 '냄새'를 담당하고, 바람과 관련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레벨이 증가한다. 레벨이 오를수록 다양한 공격을 구사할 것이다.

-소생의 바람[액티브](신화)

바람의 여신 후에라의 권능 중 하나인 '소생'의 권능을 담은 바람을 일으킨다.

이것은 죽어가는 것들을 회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직은 능력이 부족해 '식물' 정도만 살릴 수 있다.

…이야, 완전 금수저네.

태어나자마자 무려 신화 등급의 액티브 스킬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무려 바람의 여신의 권능.

짐작이지만, 이 녀석이 모든 성장을 마친다면 분명 아이올로스를 뛰어넘을 것이다.

이것은 확신이다.

"풍희야."

"푸웅…?"

"소생의 바람이 필요하다."

"푸우우웅♡"

한껏 털을 부빈 풍희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두둥실 떠올랐다.

옆에선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세 번째는 뭐야? 응? 뭐냐니깐?"

바짓단을 잡고 늘어진 그의 모습에, 나는 씩 웃었다.

"씨앗을 심는 겁니다."

[바람의 신수, 풍희가 '소생의 바람'을 일으킵니다!]

다음 순간, 하늘에서 황금빛 바람이 피어났다.

우물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신성한 바람. 에드워드는 놀라운 표정으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솨아아아아-

황홀했다.

풍희는 풍차의 날개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고, 그 자리를 따라 신성한 바람이 허공으로 흩뿌려졌다.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탄성을 터트리며 기뻐했다.

"아아, 신성한 바람이…!"

"여신님 감사합니다!"

"윈디아가 다시 살아난다!"

날개에 닿은 소생의 바람은 멀리멀리 퍼져갔다.

오크들로 인해 폐허가 되었던 동쪽, 화산폭발의 영향에 휩쓸린 남쪽과 중앙 광장, 그리고 영주성이 있는 서쪽과 먼 북쪽까지.

어느 곳 하나 바람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그리고 조금씩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윈디아의 부활을 알리는 전조였다.

띠링-!

[칭호, <윈디아의 영웅>  이 변경됩니다.]

[칭호, <윈디아의 수호자>  를 획득하였습니다!]

[윈디아의 주민들과 기사들은 당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윈디아 전역에 당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집니다.]

[윈디아의 모든 NPC들의 호감도가 최대치로 올라갑니다.]

[명성 20,000을 획득하였습니다.]

……

"…이젠 윈디아의 수호자인가."

어느새 땅에 내려온 풍희가 새로이 피어난 아이올리아 꽃밭에 내려앉았다.

꽤 많은 힘을 써서 배고팠는지, 풍희는 조그만 입으로 아이올리아 꽃잎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의 환호성이 윈디아 전역에 울려 퍼졌고, 어떤 사람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비록 작은 바람이었지만, 그것은 다른 이들에겐 커다란 바람이었다.

띠링-!

[바람의 신수가 바람과 관련된 음식을 먹었습니다.]

[풍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꽃씨가 휘날리는 윈디아를 내려 보았다.

…이제, 두 번째 부탁을 이룰 차례로군.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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