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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19화 (119/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19화

제119화

"안 돼에에에!!!!"

살랑이는 바람을 타고 안타까운 고성이 우물 속에서 울려 퍼졌다.

후에라는 너무도 말똥거리는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그 얼굴을 보자 갑자기 화가 울컥 치밀었다.

"아니, 왜 말도 없이 함부로…!"

[음? 너는 이 알에서 태어나는 생명을 보고 싶지 않느냐?]

"그,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단다.]

…이런 시부럴.

시간을 돌리고 싶다.

하지만 이미 500년 묵은 아이올리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저 빌어먹을 여신이 알에다가 흡수시키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두근-!

허공에서 태동하는 연녹색의 알.

['아이올로스의 알'이 부화를 시작합니다!]

환하게 불어오는 황금빛 바람이 알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눈에 보아도 알이 흡수했던 500년 묵은 아이올리아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었다.

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아아, 내 500년 묵은 보약이 저리 허망하게….

원래 저것은 알렉서스가 내게 남긴 것이었다.

그런 것을 상의도 없이 알에게 먹여버린 여신이 너무나도 미웠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바람을 움직였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잉태된 생명을 어루만집니다.]

[알에서 태어날 생명이 '여신'의 모습을 닮습니다.]

[성별이 '암컷'으로 고정됩니다.]

알이 황금빛으로 태동하더니 그림자가 언뜻 비쳤다.

아무래도 안에서 태어날 존재인 듯하다.

그 신비로운 모습에 어느새 화는 가라앉고 있었다.

…여자아이로군.

아마 아이올로스와 플로라가 봤다면 굉장히 기뻐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몫까지 지금을 기억해야 했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이 알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습니다.]

[알에서 태어날 생명이 온순한 '여신'의 성격을 닮게 됩니다.]

저 대책 없는 말괄량이 여신의 성격을 닮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순수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장난기가 좀 있어서 그렇지 사실 나쁘진 않았다.

…못된 것보다는 낫지.

[남쪽에서 불어오는 마파람이 건강한 신체를 이룹니다.]

[암컷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힘 능력치가 조금 떨어집니다.]

[대신 민첩 능력치가 조금 더 뛰어납니다.]

피곤한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크륵. 잠깐 사이 많은 일이 있었군. 저거 혹시 □□인가…?]

'너, 저 녀석의 진명(眞名)을 알고 있었냐?'

[취익. 당연하다. 예전에 한번 붙은 적 있다. 그 남자는 강했다.]

…아이올로스를 말하는 모양이군. 그나저나 진짜 대책 없는 놈이네.

성좌의 격도 갖추지 못했으면서 용케도 살아남았구먼.

'쟤는 여자아이니까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취익. 그건 생각 좀 해보지.]

…젠장. 불길한데.

왠지 언젠가 한 번 싸우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한숨을 쉬며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집중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찬바람이 '삭풍의 권능'을 부여합니다.]

[언젠가 진명(眞名)을 되찾는다면 엄청난 힘이 될 것입니다.]

아쉽게도 삭풍의 권능은 지금 쓸 수 없었다.

하긴, 아직 미숙한 어린아이에게 저런 것을 쥐여 줬다가는 세상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저 알에서 태어날 존재는 대단하다.

문득, 한 이야기가 스쳤다.

그것은 생전 아이올로스가 알렉서스와 나눴던 대화.

'난 가끔 새로 태어나는 인간들에게 바람의 기도를 하곤 해.'

'어떤 기도인데…?'

'동풍이 불 때 태어난 아이는 세상을 자유롭게 누리길. 서풍이 불 때 태어난 아이는 검소하고 착한 성격을 가지길. 그리고 남풍이 불 때 태어난 아이는 친구들이 많이 따르길 기도해. 또 북풍이 불 때 태어난 아이는 전투에 재능이 있길 바라지.'

'그럼 바람이 불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땐 풍신이 태어날 거야.'

[불어오는 소슬바람이 알 껍질을 두드립니다.]

쩍. 쩌쩍.

…이제 깨어날 시간인가 보군.

비록 아이올로스의 말처럼 무풍(無風)은 아니었지만, 사실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눈앞의 알은 무려 동서남북 모든 바람의 축복을 받았다.

바람을 어루만지던 후에라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네가 품어주면 좋을 것 같단다.]

두둥실 움직인 아이올로스의 알이 내게로 건너와 안겼다.

아까 보였던 실금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쩌저적. 쩍. 쩍.

이 안에서 나올 생명이 어떻게 생겼을지는 대충 알고 있다.

내가 본 것은 인간으로 모습을 바꾼 아이올로스가 전부였지만, 그것은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투둑.

마침내 알 뚜껑을 깨고 나오는 형체가 있었다.

"푸웅…?"

하얀 족제비였다.

* * *

한편, 성대하게 촌장 임명식을 치른 에드워드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는 펜을 쥔 채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역시 이렇게 하길 잘했어. 빼도 박도 못하잖아.'

아버지인 칼리아 백작을 닮아 인재에 대한 욕심이 많은 에드워드는 무조건 잭슨을 자신의 옆에 두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고심 끝에 정면돌파 하기로 했다.

'일명 빼도 박도 못하는 작전.'

불사의 인간들 사이에서도 '기자'라는 존재는 유명했다.

이 세계에도 신문이 있는데, 그들도 신문을 만드는 자들이라고 했다.

에드워드는 일부러 그들을 끌어 모았고, 그것은 성공적이었다.

'큭큭. 아까 당황하는 잭슨의 표정이 아주 볼만했어.'

그는 영주성에 돌아와서도 계속 거절했지만, 단호하게 대처하니 그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제일 확실했던 방법은 이미 왕에게 보고가 올라갔다는 말이었다.

물론 사실이 아니지만, 잘 알지 못하는 그는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에드워드는 입을 가리며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흐흐, 이제 바람의 신전도 되찾았겠다. 잭슨도 있고, 아버지처럼 이곳을 잘 다스리는 영주가 되는 일만 남았어!"

꼬마 영주는 업무를 보다 말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찬란한 꿈을 꿨다.

하지만 그것이 부서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 영주님!"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에드워드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넌 뭐야?"

"크, 큰일 났습니다!"

"큰일?"

갑자기 무례하게 들어온 것도 괘씸한데 큰일이라니, 진짜 큰일이 아니라면 에드워드는 병사에게 벌을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재, 잭슨님과 바람의 신전이 위험합니다!"

큰일이었다.

* * *

쿠구구구구.

땅이 흔들렸다.

어느새 우물을 빠져나온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을 보호하던 보호막이 점차 사라져갔고, 그 틈으로 용암이 울컥거리며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균형을 잃은 신전은 흔들리며, 존재 자체를 감추려 하고 있었다.

후에라가 말했다.

[부디 내 부탁을 들어주길 바란단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약속은 지키는 편이니."

[널 믿는단다. 그리고 그 아이….]

"풍희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하얀 새끼 족제비.

풍희는 머리 위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아마 흰머리를 보고 부모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진명(眞名)을 깨닫기 전까지 부를 이름을 정하라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한참이나 고민했었다.

…하우젠, 위니아 이런 것보다는 역시 풍희가 최고지.

하마터면 집에 있는 에어컨 이름으로 지을 뻔했다.

하지만 풍희는 내 취향에 아주 딱 맞는 이름이었고, 이제 이 녀석은 우리 최씨 가문의 사람이었다.

최풍희.

뜻밖의 늦둥이였다.

[난 네가 아주 훌륭한 아빠가 될 것 같단다.]

"그럴 생각입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구나. 내가 널 바깥으로 내보내 주겠단다.]

"감사합니다."

슈우우욱.

그녀의 주위에 있던 연녹색을 띤 바람이 내 몸을 두둥실 띄웠다.

후에라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프로메테우스에게 한 짓은 비밀로 해줄 거니…?]

풉.

이런 상황에서도 그게 걱정이라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진짜 엉뚱한 여신이라니까.

"비밀로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함박웃음을 짓는 후에라의 얼굴.

그 순박함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말았다.

[또 보고 싶을 거란다. 천궁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으마.]

…아, 맞다.

"올라가면 약속의 때가 왔다고 전해주십시오."

이 말 한마디로 언젠가 신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태초 신 가이아의 자식들.

그들 또한 '찬란한 약속'을 지킬 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겠지.

후에라의 성격이 장난기가 많고 순수한 것처럼, 신들의 성격 또한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중에는 괴팍한 놈들도 더러 있는데… 뭐, 지금 생각할 건 아닌 것 같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란다.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단다.]

용암이 어느새 가까이 왔고, 나는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그녀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천궁의 모든 신들이 너의 행보를 지켜보게 될 거란다. 부디 몸조심하렴.]

그와 동시에 나는 하늘로 사라졌다.

* * *

잠시 후. 내려온 곳은 윈디아의 남쪽에 있는 조그만 숲.

다행히 주변에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순간, 윈디아의 광장에 내려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것은 아니었다.

"읏차."

발이 땅에 닿자, 몸을 감싸던 연녹색의 보호막은 사라졌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윈디아를 향해 걸어갔다.

풍희는 피곤했는지 여전히 머리 위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생각보다 무겁지 않고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너털웃음이 흘러나왔다.

"녀석 진짜 귀엽네. 껄껄."

분주한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빠르게 달려오는 부츠의 질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윈디아의 병사들인 것 같다. 나는 초감각으로 올라간 청력으로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래도 가면을 쓰는 게 좋겠지.

나는 가면을 쓴 채 그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잠시 후. 그들을 맞닥뜨렸다.

"어? 영감님!"

저 멀리 창을 든 연녹색 갑주를 입은 놈이 뛰어왔다.

날 영감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윈디아에선 저놈뿐이지.

빠르게 달려온 케레노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위험하시다는 보고를 받고 달려오는 길입니다."

"별일 없다. 이놈아. 뭘 이렇게 많이 데리고 와?"

그의 뒤로는 꽤 많은 '실피드 기사단'이 있었다.

그들도 걱정스러운 표정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카일이 영감님과 바람의 신전이 위험하다고 보고를 해왔습니다."

"쯧쯧. 요란 떨기는 별일 아니다. 다들 돌아가자."

"정말 별일 없으십니까…?"

"그래."

"바람의 신전은요? 용암에 둘러 싸여있다고 보고를 받긴 했습니다만 정말 괜찮은 겁니까…?"

"아, 그거…?"

띠링-!

[World. 윈디아에 있던 '바람의 신전'이 파괴되었습니다.]

"방금 없애버렸다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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