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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18화 (118/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18화

제118화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했다.

바람의 힘이라니, 설마 그걸 말하는 건가…?

[알렉서스와 나는 제법 친했단다. 아이올로스 덕분이었지. 그는 내게 맛있는 바람꽃 요리를 자주 가져다주곤 했었단다.]

"…그랬군요."

어렴풋이 기억난다.

프로메테우스가 새들에게 간을 쪼일 때여서 드문드문 기억이 있었지만, 분명 그런 기억이 있긴 했다.

[아이올로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너무도 슬펐단다. 하마터면 소생의 바람을 뿌리지 못해서 봄이 오지 못할 뻔했었지. 그때 다른 신들에게 많이 혼났었단다.]

그때가 떠오르는지, 후에라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어째서, 알렉서스가 남긴 바람의 힘이 여기 있습니까?"

아마 프로메테우스가 간을 쪼이다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기절했을 때였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알렉서스는 그와 함께했던 추억을 남기길 원했단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 아이올로스가 다시 살아나길 원치 않았다고 하더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때의 아이올로스는 살아나길 원치 않았습니다. 플로라의 곁에 있길 원했었지요."

[기억나는구나. 아주 예쁜 아이였지. 언젠가 내게 한 번 데려온 적이 있었단다. 그녀는 잘 있느냐?]

"…그녀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쯤 아이올로스와 함께 별의 요람에서 잘 지내고 있을 겁니다."

[그랬구나. 알려줘서 고맙단다. 나중에 한번 놀러 가야겠구나.]

별의 요람.

그곳은 죽어버린 별의 영혼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성유계(星流界)'라는 새로운 차원의 공간으로서, 별들의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인간들이 죽어서 가는 명계와 달리 그야말로 별들을 위한 공간인 것이다.

아마 성좌였던 레무스 또한 그곳에 있겠지.

참고로 성유계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명계를 거쳐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크로노스 게이트로 갔다가는 혼나실 텐데요."

[너는 천궁의 사정을 잘 알고 있구나.]

"프로메테우스에게 들었습니다."

[그랬구나. 이해했단다.]

크로노스 게이트는 처음 천궁이 만들어졌을 때, 가이아가 만들어 낸 시공을 초월하는 다리를 일컫는 말이다.

신들만이 이용할 수 있고, 그것은 많은 차원들과 연결되어 있다.

성유계는 물론이고 마계, 명계, 정령계도 있다.

중간에 있는 인간계야 쉽게 내려올 수 있지만, 금제(禁制)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참고로 솔라는 지금 정령계에 있다.

"갈 수는 있는 겁니까? 라그나로크 전쟁 이후로 플루토가 명계로 오는 길을 모두 막았을 텐데요. 성유계도 막힌 것 아니었습니까?"

내 기억이 맞다면, 성유계를 거치면 바로 명계가 나온다.

천계와 명계 사이에는 성유계가 있는 것이다.

플루토가 그 길을 안 막았을 리 없었다.

[그곳의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모양이구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플루토께서는 그곳의 문을 막지 않았단다. 500년째 말이지.]

"음…."

[성유계는 지금 두 세력으로 나뉘어 전쟁을 치르는 중이란다. 뚫고 가려는 천계와 막으려는 명계의 연합군이 싸우고 있지.]

성유계라고 해서 선한 존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노타처럼 타락한 존재들도 그곳으로 갈 수 있지만, 명계를 거쳐야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영혼인지라, 그 상태에서 죽으면 영원한 안식에 들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죽음인 것이다.

[아무튼 얘기가 길었구나. 나를 따라오도록 하렴.]

하늘거리는 그녀의 옷자락을 따라갔다. 후에라는 신전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고, 하얀 기둥의 고풍스러운 디자인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싱그러운 맞바람 속에서 후에라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알렉서스와 조금 닮은 것 같구나.]

"그렇습니까…?"

[알렉서스가 그때 죽지만 않았다면, 꼭 너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 같단다.]

"큼…."

부정하진 않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어느새 우리들은 신전의 끝자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커다란 우물이 있었다.

"신성한 바람을 가져가는 곳 아닙니까?"

[그렇단다. 이곳은 윈디아의 영주가 직접 신성한 바람을 자루에다가 담아가는 곳이지.]

우물에서는 황금빛 바람이 하늘거리며 솟구치고 있었다.

그것은 공중으로 흩어지며 이곳 신전을 지키는 보호막이 되고 있었다.

[우물에는 내 소생의 권능을 담았단다. 그리고 알렉서스가 남긴 것이 저 안에 있기도 하지. 원래는 아이올로스를 기리기 위해 그가 놓아둔 것이지만, 500년이 지나 후예가 왔으니, 어쩌면 이것은 운명일지도 모르겠구나.]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과연 저곳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프로메테우스가 준 기억 속에도 없는 것이었다.

[우물로 뛰어내리렴.]

"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바람이 널 지켜줄 거야.]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저 장난기 많은 여신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였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적어도 그녀의 눈은 진심이었으니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우물로 뛰어내렸다.

"으아아아악-!"

생각보다 우물은 깊고 넓었다.

메아리치는 비명이 내 귓가를 앵앵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까.

어느새 아래에 바닥이 보였다.

나는 공중에서 허우적거렸다.

"으아악! 젠장!"

거미줄을 쓰려는 그때, 어느새 나타난 후에라가 싱긋 웃으며 바람을 조종했다.

포근한 바람이 나를 사뿐히 감았고, 바닥에 안착시켰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너는 참 놀리기 좋은 인간이구나.]

"자꾸 그러시면 프로메테우스에게 한 짓을 불어버리겠습니다."

[어머, 미안하단다. 내 사과를 받아주렴.]

그러더니 그녀의 손에서 진짜 사과가 나타났다.

참나. 이러면 누가 사과를 받아줄….

아삭.

"맛있군요.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후에라가 싱긋 웃었다.

[상한 거란다.]

"켁! 켁!!"

[농담이었단다.]

…팍씨.

신만 아니었다면, 한 대 쥐어박았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가 깨어나면 진짜 불어버려야겠다.

망할 여신 같으니라고.

[알렉서스가 남긴 것은 이곳에 있단다. 오랜만에 보는데도 여전히 예쁘구나.]

그녀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할 말을 잃었다.

그곳엔 거대한 황금색의 아이올리아가 있었다.

[500년 묵은 아이올리아]

등급: 신화

전설의 요리왕 알렉서스가 여신 후에라에게 부탁해, 신성한 우물에 심어놓은 황금빛 아이올리아.

무려 500년이나 소생의 힘을 머금었다. 심지어 이제는 스스로 소생의 힘을 발생시키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죽기 직전의 사람도 되살리는 엄청난 힘이 깃들었다.

- 섭취 시, 소생의 권능 획득 가능.

- 만 가지의 병이 치료된다.

"헐."

신화등급이라니.

전설 등급까지는 들어봤지만, 신화등급은 처음 들어봤다.

딱 보아도 전설 등급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저걸 먹는다면 소생의 권능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

그건 정말 엄청난 거다.

무려 신의 권능이니까.

…먹고 싶구먼.

저건 그야말로 약이다.

만병이 치료된다고 적혀있지 않은가.

중국에 어떤 왕이 먹었다던 불로장생의 묘약과 마찬가지였다.

만약 소생의 권능을 얻게 된다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큼. 이거 제가 먹어도 됩니까?"

[그건 안 된단다. 그럼 알을 살리지 못할 거란다.]

…젠장. 괜히 기대했군.

입맛을 다시는데, 옆을 보니 커다란 글귀가 보였다.

나는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평생의 지기였던 아이올로스를 추억하며, 내가 마지막으로 고안한 날씨 요리술을 이곳에 남긴다.

"이건…?"

설마 이게 있을 줄은 몰랐다.

내가 생각한 바람의 힘이란 바람의 비각술이었다.

그런데 바람의 레시피였다니.

알렉서스가 날씨 요리술 중 가장 마지막에 완성한 것이 바람의 레시피였다.

그가 죽기 전, 그러니까 아직 아이올로스가 살아있을 때 완성한 게 이것이었다.

…물론 아이올로스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 뒤로는 한 번도 하지 못했지만.

나는 글귀를 읽었다.

-바람은 참으로 유연하고 무서운 존재다. 때로는 누군가의 살아가는 터전을 한순간에 앗아 갈 수 있고, 때로는 그대의 코끝에 맺힌 땀방울을 식히는 고마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내게 아이올로스는 후자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가 일으키는 바람은 찬란한 갈채였고, 해와 달을 지키는 소중한 친구였다. 잡을 수 없지만, 느낄 수 있고. 볼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사랑처럼 항상 곁에 있지만, 가끔 소중함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여,

바람의 소중함을 잊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바람의 레시피에 대한 내용. 나는 그것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랬던 건가."

알렉서스는 어떻게 하면 바람을 이용한 요리를 할 수 있을까 고심했다.

어느 날 주변의 환경에 따라 향이 달라지는 '아이올리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그가 떠올린 것은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냄새'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이올리아의 가루를 주변에 흩어서 냄새를 퍼트리는 것이로군.

나는 글의 말미를 읽었다.

- 마지막으로, 맛있는 냄새를 맡은 백성들이 기뻐하길 바란다.

그대가 일으키는 미세한 바람이 백성들에게 한 잔의 술을 부르고, 아름다운 삶 속에서 기쁨의 춤을 추게 만들기 바란다.

누군가에게 지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요리가 되길 바란다.

나의 친우 아이올로스여.

두 손 모아 그대를 위한 바람의 갈채를 띄워 보낸다.

부디 나를 용서하길 바란다.

"……."

그것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올로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띠링-!

[바람의 레시피를 습득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요리에 바람을 입힐 수 있게 됩니다.]

[태양의 요리가 바람을 만나 더욱 높은 성취를 이룹니다.]

[태양과 바람의 콜라보 요리가 가능해집니다.]

[스킬: 날씨 요리술이 강화되었습니다.]

나는 스킬 창을 열었다.

[날씨 요리술][액티브]

등급: 전설

현재 가지고 있는 레시피: 태양, 바람

전설의 요리왕 알렉서스의 비기 날씨 요리술이다. 해와 달, 별과 바람, 비와 구름, 눈과 벼락으로 만든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이것으로 최초의 레시피와 최후의 레시피가 모였군. 이제 필요한 것은 구름인가.

날씨 요리술에 있어서, 그리고 비천기상무(飛天氣狀舞)에 있어서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바로 구름이다.

해와 달, 그리고 별을 제외한 다른 날씨들은 구름이 없다면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는 벽화를 구경하고 있거라. 나는 알을 깨울 준비를 하겠단다.]

"예~ 알겠습니다."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벽화도 있나…?

옆을 보니 정말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잠깐 이거 혹시…?

"바람의 비각술이잖아? 그럼 그렇지."

이게 왜 없나 싶었다.

나는 벽화에 그려진 동작들을 조금씩 따라 하며 움직였다.

마지막 벽화 밑에는 글이 적혀있었다.

-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후인을 위해서.

바람의 비각술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묵은 아이올리아를 먹고 비천기공을 운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대에게는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언젠가 찾아올 그대를 위해 아이올리아를 심어두었다.

바람의 여신이 보살핀 귀한 아이올리아이니 나보다 더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대만의 바람을 찾아내는 것이니 명심하라.

바람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닌, 흐르는 대로 타는 것이다.

잠깐만. 이 말대로라면 지금 저 500년 된 아이올리아는 나를 위해서 준비된….

다음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섬뜩할 수밖에 없었다.

[예쁜 알아 이제 깨어날 시간이란다. 이걸 먹고 무럭무럭 자라렴.]

우드득.

무언가를 쥐어뜯는 소리.

분명 무언가를 쥐어뜯는 소리였다.

그래, 예를 들면 500년 묵은 아이올리아같은….

경악과 동시에 빠르게 뒤돌았다.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띠링-!

[아이올로스의 알이 500년 묵은 아이올리아를 흡수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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