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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07화 (107/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07화

제107화

그때쯤 나는 일행들을 모으고 있었다.

잠시 뒤 모두가 갑판으로 모였고, 수정이가 해준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특히, 드레인의 표정이 가관이다.

아이스 다이아몬드가 녹아버렸을 때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표정. 진짜 놀란 모양이네.

"왓? 브라더. 그럼 윈디아가 어떻게 됐다는 거예요?"

"지금 미노타가 폭주해서 화산폭발을 일으키고 있대."

"오 마이 갓. 내가 눈 여겨 보던 옷감들이…."

그런 이유였냐….

나는 윈디아에 대한 추억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옷감이라니, 하여튼 괴짜들만 모여 있다니까.

"그거 참 걱정이군요. 수련할 곳을 봐두었는데…."

역시 이놈은 수련인가.

견소룡이 입맛을 다셨다.

"아이 참.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구요. 지금 윈디아가 멸망 위기에 처해 있다니까요? 화산이 폭발하면서 파편들이 도시 곳곳에 떨어지고 있다구요. 앤드류가 귓속말을 보내왔어요!"

김수정은 다급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마 그녀는 윈디아가 진심으로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래도 여기서 제일 정상은 그녀뿐이다.

"걱정은 된다만 흥분을 가라 앉히거라. 지금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하지만…. 아, 혹시 귀환석은 써보셨어요?"

"해류가 마력의 흐름을 흩트리고 있다고 뜨더구나. 아까부터 해봤는데, 포탈이 안 열려."

"그런…."

"우리는 지금 포트렌으로 가고 있다. 그곳에서 다시 윈디아로 가야 해. 그러기 위해선 체력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 냉정해지거라."

그 말과 동시에 김수정의 입술이 질끈 깨물렸다.

제길, 하필 이럴 때 프로메테우스가 잠들어 있다니….

[반딧불성, 카미유가 프로메테우스를 바라봅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프로메테우스의 빈자리를 느낍니다.]

카미유와 레이트라도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새삼 프로메테우스가 얼마나 내 옆을 잘 지켰는지가 느껴졌다.

늘 이런 상황이 되면 그놈은 척, 하며 답을 내놓았었으니까.

어쩌면, 나는 벌써 그 망할 내비게이션에 길들여져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기약 없는 잠에 빠진 상태입니다.]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릴 때마다 뜨는 메시지를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제 내비게이션은 없다.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것이다.

흐르는 비감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무두르였다.

[크륵, 미노타라면 기억나는군. 그 불타는 송아지의 아들이었지.]

'그래. 그놈이다. 마왕이 됐다더군.'

[마왕?! 크하하하. 웃기는 놈이구나. 그토록 바라던 궁좌의 자리에 올랐는데, 한낱 마왕이 되어버리다니! 하하하하!!]

호탕한 무두르의 목소리가 귓가를 쩌렁쩌렁 울렸다.

누군가 본다면 오만한 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아마 성좌들 간의 격을 가리는 '등성 전쟁'에 그가 있었다면, 아마 궁좌의 자리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테지.

어쩌면 성좌의 자리에 관심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럼 어떻게 해요? 방법이 없는 거예요? 이대로 윈디아가 멸망하는 걸 지켜만 봐야하는 거예요?"

그녀의 말에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장인 골드가 조금 더 속력을 내고 있지만, 포트렌에서 윈디아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

아마 우리가 도착할 때쯤이면 모든 상황이 끝날지도 모른다.

[짐이 소고기가 먹고 싶구나. 미노타가 있는 곳으로 가자!]

'이노무시키가 자꾸 어른한테 말대꾸를….'

[취이익! 내가 도와주마! 미천한 네놈이 내게 몸을 빌려준다면 그 미노타가 있는 곳까지 단숨에 달려가 주마! 크하하!]

'몸을 빌려주는 방법은 알고…?'

[…그런 건 미천한 네가 아는 것 아니었나? 취이익.]

이거 진짜 대책 없는 놈이네.

'만약 내가 방법을 알아도 네놈에게 몸을 빌려주는 일은 없을 거다.'

[취익! 무례하구나! 짐은 대 오크제국 라이카의….]

'무례한 건 네놈이다. 다른 사람의 몸을 빌리고 싶으면 예의범절부터 배우고 와라. 무식한 돌머리야. 자식 농사 잘못 지어서 죽어버린 놈이 하여튼 기세는 좋아가지고. 쯧쯧.'

[취이이이익! 네놈을 찢어버리겠다아아아!!]

'그러시든가.'

꽤 아픈 부분을 건드렸는지, 무두르는 계속해서 고함을 질렀다.

가슴 아픈 얘기지만 세상엔 남보다 못한 피붙이도 있는 법이다.

그게 무두르라서 문제지만.

…아마 부활했으면 오크들 씨부터 말렸을 거야. 이놈은. 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지금 내가 느끼는 그대로의 성격이라면 말이다.

'시끄럽다. 개차반 같은 놈아! 귀청 떨어지겠다!'

[크아아아!! 죽여버리겠다아아아!!]

나는 애써 무시하며 다른 생각에 잠겼다.

정말 방법이 없는 것일까.

눈을 감으며 생각해보려는 그때, 바느질을 하던 드레인이 입을 열었다.

"오우, 여기가 빙판이면 좋았을 텐데."

"…빙판? 그게 무슨 말이냐."

"만약 여기 바다가 전부 빙판이었더라면 윈디아까지 뛰어갈 수 있잖아요. 그럼 노 프러블럼!"

빙판이라….

김수정이 말했다.

"에이, 그게 어떻게 되겠어요.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미끄러질 텐데. 그러다가 저희 다 죽어요."

"노우! 미끄러지지 않아! 절대 그럴 일 없을 걸?"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절대 미끄러지지 않는다고…? 자세히 말해봐라."

"잊었어요? 내가 만들어준 방한복에는 미끄럼 방지 기능도 있어요. 다들 북극에서 잘 입고 다녔잖아요."

"아! 그러네! 그 방법이 있었어!"

김수정이 깨달았다는 듯 박수를 쳤다. 그러고 보니, 지금 모두는 드레인이 만들어준 방한복을 가지고 있었다.

북극에서 유용하게 사용했고, 맨날 입고 있었던 터라 차마 그걸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빙판을 만들 방법이 없네요."

건조된 오징어처럼 축 처진 그녀의 어깨를 보며,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걱정 마라."

* * *

잠시 후. 나는 인벤토리에서 익숙한 물건을 꺼냈다.

그건 바로 에드워드가 주었던 스타피스. 하얀 펜던트가 하늘로 떠올랐고,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별 하나가 나타나자, 나는 입을 열었다.

"얼음 땡 요정. 도움이 필요하다."

우우우웅.

펜던트는 평소처럼 약간의 떨림을 내비쳤다.

하지만 잠시 뒤, 뜬 메시지는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메시지였다.

[스타피스의 봉인이 해제되지 않았습니다.]

[3등성, 얼음 땡 요정이 당신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뭐야. 이 녀석 왜 이러지…?

"얼음 땡 요정. 왜 그러지? 어째서 힘을 빌려주지 않는 거냐."

[3등성, 얼음 땡 요정이 당신에게 빌려줄 힘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뭐…? 이유가 뭐냐?"

[3등성, 얼음 땡 요정이 크리스마스라고 말합니다.]

이런 제기랄.

벌써 그렇게 되었나…?

다른 성좌라면 몰라도 그에게 '크리스마스'는 꽤 중요한 날이다.

특히 북극의 경제 불황을 담당하고 있는 12월의 침략자가 직접 몸으로 뛰는 날이었으니까.

설마하니 그 연례행사를 아직까지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무려 500년이라니, 이거 존경스러워 지는데.

"북극의 크리스마스가 중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약간의 여유도 없나? 네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한 도시가 멸망하게 될 거야."

[3등성, 얼음 땡 요정이 고뇌에 빠집니다.]

내 말이 제법 설득력이 있었던 모양인지, '얼음 땡 요정'은 꽤 오랜 시간 고민에 빠졌다.

그 사이 옆에 김수정이 다가왔다.

"아버님, 뭐래요?"

"어쩌면 힘을 못 빌릴지도 모르겠다."

"예…? 왜요? 안돼요. 꼭 빌려야 해요. 그래야만…."

김수정이 말끝을 흐렸다.

안타까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사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얼음 땡 요정'에게 힘을 빌려서 빙판을 만드는 것.

그의 힘을 빌린 [얼음!]은 빙판을 만들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손에 닿기만 해도 광범위한 빙결을 일으키니, 아마 바다도 얼려버릴 수 있을 테지.

[3등성, 얼음 땡 요정이 안 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제길, 역시 그런가."

예상은 했지만 그럼에도 입안이 씁쓸하다. 그래도 500년 동안이나 이어져 온 전통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저래 보여도 12월의 침략자를 500년이나 지켜온 성좌다.

그 고집을 꺾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김수정이 내 반응을 보며 눈치챘는지 허공을 향해 외쳤다.

"얼음 땡 요정! 도와주세요! 당신의 도움이 없으면 한 마을이, 아니 평화로운 한 도시가 세상에서 없어지고 말 거예요! 부탁드려요!"

[3등성, 얼음 땡 요정이 정말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3등성, 얼음 땡 요정이 자신에게도 지켜야할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를 이해한다는 어투로 말했다.

"알았다. 더 묻지 않으마. 생각이라도 해줘서 고맙다."

"아버님!"

김수정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나를 보고 있었다. 아마 내게 배신감을 느낀 모양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에겐 누구나 사정이 있듯이 성좌에게도 이유가 있고, 사정이란 것이 있다.

내가 약속의 군주라고 해서 그것을 강제할 만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3등성, 얼음 땡 요정이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나는 쏘아보는 김수정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했다.

"니콜라스에게 안부를 전해다오."

[3등성, 얼음 땡 요정이 흠칫 놀랍니다.]

[3등성, 얼음 땡 요정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니콜라스는 12월의 침략자의 진명(眞名)이었다. 물론 이름 전체는 아니고, 뒷부분이었지만, 그는 알아들었을 것이다.

[3등성, 얼음 땡 요정이 당신을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그 말과 동시에 펜던트 위에 있던 별 하나가 반짝였다.

점차 빛을 잃어가는 것이, 아마 그가 먼저 연락을 끊은 것 같았다.

옆을 보니 김수정의 울먹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녀를 달래려했지만, 그녀가 뿌리치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음, 단단히 삐친 모양인데.

[반딧불성, 카미유가 자기가 잘 달래보겠다고 말합니다.]

"부탁한다. 카미유."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견소룡이 다가왔다. 그도 안타까운지 얼굴빛이 어두워 보였다.

하지만, 그라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일이 안타깝게 됐습니다. 형님."

"…그래."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죠. 곧 포트렌에 도착할 겁니다. 저랑 뇌보법을 쓰면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저번에 그랬거든요."

"그래. 그때까지 윈디아가 무사하길 빌어야겠지."

"아마 무사할 겁니다. 너무 걱정 마십쇼."

가까워지는 항구를 보며 나도 모르게 어깨가 축 처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때였다.

"브라더. 한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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