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05화
제105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윈디아. 그곳에 일식이 시작된 것처럼 갑작스레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경악했다.
"뭐, 뭐야 저게?!"
"모래잖아? 저거 혹시…?"
"마이클이다! 제우스 길드가 미노타를 레이드 한다는 게 사실이었어!"
그와 동시에 한 인영이 마을의 중앙으로 뛰어내렸다.
그는 허공에서 모래를 밟고 내려오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윈디아의 땅을 밟았다.
"여긴 정말 오랜만에 오는군."
마이클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언제나 익숙한 눈빛.
경외가 어린 유저들의 선망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는 차갑게 지나쳤다.
주위를 둘러싸던 유저와 NPC들이 홍해 갈라지듯 갈라졌고, 그렇게 도착한 곳은 윈디아의 한 술집이었다.
들어서자마자 그는 익숙한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한 사내가 그를 향해 외쳤다.
"여, 마이클. 오랜만이야."
'카푸치노인가.'
그는 마이클이 몸담고 있는 제우스 길드에서 부 길드장을 맡고 있는 마법사였다.
이름이 '카푸치노'인 이유는 그가 단순히 '카푸치노'를 좋아해서였다.
물론, 마법으로 카푸치노를 만들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자주 사먹긴 한다.
"카푸치노. 오랜만이다. 근데 혼자 왔나?"
"아아, 다른 친구들은 잠깐 안주를 가지러 갔어. 여긴 서빙이 셀프라서 말이야."
마침 대화를 주고받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누구야! 우리 길드 에이스 아니야! 크하하하!"
2미터가 넘는 키를 가진 덩치의 사내가 마이클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의 이름은 '라인하르트'. 제우스 길드의 메인 탱커를 맡고 있는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그는 영웅 클래스인 [아이언 피스트]를 가지고 있다.
"오랜만이다. 라인하르트. 며칠 사이에 좀 야윈 것 같군."
"음? 살이 조금 더 찐 것 같지만 아무튼 고맙다! 크하하하!!"
그렇게 그와 해후를 하고, 뒤를 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길드장 '데미안'이었다.
"내가 늦은 건 아니겠지?"
"아니야. 잘 왔어. 마침 맥주도 나왔거든. 하하. 앉아."
그렇게 네 사람은 한 테이블에 앉았다.
모두가 잔을 부딪쳤고, 원샷을 했다.
라인하르트가 탄성을 뱉으며 말했다.
"크하아! 여긴 오랜만에 와도 맥주 맛이 그대로네."
카푸치노가 거들었다.
"그러게. 옛날 생각나는걸? 1년 전만 해도 우리가 이곳에서 사냥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것 같아."
마이클도 그때를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카푸치노에게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법에 대한 컨트롤 실력은 네가 제일이야."
"하하. 그렇게 띄워주지 말라고. 난 고작 희귀 클래스의 직업을 가졌을 뿐이야.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겸손하긴."
카푸치노의 직업은 희귀 클래스인 빙결의 마법사였다.
그는 낮은 등급의 클래스를 가지고도 이곳 제우스 길드에서 간부 자리에 올랐고, 그것은 그만큼 그의 컨트롤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데미안이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네 컨트롤 실력은 자부해도 좋아. 내가 본 마법사들 중 너보다 뛰어난 자는 아직 본적이 없거든."
"하하, 이것 참. 부끄럽네."
카푸치노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곧장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우리 에이스님 인기가 여전히 대단한걸?"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많은 인파가 창밖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마이클이 그들을 바라보자, 또 한 번 탄성이 터졌다.
"꺅! 마이클님이 날 쳐다봤어!"
"무슨 소리야? 날 쳐다본 거거든?"
"뭐야? 아니, 이 년이 미쳤나!"
"악! 머리 놔라. 놓으라고 했다?!"
'귀찮아 죽겠군.'
인기가 많은 건 좋았지만, 스토커는 사양이었다.
마이클은 옆에 있던 커튼 막을 내려버렸고, 아쉬워하는 유저들의 탄성이 터졌다.
그 모습을 본 데미안이 웃었다.
"팬들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니야? 그러다 안티 팬 생기겠는걸?"
"좋아해달라고 한 적이 없어서."
"하하. 여전히 냉정한 남자라니깐."
뒤에서 누군가 솟아오른 건 그때였다.
"그게 매력이지."
"왁!!"
라인하르트는 들고 있던 감자튀김을 허공으로 던져버렸다.
손이 얼마나 컸으면 한두 개가 아니라 열 개가 날았다.
그중 하나가 마이클이 쥔 맥주잔 안으로 떨어졌고, 마이클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젖은 감자튀김을 꺼내며 말했다.
"레이나. 인기척 좀 내라고 했을 텐데."
"어머~ 나도 엄연히 초대받은 손님인데? 우리 에이스님이 화가 나셨나? 후후."
머릿결을 찰랑이는 레이나의 풍만한 가슴이 출렁거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몰렸지만, 마이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앉아라. 회의 시작할 거니까."
"후후, 난 차가운 남자는 싫은데. 하지만 나처럼 뜨거운 여자랑 만나면…."
"뜨거운 물 부어버리기 전에 앉아라."
"어머나, 매정하셔라."
레이나는 몸매가 쫙 달라붙은 암살자 특유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탐을 낼 만큼 매혹적인 자태였지만, 속으면 안 된다.
그녀는 이곳의 누구보다 잔인한 손속을 가진 여자니까.
'어떻게 저렇게 직업이랑 잘 어울리는지.'
그녀는 암살자 계열의 영웅 클래스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 전장의 사신이란 이름이었던가.
레이나가 교태를 부리며 앉자, 회의가 시작됐다.
포문을 연 것은 데미안.
"다들 동영상은 보고 왔겠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데미안이 다시 말했다.
"이번 레이드 대상은 미노타라는 몬스터야. 강력한 화염을 다루고 있고, 공격력과 방어력도 엄청난 녀석이지. 우리가 저번에 싸웠던 '바실리스크'보다 50레벨 높은 것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야."
"하하하. 걱정 말라고! 나 라인하르트가 있으니까!"
라인하르트가 큰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킹콩 같다.
"그래도 방심하지 마. 동영상에서 보면 다른 길드들은 힘조차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당했어. 그들 중에도 영웅 클래스가 있단 걸 잊은 건 아니겠지?"
"끙."
"여기서 미노타와 상성이 맞는 건 '마이클'과 '카푸치노'뿐이야. 너희 둘의 역할이 중요해."
마이클이 카푸치노와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나가 손을 들었다.
"그럼 난 뭐하면 될까~? 길드장님?"
"레이나, 넌 나와 빈틈을 노린다. 넌 은신 스킬로 뒤에서 기습을 하도록 해. 낫으로 발목을 베어도 좋을 것 같아."
"후훗, 뒤에서 베는 건 언제나 즐겁지."
마이클은 데미안에게 물었다.
"넌 어쩌려고?"
"난 앞에서 그 녀석을 유인하는 역할을 할 거야. 사실 은술사는 그놈과 상성이 꽤 좋지 않은 편이거든. 그래도 스타피스가 있으니 괜찮을 거야."
"황야의 여행자?"
"맞아. 그걸 꺼냈어."
데미안은 영웅 클래스 은술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연금술사 계열의 직업인데, 은을 연성해 검으로도, 창으로도, 심지어 채찍으로도 쓸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클래스였다.
"그럼 넌 원거리 딜러가 되겠군."
"그래야겠지. 그나저나 네 성좌는 아직 힘을 빌려주지 않아?"
그의 말에 마이클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전갈궁, 안타라스가 모래의 권능만 빌려줄 것이라 말합니다.]
"모래의 권능만큼은 허락했다."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럼 넌 모래로 수비를…."
"잠깐,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 * *
회의는 성황리에 끝났다.
이미 각자 동영상을 보며 시뮬레이션을 해본 상태였고, 호흡은 찰떡같이 잘 맞았기에 많은 말도 필요치 않았다.
마이클은 길드원들과 함께 코볼트 광산으로 향했다.
'…잘되어야 할 텐데.'
그는 지금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모래의 권능은 수비적으로만 사용해봤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허공에 뜬 모래에 앉아 움직이는 그에게 말을 탄 데미안이 다가왔다.
"진짜 편리한 능력이란 말이야. 그 모래."
"네 은술도 만만치 않아."
"하하. 난 그래도 그렇게 이동수단으로 쓰진 못하는 걸?"
"난 말을 타고 싶은데."
"그럼 우리 바꿔 탈까?"
"아마 넌 여기 못 탈걸. 내가 밀어버릴 거라서."
두 사람은 함께 폭소를 터트렸다.
분위기가 조금 풀어지자 데미안이 물었다.
"불안해?"
"조금."
"걱정하지 마. 내가 생각해도 그건 획기적인 방법이었어. 아마 세상 사람들은 깜짝 놀라게 될 거야. 넌 다시 한번 최고라는 걸 증명하게 되겠지."
"고맙다."
"뭘, 우리 사이에."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코볼트 광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앞은 이미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고 수정구슬이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보니 방송국 관계자들인 듯했다.
'아까 회의에서 말한 대로 정말 생방송인가 보네.'
사실 한 두 번 해본 것은 아니었기에 큰 긴장감은 없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마이클은 이상하게도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쿵. 쿵.
'침착하자. 난 언제나 최고였어. 그리고 오늘 그것을 증명하는 날이야.'
이상하게도 최고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자신에겐 운명과도 단어일지도 모른다.
데미안이 입구를 지키는 병사에게 말했다.
"여기 레이드 허가 서류를 가지고 왔습니다."
"음, 그대들이 제우스 길드로군. 조심하라고, 이 안의 괴물은 아직 그 누구도 쓰러트리지 못했으니까."
"명심하지요."
그렇게 안으로 들어섰다.
무려 200명에 가까운 인원이었고, 그 사이엔 방송국 관계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영상에서 보았던 3층의 비밀 계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갈궁, 안타라스가 익숙한 기운을 느낍니다.]
'아무래도 이 밑인 모양이군.'
"가자."
마이클은 가장 앞장서 그곳을 내려갔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곳이었고, 발을 헛디디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그곳을 내려오자, 메시지가 떴다.
[신성한 바람이 흐르는 곳입니다.]
[이동속도가 10% 증가합니다. 공격속도가 10% 증가합니다.]
[화염 계열 공격력이 1.5배 증가합니다.]
[여신의 가호가 신전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니, 하얀 돌로 지어진 신전이 있었다.
영상에서 본 것처럼 웅장하고, 기품이 있어 보이는 모습.
마이클은 길드원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움직였고, 잠시 후 거대한 미노타의 몸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갈궁, 안타라스가 입꼬리를 올립니다.]
미노타는 등을 돌린 채 낮잠을 자고 있었다.
마이클의 눈이 길드원들을 훑자,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인하르트는 최전방에 서서 마음가짐을 다졌고, 카푸치노는 최후방에서 빙결 마법을 준비했다.
레이나는 은신 스킬을, 데미안은 옆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마이클이 그의 손에 쥐어진 총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스타피스, '황야의 여행자'가 쓰던 리볼버]
등급: 성유물
사용 제한: 순결한 용기의 군주
공격력: 350
힘+20, 민첩+30
*엘리멘탈 불렛 – 화염, 얼음, 빛, 어둠 속성의 총알을 장전해 쏠 수 있다. 현재는 봉인이 되어 있는 상태라 화염탄과 얼음탄만이 사용이 가능하다. 한번 장전에 6발을 장전할 수 있다. (마력 소모: 1%)
*아직은 알 수 없는 스킬입니다.
*아직은 알 수 없는 스킬입니다.
-상세한 정보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마이클이 파르타 공국 근방을 여행하다 얻게 된 것이었다.
우연히 얻었지만 다행히 봉인이 풀린 스타피스였다.
그는 천성이 '차가운 자비의 군주'였기에 쓸 수 없었지만, 데미안은 쓸 수 있었다.
데미안이 얼음탄을 전하며 미노타를 향해 겨누었다.
흐르는 긴장감 위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 탕!
탕! 탕!
탕! 탕!
마이클이 검을 뽑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