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04화
제104화
백무열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스쳤다. 순간 눈앞의 메시지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것 같았다.
지나가던 성좌라니, 갑자기 이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이야압!"
퍼억! 퍽!
"크윽."
팔을 얻어맞고, 옆구리를 얻어맞았다.
다행히 치명타는 피할 수 있었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수세에 몰린 백무열은 가쁜 숨을 내쉬며, 현란한 봉을 막아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발길질에 복부를 얻어맞고 말았다.
그는 재빠르게 뒷구르기로 다시 일어섰다.
"허억. 허억. 진절머리 나는 놈."
"후후. 칭찬해주니 고맙군."
"뭔 개소리냐. 칭찬 아니다. 이놈아!"
"내겐 칭찬이다아악!!"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머머리의 날카로운 공격.
백무열은 다시 집중하며, 공격을 막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지나가던 한 성좌가 당신의 몽둥이질이 마음에 든다고 합니다.]
'뭔, 개소리야?'
목검을 크게 휘두른 백무열은 머머리와의 거리를 크게 벌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한 성좌가 자신이 이기게 도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슨 헛소리야. 너 누구냐…?"
[지나가던 한 성좌가 도움을 받고 싶다면 '여장'을 권유합니다.]
"…미친놈.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그딴 도움은 필요 없다."
[지나가던 한 성좌가 폭소를 터트립니다.]
백무열은 곧장 달렸다.
이번엔 수비만 취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목검의 끝이 위협적으로 머머리를 찔렀다.
그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큭! 끝까지 해보겠다는 거냐!"
"오늘 네놈과 나, 둘 중 하나는 사라질 때까지 싸우는 거다."
"이런 미친…!"
두 사람은 다시 목검과 나무 봉을 밀며 힘겨루기를 했다.
막상막하였지만, 백무열이 살짝 밀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밀어내며 다시 거리를 벌렸고,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지나가던 한 성좌가 당신을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봅니다.]
백무열의 눈은 이제 눈앞의 메시지에 있지 않았다.
그는 남아있는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모든 사위를 지워나갔다.
떠들썩한 훈련소. 밟고 있는 모래.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
모두가 지워졌다.
지금 그의 주변엔 그와 목검. 그리고 오로지 머머리만이 있었다.
멈춰가는 시간 속에서 백무열은 생각했다.
'딱 한 번의 빈틈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와의 힘겨루기는 사실상 승산이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목검을 다루는 무기술 만큼은 백무열이 훨씬 위라는 것.
능력치의 상승은 신체의 능력만 올려줄 뿐. 무기술은 오로지 휘두르는 사람의 몫인 것이다.
'방법은 하나뿐이야.'
카운터.
미세하지만 머머리보다 살짝 빠른 백무열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었다.
문제는 봉의 리치가 길어서 접근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백무열은 목검을 강하게 쥐었다.
'빈틈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건인데.'
그의 이마를 타고 구슬땀이 흘러내린다.
'후우, 덥네. 이놈의 해가… 잠깐. 해…?'
상념이 깨진 것은 그때였다.
머머리가 봉을 깊게 찔러 들어왔고, 백무열은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머머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흐흐. 이젠 끝이다! 늙은 훈련병!"
그의 봉이 명치를 찔러왔지만, 회심의 미소를 지은 건 그만이 아니었다.
백무열은 몸을 회전시키며 보법을 밟았고, 머머리는 갑작스러운 눈부심에 경악했다.
"윽!"
그 찰나를 백무열은 놓치지 않았다.
찔러오는 봉을 빗겨냄과 동시에 머머리의 목젖을 찌른 것이다.
푹.
[치명적인 일격! 대상의 호흡이 잠시 멈추며 1초간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상태이상 '호흡곤란'에 빠지며 1초간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단 1초였지만, 그것은 결투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백무열은 그의 손을 때리며 무기를 놓도록 만들었다.
결국 그는 봉을 떨어뜨렸고, 그때부터는 백무열의 시간이었다.
퍽! 빡! 퍽! 퍼어억! 퍽! 퍽!
무자비하게 이어지는 연속 공격.
그의 사지를 때리고 배를 때리고 명치를 찔렀다.
머리를 제외한 모든 곳이 비어있었고, 팔과 다리에 멍이 늘어났다.
모두가 입을 벌린 채 숨을 죽였고, 머머리는 계속해서 얻어맞았다.
숨이 가빠지는 극한의 상황속에서 백무열은 무아의 경지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그가 쓰러지자,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아-!!!!!"
"미쳤다-!!!!!!!!!"
"지저스 크라이스!!!!!!!"
"와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결말을 알리는 징소리가 울렸고,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최종 승리를 달성하셨습니다!]
[아무도 믿지 못할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칭호 <1레벨에 교관을 쓰러트린 자> 를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올랐습니다!]
[당신의 명성이 훈련소 가득 퍼집니다!]
[원한다면 1계급 특진을 할 수 있습니다.]
"허억. 허억."
백무열은 올라가는 메시지를 읽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 힘겨운 승부라고 할 수 있었다. 무려 한 시간이나 싸웠다면 누가 믿을까.
[지나가던 한 성좌가 당신의 몽둥이질에 감탄합니다!]
[지나가던 한 성좌가 당신에게 <몽둥이의 가호> 를 내립니다!]
[지나가던 한 성좌가 흡족한 표정으로 떠납니다.]
'몽둥이의 가호…? 대체 뭐하는 놈이지?'
띠링-!
[몽둥이의 가호][액티브]
등급: 전설
몽둥이를 좋아하는 한 성좌의 가호가 담긴 스킬이다.
-몽둥이 종류의 무기를 사용할 경우 물리 공격력이 2배, 공격속도가 2배로 증가합니다.
-나무 몽둥이의 경우 부러지지 않게 되고, 공격속도는 3배로 증가합니다. 이것은 목검에도 적용됩니다.
-일시적으로 레벨 x1.5 만큼 힘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단, 스킬 사용시 해당 성좌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현재 이 스킬을 얻은 사람은 당신을 포함해 총 3명입니다.)
'아니, 별 희한한 놈을 다 보겠네. 몽둥이를 좋아한다고…? 어라, 근데 전설 등급이네?'
백무열도 전설 등급은 잘 알고 있었다. 튜토리얼에서 제일 높은 등급을 그렇게 말했었으니까.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쿤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자는 72번 훈련병!"
* * *
치열한 싸움을 끝낸 백무열은 생명력 회복을 한 후. 쿤타에게 불려갔다.
지금 있는 곳은 그의 막사였고, 눈앞의 쿤타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정말 손에 땀을 쥐는 결투였습니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정말 엄청난 무기술이었습니다! 제 평생 그토록 목검을 잘 다루는 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뭐, 그냥 소싯적에 좀 휘둘러본 거지."
"요즘 어르신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그렇구만."
백무열은 눈앞의 쿤타가 못마땅했다.
지금 그가 궁금한 것은 아까 내기를 했던 내용에 대한 것이었는데, 자꾸 엉뚱한 소리나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쿤타가 눈치를 챘는지 입을 열었다.
"아까 그 내기가 마음에 걸리십니까?"
"그래. 지켜지지 않을까 걱정되는군."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 말은 스스로 지키는 편입니다. 아까 다른 병사들을 시켜서 머머리 교관을 삭발시킬 것을 명했습니다. 하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는데…."
"뭐지…?"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머머리 교관은 대머리입니다."
"그래?"
'그래서 아까 그렇게 민감했던 건가.'
지금 떠올려보니, 그가 화를 냈던 것이 '머리가 없다'라는 단어에서 였던 것 같다.
아까 그에게 뱉은 말에는 공통적으로 그 말이 들어가 있었다.
이거 왠지 미안해지는데.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기는 내기. 약속대로 위는 못 밀어도 아래는 밀어버릴 것을 명했습니다."
"그, 그래…?"
"예. 아마 스스로 밀 겁니다."
'왠지 불쌍하군.'
스스로 바리깡을 들고 아래를 밀어버릴 머머리를 떠올리니 미안함이 밀려온다.
그래도 실력은 제법 괜찮은 놈이었는데….
"실은 머머리 교관에 대한 익명의 신고가 있었습니다. 훈련병들에게 삭발을 시키는 가혹 행위를 한다는 것이었지요. 따끔하게 한 소리를 하려 했는데, 어르신께서 저 대신 혼내주신 셈입니다. 하하하."
"…그래도 너무 혼내지 말게. 제법 괜찮은 실력을 가진 친구야."
"하하.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말꼬리를 흐리는 쿤타를 보며 백무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 말이 있나…?"
"예, 실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탁? 그게 뭔가."
쿤타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곳의 검술 교관을 맡아주십시오."
* * *
쏴아아-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
배가 움직일 때마다 밀려오는 하얀 거품과 드넓은 바다의 지평선이 조화를 이룬다.
어느새 이곳은 하루가 지났고, 오늘은 포트렌에 도착을 앞둔 날이었다.
나는 지금 견소룡의 수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파파팟! 팟팟!
어우 빠르긴 하네.
그의 옷에 달린 소맷자락이 바람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생각보다 재빠르고 유연한 움직임에 나는 속으로 감탄을 했다.
…영춘권이라고 했던가?
시간 나면 그에게 잠깐 배워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고, 2시간 뒤면 포트렌에 도착하겠지만, 뭐 그때까지 할 일은 없으니까.
"소룡아."
"예. 형님."
"영춘권이라는 거 나도 배워 볼 수 있냐?"
"…예?"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던 견소룡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리곤 나를 보며 물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십니까…?"
"그럼 내가 거짓말 하는 것 같냐?"
"형님은 제게 배울 레벨이 아니신데요."
"그건 발차기지. 주먹이 아니잖냐."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알겠습니다. 이리 오십시오. 형님."
그는 내게 영춘권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 해주었다.
"영춘권은 서양에서 차이니즈 복싱으로 불리는 무술로, 사실 그 기원은 엄영춘이라는 여인에게서 나온 것으로…."
"…기원은 됐다. 바로 실전으로 들어가자."
"알겠습니다. 그럼 기초부터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나는 견소룡에게서 영춘권의 원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무술은 초 근접전에 바탕을 둔 권법이었다.
여느 무술보다 간격이 좁고, 짧은 공격을 추구했다.
하지만 약점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라운드 기술이 부족하군. 그리고 파괴력이 부족해.
부족한 파괴력은 연타로 해결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주먹에 회전을 주지 않고 힘을 싣지 않음으로써 부상을 최소화시켰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렇기에 어느 무술보다 유연하기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 것 같구나. 바로 붙어보자."
"정말 이것만 배우고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내가 원래 이런 쪽으론 배움이 빠르거든."
"음. 그럼 제가 절반의 힘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살짝 거리를 벌린 우리들은 잠시 뒤, 바람 소리를 내며 맞붙었다.
팟. 파팟. 팟팟. 팟!
그가 뻗어오는 주먹들이 허공을 갈랐고, 나 또한 그에게 지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서로의 주먹이 교차하고, 뻗어졌다.
왼쪽, 오른쪽, 오른쪽, 위, 아래. 왼쪽, 다시 오른쪽. 오른쪽.
이내 그는 내 팔목을 잡았고, 나도 그의 팔목을 잡았다.
대련은 멈추었고, 견소룡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님. 영춘권을 배우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 이번에 처음 배우는 거다."
"처음 배우시는 분의 움직임이 아닌데요…?"
나는 그에게 말했다.
"혹시 '만류귀종'이라는 말을 아냐?"
"압니다. 저희 중국에서는 꽤 유명한 말이지요. 모든 흐름은 하나로 통일된다. 무협지에서도 자주 보던 말입니다."
"그래. 사실 난 5살부터 꽤 많은 무술들을 접할 수 있었다. 어렸을 적 날 길러준 사람이 북파 공작원들을 기르는 교관이었거든. 난 그곳에서 살인 병기로 길러졌다. 해군이 있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UDT로 이름이 바뀌었더구나."
"아, 그런 사연이…."
"아무튼 영춘권도 원리는 그때 배웠던 무술들과 일맥상통하는 것들이 있구나. 약점도 보이고."
"역시 형님은 대단하십니다."
"뭘, 새삼스럽게 껄껄."
그때였다.
낚시를 하고 있던 김수정이 헐레벌떡 이곳으로 달려왔다.
어느새 앞에 선 그녀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아버님 큰, 큰일 났어요!"
"무슨 일이냐? 숨부터 고르고 얘기하거라."
"헉, 윈디아가… 허억."
"윈디아가 왜…?"
"위험한 것 같아요."
…뭐?
그녀가 다급하게 말했다.
"화산이 터지기 시작했대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