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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03화 (103/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03화

제103화

"위, 위도, 그리고 아래도…?"

헬멧을 쓴 교관은 곧장 아래쪽 사타구니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더니 다시 노기 어린 음성을 뱉었다.

"큭, 감히 본 교관을 상대로 이겨보겠다는 것이냐! 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거늘!"

교관은 계속해서 험한 말을 뱉었지만, 듣지 않았다.

지금 그의 눈은 퀘스트 창을 향하고 있었다.

[히든 퀘스트 - 조교를 꺾어라!]

난이도: B-

뮬란의 훈련 교관 '머머리'는 정신 무장이 부족한 당신과 동료들을 '삭발'시키려고 합니다. 그에게 반기를 든 당신! 만약 그와의 결투에서 이긴다면 당신과 동료들은 '삭발'을 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머머리'는 당신을 괘씸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완료 조건: 머머리와의 결투에서 승리 0/1

-보상: 삭발 면제, 훈련소장 쿤타의 호감도 증가.

-실패 시: 털이란 털은 모조리 밀리게 됩니다. 위도, 아래도.

'이름이 머머리였나? 이상한 이름이군. 근데 훈련소장의 호감도가 왜….'

"그거 재밌겠군."

모두의 고개가 뒤로 향했다.

그곳엔 울긋불긋한 근육을 가진 새카만 피부의 중년. 훈련소장 '쿤타'가 서 있었다.

입소할 때 잠깐 본 적이 있다. 그가 머머리를 향해 걸어왔다.

"내가 심판을 보도록 하지."

"소, 소장님. 진심이십니까?"

"왜, 자신 없나…?"

"그건 아니지만…. 제가 저 늙은이를 꺾지 못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머머리 교관. 노인을 무시하지 마라!"

"죄,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운 쿤타의 호통에 머머리가 차렷 자세를 취했다.

제법 군기가 바짝 든 것이 긴장한 듯 보였다.

"잊지 마라. 우리 '뮬란의 영웅'이 어떤 분이신지!"

"죄송합니다!"

머머리를 지나친 쿤타가 걸어왔다.

이번엔 그가 자신에게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72번 훈련병이오."

* * *

작열하는 뮬란의 태양.

그 아래로 펼쳐진 모래의 사장에 많은 훈련병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둥근 원형으로 진을 만들며 누군가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 사이로 쿤타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대결은 3판 2선승제로 한다! 스킬이나, 마법은 쓸 수 없고, 오로지 무기술로 자웅을 겨룬다. 방어구는 착용하지 않지만, 생명의 보호를 위해 투구는 착용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항복하거나 전투불능이라고 판단되면 지는 것으로 한다! 이의 있나?"

머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없습니다."

백무열 또한 마찬가지.

"나도 없소."

"그럼 시작한다!"

쿤타가 물러서자, 징이 울렸다.

과아아아앙-!

많은 훈련병들의 함성이 들렸고, 그들 중에는 한국인도 있었지만, 외국인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크스타의 종주국답게 역시 한국인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할아버지. 파이팅~!"

"이길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안 하지만 응원합니다!"

"있다가 단체로 삭발한 모습 기대할게요!"

'…저놈들은 내가 질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물론 진짜 그럴 수도 있다.

내 앞에 있는 머머리는 10레벨을 가지고 있었고, 백무열은 1레벨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져줄 생각은 없다.

"영감 후회하게 될 거야. 내가 한 손으로 이겨서 모욕을 줄 거거든."

"오, 그래…? 근데 그러고도 네놈이 이길 수 있을까?"

"크윽, 이자가 끝까지…!"

머머리의 무기는 나무로 만든 기다란 봉이었다.

리치가 길어서 적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무기.

반면, 백무열은 짧은 나무 목검을 쥐고 있었다. 리치는 짧지만 그에겐 이 무기가 최고였다.

뒤에서 김기태가 긴장된 표정으로 서있자, 백무열이 입을 열었다.

"해바야."

"예. 회장님."

"내가 질 것 같으냐?"

"…아닙니다."

"그럼 인상 좀 펴라."

그와 동시에 머머리의 일점 찌르기가 쇄도했다.

머리를 노린 공격이었지만, 백무열은 가볍게 피해냈다.

'몸이 조금 무겁긴 하지만 썩 괜찮군.'

그래도 현실의 몸보다는 아직 조금 느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이제 막 시작한 초짜였으니까.

"노인치곤 움직임이 제법이야."

봉을 거두어들인 머머리가 한 손으로 나무 봉을 돌리며 거들먹거렸다.

그의 한쪽으로 올라간 입꼬리가 굉장히 얄미워 보인다.

"싹퉁머리 없는 놈."

"머, 머리가 없다고? 크윽! 용서할 수 없다!"

'그 뜻이 아닌데…. 왜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머머리의 나무 봉이 전신을 찌르고 때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무와 나무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훈련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딱! 딱딱! 딱!

생각보다 치열한 접전.

훈련병들의 탄성이 터졌다.

"할아버지 생각보다 잘 싸우시는데?"

"어디서 검도라도 배우셨나?"

"목검 놀리는 게 보통이 아닌데?"

백무열은 생각보다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머머리는 정말 한 손으로 봉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것은 휘두르는 속도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자기가 굳이 한 손으로 하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도 손해 볼 것은 없으니까.

'1승 고맙게 받으마.'

퍽! 퍽퍽! 퍽!

머머리는 갑자기 팔과 옆구리를 얻어맞기 시작했다.

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윽, 뭐, 뭐야!"

백무열은 더욱 빠르게 달려들었다. 무기를 고쳐 잡을 틈을 주지 않으려는 이유였다.

빠악-!

짧은 목도가 그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이 미친 늙은이가!!"

냉정을 되찾지 못한 머머리는 계속해서 얻어맞았다.

훈련병들 사이에서도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상반되는 반응이었다.

"이야. 대박이네. 저 할아버지 정체가 뭐지?"

"설마 이긴다고? 야 영상 잘 찍고 있지?"

"어. 저거 봐. 미쳤어."

딱! 빡! 빡! 빠악! 퍼어억!

접근을 허용한 머머리는 하염없이 얻어맞았다.

그게 리치가 긴 무기의 약점이었고, 그나마 백무열이 기댈 것은 민첩 능력치밖에 없었다.

이동 속도는 현실보다 느렸지만 손에 쥐고 있는 목검만큼은 현실감이 넘쳤다.

마침 현실을 재현하기 딱 좋은 공격속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머머리는 계속된 공격에 나무 봉을 놓치자, 고성을 질렀다.

"항, 항복!!"

무자비한 목검이 멈췄고, 그와 동시에 징이 울렸다.

과아아앙-!

[첫 승을 달성하셨습니다!]

[믿지 못할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칭호 <1레벨에 교관을 폭행한 자>  를 획득하였습니다.]

[영구적으로 힘+10 민첩+10이 올랐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 크하하.'

생각지도 못한 보상이다. 백무열의 입꼬리가 씰룩거렸고, 쿤타가 소리쳤다.

"첫 대결의 승자는 72번 훈련병이다!"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우와아아아-!!"

"지렸다아아아아-!"

"초대박이다~!!!!!"

많은 이들이 좋아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아까 함께 훈련을 받았던 젊은이들. 그들은 머리를 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꺼운 듯 제일 크게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뒤에서 김기태가 수건을 건네며 다가왔다.

"역시 아직 녹슬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왕년보다는 못해도 손자 가르칠 정도는 되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돌리니, 머머리는 빨간색 물 같은 것을 마시고 있었다.

아마 저게 튜토리얼에서 보았던 포션이라는 것 같은데, 맞나 모르겠다.

곧 체력을 회복한 그가 이를 갈며 다가왔다.

"…실력은 인정하지. 이젠 봐주지 않겠다. 늙은 훈련병."

"원래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지."

"흥. 두고 보자."

잠깐의 휴식시간이 지나고, 다시 징이 울렸다. 그리고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무슨…?!'

아까보다 머머리의 속도가 한층 높아져 있었다.

하지만 백무열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너무나 빠른 공세에 백무열이 수세에 몰리며 신음을 뱉었다.

"크윽."

방심한 것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백무열은 방심하지 않았다.

그게 그가 치열했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고, 함정에 빠져 20명과 싸웠을 때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난 지지 않는다. 내 별명 패죽은 그냥 붙은 게 아니야!!'

정신을 집중한 백무열이 수세 속에서도 목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머머리의 생명력을 절반도 깎지 못하고 지고 말았다.

[연승에 실패하셨습니다!]

[교관과의 대결로 맷집이 증가했습니다.]

[건강 능력치가 +2 증가하였습니다.]

'빌어먹을.'

능력치가 오른 건 좋았지만 전혀 기분이 좋지 않다.

아무래도 저 망할 놈이 허언을 한 건 아닌 모양이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아까는 이 정도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분명….

생각에 잠긴 백무열의 곁으로 김기태가 포션을 가져왔다.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

"면목 없구나."

"아닙니다. 전 회장님을 믿습니다."

"…최선을 다해야겠지."

"회장님은 늘 그러셨습니다."

그의 말과 동시에 포션을 꿀꺽 삼켰다.

생명력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고, 곁눈질로 건너편에 있는 머머리를 살폈다.

그도 지금 포션을 마시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때, 백무열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잠깐, 저거 혹시…?'

지금 머머리가 먹고 있는 빨간 물약의 정체.

그건 아까 전 튜토리얼에서 보았던 버프 포션 중 하나였다.

5분간 모든 능력치를 5% 상승시키는 그것.

회복 포션과는 병이 조금 다르지만 비슷해서 주의를 하며 외웠던 것이었다.

지금 그는 3개의 포션을 마시며, 그 중 하나를 몰래 버프 포션으로 마시고 있었다.

'설마 저놈 저걸 먹어서 강해졌던 건가…?'

그의 옆을 보니, 한 교관이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타르모'. 두 사람의 입꼬리가 악마처럼 올라갔다.

'한패였구나…!'

치명적인 실수다.

설마, 한패가 있을 줄은….

고개를 돌려 쿤타를 보니, 그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 말하기는 늦었다.

이미 포션을 다 마셔버려서 증거가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겁한 놈."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다."

백무열은 이를 갈며 다시 모래 사장위로 올라갔다.

지금으로써는 전혀 방도가 없다.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두 사람은 서로 마주섰다.

"감히 버프 포션을 마셔…?"

"후후. 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인정머리 없는 새끼."

"이이이익…!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을 하다니!"

과아아앙-!

다시 한번 징이 울렸고, 훈련병들의 함성소리가 높아졌다.

머머리가 봉을 휘두르며 말했다.

"죽어라! 이 늙은이야!!"

빠르게 쇄도하는 머머리의 봉 끝.

백무열은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며 그의 공격을 피해냈다.

역시 두 손으로 휘두르니 완전해지는 느낌. 생각보다 그의 빈틈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딱-! 딱딱-! 딱-!

백무열은 오로지 손에 쥔 목검에만 집중했다.

다른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이 공간. 이 시간에, 그와 목검. 단 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두 사람이 동시에 노호성을 터트렸다.

"우오오오오!!"

모래가 튀고, 나무의 파편이 튀고, 긴장감이 튀었다.

모두가 침을 삼켰고, 지켜보던 훈련병들도 과연 이 대결의 끝이 어디로 이어질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박빙. 하지만 힘의 균형은 금세 무너졌다.

백무열이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회장님!"

김기태의 외침과 동시에 다른 훈련병들도 미간을 찌푸리며, 탄식을 흘렸다.

그들은 역시 이기지 못하는 쪽으로 생각을 고친 듯했다.

하지만 백무열은 포기하지 않았다.

공격을 하지 않고, 오로지 수비에만 집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30분이 흘렀다.

"와, 미쳤네. 저 할아버지 진짜 대단하지 않냐?"

"엄청난 정신력이야.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하실 수 있지?"

"오 마이 갓. 한국에 엄청난 플레이어가 나올 것 같아."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그들의 위로 작열하는 태양이 뜨겁게 내리쬔다.

백무열은 등 뒤로 넘어간 태양 때문에 무수히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차갑게 느껴졌다.

'결국 지는 것인가.'

이미 몸은 한계에 다다랐다.

떨려오는 손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고, 무더운 폭염에 집중력도 흐려지고 있었다.

"후우. 네놈 생각보다 제법이구나."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늙은이. 허억."

그들은 서로 발을 떼지 못했다.

단, 한 번. 그 한 번에 모든 것이 갈릴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백무열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떴다.

[지나가던 한 성좌가 당신을 찜했습니다.]

'뭐야 이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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