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02화

제102화

진화라고…?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어안이 벙벙하다. 하긴 할 때가 되긴 했는데, 그게 지금 일 줄은 몰랐지만.

[새로운 능력이 개화하기 시작합니다.]

[솔라는 특정 레벨을 기점으로 성장합니다.]

[다음 성장은 200레벨입니다.]

"100레벨을 기점으로 진화하는 모양이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솔라는 계속해서 광채를 뿜어냈다.

빛은 기이하게 뒤틀리며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고, 잠시 뒤 빛이 잠잠해지자 김수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 대박!"

[태양의 정령, 솔라가 첫 번째 진화를 마쳤습니다.]

[유년기 ->   성장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성격이 더욱 활발해지고, 지적 능력이 소폭 상승하였습니다.]

[태양의 불꽃이 더욱 강해집니다.]

[조그만 손이 생성되어 더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능력 '썬 익스플로전'을 습득하였습니다!]

-썬 익스플로전: 태양의 정령 솔라가 본인의 태양 에너지를 소모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폭발 반경은 100M이며, 거대한 태양의 화염에 휩쓸린 적들은 일정 확률로 상태 이상 '화상'에 걸립니다. 폭발한 솔라는 다시 원래의 크기로 돌아갑니다.

…음. 나쁘지 않군.

안 그래도 기다리던 순간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능력을 개화하지 않길래 조급해하던 차였는데,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솔라는 아직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때는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이겠지. 물론 지금도 마음에 들지만.

"솔라가 강해졌다! 주인아!"

조그만 손이 생긴 솔라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작게 미소 지으며, 쓰다듬어주었다. 더욱 거칠어진 불꽃이지만, 따스하게 느껴진다. 확실히 강해지긴 했나 보다.

"장하구나. 껄껄."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견소룡이 뛰어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소란에 놀란 모양이다.

"너무 늦게 왔다. 이 녀석아."

"죄송합니다. 형님. 큰일은 아닌 모양이군요. 다행입니다. 전 또 형님이 위험하실까봐 가슴이 철렁했지 뭡니까."

"쯧쯧, 다음엔 뇌보법으로 튀어 와라. 이놈아."

"하하. 알겠습니다."

그도 솔라를 흘겨보더니, 상황을 이해한 듯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성좌들의 축하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솔라의 진화를 축복합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솔라의 진화를 축하하며 푸른 번개를 발산합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번잡하다며 레이트라를 때립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습니다.]

나는 메시지를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사실 레이트라가 저런 취급 받을만한 놈은 아닌데 말이지.

그는 2등성의 성좌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전투력을 지닌 성좌였다.

전투를 숭상하는 일족인지라 조금 무식하긴 해도, 그는 꽤 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힘이 약한 여인은 건드리지 않고, 악당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의협심이 뛰어난 성좌.

오죽하면 성좌들 사이에서 칠성협(七星俠)중 한 명으로 불리겠는가.

그리고 여담이지만, 카미유도 칠성협 중 마지막을 차지하는 성좌였다. 그래서 내가 그녀를 고른 것도 있지만.

"그만해라. 카미유. 레이트라도 좋아서 그런 건데. 고맙다. 레이트라."

[주먹성, 레이트라가 환한 표정을 짓습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나는 카미유에게 말했다.

"카미유. 이건 안 먹을 거냐? 빨리 안 먹으면 다 식는데."

지금 내 손에는 완성된 스타 피쉬의 요리가 있었다.

카미유가 화들짝 놀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식전 기도문을 외기 시작합니다.]

김수정의 머리 위로 스파크가 튄 건 그때였다.

츠츠츠츳.

"뭐, 뭐야?"

"아무래도 따라하라는 것 같구나."

"뭘요?"

"카미유는 원래 음식을 먹기 전 기도를 하는 버릇이 있다."

"그, 그래요? 어?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라요!"

방금 전 스파크는 아무래도 '기억 전이'였던 모양이다.

김수정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이건 히포크라테스 선서잖아? 이건 나도 아는 건데, 카미유가 이걸 어떻게…? 아~ 그런…. 그랬구나."

김수정은 잠깐 의문을 가졌지만 금세 무언가를 읊기 시작했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는…."

그녀의 기도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은사에 대한 존경과 감사, 양심과 위엄으로 베푸는 의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희생정신 등.

심장에 손을 올린 채, 한 손을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처음 보는 그녀의 진지한 모습이 새삼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역시 예비 며느리로 점찍길 잘했구만.

그나저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라….

사실 이곳 세계에도 히포크라테스가 있다.

그는 무려 의성(醫聖)이라고 불렸는데, 카미유의 스승이었다.

카미유가 그 선서를 알고 있는 건 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기도를 마친 김수정이 반딧불을 움직였고, 내가 만든 스타 피쉬 요리는 야광 빛으로 기화하며 사라졌다.

그런데… 왜 절반만 가져갔지.

"이건 우리가 먹으래요."

"그래…?"

[반딧불성, 카미유가 좋은 것은 나눠 먹는 거라 배웠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인가.

"고맙다. 잘 먹으마."

우리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를 나눠 먹었다.

그날 밤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 * *

약간은 한적한 카페 안.

차진철은 잠깐 시간을 내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최미도.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차진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실물이 훨씬 이쁘구나?"

"제가 한 미모 하죠."

"뻔뻔하기도 하고."

"당당한 거라고 해주실래요?"

"…그래. 그건 그렇고. 갑자기 왜 보자는 건데?"

미도의 볼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그걸 몰라서 물어요…?"

"응. 몰라서 묻는 건데."

"…치."

'왜 이래…?'

자기가 갑자기 나오라고 그래놓고, 혼자 삐져있다. 차진철은 여전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아버지는 왜 만나고 싶은 건데요?"

아, 그런 이유였나.

"할 말이 있어서."

"그러니깐 그 할 말이 뭔데요?"

"비밀."

"무슨 남자가 이렇게 비밀이 많아요?"

"원래 비밀이 많은 남자가 치명적이라고 그러더라고. 우리 매형이."

"…아, 진짜. 그럼 그날은 어떻게 된 거예요?"

'그날…? 대체 어떤 날을 말하는 거지.'

의문은 금방 풀렸다.

"그 왜 있잖아요. 할아버지 만났을 때, 갑자기 죽은 거."

"아, 그거?"

"저 진짜 깜짝 놀랐어요. 갑자기 로그아웃해서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를 의심했다구요. 할아버지한테 얼마나 미안하던지."

'흐음,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차진철은 사실대로 얘기하려다가 깊은 고민이 들었다.

만약 여기서 미도에게 진실을 말했다가는 할아버지가 큰 곤경에 처할 것이다.

안 그래도 부탁을 하러 가는 입장인데, 할아버지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하책 중에서도 최하책.

'어쩔 수 없지.'

"비밀이다."

"아니, 무슨 국정원 요원이라도 되요? 아니면 유니온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도 되시나? 무슨 비밀이 그렇게…."

"유니온이다."

"…네?"

"내가 일하는 곳 유니온이라고."

이건 비밀이 아니었다.

* * *

그 무렵, 뜻밖의 동반입대를 한 백무열과 김기태는 제식훈련을 받고 있었다.

우렁찬 교관의 함성이 두 사람을 멈춰 세운다.

"제자리에~ 섯!"

척척.

백무열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멈췄다. 하지만 옆에 있는 김기태는 그러지 못했다.

화난 교관의 고성이 따갑게 귀를 찔렀다.

"71번 훈련병! 똑바로 안 해? 이게 대체 몇 번째야!!"

"죄,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한다!"

돌아가는 내내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백무열은 김기태를 노려보는 젊은이들을 다독였다.

"미안하네. 이 친구가 공익이라서 말이야."

"아니, 공익이면 여길 왜 들어와요?"

"아~ 진짜 미치겠네. 이번엔 좀 제대로 해요. 알았죠?"

"젠장, 완전 고문관이네."

김기태는 연신 그들을 향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백무열은 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누가 생각했겠는가.

허우대는 멀쩡한 녀석이 공익이라는 것을.

'빌어먹을. 미리 말을 하지.'

이럴 줄 알았다면, 혼자 들어갔을 것이다.

김기태가 다가오자 백무열이 물었다.

"아니, 네놈은 왜 공익인거야?"

"저 어렸을 때 싸우다가 어금니가 부러진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치과 가서 빼버렸는데, 그거 때문에 빠졌습니다."

"고작 그런 이유라고…?"

"예…."

"진작 얘기하지 그랬냐. 그럼 혼자 갔을 텐데."

"회장님이 제 말을 가로채셨습니다."

"끙."

그렇게 두 사람은 30분이나 더 굴렀다. 김기태가 또 한 번 틀렸기 때문이다.

정신통일을 위해 얼차려를 받았지만, 다행히 두 번째는 훌륭하게 제식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첫 번째, '제식 훈련'을 완료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마른 빵 10개를 획득하였습니다.]

[하급 마력 포션 5개를 획득하였습니다.]

[민첩 능력치 +1이 올랐습니다.]

'빌어먹을 이딴 쓸모없는 것들을 주다니. 도대체 무기는 언제 주는 게야?'

그래도 민첩 능력치가 꽤 많이 올랐다.

반복되는 훈련에 10개나 올랐으면, 말 다했지 뭐.

띠링-!

[두 번째, '무기술 훈련'을 시작합니다.]

"오, 드디어 무기를 주는 건가보군."

기대에 찬 표정을 지은 백무열은 눈앞에 나타난 교관을 쌍심지를 켜고 바라보았다.

어서 무기를 달라는 무언의 메시지.

교관의 입이 열렸다.

"내가 살다 살다 이렇게 최악의 호흡을 자랑하는 훈련병들은 처음 본다!"

'저 망할 놈이 또 시작이네.'

백무열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시작했다.

사실 삼청 교육대에 있을 때,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 편이었다.

인생 쓰레기라거나, 어머니에 대한 안부라던가, 차마 입에도 올릴 수 없는 그런 욕들이 조교들의 입에서 나왔었다.

그래도 그는 참았다.

어떤 모욕적인 대우를 받아도, 그땐 참을 수밖에 없는 시대였으니까.

'그땐 통나무를 들고 오리걸음을 하기도 했지. 이상하게도 오늘은 그때가 그립군. 이번엔 또 어떤 말을 들으려나.'

살짝 입꼬리를 올린 백무열은 여전히 앞을 바라봤다.

교관의 날카로운 눈매가 독수리처럼 매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건 뜻밖의 말이었다.

"너희들처럼 썩어빠진 놈들은 정신무장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금부터 '삭발'을 실시하겠다! 머리 꼴부터가 글러 먹었군!"

함께 훈련을 받던 젊은이들이 웅성거렸다.

"엥?"

"뭐?"

"삭발…?"

"아니, 그런 게 있단 건 처음 듣는데…."

"여기가 군대도 아니… 군대 맞지. 참."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내가 재입대라니…. 내가 재입대라니!!"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교관이 소리 쳤다.

"다들 조용!"

그와 동시에 우리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어디선가 병사가 하나 나타나 그에게 조그만 물건을 내밀었다.

뭔나 익숙한 물건이다.

'저거 혹시…?'

위이이이이잉-!

"바리깡…?"

"미친! 저게 여기에 왜 있어?!"

"마력으로 움직이는 거 같은데?"

"아, X발 진짜. 개 같네."

"미친. 유니온 개X끼들."

함께 훈련을 받던 젊은이들의 시선이 또 한 번 김기태에게 머물렀다.

살기 어린 눈빛에 그는 지금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어, 이게…. 큼. 다들 죄송합니다."

죄송으로 물려질 일이었다면 이렇게 한숨을 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백무열은 그의 직속상관이다.

10년이나 그림자 역할을 해준 그의 어깨가 축 처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다.

백무열이 앞으로 나섰다.

"이보게 젊은 교관."

"뭐냐! 훈련병! 감히 본 교관에게 대드는 것이냐!"

"닥쳐라! 이눔시키야!!"

백무열의 노기어린 고함에 화난 교관이 이곳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자를 보았나!"

그와의 거리가 2미터 남짓 남았을까. 백무열이 소리쳤다.

"내기를 하자!!"

"뭐라고? 하, 어이가 없군. 그래. 무슨 내기지?"

그의 검지가 교관의 손에 들린 바리깡을 가리켰다.

"그걸 걸고 나랑 1대1로 붙자."

"뭐…?"

띠링-!

[히든 퀘스트 <교관을 꺾어라!>  가 시작됩니다.]

백무열이 입꼬리를 올렸다.

"지는 놈이 밀어버리는 거다. 위도, 그리고 아래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