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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00화 (100/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00화

제100화

동굴의 외벽에 기대 쉬고 있던 나는 잠깐의 휴식 끝에 일행들을 만날 수 있었다.

김수정이 내게 치료의 반딧불을 쓰며 물었다.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그래."

"안 괜찮으신 것 같은데…. 죄송해요."

"네가 왜 죄송하냐."

"아버님 옆에 붙어 있었어야 했는데…."

"아니다. 그 누구라도 지금 같은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잠든 프로메테우스를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비통한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오는 카미유를 볼 면목이 없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저렇게 된 것은 엄연히 내 책임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크아악! 도대체 이 몸뚱이는 뭐냐! 짐이 어찌 여기에 갇혀있는 것이냐!]

…젠장. 아까부터 시끄러워 죽겠네.

'조용해라. 이 썩을 놈아.'

[감히 짐에게 그런 망발을 하다니, 네가 죽고 싶어서 환장….]

'미친놈.'

[취이익. 이, 이놈이…!]

나는 오랜만에 참아왔던 욕을 실컷 할 수 있었다.

물론 속으로 한 것이지만, 좋은 기분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어째서 무두르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였다.

"죄송합니다. 제 책임입니다. 형님. 후우…."

아까부터 바위에 주먹질을 하던 견소룡이 돌아와 말했다.

그는 피를 철철 흘리는 나를 보자마자 푸른 번개를 내뿜으며 바위를 쳤다.

내가 무너지니까 살살하라고 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세게 쳤어도 이곳은 무너졌을 것이다.

"넌 이제 그만해라. 많이도 부숴놨네. 쯧쯧. 왜 애먼 바위를 부숴?"

저 멀리 곱게 빻아진 모래가 찬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견소룡이 말했다.

"…그래도 죄송합니다. 이렇게 되면 저와의 대결은 이제…."

…그런 이유였냐.

"그건 걱정 마라. 지장은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그는 내 안위보다 대결을 하지 못하는 게 더 걱정인 모양이었다.

아니, 그래도 사람이 이렇게 다쳤는데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먼저 아닌….

[크아악! 날 무시하는 거냐! 인간!!]

'넌 좀 닥쳐라.'

[크르륵.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짐은 대 오크 제국 '라이카'의 황제….]

'알고 있다. 네 이름 무두르인 거. 그러니깐 좀 닥치고 있어라. 나중에 얘기할 기회를 실컷 줄 테니까.'

[…….]

…이제야 좀 조용해졌군.

나는 여전히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김수정에게 물었다.

"오크들은 안 데리고 왔냐…?"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서요. 미로라서 길을 찾는데 조금 헤메긴 했지만요."

"잘했다. 아마 데려왔다면 시끄러워 졌을 거다."

몸을 움직여 보니, 가볍게 운신할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김수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엇, 아직 치료가 덜 끝났는데…."

"괜찮다. 그보다는 서둘러 여기를 빠져나가자."

서리 오크들이 슈벤의 죽음을 알게 되면 골치 아파질 것이다.

그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서리 오크들이랑은 척을 지게 될지도 모르겠군.

뭐,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먼저 공격을 한 건 그 녀석이었으니까.

나와 일행들은 조용히 서리 오크들의 마을을 빠져나왔다.

* * *

그 무렵 아.스.라 커뮤니티는 충격에 빠졌다.

며칠 전 코볼트 동굴에서 발견된 미노타라는 몬스터를 잡기 위해 많은 길드들이 레이드에 도전했었는데, 아직 한 팀도 레이드를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아서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곳에서 찍힌 동영상의 내용이었다.

미노타라는 거대한 황소는 상상 이상의 힘을 가진 몬스터였고, 입에서 뿜어내는 고열의 화염은 그 누구도 버텨내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다.

화염 저항 세팅을 하고 도전했던 <카시오페아>  길드마저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스러져버렸고, 오늘은 <가디언즈>   길드가 도전을 하는 날이었다.

<가디언즈, 실력의 차이를 보여주겠다고 선언!>

<카시오페아, 가디언즈들은 큰 코 다칠 것이다.>

<가디언즈, 우리는 카시오페아 따위랑은 차원이 다르다.>

기사를 읽고 있던 마이클은 고뇌에 빠졌다.

벌써 몇 번이나 레이드 동영상을 돌려봤는지 목이 뻐근한 마이클은 잠깐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저히 약점이 보이지 않아….'

이런 몬스터는 처음이었다. 그동안 어떤 몬스터라도 속도가 느리다든지, 방어력이 약하다든지 하는 그런 약점은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웠고, 철저하게 공략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저번에 잡았던 '바실리스크'는 눈을 마주치면 돌이 되어버려서 눈을 찔러 감게 만들어 버렸지만, 곧 레이드를 하게 될 미노타는 그런 약점조차도 없었다.

"너무 완벽해서 문제야."

방어력도 높고, 공격력도 높았다.

심지어 마법에 대한 저항력마저도 높았고, 공격력에 비하면 속도는 좀 느린 편에 속했지만, 흠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공수 밸런스가 완벽하다고 할까.

'다행히 안타라스에게 모래의 권능만큼은 사용할 수 있지만, 독의 권능은 사용하지 못하니….'

모래의 권능이 있다면 미노타의 화염 공격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방어만 하고 공격을 하지 못한다면 이번 레이드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 뻔했다.

"젠장…!"

마이클이 옆에 있던 꽃병을 바닥으로 던졌다.

그 소리를 듣고 들어온 것은 가정부인 레이나 아주머니였다.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마이클! 손에 피가…!"

"전 괜찮아요. 붕대랑 소독할 것 좀 가져다주세요."

"…그래. 알았다. 깨진 것 밟지 않도록 조심하렴."

"네."

레이나 아주머니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부터 쭉 자신을 돌봐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잠깐 화를 주체하지 못해 이런 모습을 보며 걱정할 그녀가 떠오르자, 마이클은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잠시 뒤, 마이클은 레이나가 해주는 상처소독을 받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이런 모습 보여서."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니?"

"실은…."

"말해보렴. 내게 말 못할 게 무어겠니. 난 항상 들을 준비가 되어있단다."

'그래. 그녀는 항상 이랬지.'

언제나 상냥한 레이나 아주머니를 떠올린 마이클이 입을 열었다.

"불타는 황소를 잡아야 해요."

"불타는 황소…? 그 아크스타라는 게임 말하는 거구나. 그런데?"

"도저히 약점이 보이지 않아요. 힘도 세고, 가죽도 단단해 공격이 먹히지 않아요. 불이 너무 뜨거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구요."

"음…."

잠깐 상처소독을 멈춘 레이나가 입을 열었다.

"불은 물로 끄면 되지 않을까…?"

"그렇죠. 그런데 제겐 물이 없어요."

아마 자신과 같은 궁좌의 힘을 가진 토레즈라면 모르겠다.

그가 가진 물병의 힘이라면 분명 가능할지도.

아니, 술병이라 안 되려나…?

"그럼 네가 가진 건 뭔데…?"

"모래요."

"그러면 모래로 덮어버리면 되지 않을까?"

"모래로 덮어버린다…."

'그래. 난 계속 모래의 권능을 수비적으로 쓸 생각만 했지. 공격적으로 쓸 생각을 못하고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인 마이클이 말했다.

"고마워요. 아줌마. 덕분에 길을 찾은 것 같아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구나. 어디 가는 거니…?"

"길을 찾았으니, 걸어야겠죠."

마이클은 구석에 있는 최고급 캡슐에 누웠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줌마. 고마워요. 며칠 휴가 다녀오세요."

그리고 곧장 캡슐의 뚜껑이 닫혔다.

* * *

[★스타피스, 레무스의 심장을 획득하였습니다.]

어느새 '디야'에 도착한 나는 로믈라나를 만나 레무스의 스타피스를 얻을 수 있었다.

격동하는 흑야의 심장을 보며, 나도 모르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녀석, 별의 요람에 잘 도착했을려나….

나를 보던 로믈라나가 입을 열었다.

[정말 유감입니다. 프로메테우스 님이 그렇게 되시다니….]

눈앞에 있는 거대한 백색의 늑대는 고고한 눈으로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처량해 순간 잊고 말았다.

지금 나보다 더 슬플 것은 그녀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한 것 같군.

프로메테우스는 다시 만날 여지가 있지만, 레무스는 그렇지가 못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

"걱정 마라. 그 녀석은 금방 일어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프로메테우스 님이 들으시면 정말 좋아하시겠군요.]

"글쎄. 왜 이렇게 늦게 깨웠냐고 구박부터 할 것 같군."

[혹, 그분을 깨우는데 제 힘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프로메테우스 님은 제겐 은인과도 같은 분입니다.]

"그래. 그러지."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레무스가 다쳤을 때, 로믈라나와 함께 북극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운 인물이 바로 프로메테우스였다.

그때가 프로메테우스와 툰드라 드래곤이 처음 만났던 날이었는데, 두 성좌를 위해 프로메테우스는 그 녀석의 미래를 점쳐줬었다.

당시에는 알렉서스를 만나기 전이라 솔라도 없었고, 예언 능력도 온전하던 시기였기에 꽤 괜찮은 예언을 하곤 했었다.

…물론 그것은 많은 신격(神格)을 부담하는 일이었지.

아마, 그때 예언이 '같은 성격을 가진 존재와 싸우게 될 것이다.'였던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 까탈스러운 녀석과 같은 성격이라니…. 잠깐 생각했을 뿐인데도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만약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곳 북극은 멸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믈라나가 말했다.

[레무스의 심장과 저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 1등성이 된 건가?"

[아직이요. 당신에게 힘을 빌려주고 난 뒤, 저는 레무스의 심장을 돌려받을 생각입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저는 1등성으로 승격할 수 있겠죠.]

"…그럼 이건 1회용이라는 소리네."

손에 들린 레무스의 심장이 왠지 모르게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라면 손녀에게 집적대는 그놈들도 한 방에 죽일 수 있을 텐데….

쯧, 아까워도 어쩔 수 없지.

"아무튼 고맙네. 그럼 잘 지내라고. 언젠가 또 만나게 될 거야."

[무운을 빌겠습니다. 약속의 군주.]

나는 미련 없이 뒤돌았다.

긴 인사는 필요치 않았다.

언젠가 이곳은 다시 와야만 하는 곳이니까.

-잭슨: 수정아 출항 준비는?

-크리스탈: 다 끝났어요! 몸만 오시면 돼요!

-잭슨: 금방 가마.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하며 도착한 곳은 우리가 배를 댔던 그 선착장이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꽤 오랜만에 얼굴을 봤는데, 살이 통통 올라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없는 사이 꽤 잘 지냈던 모양이다.

"브라더~!"

저 멀리 양손을 흔들고 있는 드레인의 모습.

프로메테우스를 잃었단 사실을 알고 조금 우울해하는 모습이었는데, 금방 극복을 한 듯 보였다.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드레인은 생각보다 여린 구석이 있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잠든 게 자기 탓이라나 뭐라나.

사실 자기 탓이 아닌데도, 그는 이곳으로 오는 내내 자책을 하곤 했었다.

배의 갑판을 오르자 모두가 내 주위로 모였다.

선장이 명령을 기다리며 서 있자 나는 입을 열었다.

"가자. 윈디아로."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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