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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98화 (98/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98화

제98화

콰아아!

굽이치는 피의 파도를 보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생각보다 엄청난 양의 피였다.

…이게 다 무두르 녀석의 피라고? 말도 안 돼.

새빨간 피가 마르지 않고 호수를 이루는 것도 신기했지만, 동굴 안에 이런 커다란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어째서 이런 공간이 있는 걸까.

"취익. 당황한 모양이군. 이곳은 태초의 오크이신 무두르 님께서 숨을 거두신 곳이다. 엄청난 생명력 탓에 거미의 독에도 쉽사리 죽지 않으셨지. 그분이 돌아가시고 피의 강 속에서 간신히 뼈만을 건질 수 있었다. 우리 후손들은 그걸로 오크람을 만들었지."

…그랬군. 여기가 무두르의 무덤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를 알겠어.

무두르가 이곳에서 죽었던 거구나.

눈앞에 있는 엄청난 양의 혈류를 보며, 그가 생명을 붙잡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 쳤을지 눈에 선했다.

최초로 오크들의 힘을 하나로 합쳤던 황제의 최후치고는 너무나도 허망한 죽음이었다.

"고르바에게 들었다. 무두르는 자식들의 손에 죽었다지?"

"취익. 알고 있군. 그렇다. 오크들의 연합인 라이카가 아직 건재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뿔뿔이 흩어져서 어렵게 살지는 않았을 테니까."

"…무두르라면 그러고도 남지."

사실 무두르는 생각보다 위대한 인물이었다.

아무리 성격이 개차반이라도 엄청난 위업을 달성한 인물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사설이 길었군. 날 연구해보고 싶다지 않았나?"

"취익. 저 강에 손가락을 담가보아라."

나는 그의 말대로 피의 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옆에서 드레인이 따라오며 물었다.

"브라더.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뭐 별일이야 있겠냐. 가상현실인데. 죽진 않겠지."

그리고는 곧장 검지를 담가보았다.

[거미의 독이 당신의 몸에 스며듭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역시 별일은 없는 모양이네.

뒤에서 슈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취익. 아무 일도 없나?"

"그래. 내게는 거미의 독이 통하지 않는군."

"오오! 훌륭해. 오크들은 닿기만 해도 몸이 마비되고 쓰러지는데…. 그럼 이번엔 발목까지 한번 들어가 보아라!"

나는 질겅거리는 피의 질감을 느끼며 강물로 들어섰다.

확실히 물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진하다기보다는 찝찝해.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침을 꼴깍 삼킵니다.]

망할 놈이 그런 메시지는 왜 보여 주는 건데…. 긴장되게.

발목까지 들어와도 메시지는 똑같았다.

저항하였습니다, 라는 메시지만 뜰 뿐.

슈벤이 감탄사를 뱉으며 흥분하는 것이 보였다.

"오오, 무두르 님의 가호를 받는 것인가! 오오오!"

"얌마! 피 냄새에 취해 죽겠다! 어서 그 주술인지 뭔지 해봐!"

"취이이익!"

슈벤이 진한 콧바람을 뱉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어둠의 사슬이 나를 꽁꽁 묶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취이익. 드디어 피의 제물을 찾았구나. 크라라라-"

…피의 제물?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불길한 예감에 미간을 찌푸립니다.]

"브라더!"

드레인이 나를 구하기 위해 슈벤에게 덤볐지만, 그에겐 역부족이었다.

나와 똑같이 사슬에 묶여버린 드레인을 보며, 나는 이를 갈았다.

슈벤이 흉악한 미소를 지었다.

"얌전히 있어라. 천천히 죽여줄 테니까. 크르륵. 우선은 무두르 님의 부활이 먼저다."

"쒯!, 이거 풀어! 이거 풀지 못해!"

나는 슈벤을 노려보며 물었다.

"무두르의 부활이라고…? 네 녀석 도대체 무슨 꿍꿍이냐."

"영광으로 알아라. 무두르 님의 부활을 위해선 거미 독에 대한 내성이 있는 몸만 가능하거든. 뭐, 인간의 몸이지만 우리 서리 오크 부족의 전사들보다 강하니 무두르 님의 몸으로는 아주 안성맞춤이야. 몸이야 다시 재구성하면 되니까. 크하하하."

비열하게 웃는 슈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얼굴이 뒤틀렸다.

그가 손짓하자 주변의 핏물들이 요동쳤다.

쿠오오오오.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나선형의 혈류.

소용돌이치는 그것을 보며, 나는 집어 삼켜질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무두르의 부활의식이 시작됩니다!]

[당신의 몸은 제물로 바쳐질 것입니다.]

[만약 시간 안에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무두르는 당신의 몸을 빌어 부활하고 캐릭터는 삭제될 것입니다.]

[제한 시간은 10분입니다.]

"이런 염병할…."

그 말과 동시에 뒤집어지는 모래시계를 보며, 심장이 내려앉았다.

아니, 무슨 이런 엿 같은 상황이….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그러게 가지 말라고 했지 않냐고 말합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예상치 못한 전개에 식은땀을 흘립니다.]

"젠장. 나도 안다고. 무슨 방법 없냐?"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솔라를 이용해 보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에 재빨리 솔라를 소환했다.

그리고 슈벤을 가리키며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자 쏜살같은 속도로 날아가는 솔라의 모습.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취익. 가소롭구나. 죽음의 눈보라!"

그의 손에서 발사된 시퍼런 눈보라들이 솔라에게 쇄도했다.

같은 화염의 속성을 가진 마법이면 몰라도 정반대인 물이나 얼음 속성의 마법에게는 취약한 솔라였다.

더군다나 이곳은 북극.

환경 자체가 솔라에겐 불리한 환경인 것이다.

"악! 너무 차갑다! 다가가기 어렵다!"

…제길, 레벨이 조금만 더 높았어도.

현재 솔라의 레벨은 98 언저리였다.

200이 넘었다면 아마 저 정도 마법쯤은 쉽게 녹여버렸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솔라의 새로운 능력이 개화할 테니까.

아무튼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였다.

"주인아! 미안하다! 너무 춥다!"

나는 오랜만에 이를 갈았다.

저번에 불룡파 놈들에게 수정이가 납치당했던 이후로 한 달 만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쿠와아아앙-!

슈벤이 다시 손짓하자, 이번엔 내 주변으로 4개의 기둥이 솟았다.

역시나 피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제 남은 시간은 약 7분가량이었다.

"크르륵. 얌전히 무두르 님의 제물이 되어라. 이제 곧 블러디 오크로 태어나실 무두르 님을 맞이해라!"

"크윽, 블러디 오크라고…?"

순간 기억의 자락이 스쳤다.

블러디 오크.

언젠가 오크들의 연합인 라이카를 방문한 알렉서스가 딱 한 번 무두르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직 아틀란이 세워지기 전이었는데, 아마 한 오크 주술사를 처형하던 장면이었던 것 같다.

알렉서스가 무두르에게 저들을 왜 처형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무두르는 이렇게 말했었다.

'저들은 동족을 블러디 오크로 만드는 금기된 주술을 펼쳤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이것이었다.

'블러디 오크는 동족의 피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의 피도 갈구하는 괴물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나는 오크들이 금지된 힘을 갖지 않고도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참으로 광오한 말이 아닌가.

하지만 동시에 가슴 벅찬 말이기도 했다.

그 말을 한 것이 무두르였기에 가질 수 있었던 자신감이었다.

사실 알렉서스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서 더욱 자신을 갈고 닦았다.

언젠가 무두르에게 뒤지지 않는 왕이 되겠단 꿈을 그때부터 가지게 된 것이다.

"크으윽. 망할 놈이…! 무두르가 블러디 오크를 싫어했다는 것을 아느냐!"

"취이익. 개소리다! 무두르 님은 블러디 오크로 부활해 또 한 번 세상을 뒤집고 오크들의 통일을 이루어 낼 것이다! 크라라라!"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하는 놈이네.

4개의 핏빛 기둥이 나를 향해 거리를 좁혀왔다.

결국 나는 그것들에게 집어 삼켜지고 말았다.

콰아아아아-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정신 차리라고 말합니다!]

멀어져 가는 아득한 정신 속에서도 나는 그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제길, 이럴 줄 알았다면 다 같이 올 걸….

만약 내 옆에 김수정이, 그리고 견소룡이 함께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미유가 내게 반딧불 협주곡을 썼을 것이고, 레이트라의 푸른 번개가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그래. 그랬다면 말이다.

쿠와아아아아-

"크윽!"

온몸의 살갗이 찢어지며 혈관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사이로 새로운 피가 수혈되는 것이 느껴졌다.

미쳐버릴 듯한 피의 압력 속에서 나는 멀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당신의 몸에 무두르의 피가 수혈되기 시작했습니다.]

[거미의 독이 당신의 몸에 스며듭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제한 시간 안에 빠져나오지 못하면 당신의 캐릭터는 삭제되고 블러디 오크 무두르가 부활합니다.]

[블러디 오크 무두르는 세상을 피로 물들일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5분입니다.]

[블러디 오크화 진행률 20%]

빌…어먹을….

입속 가득 느껴지는 피 맛에 취해버릴 것 같았다.

여기서 바라본 드레인은 나를 향해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당신의 몸이 블러디 오크로 재구성되는 중입니다.]

제길, 내가 블러디 오크라니….

미도가 같이 게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는데…. 이제 못하는 건가….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정신 차리라고 외칩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잡아 주는 것은 프로메테우스의 말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정신을 차렸지만, 폭발하는 피의 압력에 또 한 번 정신이 날아가버렸다.

희미해지는 의식 사이로 또 한 번 메시지가 들려왔다.

[블러디 오크화 진행률 40%]

여기서 끝인 건가. 정말로…?

나의 모험은, 꿈은, 여기서 좌절이 되는 것인가?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이제는 아득하게만 보이는 그 메시지를 보며, 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 녀석 덕분에 꽤 재미난 모험들을 했지.

사람이 죽으면 살아온 일생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고 했던가.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늘 나와 함께하며 친구가 되어주었던 프로메테우스와의 기억들이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고뇌합니다.]

[블러디 오크화 진행률 45%]

고뇌하는 그를 향해 나는 문득 마지막 말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캐릭터가 삭제된다면 더 이상 만나진 못하겠지.

'고마웠다. 프로메테우스.'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꿀렁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프로메테우스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을 것이다.

녀석과의 교감은 메시지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블러디 오크화 진행률 47%]

[블러디 오크화 진행률 48%]

[블러디 오크화 진행률 49%]

절반을 향해 달려가는 진행률을 보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50%가 되는 순간이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의 <강림>  이 시작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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