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94화
제94화
치직- 치지지직-
저번보다 훨씬 강대한 힘이 온몸의 전류를 타고 주변의 지형을 변형시켰다.
최근 100레벨이 넘으며, 내 캐릭터의 한계가 올라갔는데, 그것은 모든 스킬의 능력들을 한 단계 상승시켰고, 내가 빌리는 성좌들의 힘에도 적용되었다.
[레벨의 상승으로 더욱 많은 영성(靈星)을 부담할 수 있습니다.]
[레이트라의 '푸른 번개'가 특정 부위가 아닌 온몸에 흐르기 시작합니다.]
"…좋군."
이제 다리에만 푸른 번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소룡이 녀석처럼 온몸에 전류가 흘렀다.
겉으로 보이는 만큼 더욱 많은 힘을 부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간다."
콰아앙!
순식간에 전개된 뇌보법이 내 신형을 감추었다.
나를 향해 달려오던 서리 오크들은 갑자기 사라진 나를 보며 우왕좌왕했다.
내 공격은 그들의 가장 오른쪽부터 시작되었다.
꽈르르릉-!
[사도 버프를 받았습니다.]
[30분간 모든 능력치가 20% 증가합니다.]
오랜만에 받는 사도 버프.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성좌들처럼 영성(靈星)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물론 프로메테우스는 성좌가 아니라서 신격(神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겠지만.
"막아라! 취이익."
"너무 빠르다! 크륵."
"이쪽이…."
퍼걱!
서리 오크들은 오른쪽부터 도미노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누구는 '푸른 번개'에 살갗이 태워졌고, 누구는 뱃가죽이 뚫리기도 했다.
나는 뇌룡각을 퍼부으며, 그들의 머리통을 차례대로 터트렸다.
속성의 상관관계는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크륵. 진열을 정비해라! 어서 녀석을 막아라!"
저 멀리 병사들을 지휘하는 덩치 큰 오크가 보였다.
아무래도 그가 이들을 지휘하는 대장인 듯했다.
장기에서도 그렇지만, 사실 왕이나, 장군을 잡으면 그 판은 거의 끝나는 것이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지휘하는 녀석을 잡으라고 말합니다.]
"나도 알아. 이놈아!"
치지지직!
나는 또 한 번 뇌보법을 사용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온몸을 짜릿하게 지배하는 쾌감을 느끼며 생각했다.
소룡이 녀석 늘 이런 세상에서 살았던 건가…?
엄청난 속도였다.
늘 이런 빠르기로 살 수 있다면 못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하는 거냐! 어서 저 녀석을…. 흡!"
갑자기 나타난 내 신형에 당황했는지, 서리 오크의 대장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도끼를 휘둘렀지만, 그는 이미 내 상대가 아니었다.
퍼거걱!
공중 돌려차기가 그의 머리통을 터트렸다.
그들의 대장이 죽자, 서리 오크들이 당황했다.
"취이익. 돌격대장이 죽었다."
"크륵. 인간 너무 강하다."
"어떻게 저런 힘을…!"
그들은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며, 내 주위에서 물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안경을 쓰고 지팡이 같은 것을 들고 있는 늙은 오크였는데, 왠지 굉장한 학구파처럼 보였다.
"이런 미개한 것들…! 독침 부대 준비!"
…독침 부대?
그야말로 "나 독침 쏘겠소!"라고 광고를 하는 듯한 이름이었다.
아무래도 레이트라와 카미유가 말한 독침을 쏘는 오크들이 저들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저들의 독침을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맞으면 온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음. 알았다."
어느새 나타난 독침 부대의 서리 오크들이 나를 향해 독침을 조준했다.
그 모습이 마치 TV에서 보았던 원시인들처럼 정교했다. 마침내 독침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피융-! 피융-!
생각보다 빠른데…?
아니, 중요한 건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작은데다가 빠르기까지 하니 내 초감각으로도 모든 독침을 볼 수 없었다.
나는 빠른 속도로 그들의 공격을 피하다가 결국 발목에 독침을 맞고 말았다.
…젠장. 이렇게 끝인가.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거미의 마비 독침에 맞았습니다.]
[온몸이 5초간 마비 상태에 돌입합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엥…?"
마지막 메시지를 보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 사이 다른 독침들이 내 온몸을 찔렀지만 같은 메시지가 뜨고 있었다.
[저항하였습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저항하였습니다.]
"……."
순간 머릿속이 소용돌이쳤다.
나는 속으로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생각을 더듬었다.
대체 어떻게…?
나는 독침을 뚫고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당신의 터프함에 경악합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합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실소를 터트립니다.]
그런 내 모습에 서리 오크들도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것은 제일 뒤에 있던 안경을 쓴 서리 오크도 마찬가지였다.
"취이익. 이, 이럴 수가…? 어떻게?"
나는 늙은 오크를 향해 소리쳤다.
"네놈들이 잡아간 인간들을 내놔라!"
"그, 그것이 용건인가?"
"그렇다!"
"거절한다면…?"
"네놈들은 오늘 멸족이다."
츠츠츠츳-!
다시 한번 푸른 번개를 터트리며 힘을 발산하자, 서리 오크들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안경을 쓴 서리 오크가 이를 갈았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 거지?"
잠시 생각하던 그가 말했다.
"취, 취익. 휴전하자."
* * *
서리 오크들의 마을 깊숙한 곳에서 나는 일행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역시나 이곳에 잡혀 왔었고, 모두 사지를 결박당한 상태였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짓는 일행들.
"휴우, 겨우 살았네요.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형님 덕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브라더는 역시 강해요. 믿었다구요. 홍홍홍."
"뀨우~♡"
"콸."
김수정과 견소룡, 드레인과 케르. 그리고 뽀노까지 모두가 무사한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그건 어디 있지…?
나는 뒤에 서 있는 안경을 쓴 서리 오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이름은 슈벤. 이곳 서리 오크들의 족장이자, 주술사였다.
"혹시 냄비를 보지 못했나?"
"냄비? 취익. 그게 뭐지…?"
"가만히 놔둬도 공중에 둥실둥실 뜨는 물건인데 보지 못했나? 아마 내가 만든 음식이 담겨있을 텐데."
"아, 그거라면 내 방에 있지. 신기한 물건이라, 내가 좀 살펴보고 있었다. 크륵. 근데 그게 네 것이었나?"
"그래. 내겐 중요한 거다."
"끙, 좀 더 살펴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따라와라."
슈벤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자신의 거처로 걸어갔다. 나는 그를 따라갔고, 일행들은 잠시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뒤, 슈벤의 거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종이가 가득한 방을 보며 미간을 찌푸립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방을 보며 어리둥절합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방을 봅니다.]
"내 거처에 인간이 온 것은 처음이군. 영광으로 알아라. 취익."
"이 종이들은 다 뭐지…?"
"내가 고뇌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지."
"고뇌한 흔적…?"
자세히 살펴보니 종이들에는 이상한 수식 같은 것들이 적혀있었다.
그렇게 방을 둘러보던 중 나는 익숙한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아까 봤던 망원경이잖아?"
"인간치곤 눈썰미가 꽤 좋군. 그건 망원경이 아니라 '서리 올빼미의 눈동자'라는 내 인생의 역작이지. 그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실험을 했던지. 크라라라."
슈벤이 늙수그레한 인상으로 사악하게 웃었다.
이걸 이 녀석이 만들었다니, 설마 그 독침도 이 녀석이 만든 건가…?
나는 슈벤에게 물었다.
"그대는 발명가인가?"
"발명가? 그게 뭐지?"
하긴, 이 녀석이 발명가를 알 리가 없나.
"이런 것들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인간들 사이에선 발명가라고 부른다.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지."
"취익. 발명가라. 마음에 드는군. 그래. 나는 발명가라고 할 수 있다. 모두 내 주술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들이지. 네 동료들이 맞은 독침을 발사하는 파이프도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역시 이 녀석이 만든 것이었군.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슈벤의 발명품에 관심을 가집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화끈하지 못하다며 못마땅해 합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프로메테우스와 카미유도 슈벤의 발명품이 신기한 모양이다.
하긴, 이런 나조차도 이 녀석의 발명품이 궁금해질 지경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레이트라 이놈은 또 뭐가 문제인건지. 쯧.
슈벤이 말했다.
"그대가 찾는 냄비라는 물건이 이게 맞나?"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간 슈벤이 익숙한 물건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내가 찾던 공중부양 냄비가 맞았다.
"그래. 맞군. 그런데 냄비에 이상한 짓을 한 건 아니겠지?"
"크륵. 그러려고 했는데 하지 못했다. 그대가 쳐들어오는 바람에 말이야."
"…그렇군."
"근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뭐지?"
"그 냄비라는 것의 재질 말이야. 대체 무엇으로 만든 것이지? 이곳 북극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더군. 그대가 말한 발명가로서 물어보는 거야. 나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서. 취익."
그의 말에 나는 턱수염을 매만졌다.
이게 뭘로 만들어진 것이었더라….
잘머거스가 애기해줬던 것 같은데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뭐였지?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부유석이라고 말합니다.]
아, 맞다. 그거였지.
"부유석이라는 것이다."
"오오, 부유석! 그렇군. 어디서 구할 수 있지?"
"그건 나도 모른다. 친구한테 받은 거라서 말이야."
"크르륵. 그렇군…."
슈벤의 어깨가 축 처지는 것이 보였다.
이게 그렇게 실망할 일인가…?
"큼. 아무튼 고맙다. 이제 일행들에게 가봐야겠어."
"취익. 그래 알았…. 음? 아아아악-! 그건 먹으면 안 돼!"
갑작스런 슈벤의 고성에 고개가 돌아갔다.
그가 소리치는 곳을 보니, 그곳엔 익숙한 인영이 슈벤의 발명품 중 하나를 먹고 있었다.
"냠~♡"
"뽀노…?"
뽀노는 슈벤의 부품
하나를 먹어치우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제펭귄은 빛나는 것을 모을 때 자신의 뱃속에 저장하는 습성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뽀노가 본능적으로 그것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나저나 이 녀석 내 뒤를 졸졸 따라온 건가…?
슈벤의 노기 어린 음성이 터졌다.
"크륵. 이놈이 감히 내 인생의 역작을 탄생시킬 재료들을…!"
그가 당장에라도 뽀노를 죽일 기세를 취하자, 나는 그를 제지했다.
"잠깐. 내가 돌려주지. 뽀노야."
"마마~♡"
이젠 뽀노라는 이름에 익숙한지 곧 잘 달려오는 뽀노.
나는 뽀노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방금 먹은 것 토해내야지?"
"뀨! 뀨뀨!"
…젠장. 역시 싫은 모양이네. 어쩔 수 없나.
황제펭귄은 보통 한번 먹은 것을 잘 뱉어내지 않는다.
그런 황제펭귄이 자신이 먹은 것을 뱉어내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더욱 빛나는 것과 물물 교환을 하는 때였다.
나는 인벤토리를 뒤지며 빛나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젠장. 뭘 줘야 하지…?
"이거랑 바꿀래?"
내가 꺼낸 것은 며칠 전 얻었던 프리저 타우루스의 뿔이었다.
꽤나 반짝거리는 것이 뽀노가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겐 필요가 없는 거니까.
"뀨!!"
"쳇. 싫은 거냐. 어린놈이 엄청 까탈스럽네. 그럼 이건…?"
이번에 꺼낸 것을 보고도 고개를 젓는 뽀노. 역시 싫은가 보네….
하지만 반응이 온 건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슈벤에게서였다.
"잠깐."
"……?"
"그 오크람 어디서 났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