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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92화 (92/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92화

제92화

까칠함의 대명사.

차가운 북극의 수호자.

신에 필적한 힘을 지닌 존재.

빛나는 것을 좋아하는 수집가.

이 모든 것은 툰드라 드래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툰드라 드래곤? 빙설계 최강의 성좌요?"

"그래. 이곳은 그 녀석이 둥지를 튼 곳이다."

"헐…."

내 말에 제법 놀랐는지 김수정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견소룡이 말했다.

"드래곤이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용을 말하는 거지요? 우리 중국에서도 용은 아주 신성한 존재로 받들고 있습니다. 특히 황제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고 할 정도로요. 저희 중국에서는 서양의 드래곤과는 달리 용을 길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새로 알게 된 지식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드래곤은 중국의 용과는 조금 달랐다.

왜냐하면 이곳 세상에서 드래곤은 세상을 망하게 하는 흉조도,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길조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선 좀 다르다. 그들은 선도, 악도 아니야."

"그럼 뭔데요?"

나는 질문을 해오는 김수정을 보며 말했다.

"균형의 수호자. 정확히 말하자면 선도, 악도 될 수 있다. 이 세상에 악이 가득하면 그들은 선의 편을 들 것이고, 인간들이 너무 평화에 찌들어 있다면, 그들의 경각심을 깨워주기 위해 악이 되기도 한다."

"양다리 걸치는 나쁜 놈이라는 거네요."

"뭐, 쉽게 얘기하자면 그렇지."

…문제는 그게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게 뽀노의 엄마를 찾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상관이 있다. 왜냐하면 황제펭귄들은 이곳 북극에서 유일하게 그 녀석과 취미가 맞는 녀석이거든."

"어떤 취미인데요…?"

"반짝이는 걸 모으는 취미."

"아~ 그럼 아까 뽀노가 제 목걸이를 가져간 것도 혹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황제펭귄들은 반짝이는 걸 모으는 습성이 있다. 툰드라 드래곤과 황제펭귄들은 대대로 거래를 해왔다. 황제펭귄들은 그동안 모은 것을 그 녀석에게 보여주며 팔기도 하고 말이야."

김수정이 물었다.

"그럼 펭귄들은 뭘 받는데요?"

"그 녀석의 보호."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헐…. 만약 그 황제펭귄을 건드리면 드래곤한테 쫓기는 신세가 되는 거네요? 그게 이곳에서 사는 일족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구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 전에 얼어 죽거나 저주를 받을 테지만."

갑자기 프로메테우스의 기억 중 하나가 스친다.

먼 옛날 황제펭귄이 반짝이는 것을 모으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누 일족'이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살았던 반인반견 들이었는데, 실수로 황제펭귄의 물건을 빼앗기 위해 죽였다가 툰드라 드래곤에게 저주를 받아 눈사람이 된 것이 생각났다.

그놈이 있는 성에서 평생 노예로 일하게 됐다고 들었는데, 아직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뒤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동대륙으로 도망갔다고 들었다.

김수정이 물었다.

"그것도 인터넷에서 공부하신 거예요?"

"…큼. 뭐, 그렇지."

"와, 대단하세요. 정말 학구열이 엄청나세요. 존경스러워요."

"존경스럽습니다. 형님."

"브라더, 진짜 리스펙트예요."

"뭘, 새삼스럽게. 껄껄."

아무튼 그들도 왜 어미를 찾아야 하는지 납득을 한 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 황제펭귄을 찾지 못하면 그 녀석이 근방에 있는 바다를 모두 얼려버릴 것이란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럼 우리는 당분간 꼼짝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좋았어! 기필코 찾아내고 말겠어요."

"저도 뇌보법을 사용해 빠르게 찾아보겠습니다."

"저도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손을 보태야겠네요. 홍홍홍."

그들의 눈빛이 변하며 의욕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침 저 멀리 프리져 타우루스의 떼가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선두에 서며 말했다.

"모두 전투 준비."

* * *

이곳의 시간으로 사흘이 지났다.

내가 사는 현실은 하루가 지났고, 우리들은 아직 뽀노의 어미를 찾지 못한 채, 드넓은 북극의 설원을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한계가 찾아왔다.

"…큰일이군. 식량이 떨어져 가는 걸."

"네? 정말요? 우리 어떻게 해요?"

"그건 좀 큰일이군요."

"오 쉣!"

그동안 꽤 많이 비축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동이 나버렸다.

젠장. 이럴 줄 알았다면 디야에 있을 때, 미리 음식을 좀 만들어 놓고 이글루 만드는 법이라도 좀 배워둘 걸….

[반딧불성, 카미유가 당신들을 걱정합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뇌에 빠집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엉덩이를 긁으며 생각에 빠집니다.]

걱정은 고맙지만 아마 그들도 뾰족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어디 추위라도 피할 곳이 있지 않은 한… 엥?

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시선을 멀리 뒀다.

"저건…."

"왜요. 저기 뭐가 있어요?"

"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브라더 혹시 유령이 보이는 건…."

"쉿."

검지를 입에 가져간 나는 초감각으로 시야를 확장 시켰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입구가 거대한 동굴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잡아먹을 것처럼 보이는 포식자의 입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동굴.

"살았다. 저곳이라면 요리를 할 수 있겠어."

"네? 저기에 뭐가 있는데요?"

"동굴이다. 다들 따라오거라."

일행들과 나는 한참을 걸어 동굴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리서 보았던 것처럼 정말 거대한 동굴이었다.

나는 약간의 의심도 없이 그곳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일행들도 뒤따라 들어왔다.

[추위가 줄어듭니다. 체온이 조금씩 올라갑니다.]

듣던 중 반가운 메시지를 보며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곧장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되게 오랜만에 요리하는 거 같네."

곧장 공중부양 냄비에 주변에 있던 눈을 집어넣었다.

솔라는 자연스레 냄비 밑으로 왔고, 눈이 녹으며 물이 되는 것이 보였다.

우선 간단하게 몸을 녹일 수 있는 국을 만들어볼까.

나는 이곳에서 얻은 식재료들을 꺼내 차례대로 나열했다.

"뭐가 엄청 많구나."

"그러게요. 진짜 많네요."

"넌 뭐가 먹고 싶냐. 수정아."

"전 이거요."

그녀가 가리킨 것은 아이스 재규어의 살코기였다.

"전 얘가 제일 싫었어요. 너무 빨라서 귀찮게 하더라구요."

그 말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그래. 이걸로 하마."

나는 익숙하게 아이스 재규어의 살코기를 솔라의 근처에서 해동하기 시작했다.

이곳 북극의 몬스터들이 좋은 점은 기본적으로 유통기한이 엄청나게 길다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살코기는 상태가 아주 좋은 편이었다.

"깍둑썰기!"

고기가 먹기 좋은 크기로 냄비를 향해 들어갔다.

나는 각종 향신료를 넣으며 맛을 내기 시작했다.

…향신료도 떨어져가네. 나중에 디야에서 향신료도 사야겠어.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에는 드문드문 하지만 알렉서스에 관한 기억도 있었다.

이곳 북극은 독특한 향신료가 꽤 많은 곳이었다.

소금 눈이 가장 유명했는데 아직도 있으려나 모르겠다.

있다면 반드시 사야 한다.

북극 말고는 구할 수 없는 최고급 향신료 중 하나니까.

"어디 맛을 한번 볼까."

후릅- 소리를 내며 간을 보았다.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며 한기가 달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이 정도면 꽤나 훌륭한 맛이다.

잠시 후. 요리가 완성되었다.

띠링-!

[일품! 아이스 재규어 고깃국]

추위에 떨어본 사람만이 태양의 따스함을 진실로 느낄 수 있다.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만이 요리의 귀중함을 느낄 것이다.

극한의 추위 속에서 만들어낸 고깃국은 요리사의 귀중함을 널리 알리게 될 것이다. 추위야 물렀거라!

-맛 스타: ☆☆☆☆

-유통기한: 4일

-생명력 회복: 400 마력 회복: 400

효능: 이 요리를 먹는 사람은 추위에 대한 내성이 2배로 증가합니다.

최대 생명력 40% 증가.

마력 회복속도 20% 증가.

얼음 속성에 대한 내성 20% 증가.

*태양의 가호: 힘 40%, 방어력 40%, 화염 공격력 40%, 화염 내성 40% 증가.

"음, 생각보다 높은 등급이 나왔네."

"와, 맛있는 냄새! 빨리 먹고 싶어요!"

고개를 돌리니 김수정을 포함한 모두가 침을 흘리고 있었다.

하긴, 그동안 미리 구워둔 물고기만 먹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고기를 먹겠는가.

나는 재빨리 고깃국을 그릇에 담아 일행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형님."

"역시 브라더의 요리가 최고예요."

"아버님. 늘 감사해요."

"껄껄. 많이 먹어라."

…동굴을 찾은 보람이 있구만.

나도 그릇에 고기를 듬뿍 담아 한입 먹으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삑- 삑-

익숙한 기계음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게 무슨 소리지…?

- 아버님, 저에요. 미경이.

…며느리잖아?

"그래. 듣고 있다."

- 집에 손님이 오셨는데, 아버님을 찾고 있어요.

"손님? 누구라더냐."

- 그게 변호사라는데… 일단 나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변호사…?

어째서 변호사가 날 찾는 거지?

일단 가봐야 하나.

"얘들아. 미안한데 먼저 먹고 있거라. 집에 손님이 오셔서 잠깐 나갔다와야겠구나."

"저희는 괜찮아요. 국이 있으니까 얼어 죽을 걱정도 없구요. 얼른 다녀오세요."

"걱정 마시고 다녀오십쇼. 누가 쳐들어오면 제가 보호하겠습니다."

"오우, 나도 있으니 걱정 말아요. 브라더."

…넌 하나도 안 든든한데.

드레인의 으쓱하는 어깨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로그아웃을 했다.

푸쉬이이익-

연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캡슐의 뚜껑이 열렸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그곳엔 웬 정장을 입은 중년의 신사가 앉아 있었다.

그가 일어나며 내게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십니까. 성신그룹 전담 변호사 김성태라고 합니다. 최춘택 어르신 맞으십니까?"

"그렇소만 성신 그룹 변호사가 날 왜 찾는지…?"

성신그룹이라면 유니온이 나타나기 전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 중 하나였다.

물론 유니온이 상장을 하자마자 1위라는 타이틀을 빼앗긴 비운의 그룹이었지만 말이다.

"혹, 얼마 전 사고를 하나 내시지 않으셨는지요."

"사고…? 무슨 사고를 말하는 거요."

"접촉사고입니다."

"접촉사고…?"

순간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혹시 그 똥차?"

"큼. 외제차입니다만."

"그래. 어떤 차요?"

"이렇게 생긴 차입니다."

그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더니 꽤 멋들어진 외제차의 사진을 여러 장 펼쳐놓았다.

외제차는 옆 통이 살짝 찌그려져 있었고, 사이드 미러가 부서져 있었다.

옆에 있던 며느리가 기겁했다.

"라, 람보르기니?"

"아는 차냐?"

"네, 그게…."

그녀는 양념이 묻은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알싸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김치를 담그고 있었던 모양이다.

김성태가 말했다.

"시가 7억 원의 외제차입니다."

"7, 7억?"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젠장. 그 똥차가 그리도 비쌌다고?

"우선 정황상 일방적으로 들이받으셨더군요. 보험사와 얘기해보니 9대1이 나왔습니다. 당연히 선생님이 9구요."

"뭐…?"

"저희 막내 도련님께선 굉장히 화가 나신 상태십니다. 어르신이 직접 찾아와 고개를 숙이신다면 너그러이 절반에 해당하는 수리비만 받는 것으로 용서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

이것들이….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그 망할 놈한테 고개를 숙이라고?"

"뭐, 핵심은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성태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재수 없는 표정을 짓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분노라는 감정이었다.

"꺼져라."

"…예?"

"당장 이 집에서 꺼지라고."

"아니 지금 누구보고 협박을…."

"이놈이 그래도!"

나는 부엌으로 달려가 며느리가 담근 배추김치를 던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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