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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91화 (91/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91화

제91화

'인생역전'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시대에서는 빚더미에 앉은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었을 때를 빗대어 쓰는 말.

그것은 행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속엔 사실 알려지지 않은 노력 또한 존재한다.

지금 미도가 수업을 듣고 있는 이곳 한국대학교 또한 마찬가지.

가상현실의 미래를 내다보고 열심히 투자했던 명문 한국대학교는 현재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재작년 가상현실 학과가 설립된 이후,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기업 유니온과 협약을 맺으며 많은 인재들이 오고 싶어 하는 학과가 된 것이다.

"오늘부터 방학이죠? 하지만 과제가 없으면 여러분들이 심심할까 봐 준비해봤어요."

"아…."

학생들의 짧은 탄식이 강의실을 울렸다. 여교수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아크스타라는 게임은 우리 학과랑 많은 접점이 있어요. 다들 알죠?"

"네."

"우리 학과와는 정말 뗄래야 뗄 수 없는 게임이죠. 취업 연계 프로그램도 하고 있고요. 내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제안할 과제는 바로 유니온에서 준비한 것이에요."

그녀의 말과 동시에 모두가 웅성거렸다. 미도 또한 마찬가지.

'대체 유니온에서 무슨 과제를…?'

미도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요."

여교수가 싱긋 웃었다.

"여러분은 오늘부터 아크스타를 해야 해요. 하지만 그냥 하는 것은 아니고, 한 가지 조사를 해야 하죠.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해요."

"어떤 것을 조사하는 건가요?"

누군가 묻자 여교수가 대답했다.

"성좌들을 조사하는 겁니다."

다시 한번 웅성거리는 학생들.

아까보다 더 큰 웅성거림이었다.

미도는 침묵을 지키며 여교수의 말을 기다렸다.

여교수가 말했다.

"아크 스타에는 88개의 성좌들이 있다고 해요. 그들의 정체와 능력을 가장 많이 알아오는 사람에게 유니온의 인턴으로 일할 자격이 주어질 거예요."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는 미간을 찌푸렸고, 누군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들은 각자의 욕망을 품은 채 여교수의 말을 경청했다.

"아크스타를 즐기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이번에 유니온에서 우리 학과 학생들이 방학동안 무료로 즐길 수 있도록 했거든요. 여러분은 그저 학생증을 들고 제휴된 캡슐방을 찾아가 즐기기만 하면 된답니다. 물론 돈은 유니온에서 전액 부담할 거예요."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옆에 있는 친구와 함께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그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그만큼 지금 유니온은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이니까.

기쁜 것은 미도 또한 마찬가지.

'와, 그럼 이제 매일 아크스타를 할 수 있겠네?'

미도의 가슴이 뛰었다.

그동안 아크 스타를 하며 얼마나 많은 기쁨을 누렸던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꿈을 미도는 가상현실 속에서 꾸고 있었다.

비록 진짜가 아니라도 미도에게 그곳은 진짜였고 실재하는 곳이었다.

그곳은 그녀의 또 다른 고향이기도 했다.

"점수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성좌를 보고서에 올리는 사람이 많이 받게 될 거예요. 그럼 방학을 축하합니다. 여러분. 훌륭한 성과가 있길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의 의자가 '드르륵'하며 움직였다.

그들의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미도 또한 마찬가지였고, 옆에 있던 친구 성가영도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진짜 대박이다. 그치 미도야?"

"응. 나도 이렇게 파격적인 제안을 유니온에서 할 줄은 몰랐어."

"정말 여기 학과로 오길 잘한 것 같아."

"그러게."

성가영이 물었다.

"미도야, 너 무슨 고민 있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별일 아니야. 그냥 앞으로 어떻게 게임을 해야 할까 생각 중이었어."

"넌 이카루스 길드에 들어가 있지 않아? 최근에 너 유튜브에서 많이 유명해졌잖아. 요즘 너한테 사인받고 싶어 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냥 평소처럼 해. 그럼 만사형통이야."

"흐음, 그래도 뭔가 남들과는 다른 걸 하고 싶은데…."

미도와 가영은 강의실을 나와 학식을 먹는 곳에 도착했다.

성가영은 김치볶음밥을 골랐고, 미도는 간단하게 샌드위치 하나와 조그만 샐러드를 골랐다.

성가영이 말했다.

"너 그걸로 배 차겠어?"

"요즘 다이어트 중이야. 내일 방송하는 날이거든."

"너도 참 힘들게 산다."

"뭐, 돈은 많이 버니까."

"좋겠다~ 나도 유튜브나 할까."

"그럼 그거부터 먹지 마."

"아이고 됐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난 그거 포기하고는 절대 못사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두 사람은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때, 미도의 핸드폰에 문자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차진철: 미도야. 너네 할아버지 좀 만나자.]

* * *

"…진짜 미쳤네."

미도에게 문자를 보낸 차진철은 오싹한 소름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방금 전 자신이 노트북에서 발견한 이 '한 사람'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 할아버지 정체가 뭐야…?"

2팀의 어느 누구도 새로운 성애자(星愛者)를 찾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도 실력이 있는 사람들인데 찾지 못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얘기였다.

차진철은 어쩌면 저번처럼 등잔 밑이 어두운 곳에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아직 유저들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곳에서 단서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멈춘 곳은 망망대해가 펼쳐진 바다 한가운데였다.

'도대체 배는 어떻게 얻은 거지…?'

사실 아크스타 내에서 그 정도 크기의 범선을 사려면 가격이 상당했다.

웬만한 상인 유저들도 작은 범선을 사는 데 허리가 휘청이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낱 할아버지가, 그것도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유저가 그것을 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어떻게 다른 성좌의 힘을 쓸 수가 있는 거지?'

매형인 유민석에게 약간의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도 처음 입사했을 때 들은 얘기라 얼핏 기억이 나는 것이라고 들었다.

사실 그때는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전설 속에 숨겨진 진정한 전설.

현재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강재성 박사가 해준 말이라고 했다.

언젠가 그런 것이 나타날 것이고, 그것이 나타난다면 아크스타 내에 존재하는 기존 질서들을 뒤엎어버릴 것이라고 했었다.

그때는 모두가 웃어넘겼기에 모두가 농담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

"진짜였어."

차진철은 모니터실에 구비된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따고는 다시 화면을 돌려 거대한 늑대들이 싸우는 장면을 감상했다.

고고하고 기품 있는 하얀 늑대와 음침하고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검은 늑대.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타 있는 유저들. 놀랍게도 그중 하나는 이번에 새로운 성애자(星愛者)가 된 인물도 함께 있었다.

'반딧불 성애자(星愛者)였던가?'

더욱 놀라운 건 그녀가 스타 프루츠를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이 전에 보았던 '미도의 할아버지'라는 것이었다.

'저 할아버지는 마치 모든 성좌를 알고 있는 듯한 말투였어.'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상념에 빠져있는 그때, 매형인 유민석에게 전화가 왔다.

차진철은 곧장 전화를 받았다.

"네. 왜요."

- 야, 너 뉴스 봤어?

"당연히 봤죠."

- 혹시 2팀에서 먼저 찾았냐?

"아뇨. 방금 보니깐 못 찾아서 우 팀장님한테 혼나던데요."

- 크으, 그렇구나. 역시 이럴 때는 우리 잘생긴 처남이….

"그럴 줄 알고 벌써 찾고 있었어요."

- 오오! 역시 우리 잘생긴 처남이야. 그래서 찾았냐?

"일단 와보세요. 드릴 말씀도 있고."

- 후후. 벌써 찾은 모양이구나. 요 이쁜 녀석. 가면 내가 뽀뽀를….

"됐으니까 빨리 와요. 지금 심각하니까."

- 뭔데 그렇게 심각해? 일단 알았다. 금방 갈게. 30분 정도 걸릴 거야.

"…알았어요."

그렇게 전화를 마친 차진철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렸다.

하지만 또 한 번 진동이 왔다.

우웅-!

깜빡이는 핸드폰의 화면을 바라본 차진철이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쉽지 않은 여자네."

[최미도: 싫은데요.]

* * *

소복소복 쌓이는 눈의 결정들.

그 눈의 결정들이 모여 눈이 되고, 눈이 모여 언덕을 이루고, 언덕이 모여 곧 풍경이 되어 절경이 되어버린 그곳을 가로지르는 무리들이 있었다.

"아버님. 정말 그렇게 하실 거예요?"

"뭘 말이냐."

"뽀노요. 꼭 엄마를 찾아줘야 하는 거예요? 그냥 우리가 데려다 기르면 안 돼요?"

방금 전 다이베우스는 우리들에게 뽀노의 어미를 찾아 줄 것을 요청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지체없이 승낙했다.

"안 된다."

"힝. 왜요?"

"황제펭귄은 이곳 북극을 벗어나면 살 수가 없다."

"아…."

김수정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나는 이어서 말했다.

"사실 어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진짜 이유는 그것 때문이야."

"네…? 그냥 얘를 엄마 품으로 돌려보내는 게 이유 아니었어요?"

"그것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아니다."

"그게 뭔데요…?"

대답은 하늘에서 들려왔다.

카미유 였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어미의 생사를 확인해보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생사…? 혹시 죽기라도 했단 말이야?"

아무래도 카미유는 이유를 알고 있는 듯했다.

하긴, 그녀도 모를 순 없을 것이다. 그리 썩 달가운 이유는 아니었으니까.

[반딧불성, 카미유가 그것은 아직은 모른다고 말합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곳은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위험해져?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왜 이곳이 위험…."

"그건 내가 설명해주마."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김수정도, 견소룡도, 드레인도, 모두가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약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곳 세상에 북극이 왜 생겨났는지 아냐?"

"네? 당연히 모르죠.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형님."

"브라더는 아나요?"

…하긴 알 리가 없나.

"나는 안다."

"그게 뭐예요? 그냥 북극이라 그런 거 아니었어요?"

그냥 북극이라 그런 거라….

하긴 일반적인 상식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바깥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상식이 관통하는 곳이었다.

"궁금합니다. 형님."

"말해줘요. 브라더."

몹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견소룡과 드레인의 얼굴을 지나, 다시 김수정을 보았다.

그녀는 잔뜩 기대에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마 내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까 기대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닐 것이다.

"툰드라 드래곤."

"…네?"

"이곳은 빙설계 최강의 성좌가 머무르는 곳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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