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87화
제87화
푸쉬이이익-
캡슐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익숙한 곳의 천장이었다.
나는 멍하니 그곳을 올려다보며,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내가 기절하기 전 보았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엄청난 힘의 과부하에 당신은 기절하였습니다.]
[12시간 뒤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부담감이 큰 힘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지금 내 레벨은 100도 되지 않았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언뜻 스치는 아내의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여보, 이런 마음이었소…?"
대답 없는 아내의 초상화는 묵묵히 자신을 보고만 있었다.
어느새 바깥은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나는 고요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당신도 별의 가호가 함께하길 빌겠소."
* * *
다음 날. 세상이 떠들썩해졌다.
매일 아침 아크스타와 관련된 소식을 보도하던 방송들은 물론이고, 다른 게임 방송사들까지 입을 모아 속보를 내고 있었다.
온갖 신문사를 포함한 그들이 말하는 내용은 모두 같았다.
새로운 성애자(星愛者)의 출현.
모두가 새로운 스타 프루츠 능력자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했다.
온갖 추측들이 쏟아졌고, 그것은 왜곡된 정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다.
한 성좌가 '별의 요람'으로 돌아갔다는 메시지.
TV의 전문가들도, 신문들도 모두 이 이야기만을 떠들어대고 있었다.
차진철은 회사 내에 마련된 수면실에서 자고 일어나 그것을 보고 있었다. 인터넷도, TV도, 신문도, 모두가 그 이야기뿐이었다.
"자고 일어난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새벽 일찍 출근한 그가 노트북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매형한테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매형이 시킨 일이니까."
원래라면 이런 밤사이 일어난 모니터링은 그의 담당이었다.
전략기획 1팀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한 번도 이런 것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2팀에서 공을 가로챌 것 같았다.
'2팀이 있는 곳에 한번 가볼까.'
차진철은 곧장 자리를 옮겨 2팀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한 그는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그게 말이 돼! 대체 너희들은 뭘 한 거야!"
노기 어린 2팀장 우성재의 목소리가 문밖에까지 들려왔다.
차진철은 숨을 죽이며 대화를 엿들었다.
아무도 지금 그가 왔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밤새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냐! 어?! 니들이 그러니까 1팀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2팀장 우성재는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정황상 그들은 밤새 아무것도 찾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우성재가 한참이나 팀원들을 닦달하고는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 좋은 아침입니다."
"끙!"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우성재가 씩씩거리며 멀어졌다.
언제 봐도 느끼지만 참 다혈질인 사람이다.
어떻게 저 성격으로 팀장까지 된 건지….
'팀장의 그릇이 아니지. 부하들만 죽어나가잖아.'
그런 점에서 차진철은 행운아였다.
1팀장이자 자신의 매형인 유민석은 유도리가 있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적어도 자신의 일을 떠넘기거나 못한다고 책임을 묻는 사람은 아니었다.
차진철은 자판기에서 냉커피를 하나 뽑은 뒤, 다시 원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뚜둑-! 하며 손가락을 풀었다.
"그럼 내가 한번 찾아볼까?"
유니온 최고의 모니터링 요원.
그것이 차진철에 대한 유니온의 평가였다.
* * *
구름 한 점 없는 나른한 오후.
꽤 돈을 많이 번 중견 사업가가 살 것만 같은 이 저택에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띵동-!
잠시 후. 문을 열고 나온 것은 낮잠을 자다 일어난 백무열이었다.
백무열은 눈을 비비며, 찾아온 손님에게 물었다.
"자네들은 누군가. 누군데 내 낮잠을 깨우는 거지…?"
"배, 배달입니다!"
"배달…?"
부리부리한 눈으로 그들의 뒤를 보니, 냉장고만 한 박스를 들고 낑낑거리는 남자들이 보였다.
그곳에 적혀있는 유니온이라는 상표를 보는 순간, 백무열이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쳤다.
"아! 내가 주문한 게 드디어 온 모양이구만. 어서 들어오게."
"예, 예!"
왠지 쫄은 듯 보이는 그들은 쭈뼛거리며, 집으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넓은 실내 공간에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것이 보였다.
"이리로 오게."
백무열은 그들을 안방으로 안내했다.
서둘러 캡슐을 설치하기 시작하는 청년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잠시 뒤, 모든 설치가 끝나자 제일 처음 말을 걸어왔던 청년이 말했다.
"저기…."
"또 뭔가."
"혹시 허가증이 있으신지…."
"그건 왜?"
"절차상 확인해야…."
"끙. 기다리게!"
어딘가로 사라진 백무열은 가상현실 게임 허가증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보며, 휘둥그레진 표정을 짓는 청년.
"S, S급…?"
"자네도 불만인가?"
순간 병원에서 S급이 또 나올 리 없다며 재검사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
춘택이 녀석의 말대로 깐깐한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정도껏 했어야 했다.
화가 난 백무열은 흉악한 표정을 한번 지었고, 모든 것이 만사 오케이로 흘러갔다.
그의 타고난 외모가 훌륭한 무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눈앞의 청년을 그때와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청년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히, 히익! 죄, 죄송합니다!"
그들은 서둘러 장비를 정리해 집을 떠났다.
떠나기 전 한 청년이 말하길, 허가증을 캡슐 옆에 넣으면 작동한다고 했다.
그곳을 보니 정말 그런 것이 있었다.
백무열은 곧장 캡슐 옆에 허가증을 넣었다.
푸쉬이이익-
관 뚜껑 열리듯, 열리는 캡슐.
그것을 보며 미간이 찌푸려졌다.
"불길하게. 이게 뭐야."
백무열은 곧장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춘택이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내 종료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춘택이에게 비밀로 하면 재밌지 않을까?'
그도 이것을 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를 따라잡으면 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무열은 전화를 놓고 곧장 캡슐에 누웠다.
딸깍.
빨간 버튼을 누르자, 닫히기 시작하는 관뚜껑(?)을 보며 긴장감이 흘렀다.
그리고 눈앞에 메시지가 보였다.
[아크스타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
한편, 오늘도 아침 운동을 하고 온 나는 곧장 아크스타에 접속했다.
뉴스를 볼까 했지만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이 생기고 나서는 잘 보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한 고급 정보는 거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TV에서 모르는 것마저도 알고 있었기에 자잘한 정보는 수정이나 미도에게, 정 아니면 정도 녀석에게 물으면 되는 것이었다.
[접속을 환영합니다. 잭슨 님]
슈아아악-!
하얗게 무너지는 정경과 동시에 눈을 떴다. 그런데….
"이게 뭐야?"
내 몸은 꽁꽁 묶인 채, 어딘가로 움직이고 있었다.
눈을 치켜뜨며 위쪽을 바라보니, 익숙한 늑대의 뒤통수가 보였다.
나는 늑대에게 말했다.
"펜릴…?"
그 순간 나를 들쳐 메고 움직이던 늑대가 멈춰 섰다.
아무래도 펜릴이 맞는 것 같았다.
"깨어났나 보군."
"…내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지?"
"이틀이다."
역시 그랬나.
하긴, 시스템 메시지도 이틀이라고 했으니까. 당연한 거겠지.
"근데 난 왜 이런 꼴이 되어있는 거냐…?"
펜릴이 다시 달리며 말했다.
"함께 온 인간들이 그대를 부탁한다며 꽁꽁 묶어버리더군. 나는 그대가 어떻게 묶여있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내 몸을 내려다봤다.
추위를 타지 않도록 킹콩 설인의 가죽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매듭법이었지만, 얼마나 꽉 묶었는지 풀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전화로 말이라도 좀 해주지.
나는 펜릴에게 물었다.
"동료들은 어떻게 되었지?"
"그들이라면 걱정할 것 없다. 다른 형제들과 벌써 디야에 도착했을 테니 말이야. 나는 잠시 누체의 주민들에게 어머니의 뜻을 전하느라 늦었다. 하지만 걱정 마라. 금방 도착할 테니까."
…쉽게 말하면 뒷수습하느라 늦었다는 거군. 그런데 이것 좀 풀어주고 말하면 안 되나?
"펜릴, 이것 좀 풀어다오."
"귀찮다."
"야, 나 이제 괜찮…."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신다. 이제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참아라."
그 순간 펜릴의 속도가 2배로 올라갔다.
너무나 빠른 속도에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악-! 이 망할 놈아~~!!"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당신을 보며 폭소를 터트립니다.]
* * *
2시간을 달려서야 나는 펜릴의 등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옆에 보이는 다이베우스가 왜 이렇게 꽉 묶었냐며 투덜거렸다.
"구도자가 꼴이 말이 아니군."
"그러게 말이야."
나는 하늘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네놈은 당분간 국물도 없을 줄 알아라."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맘대로 하라며 웃음을 참습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쌍화차를 홀짝입니다.]
이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사실 오는 동안 솔라를 불러냈었다.
하지만 아무리 풀어달라고 말해도 솔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프로메테우스 녀석이 막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솔라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진짜 주인님이 내버려두라고 했다! 해해!'
제기랄. 다시 생각해도 열 받네.
그럼 난 가짜 주인이냐?
부리부리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라더~!!"
"드레인…?"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마 그가 선원들과 같이 다이베우스의 방을 구경하겠다며 사라져버린 탓에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도 귓속말을 했었으면 다시 데리러 갔을 텐데… 안 한 걸 보면 많이 삐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엄청 미안해지는데.
"드레인 미안하…."
"브라더! 이곳에 엄청난 옷감들이 있어요! 뷰티풀! 원더풀!"
"……."
그는 한참이나 이곳의 옷감에 대해 떠들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배운 새로운 '바늘 공예술'에 관해서도 말해주었다.
사실 처음엔 놔두고 가서 좀 섭섭했는데 다이베우스가 이곳에도 옷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소개해주겠다는 말에 섭섭함은 쏙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내가 이곳에서 고드름 바느질을 배웠는데 굉장히…."
…뭐, 잘된 건가.
드레인은 나름대로 그만의 여행을 한 것 같았다.
기분은 좋아 보이는 것 같으니 일단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 아침 일찍부터 들어와 있군.
혹시 밤을 샌 건 아니겠지…?
갑자기 드레인이 박수를 쳤다.
"아! 내가 브라더 주려고 고드름 바느질로 만든 옷이 있어요!"
"옷…?"
두고 간 것도 미안한데, 옷도 만들었다니 더 미안해진다.
왠지 그에겐 좀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따가 내가 얻은 새로운 가죽들도 줘야겠구만.
"후후. 기대해도 좋아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요."
잠시 뒤, 그가 들고 온 것은 온통 푸른색으로 되어있는 옷이었다.
가끔 주황색과 노랑색 패턴이 보이는 것이 뭔가 그만의 독창성이 보이는 것 같았다.
…뭔가 심오해 보이네. 엄청 좋은 옷일 것 같은데.
나는 그가 건네준 옷을 정보창도 확인하지 않고 곧장 착용했다.
[황제펭귄의 괴짜 요리 정장 상의를 착용하였습니다.]
[황제펭귄의 괴짜 요리 정장 하의를 착용하였습니다.]
[황제펭귄의 괴짜 요리 정장 모자를 착용하였습니다.]
…
…
황제펭귄…? 이 가죽을 대체 어디서 구했지?
황제펭귄은 이곳 북극에서 멸종 위기인 몬스터 중 하나였다.
500년 전에도 그랬는데 설마 지금까지 살아있을 줄은 몰랐다.
참고로 이름이 황제펭귄인 건 늘 빛나는 왕관을 쓰고 있어서였다.
드레인이 감탄하며 말했다.
"굿굿! 아방가르드한 모습이 굉장히 잘 어울려요! 와우!"
"그, 그래…?"
전신 거울이 있다면 좋겠지만 이곳에서 그런 걸 바랄 수는 없었다.
때마침 수정이가 접속했다는 메시지가 보였다.
-잭슨: 수정아 어디냐.
-크리스탈: 일찍 들어오셨네요? 저 다이베우스의 집안에 있어요.
-잭슨: 바로 앞에 있구나. 잠시 나와보거라.
나는 그녀에게 드레인이 만든 옷을 자랑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애써 만들어주었으니, 한껏 뽐내며 칭찬받는 것이 그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좋은 아침이에요!"
나는 그녀를 향해 당당하게 걸어갔다.
이왕 가는 거 멋있게 문워크로 가면 멋있을 거 같았다.
김수정이 내 모습을 보며 물었다.
"와~ 엄청 잘 추시네요? 근데 웬 옷이에요? 어디서 많이 봤는데?"
"드레인이 만들어준 옷이다. 어떠냐! 껄껄."
아무래도 멋진 모습에 그녀가 할말을 잃은 듯했다.
김수정은 한참이나 내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잠시 뒤 한마디 말했다.
"아! 어디서 봤나 했더니 그거 같아요!"
"뭐 말이냐?"
"어린이들의 대통령이요!"
어린이들의 대통령…?
새로운 성좌의 별명인가…? 아닌데, 내 기억 속에 그런 별명을 가진 성좌는 없는데?
내가 모르는 것을 그녀가 알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정이 말했다.
"뽀통령이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