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85화
제85화
김수정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스타 프루츠를 삼켰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맛이 없음을 격하게 표현했다.
사실 진짜 맛없었다.
'윽, 이게 무슨 맛이야….'
그 순간 그녀의 머리 위에서 별이 빛났다.
찌이이잉-!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별빛은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우주, 은하수, 거대한 블랙홀.
그 너머로 별들이 보였다.
김수정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으며 눈을 떴다.
[당신의 천성(天星)은 '간절한 희망의 군주'입니다.]
[3등성의 성좌들 중 '간절한 희망'을 좋아하는 자들이 모입니다.]
[별이 사랑하는 자, 성애자(星愛者)의 자격을 획득하였습니다.]
[3등성, '벚꽃을 베는 자'가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3등성, '빛의 모방가'가 호기심을 가집니다.]
[3등성, '천상을 연주한 악마'가 자애롭게 바라봅니다.]
…
…
김수정의 눈이 커졌다.
"이, 이게 다 뭐야!"
* * *
나는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내가 이것을 먹었을 때가 기억이 났다.
그 떫은맛에 얼마나 인상을 찌푸렸던지.
그땐 그녀가 내게 이것을 먹으라고 했지만, 지금은 내가 그녀에게 이것을 먹이고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김수정이 말했다.
"이, 이상한 이름을 가진 애들이 저한테 말을 걸어요!"
"성좌들이다."
"뭐, 뭐라고 해야 해요?"
"아무 말이나 하면 된다."
그런 내 말에 그녀가 하늘을 보며 인사했다.
그러자 약간의 스파크가 튀었고, 그녀가 당황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우, 우와! 이런 기분이었구나. 저한테 말을 걸어와요!"
"……."
미안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줄 수가 없었다.
지금 로믈라나가 조금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생명력이 어느새 절반으로 닳아있는 것이 보였다.
"미안한데 시간이 없다. 너에게 관심을 보이는 성좌들의 별명을 불러다오."
"아, 죄송해요. 우선 제일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건 '벚꽃을 베는 자'였어요."
벚꽃을 베는 자라….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별명을 떠올리며 웃습니다.]
나도 속으로 웃었다.
설마하니 이 녀석이 3등성이었을 줄이야.
그는 이곳이 아닌 동대륙에 살던 성좌였다.
검 하나로 검성(劍聖)의 경지에 올랐는데, 참고로 그는 인간이 아니다.
그는 수련할 때 벚꽃 나무를 걷어차서 떨어지는 벚꽃을 베며 수련했고, 그렇기에 그의 검술은 이렇게 불린다.
…사쿠라 검법.
문제는 그를 성좌로 두기 위해선 애초에 검술에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녀인 '미도'라면 몰라도 그녀에겐 조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성좌였다. 애초에 내가 찾는 성좌는 이 녀석이 아니기도 하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는 너에게 맞지 않을 것 같다. 또 누가 있지?"
"음, 빛의 모방가…?"
"그 녀석도 맞지 않겠다.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끙, 성좌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네요."
그녀는 쉬지 않고 뜨는 성좌들의 메시지를 확인하며 내게 별명을 말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가차 없이 걸러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시간이 없다며 말합니다!]
젠장, 그건 나도 아는데….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만한 녀석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 그녀가 3등성에 있을 텐데.
그때, 마지막으로 김수정이 말했다.
"마지막이에요. '녹빛의 구원자'라는데요?"
그 별명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드디어 내가 찾던 성좌의 별명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녀에게 '녹빛의 구원자'를 성좌로 택하라고 말했다.
김수정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의 주위로 빛이 퍼져나갔다.
파아아아앗-!
[World. 새로운 전설이 깨어났습니다! 그녀의 성호는 반딧불 성애자(星愛者)입니다!]
그녀의 주위를 떠돌기 시작하는 녹빛의 반딧불들.
어두운 동굴 속을 녹빛으로 밝히는 반딧불들을 보는 순간 입꼬리에 미소가 지어졌다.
김수정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반딧불성, 카미유…?"
정확히 말하면 '카미유 네페무크'였다.
나는 그녀를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프로메테우스가 관심 있게 지켜보던 성좌였으니까.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첫사랑을 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비록 짝사랑이었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아직 그녀를 잊지 못했다.
이 세계에서 '신'이라고 불리는 녀석이 한낱 인간, 아니 이제는 성좌가 된 존재를 몇백 년이 넘도록 잊지 못했다는 것은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문제는 프로메테우스 놈이 돌싱남이라는 게 문제지만….
아무튼, 나는 그녀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김수정은 잠깐 어리둥절했지만, 역시 젊은이라 그런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툭.
[성단, '별 다방(多房)'에 반딧불성, 카미유가 입장했습니다.]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엄청난 메시지가 쏟아졌다.
역시나 프로메테우스의 메시지.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카미유를 두 팔 벌리며 환영합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프로메테우스의 뺨을 때립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울상을 짓습니다.]
제기랄. 들어오자마자 사랑싸움이냐.
"사랑싸움은 있다가 해라! 남사스러운 놈들아!"
[반딧불성, 카미유가 사랑싸움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사랑싸움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망할 녀석들….
그 사이에서 죽어 나가는 건 가운데 있는 레이트라였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번개털을 부여잡으며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김수정은 갑작스런 상황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많이 혼란스러울 테지….
딱 봐도 그래 보였다.
안 그러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설명할 시간은 없다.
나는 하늘을 올려보며 본론부터 말했다.
"카미유. 너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진지한 눈빛으로 누구냐고 묻습니다.]
역시.
'카미유 네페무크'는 성좌가 되기 전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성녀였다.
그녀는 역시 그때의 본성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아픈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기억 속 그대로였다.
정확히는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이었지만 말이다.
"저기 있는 로믈라나를 치료해다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카미유의 반응은 빨랐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자신의 성애자(星愛者)에게 권능을 내립니다.]
은은하게 빛나는 반딧불이 김수정의 주위를 휘감기 시작했다.
그녀의 양팔이 흑빛으로 물들었고, 곳곳에서 은은한 야광 불빛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김수정이 입을 열었다.
"성좌 스킬. 치유의 반딧불…?"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로믈라나를 향해 손을 뻗거라."
"…이렇게요?"
"이제 스킬을 사용해봐라."
김수정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치유의 반딧불."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간 야광 불빛들이 로믈라나에게 가고 있었다.
로믈라나가 치유의 기운을 느끼며 눈인사를 하는 것이 보였다.
어느새 목덜미에 나 있던 상처가 아물었다.
[그대는 카미유군요. 오랜만이에요.]
[반딧불성, 카미유가 반갑게 인사합니다.]
[덕분에 아이들이 다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뭐…? 잠깐만.
[이젠 손속에 여유를 두지 않겠어요.]
쿠구구구구.
그녀의 주위로 새하얀 백야와 연보랏빛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로믈라나가 제대로 힘을 쓰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설마 이 정도의 영성(靈星)을 감추고 있었을 줄이야….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자신의 성애자(星愛者)에게 권능을 전합니다.]
"아버님, 이번엔 반딧불 협주곡이라는 스킬이에요!"
"빨리 써라! 더 위험해지기 전에!"
"반딧불 협주곡!"
이번엔 찬란한 형광들이 넓게 퍼져나갔다.
그것은 순식간에 엄청난 범위의 보호막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두의 생명력이 치유되는 것이 느껴졌다.
무너지는 동굴 속에서 견소룡이 감탄했다.
"엄청난 힘이로군."
사실 카미유가 전투능력만 없어서 3등성이지 치유 능력은 성좌들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건 엄청난 힘이지. 누군가를 치유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다."
그래. 마치 생전의 '카미유 네페무크'처럼 말이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흐뭇한 미소로 카미유를 봅니다.]
나는 레무스와 로믈라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둘은 빛과 어둠처럼 서로를 향해 대립하고 있었다. 어느새 동굴의 천장은 무너졌고, 눈보라가 치는 정경이 드러났다.
하늘은 흰색으로, 검은색으로 뒤섞이며 회색의 스파크를 만들어냈다.
츠츠츠츳!
흑야랑과 백야랑은 서로를 물어뜯으며 할퀴었다.
야성을 깨운 레무스와 로믈라나는 다시 한번 맞붙었다.
콰아아아앙-!
눈사태가 우리를 덮쳤지만, 반딧불 협주곡의 보호막 덕분에 무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땅이 흔들리는 지진만큼은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
"꺅! 저희 이러다 죽는 거 아니에요?"
"크윽. 무슨 성좌들의 싸움이…!"
"부부싸움 한번 거창하구만."
이러다 진짜 죽겠구나 싶었다.
나는 여기서 살아나가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 거지.
그저 스타피스만 좀 빌리러 왔는데 늑대 싸움에 사람 등 터지게 생겼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은 이미 벌어진 것을.
그때였다.
[2등성, 흑야의 나그네가 자신을 보며 깜짝 놀랍니다.]
[2등성, 흑야의 나그네가 진명(眞名)을 드러냅니다.]
[늑대성, 레무스가 당황합니다.]
[로믈라나…?]
[레무스, 정신이 좀 들어요? 나예요.]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그의 눈에 있던 판도라의 조각이 사악한 힘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들의 눈에도 그것이 보였다.
[판도라의 조각이 늑대성, 레무스를 타락시킵니다.]
[늑대성, 레무스가 7대 죄악 중 <분노> 에 사로잡힙니다.]
[안. 돼. 로믈라나. 도.망…]
콰아아아앙-!
레무스의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보라색의 기파.
판도라의 조각은 그에게 사악한 힘을 주고 있었다.
로믈라나는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미간을 찌푸립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당황합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빌어먹을.
나도 알고 있다.
그는 이미 너무 많은 죄악에 물들어 있었다.
타락에 물든 성좌의 최후는 뻔했다.
이미 예전에도 한 번 이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가이아가 있어서 빠르게 정화를 할 수 있었지.
당시 그 성좌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어딘가로 숨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도저히 그 말을 로믈라나에게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지금 그녀에게 너무나도 잔혹한 말이었다.
[로믈라나…. 으으, 알…데…바란 용서…못해. 내…눈….]
레무스는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한번 분노에 사로잡혀 버렸기에, 두 번째는 더 쉬울 것이 뻔했다.
흘러내리는 로믈라나의 눈물을 보며 나는 비감에 사로잡혔다.
"…제기랄."
어쩌면 그녀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로믈라나가 이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