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81화
제81화
[늑대성, 로믈라나가 수줍게 응원합니다.]
수줍은 로믈라나의 응원.
그야말로 소심함의 극치였다.
차가운 눈보라를 뚫고 달려오는 몬스터들을 보며, 나는 약간의 한숨을 쉬었다.
…젠장. 갑자기 담배가 땡기는군.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당신의 건투를 빕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이어지는 싸움을 기대합니다.]
"기대는 개뿔."
수가 제법 많아 보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레이트라가 있어서 저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푸른 번개는 그들의 몸을 마비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견소룡이 다가왔다.
"이번엔 저도 돕겠습니다."
"당연한 소리를."
"제가 오른쪽입니다."
"그럼 내가 왼쪽이다."
김수정이 말했다.
"그럼 전 뒤에서 힐을 담당할게요."
그녀의 말과 동시에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우리들은 동시에 뇌보법을 전개하며 순식간에 몬스터들의 앞에 나타났고, 내가 제일 먼저 맞닥뜨린 것은 커다란 얼음 뿔을 가진 '프리져 타우르스'였다.
"고얀 송아지로구나."
꽈르르릉!
540도 뒤돌려차기가 미간에 꽂혔다.
거대한 얼음 소의 몸을 타고 흐르는 푸른 번개가 몸을 마비시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쉬지 않고 발차기를 했고, 손쉽게 놈을 제압할 수 있었다.
[프리져 타우루스의 뿔을 획득하였습니다.]
[프리져 타우루스의 냉동고기를 획득하였습니다.]
"…식량이군."
마침 그동안 모아둔 식재료들이 조금씩 떨어져가고 있었다.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것도 있어서 새로운 식재료가 필요한 참이었는데,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견소룡이 푸른 번개를 출사하는 것이 보였다.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질 수 없지."
나는 몬스터들의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발차기를 날렸다.
돌려차기, 뒤차기, 옆차기.
온갖 화려한 기술들로 그들의 머리 위를 누볐다.
내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몬스터들이 감전되었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벼락의 비각술을 익혔더라면 좋았을 것을.
내심 아쉬운 마음이 있긴 했다.
벼락의 비각술은 레이트라의 번개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푸른 번개가 유피테르가 떨어뜨린 번개의 조각에서 얻은 힘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벼락의 비각술은 조각이 아닌 온전한 번개 그 자체를 사용할 수 있는 힘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얻을 수 없지만 말이다.
…하늘에서 내려치는 그 힘이었다면 단번에 쓸어버렸을 테지.
나는 입맛을 다시며 계속해서 몬스터들을 쓸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레벨이 올랐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걸 이렇게 부른다고 하던데.
"광렙업이랬나?"
며칠 전 정도 녀석이 가르쳐준 말이었는데, 미칠 광(狂)자를 써서, 미친 듯이 레벨업 하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뭐, 진짜 미친 듯이 오르긴 한다.
나는 어느새 70레벨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잠시 후. 모든 몬스터를 처리했을 때는 72레벨이 되어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이름: 잭슨
레벨 72 [제법하는] 날씨 요리사
칭호: 뮬란의 영웅 외 7개
힘128(+70) 민첩128(+70)
건강28(+95) 지식48(+70)
솜씨102(+0) 감각107(+0)
능력치 포인트: 100
무게: 71/100
+화염 속성 내성 50%
+얼음 속성 내성 50%
+거미 독 내성 100%
"오, 딱 100개가 쌓였네."
나는 힘과 민첩을 150에 맞추고 건강과 지식을 알맞게 찍었다.
…여긴 위험한 곳이니까 건강을 좀 찍어 두는 게 좋겠지.
지식은 스타피스를 위해서 찍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스타피스가 마력을 많이 잡아먹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식을 올리면 속성 데미지가 증가해서 해 오름이나 푸른 번개의 데미지가 오르는 효과도 있었다.
나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상태창을 닫았다.
"형님. 금방 100레벨이 되시겠습니다."
"다 네 덕이지."
"과찬이십니다. 저보다 번개를 더 잘 다루시는 거 같은데요."
"그건 맞는 말이지."
우리 두 사람은 폭소를 터트렸다.
김수정이 다가왔다.
"여기 엄청 잘 오르는데 계속 사냥하면 안 될까요?"
"음."
사실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내게 주어진 퀘스트는 한 달 안에 미노타를 쓰러트리는 것이었으니까.
"시간이 남으면 그렇게 하자. 하지만 지금은 누체로 가는 것이 먼저야."
"어쩔 수 없죠. 그럼 우리 뭐라도 먹고 가요. 다들 조금 지친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포만도가 떨어졌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꾸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정경 속에서 나는 하늘을 올려 보았다.
그리고 윈디아가 있는 곳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별일 없겠지?
미노타의 사냥까지 남은 시간 앞으로 '24일'.
* * *
최초로 스타 프루츠를 먹은 자.
1등성의 주인.
랭킹 1위 검사.
'제우스' 길드의 에이스.
제1회 아크스타 월드 대항전 MVP.
이 모든 것은 현 세계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마이클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어쩌면 오만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마이클은 파르타 공국 근처에서 몬스터들을 썰어버리고 있었다.
기계 문명이 꽃피워진 그곳은 많은 기계형 몬스터들이 나왔다.
양손에 거머쥔 그의 칼날이 핑그르르 날았다.
서걱-! 츠츠츠츳.
지금 마이클이 잡고 있는 것은 바로 '메탈 리자드맨'이라는 이름을 가진 몬스터들.
몸의 절반이 사이보그처럼 기계화가 되어버린 존재들이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쌍검이 나비처럼 움직이고 벌처럼 쏘아졌다.
슈칵-! 슈카칵-!
마이클은 무자비하게 몬스터들을 베고 지나갔다.
"스콜피온 소드."
[성좌 스킬, '스콜피온 소드'가 발동합니다.]
[검에 '안타라스의 독'이 깃듭니다.]
우득 우드득.
그의 쌍검이 전갈의 꼬리처럼 거칠어졌다.
마이클은 양손을 빠르게 놀렸다.
촤라라라락-!
무자비하게 길어진 전갈의 검이'메탈 리자드맨' 사이를 누볐다.
휘둘러지는 검은 독이 묻어 있었고, 리자드맨은 스칠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켁, 케켁. 켁!"
[전갈궁, 안타라스가 비명소리를 좋아합니다.]
약간의 생채기만 내도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안타라스의 독.
이것은 마이클이 스타 프루츠를 먹고 얻은 힘이었다.
1등성인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안타라스의 힘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사막의 해바라기."
[성좌 스킬, '사막의 해바라기'가 발동합니다.]
[주변 반경 10미터가 사막으로 변합니다.]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의 검이 땅에 박히자, 주변에 있던 땅이 모래가 되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나무도, 돌도, 메탈 리자드맨도, 모두가 [사막의 해바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마이클은 그 속에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재빨리 빠져나왔지만, 몬스터들은 그러지 못했다.
"케렉. 케레렉!"
가끔 빠져나오는 몬스터가 있더라도, 스콜피온 소드를 움직여 놈들의 심장을 찔렀다.
절명한 메탈 리자드맨이 사막의 해바라기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마이클은 입맛을 다셨다.
'이 스킬을 쓰면 아이템을 못 주워서 탈이라니까.'
귓속말이 온 건 그때였다.
제우스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 데미안 : 마이클. 정말 윈디아로 안 갈 거야? 저번 '바실리스크' 때보다 훨씬 강한 녀석이라고.
- 마이클 : 미안한데. 안타라스가 말썽이라서 말이야. 도저히 힘을 빌려주려 하질 않아.
며칠 전 '아.스.라. 커뮤니티'가 엄청난 화제에 휩싸였다.
그것은 어떤 한국인 여성의 방송에서 나타난 새로운 보스 몬스터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코볼트 광산에 숨겨진 비밀통로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곳에서 현존하는 최고 레벨의 보스 몬스터가 나타난 것이다.
두발로 걷는 거대한 하얀 소였는데 이름이 미노타였다.
마이클도 이 방송을 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안타라스는 힘을 빌려주지 않았다.
[전갈궁, 안타라스가 다시 말하지만 협조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이유가 뭐지.'
안타라스가 이러는 것은 미노타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마이클이 추측하기로는 혹시 아는 사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라스. 미노타랑 무슨 사이지?"
[전갈궁, 안타라스가 그것은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
'무슨 비밀이 이렇게나 많은지.'
처음 이 녀석을 만났을 때도 의문투성이였다.
정말로 우연히 얻은 스타 프루츠였지만, 그것을 먹자 나타난 별명들은 정말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안타라스의 별명은 다시 봐도 기가 찼다.
'욕망의 파라오.'
사실 마이클은 이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려 했었다.
하지만 그때 안타라스가 건넨 간접 메시지가 잊히지 않았다.
[1등성, '욕망의 파라오'가 자신을 선택하면 최고의 인간으로 만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최고라는 말.
그것은 마이클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단어였다.
어렸을 때부터 부족함 없이 자라온 그였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아버지는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았다.
놀아달라고 떼를 써도, 투정을 부려도, 심지어는 사고를 쳐도 아버지는 무심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바라봐주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학교에서 1등을 했을 때였다.
그때 아버지가 했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이클. 최고가 되어라. 인생은 최고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최고가 된다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던 것이.
처음엔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키가 자라고 마음이 자라고, 정신이 성숙해지면서 아버지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인생은 정말 최고가 아니면 의미가 없었고, 2등은 그저 씁쓸한 패배자로 낙인이 찍혀 1등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 모습을 마이클은 무수히도 많이 봐왔다.
이젠 아버지가 아닌 스스로가 말하고 있었다.
1등이 아닌 삶은 가치가 없다고.
"안타라스. 날 최고로 만들어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전갈궁, 안타라스가 물론 그렇다고 말합니다.]
"근데 왜 협조를 안 하는 거지? 난 너에게 협조를 했는데 말이야."
[전갈궁, 안타라스가 이건 별개라고 말합니다.]
[전갈궁, 안타라스가 모래의 권능은 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
'어쩔 수 없나.'
안타라스는 강력한 힘을 빌려주었지만, 그만큼 요구하는 것도 많았다.
작은 구슬 조각을 모으는 것이 그것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얻을 때마다 사막의 해바라기 속으로 그것을 던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마다 저 사막의 무덤 속은 도대체 어디로 이어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길드원에게 물어보아도 온통 어둠이 가득한 곳이었다는 말 뿐.
저 심연의 모래속이 어디로 이어진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데미안: 어쩔 수 없지. 그럼 우리끼리라도….
-마이클: 잠깐.
-데미안: 어? 왜? 올려고?
-마이클: 내가 최고라는 것을 증명해야지.
안타라스가 힘을 빌려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의 힘이 없어도 최고라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증명할 것이다.
난 언제나 최고다.
-마이클: 윈디아에서 보자.
세계 랭킹 1위 마이클.
그가 드디어 윈디아로 움직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