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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79화 (79/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79화

제79화

[최초로 북극의 성좌를 만났습니다.]

[칭호 <북극의 성좌를 영접한 자>  를 획득하였습니다.]

[차가운 별의 힘으로 인해 얼음이나 추위에 대한 내성이 50% 증가합니다.]

메시지와 동시에 몸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로군.

나만 칭호를 얻은 것이 아닌지, 김수정과 견소룡도 몸이 따뜻해졌다며, 신기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몇백 년 만이지?"

[성좌들 간의 '등성 전쟁' 이후로 처음이지요.]

"아, 그래. 그때 넌 죽음의 군단과 싸우지 않았었지. 속세를 등지고 이곳 북극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말이야."

[…….]

로믈라나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프로메테우스가 다시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우린 너희 둘의 힘이 필요해. 그 녀석과 싸운 거냐?"

옆에서 김수정이 소근거렸다.

"아버님, 프로메테우스랑 저 하얀 늑대랑 아는 사이였어요?"

"…그래."

"보통 아는 사이가 아닌 거 같은데요? 저 하얀 늑대가 프로메테우스한테 굉장히 공손한 것 같지 않아요?"

"우선 대화를 좀 더 들어보자."

"네."

우리들은 다시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로믈라나였다.

[그이와 저는 사이가 안 좋은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단지?"

[그에게 일이 좀 생겼습니다.]

"무슨 일이기에…?"

[그것이….]

로믈라나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왠지 우리들을 의식하는 것 같았다.

프로메테우스가 말했다.

"저들은 괜찮아. 믿을만한 자들이니까. 천둥벌거숭이도 왔지."

[그렇군요. 그의 기운이 느껴져요.]

그 말과 동시에 레이트라의 간접 메시지가 하늘에 띄워졌다.

같은 성좌였기에 로믈라나는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손을 흔듭니다.]

[반가워요. 레이트라.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주먹성, 레이트라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해하라고 말합니다.]

[전 괜찮습니다. 환영해요.]

그렇게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데, 그녀의 시선이 이번엔 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로믈라나는 고고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보며 물었다.

[혹시 저분이…?]

"그래. 맞아."

솔라에게 빙의한 프로메테우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내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약속의 군주를 뵙습니다.]

꽤 예의 바른 인사에 나도 모르게 함께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옆에 있던 김수정과 견소룡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날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정말 기억 속 그대로의 모습이군.

다리만 짧을 뿐, 우수에 찬 눈빛이며, 새하얀 털, 기품 있는 성격까지 정말 기억 속 그대로였다.

마치 내 머릿속에서 꺼낸 기억으로 영화로 보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나는 로믈라나의 앞으로 걸어갔다.

"로믈라나. 그대의 힘이 필요하네. 알데바란이 마왕이 되어 인간 세상을 괴롭히고 있어. 내가 있는 곳이 위험에 빠졌는데, 그의 아들인 미노타를 없애야만 해."

그 말과 동시에 로믈라나의 눈빛이 사나워지는 것이 보였다.

감춰왔던 웰시 울프족의 야성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그 모습에 잠깐이지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철천지원수라더니, 진짜네.

사실 로믈라나와 알데바란은 사이가 좋았다.

알데바란은 원래 신들이 거주하는 천궁에서 밭일을 돕던 소였는데, 원체 몸에 열이 많아서 그를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고심 끝에 한 신이 가장 강한 웰시 울프 족 두 사람을 불렀고, 냉독이 있는 이빨로 알데바란의 발목을 물게 만들었다.

그러자 폭염이 중화가 되었고, 그 이후로 그들은 함께 다니며, 신들의 밭을 개간했다.

친하게 지내게 된 것이다.

…문제는 성좌들이 싸우던 등성 전쟁에서였지.

최고신 유피테르는 88명의 성좌 후보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직 12명만이 나를 호위할 수 있는 황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오만하고 불손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의 위력은 대단했다.

88명의 성좌들은 서로 우열을 가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등성이 되었다.

지금 성좌들이 1등성, 2등성 이렇게 숫자로 힘이 나뉘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이다.

등성은 곧 격의 차이.

로믈라나와 알데바란도 그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먼저 배신한 건 알데바란이었던가.

생각에 잠겨있는데 노기 어린 로믈라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가 마왕이 되었단 말입니까? 참으로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자로군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입니다. 그 때문에 남편이 고생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립니다.]

로믈라나가 그르릉거리자 차디찬 투명색의 날카로운 크리스탈이 보였다.

저렇게 아름다워 보이지만, 사실 엄청난 냉독을 가진 송곳니다.

나는 꼴깍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래. 그놈의 뒷발차기에 레무스가 한쪽 눈을 잃었지."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레무스는 흑야의 나그네의 진명이었다.

내가 프로메테우스를 바라보자, 로믈라나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무스가 없는 이상 저의 힘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힘을 반씩 나누었으니까요. 미노타라면 저도 기억이 나는군요. 알데바란의 아들이었지요. 혹, 스타피스가 필요하신 거라면 제 걸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대답은 프로메테우스에게 들려왔다.

"미안한데 부족해. 그 녀석 판도라의 조각을 가지고 있거든."

로믈라나의 고개가 갸우뚱거리자 프로메테우스가 다시 말했다.

"아, 미안. 넌 그 라그나로크 전쟁 때 없었지? 쉽게 말하면 힘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거야. 갖고 있으면 어둠에 물들게 되고, 성격도 난폭해지지."

그 말에 로믈라나의 눈이 커졌다.

[혹, 이렇게 생긴 건가요…?]

그녀가 정신을 집중하더니, 어디선가 두둥실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너무나 짙은 보라색 빛을 띄는 구슬 조각.

생각보다 많은 양에 나 또한 눈이 뜨여졌다.

저게 왜 여기 있지…?

아니, 이상한 일은 아닌가.

기억이 맞다면 판도라의 구슬은 세상 곳곳으로 흩어졌다.

당연히 이곳 북극에도 있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저런 크기의 구슬 조각이라니, 저건 좀 너무한데.

[판도라의 조각 x5]

등급: 신화

악과, 판도라의 사악한 힘이 담긴 구슬 조각.

오래 가지고 있으면 악의 성향이 강해지고, 어둠에 물들게 된다.

정신력이 강하지 않다면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소유 시, 어둠 속성 공격력 5% 증가(조각 하나당 1%)

-조각의 힘을 사용 시, 30분간 모든 능력치 1.5배 증가

-낮은 확률로 7대 죄악에 사로잡힙니다. (오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폭식, 욕망)

…이젠 완전한 정보가 보이는군.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을 접하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중 하나가 바로 어둠에 물든 구슬 조각의 정보였다.

이윽고 구슬이 가까이 멈춰서자, 프로메테우스가 물었다.

"이렇게 많은 양이라니. 대체 어디서 난거냐? 이건 라그나로크 전쟁 때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악과, 판도라의 조각이야."

[…역시 그랬군요. 범상치 않은 물건이더라니.]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말투.

뒤에 있던 김수정과 견소룡이 다가왔다.

"아버님, 이거 그때 지그마가 가지고 있던 구슬 조각 아니에요?"

"맞다. 고르바 녀석도 이걸 가지고 있었지."

"이게 그렇게 위험한 물건인 줄 몰랐어요. 저는 지금도 물음표로 보이는데…."

아무래도 이 구슬의 정보를 볼 수 있는 것은 나뿐인 모양이다.

로믈라나가 입을 열었다.

[이건 레무스가 가지고 있던 걸 일부 빼앗아 온 거예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프로메테우스도 마찬가지.

"그게 무슨…."

"뭐라고??"

우리 둘은 동그랗게 눈을 뜨며, 로믈라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아직 절반은 그이가 갖고 있어요. 레무스는 정신이 온전할 때 제게 말했어요. 이걸 갖고 동쪽으로 떠나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겠다구요. 그래야만 아무도 다치지 않을 거라고….]

젠장. 그럼 부부싸움이 아니잖아. 이건….

프로메테우스가 말했다.

"그 자식 설마 이 조각을 건드린 거야? 너희들 그거 때문에 갈라진 거였어?"

로믈라나가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싸운 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다행은 개뿔. 일이 아무래도 더 복잡해 질 것 같은데.

판도라의 조각에 취한 존재를 제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그마는 제압할 여력이 없었고 라그너스는 죽일 수밖에 없었다.

고르바는 또 어떤가.

견소룡이 없었다면, 스타피스가 없었다면, 제압에 실패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번엔 성좌라니….

비록 반쪽짜리에 불과한 성좌라도 성좌는 성좌다.

그 본연의 힘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레무스의 행방은 그대도 모르나?"

[네. 그는 제가 위험해질까 봐.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제기랄.

이렇게 일이 틀어질 줄은 몰랐다.

미노타를 처치하는 퀘스트의 완료까지 3주하고 조금 남았는데, 어떡하지.

[분명한 것은 동쪽 어딘가에 있는 건 확실합니다. 그곳엔 흑야가 드리워져 있으니까요. 레무스는 언제나 흑야를 몰고 다닙니다.]

…결국 누체라는 곳으로 가야 하는 건가.

프로메테우스가 말했다.

"넌 함께 가지 못하겠지?"

[잠깐이라면 괜찮지만, 오래는 있지 못합니다. 흑야가 점점 이곳을 침범하고 있어요. 제가 자리를 오래 비운다면 이곳은 흑야에 집어삼켜질 겁니다. 그럼 이곳은 어둠 속에서 살게 될 거예요. 이곳에 사는 모든 수인들도, 우리 아이들도 그런 곳에서 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스타피스도 못 빌려주고?"

[네…. 지금은 죄송합니다.]

로믈라나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의 삶을,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여튼 어머니란 위대해.

문득, 아내가 떠올랐다.

그녀가 만약 로믈라나였더라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잠깐의 추측을 하며, 그녀를 그리워했다.

잠깐이지만 눈시울이 붉어진 나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말했다.

"누체로 가야할 것 같은데."

"그래야겠지. 하지만…."

"그래. 힘들겠지. 불가능할지도 몰라. 하지만 우린 죽지 않는 자들이다. 뭐라도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냐?"

나는 뒤를 돌아, 김수정과 견소룡을 보았다.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프로메테우스는 피식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못 말리는 영감탱이라니까."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망할 놈아."

프로메테우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로믈라나를 향해 말했다.

"로믈라나. 성단(星團)에 들어와라.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알겠습니다. 제 아이들을 타고 가시지요. 가는 길을 도울 것입니다. 그리고 첫째야.]

"예, 어머니. 크르륵!"

뒤에서 멀뚱히 서있던 가장 큰 웰시 울프 하나가 말했다.

김수정이 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뭐, 뭐야! 말을 할 수 있었어?!"

나도 조금은 놀랐다.

설마 말을 할 수 있었을 줄이야.

하긴, 미노타도 말하는데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이분들과 함께 너희 아버지를 찾는 것을 도와라.]

"알겠습니다. 어머니. 크르륵."

그리고 메시지가 들려왔다.

[성단, '별 다방(多房)'에 늑대성, 로믈라나가 입장하였습니다.]

* * *

잠시 후.

다이베우스를 만난 우리들은 선장과 선원들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

다행히 그는 선선히 수락했고, 선원들도 밖은 위험하다는 걸 잘 안다고 했다.

다이베우스가 그들에게 이곳에 대해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우리들은 디야를 떠나는 출구 앞에 섰다.

휘오오오오-

세찬 바람이 볼을 만졌다.

웰시 울프의 등은 넓었고, 나는 거친 갈기를 붙잡았다.

휘몰아치는 눈의 언덕을 보며 말했다.

"가자. 레무스를 만나러."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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