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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77화 (77/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77화

제77화

한편, 그 시각.

서울의 한 병원에 하얀 백발을 가진 건장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노인답지 않은 거대한 골격.

험상궂은 얼굴에 왼쪽 눈을 가로지르는 검상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의 이름은 백무열.

춘택의 40년 지기이자 친구다.

"여기가 춘택이가 검사받았다던 그곳인가?"

그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지나가던 간호사를 붙잡았다.

"이보게 여기 신체검사장이…."

"꺄악! 죄, 죄송해요!"

"……."

'나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닌데.'

이렇게 태어난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잠깐이지만 이왕 병원에 온 김에 성형외과나 한번 들러볼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아니야. 그래도 영광의 상처인데."

누가 뭐래도 이 상처는 그에겐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마치 국가 유공자에게 주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젊은 시절의 자신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였다.

뒤에서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할아버지. 어딜 찾으세요?"

돌아보자마자 보인 것은 꽤나 선한 인상을 가진 미녀 간호사였다.

그녀는 눈이 살짝 커진 것이 놀란 듯했지만, 이내 웃는 것이 자신이 무섭지 않은 듯 보였다.

'그래도 이렇게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서 다행이지.'

백무열이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신체검사장을 찾고 있는데. 도와주겠나?"

* * *

간호사의 안내를 따라 신체검사장에 들어간 백무열은 곧장 접수를 했다. 그때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백무열 님~"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곧장 진료실로 들어섰다.

역시나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앉아있었다.

"안녕하세… 헉!"

'젠장. 또 시작이네.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

사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닌지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백무열은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나 같은 사람 앉으라고 만든 거지?"

"무, 물론입니다! 제발 앉아주… 아니, 앉아주십시오."

"그래. 그러자고."

백무열이 앉자마자 의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 여긴 무슨 일로…."

"가상현실 게임 허가증인가? 그거 좀 받으러 왔지."

"헉!"

"왜. 불만인가?"

"아, 아닙니다. 저번에 받아가신 분이 떠올라서…."

"혹시 이름이 최춘택?"

"그, 그걸 어르신이 어떻게…?"

의사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보아하니, 춘택이가 어지간히 진상을 부렸던 모양이다.

백무열이 씩 웃었다.

"걔, 내 40년 지기 친구여."

"예…?"

"춘택이한테 자네 이름 많이 들었지. 그렇게 까탈스러운 사람이라면서?"

"그, 그게…."

"나도 그렇게 한번 해달라고."

진심이었다.

백무열은 진심으로 까다롭게 심사를 받아보고 싶었다.

자신의 건강은 현재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신체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춘택이가 S등급을 받았다고 했나.'

사실 그와는 친구 사이지만 묘한 라이벌 의식 같은 것이 있다.

그가 S등급을 받았다면 백무열도 그래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여기 병원을 택한 이유였다.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자 의사가 외쳤다.

"히익! 기, 김 간호사!!"

* * *

[물고기를 낚았습니다.]

[낚시 스킬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더욱 다양한 어종을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야. 진짜로 참치가 잡히네."

"우와, 대박인데요?"

나는 이제 제법 낚시를 잘할 수 있게 되었다.

파닥거리며 날뛰는 참치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김수정이 물었다.

"오늘은 참치회가 어떠세요?"

"어제 머슬 크랩 구이는 별로였냐?"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아무래도 불만으로 할 수 있는 요리는 한정적이니깐요. 오늘은 싱싱한 회가 먹고 싶어서요."

하긴 이것도 맞는 말이다.

지금의 나는 '태양의 레시피'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 말은 곧 불과 관련된 요리만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서둘러 구름을 찾아야 본격적인 날씨 요리술을 할 텐데….

사람들의 함성이 터져 나온 건 그때였다.

"우와아아아!"

고개를 돌리니, 많은 사람들이 갑판 한쪽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견 동생이 또 낚시하나?

이러면 안 되는데 이상하게 질투가 난다.

어제 그에게 낚시를 한 번 해보라고 권유했던 건 나였는데 말이다.

"소룡 아저씨 또 낚시하나 봐요."

"…좋아 보이는구나."

그는 평범한 낚시대를 쓰지 않았다.

낚시도 수련의 일부라며, 강철로 만든 거대한 낚시대를 썼고, 그것도 모자라 추와 바늘도 어선에서나 쓸 법한 커다란 것을 썼다.

무게가 한 2kg 정도 된다는데. 진짜 정신 나간 짓처럼 보였다.

…하긴 내가 그런 말 할 입장은 아닌가.

등산을 할 때 나는 모래주머니를 한 10kg 정도 차니까 이상하게 이해는 된다.

근데 저렇게 하면 능력치가 오른다던데, 나도 해볼까…?

아니지, 아니야.

수련은 바깥에서도 충분했다.

여기서도 피곤하게 수련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능력치가 넘쳐나기도 하고,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은 없는 것이다.

그래, 지금은 말이다.

파지지지직-!

어느새 던져진 낚시대와 동시에 견소룡의 몸에서 푸른 번개가 터져 나왔다.

낚시대를 타고 바다로 내려간 번개가 바다를 짜릿하게 만들었다.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는 물고기 떼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야씨, 저건 완전 사기잖아."

"그래도 선원들 좋아하는 거 보세요. 저 아저씨 완전 인기스타에요. 여기에서 만큼은."

"하긴 저 녀석이 능력 한번 쓰면 선원들 단체 회식 할 수 있는데 어련할까."

[주먹성, 레이트라가 화끈한 낚시에 취미를 가집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당분간 식량 걱정은 없겠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놈들도 신났네.

제길, 빨리 벼락의 힘을 얻든가 해야지. 그것만 있으면 나도 저런 거 할 수 있는데.

사실 그 힘을 얻기 위해서는 구름의 정령이 필수였다.

얻고 싶어도 지금 당장은 얻을 수가 없었다.

사실 어디 있는지 행방도 모르는 게 컸지만.

선원들의 함성을 뒤로하며, 견소룡이 의기양양하게 걸어왔다.

"형님, 낚시라는 거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손목 수련도 되구요."

"미친놈. 너 같이 무식하게 낚시하는 놈은 처음 본다."

"하하하. 형님도 참."

견소룡이 고개를 젖히며 하늘을 보고 웃었다.

그때, 갑자기 그가 뚝 웃음을 그쳤다.

"…어? 날씨가?"

그의 고개를 따라 나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이 현상은…?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에 있던 현상과 일치했다.

안개 낀 것처럼 뿌연 구름의 정경.

12시간마다 낮과 밤이 교차할 것만 같은 신비로운 하늘.

특히 밤마다 볼 수 있는 오로라는 매우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아무래도 거의 다 온 모양인데….

예상은 적중했다.

"육지가 보입니다!"

한 선원의 외침에 많은 이들이 뱃머리로 몰려들었다.

그중엔 나도, 수정이도, 견소룡도, 그리고 자다 일어난 드레인도 있었다.

안개가 걷히고 정경이 드러나자 선원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야! 역시 모험은 이런 맛이 있어야지!"

"따라 오길 잘했어! 아름다운데?"

"과연 어떤 곳일까?"

김수정도 넋을 놓으며 환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 낮인 것을 보니, [백야의 나그네]가 지배하는 시간인 듯했다.

아마 조금만 지나면 [흑야의 나그네]가 깨어나겠지.

금세 육지가 드러났다.

나타나는 선박장과 마을을 보며, 나는 묘한 감회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설마하니 아직도 있을 줄이야.

이제는 각인이 되어버린 기억의 파편을 더듬으며 나는 한 마을의 이름을 떠올렸다.

탄트라.

아직도 저곳이 탄트라인지는 모르겠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과거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러기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마을은 기억 속의 탄트라와 너무나도 일치했다.

마치 북극의 추위에 얼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전방에 빙하가 나타났다!"

쳇. 역시, 저것도 그대로네.

원래 이곳은 일반인들은 올 수 없는 폐쇄적인 곳이다.

500년 전에도 금역에 속한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갈 수 있다.

"솔라."

화르르륵.

"불렀냐. 주인아!"

"그래. 저기 보이는 얼음들 모조리 녹여버려라."

"알겠다. 해해!"

솔라가 어마어마한 열기를 뿜어내며 순식간에 빙하를 녹이자, 선원들이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

갑자기 시선이 몰리니, 뭔가 어색하다.

역시 나는 이런 것과는 잘 맞지 않는다.

옆에서 김수정과 견소룡이 엄지를 들고 있는 것이 보였고,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뒤에서는 드레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내가 만든 특수 방한복으로 입으세요! 플리즈!"

우리들은 서둘러 그가 건네주는 방한복으로 갈아입었다.

두꺼운 오우거 가죽으로 만든 옷이었는데, 나는 옷을 입으며 드레인에게 물었다.

"멀미 때문에 완성 못 할 줄 알았는데 용케 완성했구나."

"지저스. 어제 머슬 크랩 때문에 깜짝 놀라서 멀미가 멈췄지 뭐에요. 딸꾹질에만 통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였어요."

평소의 말투로 돌아온 그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피식 웃었다.

…있다가 또 놀라면 멀미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지금 만나러 갈 백야의 나그네는 2등성의 성좌였다.

궁좌였던 알데바란에 비견될 만큼 1등성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그런 성좌. 그만큼 그들은 강대하고 거대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쌍둥이니까.

푸쉬이이익-!

마력 엔진이 식는 소리가 들리며 배가 선박장에 멈췄다.

우리들은 서둘러 하선했고 나는 그들을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푹푹 거리며 빠지는 새하얀 눈길 위로 발자국으로 아로새겨졌고, 뒤따라오던 김수정이 물었다.

"아버님, 정말로 여기 길을 아시는 거예요?"

"그래. 잘 알지."

"어떻게요??"

…흐음. 뭐라고 말해야 한다.

"그냥 공부하다 보니 알게 됐다."

"와, 대단하세요. 공부하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칭찬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머쓱함이 밀려왔다.

사실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이 머릿속에 들어왔다고 해도 믿지 못할 게 뻔했다.

나라고 해도 안 믿을 텐데. 뭐.

"그렇지. 껄껄."

너털웃음을 흘리며 걷는 동안 우리들은 마을의 입구로 들어섰다.

그러자 메시지 창이 떴다.

[영원히 해가 지지 않는 곳. 낮의 마을 '디야'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로 북극의 마을에 들어섰습니다.]

[칭호, <북극의 개척자>  를 획득하였습니다.]

[북극의 대륙에서 일주일간 경험치가 2배로 증가합니다.]

[북극의 대륙에서 일주일간 드랍율이 2배로 증가합니다.]

……

……

무수히 많은 메시지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첫 번째 메시지였다.

나는 그것을 보며,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영원히 해가 지지 않는다고…?"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미간을 찌푸립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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