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다 젊은이-73화 (73/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73화

제73화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이 있다.

오랑캐를 이용해 다른 오랑캐를 제어하고 통제한다는 말.

하지만 지금 내가 제어하고 통제하는 것은 눈앞에 있는 오크들이었다.

"크워어억! 하찮은 거미들!"

고르바가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며 자이언트 스파이더를 베어나갔다.

그의 뒤로 수십의 오크들이 뒤따르며 킹 스파이더의 동굴을 습격했다.

갑작스런 공격에 거미들이 포효하기 시작했다.

"시이이이익-!"

오랜만에 듣는 께름칙한 소리.

나는 거미를 정말 싫어했다.

북파공작원 시절.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었던 것 중 하나가 거미였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거미의 능력을 얻은 것은 좀 아이러니하지만, 능력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외모를 싫어하는 거였다.

고르바가 말했다.

"크륵. 정말 거미들의 왕이 없는 건가?"

"그래, 내가 다 죽였다니까. 왕도, 여왕도."

"취익. 그렇다면 형제에게 감사한다. 그동안 우리 푸른 이빨 부족은 천적인 거미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이제 우리들은 다른 부족들에게 밀리지 않을 만큼 세력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오크 족장 고르바와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푸른 이빨 부족의 활동 범위가 늘어나게 됩니다.]

[인간에 대한 그들의 우호도가 증가하였습니다.]

[푸른 이빨 부족 오크들의 출산율이 늘어납니다.]

쩝. 이놈의 호감도는 필요 없는데.

그나저나 출산율도 늘어났군.

"다른 부족들도 있냐?"

"그렇다. 우리 오크들은 총 4개의 부족으로 나뉜다. 췩."

4개라….

순간,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이 다시 한번 스쳤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아무래도 그들은 분열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 녀석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하긴 지금 내가 떠올리는 기억들이 원래는 이 녀석의 것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고르바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째서 분열했지? '무두르'는 성좌에 오를만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무두르.

그것은 500년 전 태어난 최초의 오크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그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힘은 성좌들을 위협할 정도였다.

나는 그를 본적은 없지만, 기억은 할 수 있었다.

흉포한 오크들을 하나로 합쳐 최초로 오크들의 왕이 된 인물.

그는 거대한 오크들의 연합인 '라이카'의 수장이었다.

고르바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 이름을 어떻게 알지? 굉장히 오래된 이야기인데…."

나는 뭐라고 둘러댈까 하다가, 그냥 대충 말했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유명해."

"그렇군. 이해했다. 그분의 힘은 실로 대단한 업적이었지. 취익."

사실이었다.

그 당시 죽음의 군단에 맞서 싸운 것은 인간들만이 아니었다.

오크들도 군대를 일으켰고, 그 선봉에는 '무두르'가 있었다.

그의 주먹에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졌다. 죽음의 군단도 막을 수 없는 흉포함에 성좌들도 긴장했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성좌의 자리 올랐다면 1등성이 되었을 테지.

그만큼 무두르의 힘은 놀라웠다.

최고신 유피테르도 헤라클래스와 비견할 만하다며 마르고 닳도록 칭찬을 하곤 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설마 무두르가 성좌 위에 오르지 못한 거냐?"

"…취익. 그렇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때 무두르 님은 성좌 위에 오르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왜지…?"

"그건 나도 잘 모른다. 취익. 그저 내가 추측하기로는 아마 성좌의 자리에 올라 신들의 개가 되느니 자유롭게 살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렇군.

하긴, 무두르는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겁도 없이 다른 성좌들에게 시비를 걸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뭐.

쉽게 말하자면 성격이 개차반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4명의 자식들 사이에선 분란이 일었지. 무두르 님이 성좌 위에 오르지 않으면 자신들은 영원히 수장이 되어보지 못할 거라고 말이야. 크륵."

"그래서 무두르는 어떻게 되었지?"

"부끄럽지만 그분은 자식들에게 독살당하셨다."

독살이라니….

그 강대했던 라이카의 수장 치고는 허망한 최후였다.

아마 그들 사이에 왕권 다툼이 치열하게 일어난 것 같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부족이 나뉘어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어나는군.

그때 한 오크가 다가와 고르바에게 말했다.

"크륵. 고르바 님 정말 거미들의 왕과 여왕은 없었습니다. 취익."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이놈아."

"의심해서 미안하다. 형제. 취익."

"일단 식재료랑 거미줄을 챙기고 너희들의 마을로 돌아가자. 거기서 내가 요리를 해주마. 윈디아는 보는 눈이 많아서 말이야."

"알았다. 취익."

그렇게 우리들은 다시 오크마을 [벨리]로 들어설 수 있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고르바의 어깨에서 내려왔다.

"되게 오랜만에 오는 것 같네."

언제 봐도 익숙지 않은 풍경이었다.

원시인들처럼 움막을 치고 동굴에서 자는 그들의 생활은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버린 나에겐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물론, 도시보다는 확실히 좋은 점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확실히 오크들은 순수해.

당장에 고르바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오크들이 쌓아놓은 거미 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솔라를 소환했다.

화르륵-!

"안녕! 주인!"

"그래. 솔라야."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할 거냐!"

"뒤에 있는 녹색 친구들을 위한 요리를 할 거다."

"기대된다! 난 뭘 하면 되냐!"

"지금부터 저기 있는 거미 다리들을 정성스럽게 구울 거다."

나는 쌓여있는 거미 다리를 가리켰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당신의 요리를 기대합니다.]

"알겠다! 지금 구우면 되냐?!"

"잠시만."

나는 고르바를 향해 말했다.

"고르바. 혹시 저 거미 다리들을 탑처럼 쌓을 수 있겠냐?"

"취익. 저걸 어떻게 탑처럼 쌓는 단 말이냐. 난 머리가 안 좋아서 모르겠다."

…어쩔 수 없군.

나는 고르바를 대신해 [사자후]를 사용해 쩌렁쩌렁하게 외치며 오크들에게 명령했다.

그들은 고르바의 눈치를 보더니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내 말을 따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완성된 모습은 다보탑처럼 쌓인 거미 다리탑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군. 이제 잘 구울 수 있겠어. 솔라야 이제 네가 나설 차례다."

"알겠다! 주인아! 어디부터 구우면 되냐!"

"저기 일단 바깥 부분부터 구워보자."

"간다! 해해해!"

솔라가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바깥에서부터 거미 다리를 굽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오크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취익! 엄청난 냄새다!"

"태양이 우리들의 천적을 굽는다!"

"이 영광을 무두르 님께! 크워억!"

오크들이 자신의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경의를 표했다.

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들이 하는 행동이 생전 무두르가 오크들을 이끌며 하던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500년을 거치며 그들의 인사법으로 굳어진 모양이었다.

지글지글-!

윗부분이 구워지자 솔라는 중간으로 내려왔다.

마치 공전을 하는 태양처럼 탑을 빙글 돌며 골고루 굽고 있었다.

마침내 아래쪽으로 내려오자, 나는 솔라의 얼굴을 붙잡고 직접 아랫부분을 굽기 시작했다.

솔라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지며 말했다.

"악! 얼굴 너무 세게 당기지 마!"

"미안하다. 조금만 참아라."

"아악!!"

솔라의 비명이 들릴때마다 화력이 조금씩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거리 조절을 하며 겉 부분이 알맞게 익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다 구워지자, 맛있는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이미 오크들의 입에선 침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안쪽도 구워야해.

나는 탑의 안쪽으로 솔라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위 아래로 움직이며 거미 다리를 구울 것을 명했다.

"이제 소스를 만들어볼까."

인벤토리에서 공중부양 냄비를 꺼냈고, 한동안 안 썼더니 먼지가 좀 껴 있었다.

나는 먼지를 닦아 낸 후, 야채들을 썰어 넣었다.

오랜만에 쓰는 [깍둑썰기]였다.

사사사삭-!

야채에서 나온 물들이 어느새 냄비를 가득 채웠고, 나는 익숙하게 소스를 만들며 고르바에게 물었다.

"야. 고르바. 부먹? 찍먹?"

지금 내가 만들 소스는 탕수육 소스랑 비슷하게 만들 예정이었다.

그래서 저번에 손주들한테 배운 부먹과 찍먹을 물은 것이다.

하지만 고르바가 그런 걸 알 리 없었다.

"취익? 그게 뭐냐?"

"소스를 부어먹냐고 찍어먹냐고! 이놈아!"

"크륵. 우리들은 맨날 날 것으로 먹어서 그런 거 잘 모른다. 취익."

…젠장. 그랬지.

"그냥 부어 먹어라. 이놈아!

참고로 나는 찍먹이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군침을 흘립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에게도 꼭 요리를 달라고 말합니다.]

"염병하네. 알았으니까 조용해라!"

[사도 버프를 받았습니다.]

[당신의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합니다.]

이 망할 놈이 버프를 이런 곳에다 쓰고 있네.

힘내서 요리에 심혈을 기울이라는 거냐.

나는 빠르게 소스를 완성하고 솔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침 제 시간에 왔는지 안쪽은 그야말로 먹음직스럽게 익어 있었다.

꽃게찜을 한 것처럼 말이다.

"고르바. 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라!"

"알겠다. 형제. 취이익!"

고르바 녀석의 입에서도 침이 흘러내렸다.

으, 더러운 놈.

미리 만들어둔 소스가 탑 위에 살살 부어졌다.

나는 찍어 먹을 거라서 약간은 남겨둬야 했다.

그래서 일부로 안 붓는 곳도 있었다.

차려 주는 대로 먹는 거지. 뭐.

나는 대충 소스를 부었다.

그리고 마침내 요리사 완성되었는지, 메시지가 떴다.

[요리의 이름을 정해주십시오.]

"이름…?"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플로라에게 일품요리를 해주었을 때, 그때도 이런 비슷한 문구가 떴었다.

그런데 그땐 '주제'였던 거 같은데, 이번엔 '이름'인가?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나는 대충 이름을 지었다.

"거미 다리 10층 석탑구이."

띠링-!

[명물! 거미다리 10층 석탑 구이!]

오크들의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결 중 하나는 좋은 음식을 먹고 힘내서 싸우는 것이다.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정성이 들어간 요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외감이 들게 만들 것이다.

가끔은 대충 하는 요리가 엄청난 손맛을 내기도 한다.

오크들을 위한 날씨 요리사의 독창적인 생각이 엿보인다.

-맛 스타: ☆☆☆☆☆

-유통기한: 5일

-생명력 회복: 500 마력 회복: 500

효능: 이 요리를 인간이 먹을 시 오크들처럼 힘이 2배로 오르게 됩니다. 오크들이 먹을 경우,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합니다.

하루 동안 거미 종류 몬스터에 대한 공격력 50% 추가.

최대 생명력 50% 증가.

*태양의 가호: 힘 50% , 방어력 50%, 화염 공격력 50%, 화염 내성 50% 증가.

"…대박."

설마하니 일품보다 더 높은 등급의 요리가 있을 줄은 몰랐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나는 잠깐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 또 다른 메시지가 떴다.

[최초로 명물 요리를 창조하였습니다!]

['거미 다리 10층 석탑 구이'의 레시피가 등록되었습니다.]

[이제 언제 어느 때나 명물 요리를 쉽게 만들고 전수할 수 있습니다.]

오호.

레시피를 확인하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명물 요리는 내가 만들어 낸 요리라 그런지, 재료만 있다면 언제 어느 때라도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

또 다른 메시지가 뜬 건 그때였다.

[거미다리 10층 석탑 구이를 오크들에게 전수하시겠습니까? 전수할 시, 당신의 이름이 대대손손 푸른 이빨 부족 오크들에게 알려지게 될 것이며, 부족의 특산물로 지정됩니다.]

…요리를 전수해? 이런 것도 가능한가?

새삼 아크스타의 자유도에 다시 한번 놀랐다.

설마 인간이 아닌 몬스터에게도 요리를 전수할 수 있을 줄이야.

하지만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조금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 좋은 일 하고 이름을 남기는 건데.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

나는 고르바에게 이곳에서 가장 똑똑한 오크를 불러달라고 했다.

다른 오크들은 빠른 속도로 내가 만든 요리들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잠시 뒤 한 오크가 나타나자, 나는 그에게 내가 만든 요리를 전수해주었다.

띠링-!

['거미 다리 10층 석탑 구이'가 푸른 이빨 부족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최초로 명물 요리를 전수하였습니다.]

[명성이 5,000 상승하였습니다!]

[명물 요리의 창조가 많을수록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많은 메시지들이 지나가고, 나는 다시 내가 만든 요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후우, 배고프다. 어디 나도 먹어 볼… 뭐야, 없잖아?"

내가 만든 요리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그곳에는 고르바를 포함한 많은 오크들이 배를 만지며, 누워있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폭풍 눈물을 흘립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