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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72화 (72/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72화

제72화

한편 캡슐에서 나온 나는 며느리가 깎아준 과일들을 먹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캡슐을 나왔어도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은 그대로 유지되었는데,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걸 알면 내가 요리사가 아니라 과학자가 되었겠지.

"알데바란이 마왕이 되었다라…."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에는 플루토와의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었다.

녀석은 계속 최후의 스타 프루츠 속에 잠들어 있었고, 나를 기다렸다.

아무래도 정황상 알데바란은 마계로 간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내가 바람의 신전을 다시 가야 한다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며느리가 방에서 나왔다.

"아버님, 저 잠시 나갔다가 올게요."

"음? 누구 만나러 가니?"

"정연이 볼려구요. 잠깐 요 앞에서 얼굴이나 보자네요."

"아, 그래. 조심히 다녀오거라."

그녀는 며느리의 절친한 친구였다.

저번에 우리 집에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싹싹한 성격이 아주 괜찮았다.

그렇게 며느리를 마중하기 위해 신발장 앞까지 나왔는데, 갑자기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삑삑삑삑- 띠리링-!

"어? 엄마 어디 가요?"

"미도구나. 엄마 친구 좀 만나러 갈려구. 집 좀 부탁할게."

"알았어요. 조심히 다녀와요."

"그래. 우리 딸~ 사랑한다."

며느리가 집을 나서자, 미도와 눈이 마주쳤다.

"할아버지. 저 기다리신 거예요?"

그건 아니었지만, 정황상 그렇다고 하는 게 점수를 더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어서 오거라. 미도야."

그녀를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꽃이 핀다.

아마 죽은 아내와 많이 닮았기 때문일까.

나는 그녀를 거실로 데려와 과일접시를 내밀었다.

"아까 네 엄마가 내준 건데 아직 많이 남았다. 들거라."

"할아버지는 드셨어요?"

"그래. 많이 먹어서 배불러."

사실 배부르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만 보아도 배가 부른 것은 진심이었다.

미도는 아삭- 하는 소리를 내며 사과를 베어 물었다.

…참 많이 닮았어.

그녀의 옆모습은 젊은 시절 아내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었다.

나는 약간의 비감을 감추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 친구랑은 재밌게 놀았니?"

"아, 그 늑대가면 아저씨요?"

…거참. 아저씨 아니라니까.

"그래, 그 친구."

"네. 그럭저럭요. 하지만 또 신세를 지고 말았어요. 절 구하려다가 죽었거든요."

"…아, 그래?"

다 아는 사실을 모른 척하려니, 나도 모르게 웃음보가 터질 뻔했다.

미도는 뭔가가 떠오른 듯, 급하게 물었다.

"아 참! 할아버지, 혹시 그분이랑 연락되세요??"

"…응? 되지. 근데 그건 왜?"

"여러 방송국에서 저한테 연락이 왔어요. 제가 오늘 방송했던 것을 내보내고 싶다구요."

"방송국…? 그런데 뭐가 문제냐?"

"아무래도 그 아저씨의 허락도 필요할 것 같아서요."

아, 그런 문제였군.

이거라면 어떻게든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잠깐만.

근데 나 지금 정체를 숨겨야 하는 입장인데… 이렇게 방송을 내보내도 되는 걸까?

나는 잠깐의 고민 뒤 대답했다.

"우선 그 친구한테 연락을 남겨 놓으마."

"알았어요. 꼭 알려주셔야 해요?"

"그래. 알았다."

…우선 좀 더 생각해봐야겠어.

"그나저나 할아버지는 그 아저씨랑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언제 물어보나 싶었는데 이제야 물어보는 그녀. 나는 준비한 대답을 착실하게 말했다.

"어쩌다 뮬란에서 우연히 알게 됐지. 같은 요리사라서 요리법을 공유하다가 친해졌다."

"그랬구나. 근데 그 사람 진짜 추남이에요? 기사에 보면 막 얼굴이 못생겨서 가면을 쓰고 있다던데."

"어떤 망할 놈이 그렇게 말하더냐."

"네…?"

이런, 너무 흥분했군.

"큼. 그 친구 못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성격도 사내답고 외모도 멋지게 생겼지. 키도 훤칠하고 말이다. 신사야, 신사. 껄껄."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그 아저씨 되게 착한 분 같더라구요."

당사자에게 칭찬을 들으려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얼굴을 본 미도가 물었다.

"할아버지, 어디 아프세요? 얼굴이 빨개요."

"어, 아니다. 그냥 조금 더워서 말이다."

"지금 겨울인데요?"

"큼, 아까 뜨거운 차를 마셔서 그래."

"귀도 빨개요."

나는 또 말을 더듬기 전에 화제를 돌렸다.

"끙,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넌 언제부터 방송을 한 거냐. 그 뭐라고 그랬지. 윷투비?"

"풉. 유튜브에요. 얼마 안됐어요. 사실 게임하면서 용돈이라도 벌면 괜찮겠다 싶어서 시작한 거였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구요."

"…그래?"

애초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미도는 이런 방면으로 재능이 있는지도 몰랐다.

…하긴 내 눈에는 웬만한 연예인들보다 훨씬 이쁘니까.

미도가 말했다.

"오늘 그 아저씨 덕분에 구독자 수가 엄청나게 늘었어요. 아마 올해 대학등록금은 손을 안 벌려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많이 벌었니…?"

"네. 별사탕 기억나세요?"

"그래, 기억하다마다. 혹시 그게 돈이냐?"

"네, 한 개당 70원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잠깐만 70원이면….

"아까 막 1,000개씩 선물하던 놈들이 많던데?"

"네, 7만 원 정도 되겠네요."

"…그럼 오늘 얼마나 번거냐."

"1년 치 등록금 정도요. 헤헷. 이게 다 그 아저씨 덕분이죠. 뭐."

허어, 엄청난 돈이네.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잠깐이지만 나도 방송을 해볼까, 하는 유혹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방송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재능도 없을뿐더러,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가끔 미도의 방송에 출연해서 도움을 주는 정도는 괜찮겠지.

그 순간, 나는 미도에게 방송을 허락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전화 받는 척하며 안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5분 동안 미도가 깔아준 고스톱 게임을 했다.

짝-!

[아싸! 고도리!]

[상대방이 스톱을 외쳤습니다.]

[패배하였습니다.]

"…우라질."

역시 난 도박 운은 없는 것 같다.

가족들이랑 명절에 고스톱을 칠 때도 늘 지기만 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거실로 나왔다.

"미도야."

"네?"

"그 친구가 방송해도 된다더라."

* * *

다음 날.

오늘도 나는 아크스타에 접속을 했다.

이제는 뭐 거의 일상 같은 일이었다.

미도의 레벨을 확인하고 나니, 목표가 더 뚜렷해진 느낌이랄까.

좀 더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점멸하는 시야와 함께 보이는 것은 역시나 [윈디아]의 정경이었다.

그것을 보니 더 실감이 났다.

내가 진짜 죽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죽음이라.

아직은 내가 건강한 편이라 실감은 잘 안 난다.

그래도 잠깐이지만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아내가 죽기 전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회상에 잠겨있는데,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늑대가면이다!"

"히어로 늑대!"

"팬이에요!"

근처에 있던 유저들이 하나 둘, 나를 알아보고 있었다.

완전히 다가오지는 못하고 신기한 동물을 보듯,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젠장. 가면을 또 바꿔야겠는걸.

그 순간. 몰리는 인파를 비집고 들어온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댔다.

나는 그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제 만났던 기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셨습니까?!"

"지금 심경이 어떠신가요!"

"왜 저희들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까?!"

이 망할 놈들이….

순간, 오늘 아침에 본 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늑대 가면, 기자들을 폭행하다!>

<그는 어째서 폭력을 써야만 했는가.>

<가면 속 정체는 추남이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아침 신문을 접었다.

안 그래도 짜증이 났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이니 더 짜증이 치밀었다.

나는 순식간에 기자들의 어깨를 밟고 뛰어올라 수정 구슬을 모조리 깨트려버렸다.

챙챙! 챙그랑!

옆에서 유저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실제로 보니깐 완전 장난 아니네."

"어떻게 저런 발차기 실력을 가진 거지?"

"꺅, 멋있어!"

…역시, 사람이 많으면 너무 피곤해.

확실히 나는 낯가림이 심한 성격인 것 같다.

첫째인 강현이가 내 성격을 많이 닮았는데, 손주들은 그런 내 성격을 닮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함을 치는 기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봐! 당신! 이게 얼마짜린 줄 알고!"

"내일 신문에 또 대문짝만하게 나고 싶어?!"

"당신 우리들한테 찍혔어! 알아?!"

…지랄하네.

나는 오늘도 거미줄로 그들의 입을 틀어 막아버렸다.

퓨퓨퓻!

[거미줄이 모두 소모되었습니다. 거미줄을 먹어 충전하세요.]

벌써 다 썼나? 충전해야겠군.

나는 유유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 * *

내가 도착한 곳은 동쪽에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이었다.

주변에 없던 건물이 보이는 것이 잠깐 사이 많이 진행된 듯했다.

저 멀리 케레노스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왜 이제 오십니까. 영감님."

"시끄럽다. 이놈아. 근데 얼굴이 왜 이렇게 퀭해?"

"보면 모르십니까. 오크들한테 시달려서 그렇죠. 죽겠습니다."

"말을 안 듣냐…?"

"아뇨. 말은 잘 들었습니다. 공사도 거의 마무리 단계구요."

"근데 뭐가 문제냐?"

"하아, 일단 직접 보시는 게 좋겠네요."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오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크들이 모두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놈들 왜 이래?"

"어제 배고프다고 집단 농성을 벌였습니다."

"밥 안줬냐…?"

"아뇨. 줬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들이 먹는 양을 저희들이 따라가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저희들이 오크들에게 줄 수 있는 배급량이 벌써 떨어졌습니다."

"음…."

나는 퀘스트 창을 열었다.

[윈디아의 동쪽을 복구하라!]

난이도: A

오크들의 침략으로 윈다아의 동쪽이 소실되었다. 하지만 당신은 그들을 죽이지 않고 화해를 주장했다. 영주 에드워드는 그런 당신의 말에 동의했고 오크들을 이끌어 동쪽을 복구하라는 명을 내렸다. 오크들을 통솔해 공사를 마치도록 하라.

-완료 조건: 현재 공사 진행률 80% / 100% (일시중단)

-보상: 알 수 없음

-실패 시: 윈디아 주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며 반란이 일어납니다.

윈디아와 오크간의 전쟁이 다시 시작됩니다.

…거의 다 해놓고 이 모양이라니.

이 퀘스트는 실패해서는 안 되는 퀘스트였다. 그럼 진짜로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윈디아는 이번에 반드시 멸망하고 말 것이다.

나는 곧장 고르바를 향해 걸어갔다.

"고르바.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 거냐."

"취익. 밥이 너무 맛없다. 형제."

"양이 부족한 게 아니라?"

"맛도 없고 양도 부족하다. 췩. 우리는 이런 환경에서 더 이상 인간을 도울 순 없다. 우리도 한계다."

이놈도 많이 참은 것 같은데….

"너희들 뭘 좋아하는데?"

"외뿔 베어의 고기랑 자이언트 스파이더의 다리 살을 좋아한다. 근데 인간들에게 그걸 만들어달라니깐 거절당했다. 일도 힘든데 우리보고 요리도 하라는 말이냐? 크륵. 우린 싫다."

흐음, 대충 고기 종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자이언트 스파이더의 다리 살도 맛있지. 솔라가 구운 걸 먹으면 일품… 아!

"좋은 생각이 있다. 고르바."

"음? 그게 뭐냐. 취익."

"내가 요리를 해주겠다."

"형제가 요리를…?

"그래. 너 태양으로 거미 다리 구워 먹어 봤냐?"

"태양…?! 아니, 못 먹어봤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입 꼬리를 올립니다.]

"이제 먹게 해주마. 무기를 들어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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