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71화
제71화
어쩌면 처음부터 예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바람의 신전]의 바로 위에 있던 광산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지금이 될 줄이야.
"…엿 됐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진땀을 흘립니다.]
미도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3, 320…?"
-320이면 지금까지 밝혀진 보스몹들 중 가장 최고 레벨 아님?
-맞음. 저번에 제우스 길드가 레이드 했던 게 레벨 250짜리 바실리스크였지.
-기억난다. 바실리스크가 눈을 돌릴 때마다 모든 것을 돌로 만들었지. 그때 진짜 아찔했는데.
-그럼 이 녀석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냐.
젠장.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네놈은 누구냐고 물었다. 크르륵."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새빨간 눈이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미노타의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하는 눈빛이었다.
순간 오금이 저려왔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우마왕이라고…?
내 기억 속에 있는 미노타는 마왕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는 12궁좌 중 하나였던 금우궁, [알데바란]의 자식이었다.
물론 프로메테우스가 봉인된 뒤의 기억은 없었기 때문에 배신한 궁좌 중 하나였던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우선 녀석과 이야기 해보기로 했다.
"미노타. 알데바란은 어디 있지?"
"넌 뭐냐.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지?"
거대한 콧김의 열기가 내뿜어졌다.
얼마나 뜨거운 열기인지 순간 온천에 와있는 줄 알았다.
…과연 알데바란의 자식이군.
기억속의 알데바란은 '폭염'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들인 미노타가 그 힘을 물려받은 것 같았다.
그야말로 폭염주의보라고 할 수 있었다.
"친구라고 하면 믿어줄려나?"
"크하하하! 위대한 마왕에게 친구라고? 허풍이 지나치구나."
위대한 마왕? 설마 진짜 마왕이라고…?
"알데바란은 마계로 가서 마왕이 된 건가?"
아니, 어쩌면 그 혼자만이 아닐지도 몰랐다.
배신한 일곱 궁좌가 모두 마계라는 곳에 있을지도.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걸 내가 왜 말해줘야 하지? 수상한 인간이군. 아버지의 진명을 어떻게 아는 거냐. 뭐, 상관없지. 네놈은 여기서 죽을 테니까. 죽어라!"
미노타의 입에서 엄청난 고열의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퍼져나간 불길이 내가 있던 곳을 태우며 뜨겁게 덥혔다.
나는 가까스로 미도를 밀치며 피해 낼 수 있었다.
"괜찮습니까?"
"아, 네, 죄송해요."
미도는 너무 놀랐는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했다.
나는 미노타의 다리를 향해 내가 가진 최고의 속도로 달려들었다.
지금 그와 나의 차이는 너무나 명백하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콰아아앙-!
[대상의 화염 저항력이 너무 높습니다.]
[화염 속성의 공격이 통하지 않습니다.]
"젠장. 역시 안 되는 건가."
예상대로 화염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생전의 알데바란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물리 공격도 거의 통하지 않을 줄이야.
…그럼 이건 어떠냐.
"얼음!"
콰가가가각-!
순식간에 나타난 하얀 얼음이 미노타의 오른발을 뒤덮었다.
미노타는 갑작스런 냉기에 당황하는 듯했다.
그야말로 경이롭다고 할 만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하찮은 성좌의 힘이구나. 판도라의 힘 앞에 무릎 꿇어라!"
미노타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끓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이놈이 어떻게 판도라의 조각을…?
이거 완전 최악의 상황인데.
[알 수 없는 힘에 빙결이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빙결시간이 20초-> 5초로 변경됩니다.]
고작 5초라….
아직 완전한 힘을 개방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
콰아아앙-!
엄청난 속도의 거대한 주먹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땅이 울리고 건물이 진동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힘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일렀다.
미노타가 양손을 교대로 내질렀기 때문이다.
"혜안!"
[사도 스킬: 혜안을 사용합니다.]
[적의 공격경로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콰콰콰콰쾅-!
불꽃이 정경을 집어삼켰다.
미노타의 주먹이 닿는 곳마다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고, 그 자리엔 용암이 생겼다.
마치 [썬 로드]를 내가 당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런 기분이었나.
[혜안]으로 가까스로 피하면서 그때 당했을 불룡파 놈들이 생각이 났다.
왠지 동정심이 들었지만, 맞을 만했으니 미안한 감정은 추호도 없었다.
근데 왠지 점점 따라잡히는 느낌이 드… 젠장.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퍼억-!
사각지대에서 날아온 미노타의 주먹이 나를 후려쳐 버렸다.
나는 벽 두 개를 뚫고 날아가 건물에 부딪혔다.
미도가 놀란 표정으로 뛰어왔다.
"아저씨!"
…나 아저씨 아닌데.
가까스로 피했다고 생각했건만,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하며, 마지막 남은 포션을 꺼내 마셨다.
하지만 그래도 빈사 상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우선 도망치자고 얘기합니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나.
나 혼자라면 죽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미도는 보내야했다.
나는 귀환석을 꺼내 재빨리 윈디아로 가는 포탈을 열었다.
"먼저 가십시오."
"아저씨는요?!"
"아저씨 아닙… 그냥 먼저 가십시오."
"싫어요. 같이 가요."
미도가 내 팔을 어깨에 둘러멨다.
나를 부축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코끝이 찡해져왔다.
이미 채팅창은 엄청난 속도로 글이 올라오며 읽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포탈 앞에 섰다.
하지만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크르륵. 어딜 도망가나."
아차…!
감동에 젖어 있느라 녀석이 있단 걸 깜빡하고 말았다.
다가온 미노타가 또 한 번 입에서 폭염을 뿜으려 했다.
나는 남은 힘을 쥐어짜 미도를 포탈 안으로 있는 힘껏 밀었다.
"안 돼! 아앗…!"
나를 향해 손을 뻗는 미도의 모습.
그리고 그것이 내 마지막이었다.
화염이 나를 집어삼켰다.
[사망하셨습니다.]
[지그마의 뼈 목걸이를 떨어트립니다.]
[레벨 50이 넘어 12시간 뒤부터 접속이 가능합니다.]
* * *
포탈을 넘어온 미도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자괴감에 빠졌다.
아련한 후회가 그녀의 손끝에 맴돌았고, 눈앞에 뜬 메시지에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 수밖에 없었다.
[유저, '?????' 님이 사망하셨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그랬다면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까도 도움을 받았는데, 또 도움을 받고 말았다.
아니, 이건 빚이었다.
자신을 희생해서 나를 구한 그런 빚.
채팅창은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여신님 울지 마요.
-늑대가면 당신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는 훌륭한 용사였습니다.
-삼가 영웅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가 늑대가면을 오해했던 것 같음.
-ㅇㅇ 알고보니깐 영웅심 투철한 사람이었네.
-역시 기레기 클래스.
어느새 그를 욕하던 사람들도 마음을 돌린 상태였다.
악의적인 글은 이제 전혀 없었다.
오히려 추모하는 분위기가 되어가자, 미도는 조금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다행이야. 사람들이 그를 오해하지 않아서. 근데 이게 군중심리라는 거구나.'
교양 수업시간에 잠깐 배운 적이 있었다.
세 사람이 모여 동시에 한 곳을 가리키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그곳을 쳐다본다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진짜 맞는 말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친구 추가를 못했네."
-ㄴㄴ 그건 우리가 동의 못합니다.
-미도님은 만인의 여인이어야함.
-옳소. 결사 반대합니다!
-이 결혼 반대요!
-할아버지가 제일 싫어하실 듯.
'구독자가 늘어나니 진짜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구나.'
몇 시간 전만해도 이런 반응은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어 있는 게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면 쏠쏠한 후원금이었다.
'별사탕이 엄청 많네. 올해 등록금은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되겠어.'
미도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채팅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러분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네요.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안 돼. 가지 마요.
-또 일주일간 못 보겠네ㅜㅜ
-아, 어떻게 기다리냐.
[오매불망미도사랑 님이 별사탕 1,0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오매불망 님 마지막까지 별사탕 선물 감사해요. 이제 진짜 가볼게요. 지금까지 크리에이터 미도였습니다!"
밝은 미소와 함께 채팅창이 꺼지자, 미도는 곧장 친구창을 열었다.
할아버지에게 귓속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 할아버지 언제 로그아웃하셨지?"
'혹시 안 놀아줘서 삐지신 걸까…?'
왠지 집에 가면 토라져있을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 애교로 풀어드려야겠네."
그렇게 미도는 곧장 로그아웃을 했다.
* * *
푸쉬이이익-!
캡슐이 열리자 미도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너무 정신이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늑대가면이라는 사람은 정말 신기한 사람이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은 둘째 치고, 엄청난 싸움 실력이 그 첫 번째였다.
'진짜 굉장한 실력이었어. 원래 레벨이 얼마나 될까?'
그는 잠깐이지만 320레벨이나 되는 미노타의 공격을 피해냈다.
아마 그녀였다면 한방에 죽었을 것이다.
아니, 생산 직업인 그녀의 한계는 명백했기에 이건 100%였다.
하지만 그는 요리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움직임을 보였다.
그래서 미도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마 우리 길드 오빠들이라도 그건 피하지 못했을 거야.'
이제 갓 200레벨이 된 그들이었지만, 버프를 주는 서포터로 활약하며 같이 사냥한 시간이 많았기에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장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리고 스타피스를 가지고 있다니.'
그건 가지고 싶다고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도는 점점 더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해졌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몬스터랑 아는 사이 같던데… 그건 어떻게 된 거지? 아, 머리야. 모르겠다. 일단 집에 가야겠어."
미도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핸드폰을 들었다. 그런데.
"어? 무슨 전화가 이렇게 많이 왔지?"
그녀가 통화 목록을 확인했다.
전부 모르는 번호였다.
이게 뭔가 싶은 순간. 문자 메시지를 보니 엄청난 숫자가 보였다.
미도는 바로 문자 메시지 함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제이큐TV입니다. 미도 님의 방송을 방영하고 싶습니다.]
[브리드 미디어입니다. 독점 방송하고 싶습니다.]
[로얄 스타입니다. 방금 했던 방송을 저희 채널에서….]
"방송국…?"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