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66화
제66화
[코볼트 광산 B2에 진입합니다.]
우리들은 순식간에 1층을 돌파했다.
미도가 이름부터 흉흉한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코볼트들은 쓰러졌고, 아이템을 내뱉었다.
물론 나오는 장비들은 전부 전투직과 관련된 것들이라 내가 쓸 일은 없었지만.
"우리 잠깐만 여기서 쉬어요."
"그래. 알았다."
나와 미도는 2층의 입구에 있는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미도가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가 전투직이 아니라서 조금 아쉽네요. 그럼 같이 사냥하고 재밌었을 텐데."
"…그러게 말이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사실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었다.
그냥 사실대로 얘기할까…?
그래도 미도는 나를 좋게 보고 있으니, 사실대로 얘기하면 어디서 떠벌리고 다니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결심을 굳혔다.
"사실…."
"어? 진철 오빠가 들어와 있었네?"
젠장. 타이밍을 놓쳤군.
근데 진철이는 또 어떤 잡놈이지.
나는 그녀의 대화내용을 듣고 싶었지만, 들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귓속말을 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미도가 말했다.
"할아버지, 아는 오빠를 부르려는데 와도 괜찮죠?"
"…그래. 오라 하거라."
어떤 놈인지 면상이 궁금했다.
오기만 해봐라. 내가 친히 지옥의 요리를 만들어줄 테니.
그렇게 우리들은 쉬면서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그동안 상태창을 점검했는데, 벌써 46레벨이 되어있었다.
혼자 사냥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잘 오르는 것 같았다.
…전투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지 못하는 건 좀 아쉽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스킬은 직접 사용해야 숙련도가 오르고 강화된다.
지금은 그러질 못하니 요리 스킬이라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공중부양 냄비를 꺼냈다.
미도가 그 모습을 보며, 눈망울을 빛냈다.
"우와! 요리하시려구요?! 저 던전에서 요리사는 처음 봐요!"
"껄껄. 간단하게 스프로 요기라도 채우자구나."
어느새 그녀에게 정체를 털어놓겠다는 생각은 접은 상태였다.
사실 하려면 언제든지 할 수 있었고, 지금 중요한 건 그 진철이라는 놈이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감히 우리 손녀를 넘봐…?
지금 내 머릿속은 그 진철이라는 놈으로 가득했다.
나는 마력을 불어 넣으며 공중부양 냄비를 띄웠다.
또 한 번 놀라는 미도.
"대박! 그거 어디서 얻으셨어요?! 이런 건 처음 봐요!"
"친구한테 받았다."
나는 대충 둘러대며 솔라를 부르려 입을 뗐다. 그런데.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솔라를 부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부르지 말라고…? 왜?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보는 눈이 많다고 말합니다.]
…아, 그렇군.
잠깐 잊고 있었다.
이곳은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입구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유저들을 훑으며 입을 닫았다.
그들은 입구에 앉아있는 우리들을 잠깐 흘겨보고는 안으로 뛰어갔다.
미도가 물었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아니다. 재료를 뭘 넣을지 고민 중이었어."
"그렇구나. 저 기대해도 되죠?"
"껄껄. 노력해보마."
…날씨 요리술은 못 쓰겠네.
어쩔 수 없이 나는 불 뿜기를 사용해 불을 피워야했다.
다행히 근처에 마른 잎들이 많았는데, 이것이 광산에 있는 이유는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했다.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에 따르면 원래 여기는 원래 울창한 숲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왜 광산이 되어버린 거지.
…일단 요리에 집중해야겠군.
"깍둑썰기!"
사사사사삭-!
[깍둑썰기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좀 더 정교한 썰기가 가능합니다.]
바람의 언덕에서 미리 얻어 놓았던 야채들이 퐁당! 소리를 내며 들어갔다.
플로라에게 아이올리아 수프를 만들어 준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저번에 보다는 조금 쉽게 만들 수 있었다.
물론 그때는 놀 고기였고, 지금 내가 사용 할 것은 다른 고기였다.
[코볼트 고기]
등급: 희귀
유통기한: 3일
코볼트를 잡아 얻은 고기다. 부드러움 식감과 질긴 식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좋은 식재료다. 주로 구이 요리에 자주 쓰인다.
나는 익숙하게 고기를 뜯어내 손질했다.
불 뿜기로 겉면을 살짝 익혔고, 남은 고기는 바싹 구웠다.
하나는 수프에 넣고 하나는 구이로 만들 예정이었다.
가장 먼저 만들어 진 것은 코볼트 구이였다.
띠링-!
[별미! 코볼트 꼬치구이!]
화려하고 복잡한 걸작을 요리할 필요는 없다!
좋은 식재료를 소박하게 만들면 그것 또한 별미가 될 것이다.
비록 이름은 없으나 실력이 제법인 요리사가 심혈을 기울여 구웠다.
소스를 겉면에 바르지 않은 것이 살짝 아쉽다.
-맛 스타: ☆☆
-유통기한: 3일
-생명력 회복: 100 마력 회복: 100
효능: 이 요리를 먹는 사람은 1시간 동안 민첩 5%, 건강 5% 증가.
하루 동안 코볼트에 대한 공격력 5% 증가.
역시 태양의 가호는 없는 건가….
확실히 날씨 요리술은 일반적인 요리술보다 훨씬 좋은 점이 많았다.
태양으로 구웠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텐데.
아쉬웠지만, 그래도 냄새는 괜찮은 것 같으니 미도에게 내밀었다.
"우선 간단하게 이거라도 먹어라."
"우와아~! 잘 먹겠습니다!"
야금야금 고기를 뜯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미도.
그녀는 입으로 연신 맛있다고 말하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진짜 맛있어요! 사냥터에서는 이렇게 처음 먹어봐요!"
"껄껄. 많이 먹어라. 더 구워주마."
나는 코볼트 구이를 구우며 말을 이었다.
"평소에는 어떻게 먹는 거냐. 사냥할 때는 요리사가 없었을 텐데."
"음, 사실 요리사를 사냥터에 데려가는 게 쉽지 않아요. 인터넷에 보니깐 누가 데려갔다가 몬스터들이 음식 냄새를 맡고 달려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이야 입구라서 몬스터가 없는 거지만요."
"…그렇겠구나."
사실 이미 아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나는 맞장구 쳐주었다.
"보통은 간단한 전투식량을 사요. 생명력이랑 마력이야 포션이 있다지만 배고픔 수치는 요리로밖에 채우지 못하니깐요."
…전투 식량이라.
그거 별로 맛없던데.
북파공작원 시절에도 그랬다.
아니, 사실 전투식량이라도 있으면 감지덕지였다.
그때의 나는 직접 사냥을 해서 먹을 것을 구했으니까.
간단한 산짐승이나 생존을 위해 벌레를 먹기도 했었다.
독지네가 가장 위험했지만, 독만 제거하면 괜찮았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빈속에 쌍화차를 홀짝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놈도 배고프겠네.
뭐, 알아서 잘 먹는 거 같으니 내버려둬도 괜찮겠지.
나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 고개를 내렸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배고프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이놈이. 정체를 숨기라고 할 때는 언제고.
"안 된다. 이놈아."
"네? 할아버지. 뭐라구요?"
"아니다. 친구랑 귓속말을 주고받다가 말이 헛나왔구나."
"우와, 할아버지 친구도 사귀셨어요?"
"그래. 뭐 그렇게 됐구나."
그나마 비슷한 또래라고는 9살 아래의 드레인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은 요즘 접속도 안하고 뭐하고 있는 거지. 바쁜가…?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단식 투쟁을 선언합니다!]
…지랄도 풍년이다.
나는 애써 녀석을 무시하며, 끓고 있는 수프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때, 미도가 입을 열었다.
"엇. 진철 오빠가 근처에 왔나 봐요. 잠깐 마중 나갔다 올게요!"
"마중…?"
"입구는 몬스터들이 없으니깐 괜찮을 거예요. 금방 갔다 올게요!"
그 말과 동시에 1층으로 올라가는 미도.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고오오얀 놈 같으니라고!!"
나는 인벤토리에서 한 아이템을 꺼냈다.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의 산성독]
등급: 고급
로크 산맥의 왕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의 산성독이 담긴 주머니.
강렬한 산성이 모든 것을 녹여버린다.
이것을 섭취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정 먹고 싶다면 희석해 먹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악마 같은 미소로 웃기 시작했다.
"후후. 어서 오거라. 진철아. 웰컴 투 헬이다."
드레인이 가르쳐준 또 다른 영어였다.
* * *
차진철은 오늘도 허탕을 쳤다.
뮬란의 영웅. 아니, 이제는 늑대가면이라고 불리는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윈디아를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지.'
어제는 어렵게 그를 찾을 수 있었지만, 워낙 신출귀몰한 사람이라 쫓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유니온의 직원인 자신도 갖지 못한 귀환석을 할아버지가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아. 오늘도 여기서 접어야겠네."
그때, 미도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미도: 오빠! 언제 들어왔었어요?
-데드아이: 아, 조금 됐어. 미안하다. 바로 연락한다는 걸 깜빡했네.
-미도: 괜찮아요. 그보다 만난다던 사람은 만났어요?
-데드아이: 아니, 못 만났어. 아무래도 바쁜 모양이야.
차진철은 미도에게 만날 사람이 있어서 윈디아로 왔다고 말했었다.
미도가 말을 이었다.
-미도: 할 일 없으면 코볼트 광산으로 올래요?
-데드아이: 코볼트 광산? 너 거기서 경험치는 못 먹을 텐데?
-미도: 우리 할아버지가 아크스타를 시작했거든요. 쩔해주고 있어요. 히히.
-데드아이: 쩔? 너 화가잖아? 그게 돼?
-미도: 길드장 오빠한테 좋은 무기 받았어요.
'역시 템빨엔 장사 없다니까….'
-데드아이: 좋겠네. 근데 할아버지 있으신데 괜찮아?
-미도: 괜찮아요. 허락하셨어요.
할아버지라… 지금 내가 찾고 있는 사람도 할아버지인데. 설마 같은 사람일 리가 없겠지.
차진철은 잠깐 머리도 식힐 겸 광산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데드아이: 알았어. 광산에 도착하면 다시 연락할게.
-미도: 알겠어요. 얼마나 걸려요?
-데드아이: 5분 정도?
-미도: 얼마 안 걸리네요. 얼른 와요.
-데드아이: 그래. 금방 갈게.
귓속말이 내려가자 차진철은 스킬을 사용했다.
"어두운 발걸음."
[30분간 이동속도가 1.5배 증가합니다.]
[30분간 발자국이 남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의 직업은 바로 영웅 클래스 직업인 [어둠의 사냥꾼]이었다.
전설 클래스로 분류되어 성좌의 능력을 얻을 수 있는 스타 프루츠는 가지지 못했다.
유니온의 직원, 아니 대표라고 할지라도 마음대로 스타 프루츠를 가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아크스타는 기존에 존재했던 가상의 세계에 게임을 덧씌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유니온의 관계자들도 어떤 성좌들이 있고, 어떤 전설의 직업이 있는지는 다 알지 못했다.
유일하게 모든 것을 알던 천재 과학자 강재성 박사는 현재 불의의 사고로 의식불명에 빠진 상태였다.
'안타까운 일이지. 이 세계를 만들어낸 사람이 정작 저렇게 누워있으니 말이야. 그 사람이 있었다면 우리 야근도 없었을 텐데. 쯧.'
현재 그가 없는 유니온은 스타 프루츠의 능력자를 <코드 제로> 라고 분류해 그들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주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영웅 클래스는 자신들이 기획하고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차진철은 어느새 코볼트 광산에 이르렀다.
"그러고 보니, 여기 3층부터 내가 잡을 만한 몬스터들이 있었지."
그의 레벨은 이제 갓 100을 넘긴 수준이었다.
어차피 오늘도 허탕을 칠 것 같으니 그냥 사냥이나 해야겠다 싶었다.
차진철은 다시 귓속말을 했다.
-데드아이: 광산에 도착했다.
-미도: 벌써요?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데드아이: 뭐, 어쩌다보니.
-미도: 마중 나갈게요. 지금 2층이에요.
-데드아이: 아니야. 2층이면 금방 갈 거야.
-미도: 그럼 2층으로 내려가는 입구에서 기다릴게요.
-데드아이: 그래.
차진철은 이번에 다른 스킬을 사용했다.
"은밀한 어두움."
[3분간 은신상태에 돌입합니다.]
어둠의 사냥꾼은 궁수와 암살자 클래스가 합쳐진 하이브리드형 직업이었다.
은신을 이용해 빠르게 광산을 돌파했고, 어느새 2층으로 내려가는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도가 보이자, 차진철은 은신을 해제했다.
"미도야."
"어머! 오빠. 놀랬잖아요."
"하하, 미안."
"언제 봐도 오빠 스킬은 너무 스토커 같다니깐."
"뭐? 하하하."
"아 참, 그거 생각해봤어요? 제가 있는 길드로 들어오는 거요."
"아, 그거…?"
미도는 차진철에게 길드에 들어올 것을 권유했었다.
자신의 직업이 이번 크리스마스에 열릴 <월드 대항전 - 챌린지 리그> 에서 꼭 필요하다나 뭐라나.
길드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이카루스였던가.'
꽤 유명한 길드였다.
작지만 성도 하나 가지고 있고, 요즘 TV에 자주 나오는 길드 중 하나였다.
떠오르는 샛별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 문제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다.
"조금만 더 생각해볼게."
"알았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줘요."
"그래."
사실 길드에 들어간다 해도 챌린지 리그에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은 유니온의 직원이었으니 말이다.
'일을 그만두면 또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힘들겠지.'
차진철은 나중에 거절해야겠다고 속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2층으로 올랐다. 미도가 외쳤다.
"할아버지!"
'저분이 미도의 할아버지인가.'
생각보다 큰 덩치에 놀랐다.
백발도 있으시고, 근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어? 잠깐만.
차진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익숙한 얼굴이 악수를 건네왔다.
"반갑네. 미도 할애비일세."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