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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61화 (60/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61화

제61화

…별 다방(多房)이라고?

갑작스런 목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어두운 밤하늘과 수많은 별들이었다.

그것들은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고, 주변은 드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긴 대체…."

솨아아-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싸늘한 바람은 벚꽃과 함께 휘날리고 있었다.

달빛을 머금은 벚꽃은 어느 곳을 향해 길을 만들었고, 나는 그곳을 바라보았다.

"저긴…?"

익숙한 곳이었다.

아니,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저긴 내 추억의 공간이다.

아내와 처음 만났던 곳이 바로 저곳이었으니까.

나는 꽃길을 따라 그곳을 향해 걸었다.

거의 다와 갈 때쯤 저절로 문이 열렸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들어오라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저기에 녀석이 있나 본데….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이유야 어떻든 녀석은 이 세계에서 신이라는 존재였고, 나는 주먹을 두어 번 쥐었다 피며 긴장을 풀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짜 비슷하네."

아내와 처음 만났던 다방(茶房)의 구조와 흡사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구석에 TV가 있었고, 커다란 소파가 하나 있었다는 것. 그것 외에는 딱히 흠잡을 곳 없이 비슷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커피? 아니면 쌍화차?]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니, 팔 하나 없는 청년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런 곳에 다른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잠깐만.

이 녀석 혹시…?

"프로메테우스?"

[용케 알아보네.]

프로메테우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의 옷차림은 웬 거적때기 같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서양의 신과 같은 복장이었다.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군.]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순간 옷차림이 변했다.

그는 나와 비슷한 정장차림의 옷을 입고 있었다.

내가 멍한 표정을 짓자, 그가 말했다.

[이곳은 영감의 내면세계야.]

"내면세계?"

[그래. 이곳에선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변하지. 이렇게 말이야.]

또 한 번 딱! 하며 손가락을 튕기자, 이번에는 주변의 지형이 변했다.

어느새 내가 있는 곳은 현재 살고 있는 강현이네 집이었다.

…정말 놀랍군. 내면세계까지 재현하는 기술이라니.

알면 알수록 유니온의 기술력은 놀라웠다.

나는 그에게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여긴 뭐하는 곳이냐. 왜 이런 곳이 존재하는 거지?"

[글쎄. 사실 500년도 더 된 일이라, 설명하려면 복잡해. 그냥 쉽게 얘기하면, 스타 프루츠를 먹게 되면 내면세계에 성좌들이 자리 잡는 거야. 그래야만 힘을 빌려줄 수 있거든.]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 이야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또 다른 의문을 그에게 던졌다.

"그럼 그때 '레이트라'라는 녀석은 뭐냐? 어떻게 다른 성좌가 내가 있는 내면세계로 들어온 거지?"

프로메테우스가 빙긋 웃었다.

[들어온 게 아니라, 공유한 거야. 쉽게 말하면 내면세계가 합쳐졌다고 말할 수 있지. 인간들도 몬스터를 잡기 위해 파티라는 걸 맺잖아? 그거랑 비슷한 개념이야.]

…성단이 그런 것이었군. 이렇게 들으니 조금은 이해가 됐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또 물었다.

"레이트라는 어디에 있지?"

[그 '천둥벌거숭이' 녀석은 갔어. 원래 성애자(星愛者)들 간의 거리가 멀어지면 자연적으로 내면세계도 갈라지거든.]

"…그렇군."

[아무튼 얘기가 길어졌네. 일단 앉아. 뭐 먹을래? 커피랑 쌍화차가 있는데.]

진짜 다방(茶房)이냐….

내가 사는 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대접을 받으려니 영 떨떠름했다.

주객이 전도가 된다는 말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싶었다.

나는 잠깐의 고민 끝에 말했다.

"쌍화차."

[훌륭한 선택이야.]

잠시 후.

나는 그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쌍화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직접 만들어 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쌍화차 두 잔이 나타났고, 우리들은 그것을 마시고 있었다.

[날계란 더 필요해?]

"…아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서양의 신이란 녀석이 나와 마주 앉아 동양의 쌍화차를 홀짝이는 모습은 너무나도 모순적이었다.

나는 또 한 번 쌍화차를 마시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생각보다 어리지 않네. 어린 아이인줄 알았는데.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프로메테우스가 물었다.

[내가 생각보다 어려서 놀랐어?]

"그래, 어린 꼬마인줄 알았거든."

프로메테우스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며칠 전만해도 나는 어린 꼬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지?"

[흠, 그걸 설명하려면 먼저 이 녀석을 먼저 보여줘야겠네.]

"……?"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 놀라운 단어가 튀어나왔다.

[솔라.]

"……!"

프로메테우스의 옆에 익숙한 불덩어리가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놀랐어?]

"…그래. 이건 좀 놀랍군."

[솔라는 내가 만들어낸 녀석이야. 영감이 주인이라도 창조주인 내 명령에 가장 우선하지.]

"음."

순간, 고블린의 동굴에서 솔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분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감히 어느 누가 창조주의 명령을 어기겠는가.

부모가 신인데. 나라도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솔라는 내 몸을 잘라내 만든 아이야.]

"몸을 잘라내? 혹시…?"

프로메테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왼팔로 만들었어.]

그제야 녀석의 한쪽 팔이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싸우다 저렇게 됐나 싶었는데, 저런 이유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코를 자주 파서 그런가 이제 보니 콧구멍이 짝짝이네.

프로메테우스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솔라를 만들어내며 많은 힘을 잃어버렸어. 예언의 힘도 예전 같지 않고 말이야.]

"그럼 겉모습도…?"

[그래. 하지만 영감이 솔라를 성장시키며 나도 점점 힘을 되찾게 되었어. 제 모습을 찾아가게 된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쌍화차를 홀짝였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겠군.

"나를 여기로 불러낸 이유가 뭐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그래. 이제 얘기해줘야겠지. 긴 이야기를 말이야.]

그는 잠시 숨을 내쉬며 뜸을 들이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어느새 주변의 정경은 또 한 번 변했고, 앞에 있던 탁자와 쌍화차는 사라져 있었다.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가 말했다.

[태초에 가이아 님이 계셨어.]

그 말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빛이 피어났다.

[가이아 님께서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확립하시고 태초의 대륙을 만드셨지.]

하얀빛이 세상으로 퍼져나가며 대륙이 만들어졌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조금 놀랐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하늘에서 땅을 떼어 놓으셨고, 땅에서 바다를 떼어놓으셨어. 이것이 바로 태초의 대륙 '판게아'였지.]

…판게아.

판게아 대륙은 하나의 큰 대지였다.

지금의 지구처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하나로 이어진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륙이었다.

[가이아 님께서는 그 위에 인간들을 만드셨고, 그들을 다스릴 세 명의 신들을 만드셨어. 인간들은 신들의 가호 속에서 문명을 꽃피웠지.]

아까 보았던 그 빛이 세 갈래로 갈라지며 또 다른 형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저 하얀빛이 '가이아' 라는 존재인 듯했다.

[하늘을 다스릴 '유피테르'. 바다를 다스릴 '넵튠'. 사후세계를 다스릴 '플루토'가 그렇게 탄생했지.]

나는 묵묵히 그들을 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너무 눈이 부셔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세 명의 신들에겐 강력한 힘과 권능이 부여되었어. 그들은 가이아 님께 다른 존재들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지. 엘프, 오크, 드워프, 요정, 거인, 드래곤 등이 이때 만들어졌어. 가이아 님은 힘을 회복하기 위해 잠깐의 수면에 접어드셨지. 하지만 그때 종족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말았어.]

발아래 놓인 대지는 어느새 전쟁으로 물들어 있었다.

각종 비명들이 난무했고, 그 중엔 영웅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인간도 있었고, 인간이 아닌 자들도 있었다.

그 처절한 싸움 속에, 프로메테우스가 입을 열었다.

[가이아 님을 대신해 임시로 대지를 다스리던 유피테르는 전쟁을 막지 않았어. 오히려 그들을 부추기며 88명의 강자들을 뽑아 성좌로 만들었지. 나는 그걸 '등성 전쟁'이라고 불러. 그리고 그 중 12명을 뽑아 자신을 호위하는 황도 12궁으로 만들었지.]

"…교활한 녀석이로군."

[그래. 교활했지. 하지만 요동치는 대지를 느끼며. 가이아 님이 깨어나셨어. 화가 나신 가이아 님께서는 유피테르의 힘을 대부분 빼앗아 세상에 흩어버리셨지. 그를 견제하기 위해 다른 신들을 함께 만드셨어. 나는 그때 태어난 거야.]

"그렇군."

[전쟁은 막을 내렸지만, 인간들의 삶은 피폐해졌어. 숫자는 가장 많았지만 가장 힘이 약한 인간들이었지. 서로를 헐뜯으며 사는 모습에 가이아 님은 안타까워하셨어. 그래서 신탁을 내리셨지.]

신탁…?

순간, 한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

프로메테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예언 덕분에 인간들은 서로를 배려하고 착하게 사는 법을 알게 되었어. 하지만 일부 인간들은 아니었지. 영감도 알다시피 다시 한번 전쟁이 일어났어. 이번엔 인간들끼리의 전쟁이었지.]

어느새 발아래는 또 한 번 전쟁이 벌어져 있었다.

[가이아 님은 안타까워하며, 고심 끝에 한 인간을 부르셨어. 그를 통해 인간들을 다스리겠다는 생각을 하셨지. 하지만 그러기엔 인간이 가진 힘은 너무나 나약했어. 그래서 가이아 님은 나와 동생인 '아틀라스'를 부르셨지.]

파노라마가 스치며 커다란 빛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두 명의 남자가 보였다.

한명은 프로메테우스였고, 다른 한명은 그가 말했던 동생인 듯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부른 거지?"

[불을 훔치라고.]

"뭐…? 설마?"

[그래. 나는 유피테르가 있는 천궁으로 올라가 '태초의 불'을 몰래 훔쳤어. 그것은 본디 가이아 님이 태초 신들에게 내린 것. 나는 그것을 훔쳐 왼팔을 잘라 '솔라'를 만들어 냈어.]

순간, 이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 불도둑이라는 별명을 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하니, 이런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그것도 모르고 도둑놈이라고 오해했었군. 이거 미안해지는데.

"그럼 동생도 불을 훔친 건가?"

[아니, 그 녀석은 가이아 님이 유피테르에게 남긴 힘을 훔쳤어. 다는 훔치지 못했지만 말이야.]

"뭐? 그게 뭔데?"

[구름.]

"구름…?"

[유피테르의 구름은 강력해. 지금은 가이아 님으로 인해 약해졌지만, 예전엔 비, 바람, 눈, 벼락 등 다양한 힘을 낼 수 있었지. 지금은 벼락밖에 남지 않았지만 말이야. 사실 가장 강력한 게 벼락이지만.]

태양과 구름이라. 이거 왠지 날씨를 훔친 것 같은데… 어? 잠깐만.

"혹시 아까 그 인간이라는 사람이?"

"그래. 알렉서스야."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며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에 사로 잡혀있을 때, 주변의 정경이 변했고, 가이아가 알렉서스를 만나는 장면이 보였다.

옆에는 프로메테우스와 아틀라스가 함께 서 있었다.

알렉서스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그가 고개를 들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곳엔 젊은 시절의 내가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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