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57화
제57화
김수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것은 오크 투사들이었고, 그들은 앞서 왔던 오크 전사들 보다 더 강했다.
어쩔 수 없이 케레노스가 실피드 기사단을 불러 함께 싸웠지만, 힘들었다.
눈앞에 있는 이 녀석 때문이었다.
[Lv. 200 푸른 이빨 오크 족장, 고르바]
고르바는 어떤 물리 데미지라도 80% 이상 감소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녀석의 생명력은 아직 10%도 채 깎이지 않았다.
"크리스탈 님 버프 부탁드립니다."
"알았어요. 앤드류. 힘내요."
앤드류 또한 실피드 기사단과 함께 왔다.
자신의 힘이 모자라서 속으로 분을 삼키고 있었는데, 부단장 베커가 힘을 모아야한다며, 도와줄 사람을 더 요청한 것이다.
앤드류는 망설이지 않고 따라 왔다고 한다.
"크워어어억!"
처절한 괴성과 함께 또 한 번 지진이 일었다.
고르바의 포효. 주변에선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젠장! 너무 강해!"
"도대체 어떻게 된 몸이야? 공격이 거의 먹히지 않아!"
"빌어먹을!"
현재 고르바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사람은 케레노스밖에 없었다.
그는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고르바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케레노스가 외쳤다.
"실피드 기사단은 다른 오크들을 맡아라!"
"하지만 단장님!"
"난 생각이 있으니, 어서 가!"
기사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앤드류와 길드원들도 함께 움직였다.
그들은 주변에 있던 오크 투사들을 상대했다.
그때 옆에 있던 에드워드가 입을 열었다.
"내가 아버님의 목걸이만 사용할 수 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목걸이?'
김수정이 그의 목을 보니 하얀색 펜던트가 있었다.
그것을 꽉 쥐는 에드워드를 보며 김수정은 친근감이 들었다.
자신도 아버지의 유품으로 목걸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펜던트에는 조그만 눈의 결정이 있었고 자신의 목걸이에는 어릴 적 그녀의 사진이 있었다.
김수정이 물었다.
"그 목걸이는 어떤 목걸이 인가요?"
"윈디아를 수호하던 아버지가 쓰던 목걸이야."
"그럼 그걸 쓰면 저 오크를 물리칠 수 있나요?"
"응. 하지만 난 쓰질 못해."
김수정은 목걸이의 정보를 확인했다.
[☆스타피스, '얼음땡 요정'의 목걸이]
등급: 성유물
사용 제한: 친절한 인내의 군주
-현재 봉인된 상태입니다.
-정보를 알 수 없습니다.
'이거 스타피스잖아?!'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스타피스'는 생전 성좌들이 사용하던 힘의 일부가 담긴 물건을 뜻하는 말이었다.
스타 프루츠보다는 상대적으로 구하기가 쉬웠기에, 현재 랭커들 중에도 상위권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최상위권 랭커는 여러 개를 가지고 있기도 했는데, 너무나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노리는 유저들이 많았다.
다툼이 일어나거나 심하면 전쟁을 일으키는 그런 물건이 지금 꼬마 영주의 손에 있는 것이다.
'만약 저게 진짜 스타피스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케레노스가 다가온 건 그때였다.
"영주님. 아무래도 그걸 써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걸 쓰면…."
"현재로선 최선입니다. 허락해주십시오."
"……."
에드워드는 입술을 깨물며 고뇌에 빠졌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결단을 내리려 하는 것 같았다.
고르바는 여전히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었고, 에드워드가 입을 열었다.
"허락할게."
"…감사합니다."
그와 동시에 케레노스가 외쳤다.
"모든 기사들은 이곳으로 오크들을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동쪽으로 오크를 유인하라!"
"동쪽으로 유인하라!"
곳곳에서 우렁찬 대답이 들려왔다.
사방에서 오크들이 몰려왔고, 케레노스가 말했다.
"넌 영주님을 데리고 이곳에서 벗어나. 최대한 멀리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말이야? 넌 어쩌려고!"
"시간이 없어. 휘말리기 싫으면 도망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며 앞을 향해 달려가는 케레노스.
그는 고르바를 유인을 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에드워드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케레노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후퇴한다."
* * *
콰아앙!
거대한 양손 도끼가 건물을 부수며 먼지를 일으켰다.
가까스로 피해낸 케레노스가 이를 갈았다.
"제길. 영감님은 대체 언제 오시는 거야."
고르바가 거대한 몸을 구르며 날뛰고 있었다.
그의 눈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짙은 검은색의 안광을 뿜어냈다.
한눈에 보아도 무언가에 조종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라그너스라는 놈만 없애면 괜찮을 거라며."
그렇게 말한 것은 영감님이었다.
그래서 믿고 라그너스를 없앴는데 이런 일이 터져버린 것이다.
그때, 기사들이 달려왔다.
"단장님! 북쪽의 오크들을 데려왔습니다!"
"기사 데일! 남쪽의 오크를 모두 데려왔습니다!"
"애, 앤드류도 데려왔습니다!"
'…이놈은 뭐지.'
고개를 갸웃거린 케레노스. 하지만 금세 앤드류를 떠올렸다.
'아, 그래. 아까 구해주었던 녀석이네. 제법 강단이 있는 애송이였지. 근데 같이 있던 일행들은 다 죽은 건가?'
가볍게 고개를 젓는데, 오크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케레노스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 피해라."
"하지만, 단장님!"
"저희도 있겠습니다!"
"함께 있고 싶습니다!"
"이 멍청이들아. 피해! 살고 싶으면!"
하지만 소용없었다.
"가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지킵니다!"
"저희들은 실피드 기사단입니다!"
'이 바보들이.'
어느새 오크들이 지근거리까지 와있었다.
하는 수 없이 케레노스는 명령을 내렸다.
"니들 바람의 결계는 펼칠 줄 알지?"
"물론입니다!"
"준비해라."
그와 동시에 기사들이 원형으로 진을 펼치며 몸에서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둘러싸인 앤드류는 멍한 얼굴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케레노스가 말했다.
"이봐. 애송이."
"예…?"
"거기서 나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와 동시에 케레노스의 몸에서도 마력이 터져 나왔다.
짙은 연녹색의 마력.
그것은 옅은 바람처럼 부드럽게 흐르기도 했고, 어떨 땐 강한 태풍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땅이 요동쳤다.
쿠구구구구-
당황하는 앤드류.
"뭐, 뭐야?"
"놀라지 마라. 내가 남은 마력을 모조리 개방해서 그런 거니까."
"마, 마력이요?"
그는 꽤 당황스러운 듯 보였지만, 어르고 달랠 시간은 없었다.
이미 오크들과의 거리는 100M 에 불과했다.
케레노스가 창을 휘둘렀다.
후우웅- 후우웅-
거친 바람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하는 케레노스. 그의 창이 연녹색의 마력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해서 팽이처럼 회전을 했다.
그 모습에 앤드류가 중얼거렸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결계를 펼치던 기사 하나가 입을 열었다.
"잘 봐. 저분이 바로 우리 기사 단장님이니까."
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저분은 전대 창신이었던 뮤겐 님의 제자."
부 단장 베커가 입을 열었다.
"윈디아의 수호자이시다."
케레노스가 멈춘 것은 그때였다.
"폭풍창 제 3식."
쿠구구구구-
주변에 엄청난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것은 모조리 창끝으로 모여들었고, 엄청난 압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앤드류와 기사들이 신음을 흘렸다.
"크윽."
"역시 대단해."
"엄청난 힘이야."
케레노스는 그들을 힐끗 보았다.
'아직은 괜찮은 것 같군. 하지만….'
"정신 단단히 붙들어라. 이제 시작이니까."
"예!"
우렁찬 그들의 대답에 케레노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하늘을 향해 일창을 내질렀다.
엄청난 공기의 압축 덩어리가 하늘을 날았고, 이내 두 개로 갈라지며 엄청난 굉음을 터트렸다.
쒸아아아악! 까각! 까가각!
"태풍!"
정경이 무너진 것은 그때였다.
집이 날아가고, 나무가 휘날렸다.
하늘이 갈라졌고 어릴 적 거닐었던 시장 또한 무너졌다.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바람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쿠와오오오-
두 개의 공기 덩어리는 하늘로 비상하며 거대한 태풍을 만들어냈다.
달려오던 오크들이 날았고, 고르바의 몸도 뜨고 있었다.
고르바가 괴성을 질렀다.
"크워어어억!"
그 모습을 보며 케레노스는 생각했다.
이것은 스승님에게 배운 마지막 초식. 자신의 모든 마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었다.
머릿속에서 스승님의 말이 스쳤다.
'케레노스. 나는 네가 세 번째 초식만은 쓰지 않길 바란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스승님.'
'이것은 너의 추억마저도 삼켜버릴 것이다.'
그때는 스승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추억을 삼킨다는 말.
지금 눈앞에 그 추억들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콰콰콰콰-
어느새 공중에 뜬 오크들이 머리 위를 공전하고 있었다.
집도, 나무도, 건물도, 추억마저도 삼켜버린 거대한 바람이 그들의 하늘을 삼켜버렸다.
무너지려는 마음을 붙잡으며 창을 단단히 거머쥐었다.
그리고 마침내,
쒸아아아악!
요란한 굉음과 함께 바람이 흩어졌다.
어느새 찢어 발겨진 오크들의 몸체가 비처럼 떨어졌다.
하늘에선 모래가 떨어졌고, 주변은 이미 내가 알던 추억은 사라져 있었다.
뒤에서 앤드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X발…."
그의 입은 떡 벌어져 있었다.
하지만 케레노스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젠장. 1년 만에 써서 그런지 온 몸이 떨리네.'
힘겹게 창으로 몸을 지탱했지만, 흔들리는 다리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케레노스가 한쪽 무릎을 꿇자, 기사들이 달려왔다.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살아있었냐."
"당연하죠! 저희 실피드 기사단입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역시 단장님의 창술은 끝내줍니다!"
'시끄럽군.'
"조용 좀 해라. 나 좀 쉬고 싶…."
"조심하십시오!"
뒤에 있던 앤드류가 크게 소리쳤다.
"……?"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갑자기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고개를 들자, 심장이 내려앉았다.
"모두 피해!"
콰아아아앙!
엄청난 지진이었다.
땅이 갈라지고, 바위가 솟았다.
다행히 모두가 피할 수 있었고, 흩어지는 먼지 사이로 불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들.을.죽.음.으.로. 크르륵-!"
고르바였다.
'제길, 마력이 부족했나 본데.'
고르바가 한 걸음씩 다가올 때 마다 땅이 튀어 올랐다.
서둘러 창을 쥐려했지만 쥐어지지 않았다.
이미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
케레노스는 기사들에게 말했다.
"날 두고 도망쳐라."
"단장님을 두고 어떻게 갑니까!"
"안 됩니다! 따를 수 없습니다!"
"여기서 모두 개죽음을 당하면 훗날을 도모하지 못해!"
케레노스가 호통을 쳐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뒤에서 앤드류가 다가오며 말했다.
"개, 개죽음은 모르겠고, 은혜는 갚겠습니다."
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기사들이 또 한 번 바람의 결계를 펼치는 것이 보였고, 고르바는 어느새 코앞에 서있었다.
거대한 도끼가 그들을 향해 내리쳐졌다.
'젠장…!'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구-
엄청난 불기둥이 시야를 가렸다.
내리쳐지던 고르바의 팔과 도끼가 불기둥에 닿았고, 엄청난 열기에 놓쳐버린 그의 도끼가 하늘을 날았다.
흩어지는 불길 사이로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은….'
그는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왜 이제야 나타났냐고 따질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으니까.
케레노스가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늦었잖아요. 영감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