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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53화 (52/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53화

제53화

한방에 내려간 악명을 보고 있자니, 미소가 만개한다.

역시 남자는 한방이 있어야 한다.

…인생 한방이지. 뭐.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립니다.]

이 녀석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괜히 내가 다 뿌듯하군.

-잭슨: 수정아, 내가 있는 곳으로 올래?

-크리스탈: 네. 금방 갈게요!

유르니아 숲은 대부분 슬라임이라는 몬스터의 서식지였다.

어차피 선공 몬스터도 아니었기에 그녀가 위험할 일은 없었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녀를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뒤, 김수정이 도착했다.

"아버님!"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군.

"잘 찾아왔구나."

"케르가 도와줬어요."

"케르가?"

"네, 아버님 냄새를 기억하는 것 같더라구요."

품에 안겨 있는 케르가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이 녀석이 내 냄새를 기억하고 있었다니, 기분이 묘하군.

나는 양손으로 케르를 들어 올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콸."

짜식.

이 녀석만 보면 웃음이 터진다.

뭔가 뚱한 표정인데, 눈매는 날카롭게 째려보는 것이 밉지가 않았다.

사실 강아지 키우는 걸 별로 안 좋아했었는데… 이 녀석은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콰직.

…자꾸 깨무는 버릇만 고친다면 말이다.

오른손에서 피가 흐르자, 곧장 케르를 내려놓았다.

세게 깨문 것은 아니었기에 아프진 않았다.

녀석은 어느새 수정이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내가 주인인데….

나는 대충 피를 옷에 닦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마음에 드는 걸로 가져가거라."

"네? 그게 무슨…."

와르르르-

성직자들을 잡아서 얻은 아이템을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김수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걸 다 어디서 구하셨어요?"

"놈들이 날 잡으려고 성직자를 데려왔더구나. 다 때려잡았지."

"그래서 악명이… 참 그러고 보니, 살인자 상태가 아니시네요?"

"놈들이 거미줄을 타고 올라 오길래 끊어버렸다."

"네? 아니, 그런 방법이… 그럼 저 밑에?"

"금방 다녀오마."

그 말과 동시에 나는 벼랑으로 몸을 내던졌다.

익숙한 바람을 느끼며 자유를 만끽했고, 거미줄을 이용해 바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수월했다.

"생각보다 많네."

주변을 둘러보니, 찬란한 빛들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아크스타'는 아이템을 떨어뜨리면 발견하기 쉽도록 빛이 나도록 표시하는데, 지금 내 모습이 동굴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 같았다.

나는 하나씩 아이템을 줍기 시작했다.

[붉은 사슬 갑옷을 획득하였습니다.]

[붉은 구리 장갑을 획득하였습니다.]

[붉은 머리띠를 획득하였습니다.]

"이놈들 왜 이렇게 붉은 걸 좋아해?"

사실 '붉은'이라는 수식어가 달린 아이템은 화염 내성을 올려주는 옵션이 있었다.

놈들은 나와 싸울 것을 대비해 인첸터에게 부탁해서 전부 화염 저항 옵션을 달아 놓은 것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안 건 좀 더 나중의 일이었다.

"산타클로스 같은 놈들."

붉은 옷을 입고 이렇게 아이템 선물도 주고, 그야말로 놈들은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였다.

나는 내심 또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브리간딘을 획득하였습니다.]

[붉은 쥐의 갑옷을 획득하였습니다.]

[허상의 날개를 획득하였습니다.]

* * *

"으아아아아!!!!!"

콰아앙! 콰앙! 쾅! 콰아앙!

처참하게 부서지는 TV.

야구방망이로 몇 번 내려치자, 금세 쓸 수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최불룡은 TV를 던져버리며 옆에 있던 재떨이를 창문을 향해 집어던졌다.

챙그랑!

"이 개 같은 영감탱이야!!!!!!!!"

깨진 창문을 향해 분노의 고성을 질렀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몸속에서 용솟음 쳤고, 그렇게 한바탕 화풀이를 하고 나서야 최불룡은 진정할 수 있었다.

"후우… 하아, X발 진짜."

숨을 헐떡이며 뒤를 돌아보니, 머리를 박고 있는 동생들이 보였다.

그러라는 말도 없었는데, 동생들은 알아서 머리를 박고 있었다.

모두 자신의 매질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후… 일어서라."

그 말을 기다렸는지, 동생들은 냉큼 일어섰다.

우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소리가 잦아들자, 최불룡이 말했다.

"너희들을 때리지 않겠다.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야."

"아닙니다. 큰형님. 저희가 너무 약해서 그렇습니다."

부두목 박철용이 대표로 대답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그 영감탱이를 너무 얕보았어. 그게 우리의 패배 요인이다. 망할 영감탱이 같으니… 큭."

그 순간이 다시 떠오르자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참으로 악독한 늙은이가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올라오길 기다렸다가 그런 처참한 짓을 할 수 있는지.

자신도 악당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 영감은 악마야.'

최불룡은 뒤에 있는 푹신한 의자를 수건으로 털기 시작했다.

유리 파편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앉자마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칙. 칙.

"후…."

흩어지는 담배연기가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나부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던 중 최불룡이 입을 열었다.

"제복이를 불러라."

"예…? 큰형님 설마?"

박철용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최불룡이 다시 말했다.

"미친 영감을 잡으려면 미친개를 풀어야지."

* * *

유민석은 오늘도 야근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찾는 '국자 성애자'는 여전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오늘도 아내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미안해. 오늘도 야근이야. 사랑해 여보. 쪽♡"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오늘도 이렇게 영상 통화로 아내를 만나야 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마지막에 좀 토라진 것 같은데 조만간 어떻게든 시간을 내야겠네.'

그렇게 고개를 저으며 의자를 돌리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누님이랑 금슬이 아주 좋으시네요."

"어우씨. 깜짝이야!"

눈앞에 있는 사람은 차진철이었다.

아니, 자신의 처남이기도 했다.

아내인 '차애리'의 동생이자, 유니온의 대리이며 자신의 직속부하.

유민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라."

"두 번이나 문 두드렸거든요. 매형."

업무시간이 끝나면 진철이는 자신을 매형이라고 불렀다.

새삼 익숙한 모습이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간 떨어졌을 것이다.

"하아. 그래, 무슨 일이야? '국자 성애자'는 찾았어?"

"아뇨. 다른 일로 왔어요."

다른 일로 왔다는 그의 말에 어깨가 축 쳐졌다.

'설마 접은 건 아니겠지?'

제발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다면 이 야근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 말이다.

유민석이 고개를 저으며 차진철을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인데."

"흥미로운 사람을 발견했어요."

"흥미로운 사람…?"

유민석이 갸웃거렸다.

"혹시 메이블 사를 기억하세요?"

"메이블…? 당연히 기억하지. 아크스타를 만들 때 자금을 대주는 조건으로 자신들이 만든 히어로 영화의 능력을 가상세계에 구현해달라고 했던 회사였잖아."

"맞아요. 제가 알기론 그때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으로 스킬을 얻을 수 있게 했었죠."

"근데 그건 왜?"

"히어로 능력의 첫 번째 습득자가 나타났어요."

"뭐…?"

순간, 눈이 번쩍 뜨여졌다.

자신이 알기로는 터무니없는 난이도로 얻을 수 있는 스킬이었다.

유저들 간의 밸런스를 위해 그렇게 설정을 잡았고, 그렇게 만들었다.

솔직히 얻으라고 만든 스킬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얻은 사람이 있다고?'

"어떤 능력을 얻었는데?"

"스파이더맨이요."

"스파이더맨이라…."

스파이더맨이라면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와 '자이언트 퀸 스파이더' 의 내단으로 스킬을 얻을 수 있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좀 더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몬스터보다 레벨이 50이상 낮아야지만 얻을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 내단이었다.

"확실해? 그 사람 레벨이 몇인데?"

"40이요."

"……."

'이 녀석 지금 장난하는 건가?'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템빨을 갖추고 현질을 한다고 해도 잡을 수 없는 난이도로 만들어 두었다.

50도 아니고 레벨 40이 두 몬스터를 혼자 잡고 내단을 얻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혹여나 스타 프루츠 능력자가 되어 전설로 거듭났다고 해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근데 그 사람, 할아버지예요."

'…이 자식 진짜 날 놀리나.'

"야 거짓말하지 마. 무슨 할아버지가…."

"매형이 그럴 줄 알고 녹화해왔어요."

"뭐…?"

'설마 진짜라고?'

차진철이 들고 있던 노트북을 펼치기 시작했다.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더니, 영상이 떴다.

'진짜 할아버지네…?'

영상 속 주인공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였다.

머리는 백발이었고, 머릿결은 약간 곱슬이지만 단발이 찰랑거렸다.

그는 뒷짐을 지며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냥 평범한 할아버진데?"

"일단 계속 보세요."

그의 말대로 일단은 보기로 했다.

실수로 자이언트 스파이더의 소굴에서 알을 밟는 모습이 나왔고, 거미들이 화를 내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유민석은 그것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틀렸네. 거미들에게 둘러싸였어. 이제 곧 죽겠는데."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 콰쾅! 콰콰쾅!

할아버지가 갑자기 허공에 발길질을 하더니, 발에서 피어오른 화염으로 거미들을 태워버리기 시작 한 것이다.

결국, 할아버지는 살아남았다.

"미친. 무슨 발차기가…."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 시이이이잇!!

킹 스파이더의 괴기한 포효가 자신의 귀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어지는 앞발 휘두르기에 나무 대 여섯 그루가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도망을 치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야 할아버지가 어떻게 킹 스파이더를 이ㄱ…."

그때였다.

갑자기 달리던 할아버지가 뒤를 돌더니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조그만 불덩어리를 소환했다.

그것은 킹 스파이더의 다리를 모조리 태우기 시작했다.

"뭐야 저게…"

이어지는 발길질에 킹 스파이더의 다리는 손쉽게 부러졌고, 결국 킹스파이더는 내단을 뱉고 말았다.

구워진 거미 다리를 뜯는 할아버지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아니 이게 말이…."

"하나 더 있어요."

이어지는 화면은 역시나 산속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나오고 있는 화면은 고블린 두 마리를 비추고 있었다.

'저건 지그마랑 라그너스잖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드랍 아이템을 기획할 때 처음으로 건드린 몬스터가 바로 지그마와 라그너스였으니까.

그들은 함께 어딘가로 가는 듯했는데, 기사들이 나타났다.

- 공격하라!

함성과 함께 나타난 기사들은 지그마와 라그너스를 나누어서 상대했다.

한데 지그마의 실력이 심상치 않았다.

'지그마가 저 정도로 강했나? 그렇지 않을 텐데….'

지그마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화려한 갑주를 보니 창을 들고 있는 사람은 기사단장 급의 실력자로 보였다.

지그마는 지금 그 사람과 호각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어안이 벙벙한 그때, 라그너스가 퀸 스파이더를 불렀다.

- 나오너라! 자이언트 퀸 스파이더!

익숙한 포효와 함께 퀸 스파이더가 나타났다.

퀸 스파이더는 나타나자마자 기사들이 있는 곳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위용을 뽐냈다.

그 위에 올라탄 라그너스는 거미줄을 이용해 기사들을 한곳으로 끌어 모았고, 화염구를 그들을 향해 쏘았다. 그런데… 어?

- 비천기상무. 해 오름

익숙한 춤사위와 함께 지그마가 화염구를 향해 뛰어올랐다.

지그마의 발밑에 맺혀있는 화염을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그 설마가 맞아요."

콰아앙! 하며 폭연이 피어올랐다.

연기가 걷히자, 서있는 것은 다리에 화염을 머금은 지그마였다.

동시에 발밑에서부터 변신이 풀리기 시작했다.

"폴리모프? 그럼 지그마가 그 할아버지였다고?!"

자신이 알기로 폴리모프는 고등 마법으로 알고 있었다.

웬만한 마법사도 200은 넘어야 배울 수 있는 스킬이고, 얻을 수 있는 난이도도 상당하기에 배운 사람이 아직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할아버지는 그걸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저 할아버지 대체 정체가 뭐야? 격투가인 줄 알았는데 마법사였다고?"

이어지는 화면은 놀라움 투성이였다.

들어본 적도 없는 스킬을 사용하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화염의 기둥이 치솟은 것이다.

자이언트 퀸 스파이더는 순식간에 숯 검댕이 되어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게 아니었다.

"라그너스까지 잡아???"

할아버지는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라그너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라그너스의 고유 스킬 광란의 어둠으로 나타난 어둠의 화살들이 그들을 꿰뚫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고, 라그너스는 악마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어둠의 장막이 생각보다 단단했기에 할아버지는 위기에 처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 그림자 놀이.

허어.

유민석은 이 스킬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이 기획한 아이템에 있던 스킬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저 단검….

"…지그마도 혼자 잡았다고?"

어느새 나타난 할아버지가 라그너스의 머리에 단검을 꽂았다.

이어지는 무차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라그너스.

그렇게 그는 허망하게 죽고 말았다.

차진철이 화면을 끄며 물었다.

"……."

"매형, 어때요. 대박이죠?"

"이 할아버지… 성함이 뭐냐?"

"성함이요? 성함은 모르죠. 아이디는 '잭슨'이던데."

'잭슨이라….'

놀라웠다.

지금껏 수많은 아크스타의 랭커들을 보았지만, 지금처럼 자신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인물은 없었다.

특히 그 불타는 다리와 움직이는 화염구는… 잠깐만.

저거 어디서 봤는데?

"설마, 뮬란의 영웅…?"

"예? 뮬란의 영웅이요?"

"그래, 그거라면 설명이 돼. 그림자 단검을 들고 있는 것도, 저 움직이는 화염구까지!"

유민석도 방송을 보았기에 뮬란의 영웅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저레벨 플레이어로서 뮬란에 동상을 남긴 입지전적인 인물.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만약 그 사람이 저 할아버지와 동일 인물이라면 모든 것이 설명이 가능했다.

'어쩌면 이번 크리스마스에 열릴 월드 대항전에 딱 맞는 인물이 될지도 모르겠어.'

유민석이 말했다.

"진철아. 너 윈디아로 좀 가야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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