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52화
제52화
박유라고 했던가…?
나에게 이 말을 처음 알려준 것은 드레인이었다.
그는 내게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생활영어에 먼저 익숙해져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처음 알려준 것은 바로 욕이었다.
'브라더. 만약 누가 열 받게 하면 길게 말할 필요 없어요. 자, 이렇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봐요.'
'이렇게?'
'굿잡! 이제 외쳐봐요. 빡Q!'
'박유!'
'노우! 혀를 더 굴려요. 빡Q!!'
'박유!!'
나는 하늘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 '박유'라고 외치고 있었다.
뜻은 알려주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것은 프로메테우스에게 전하는 나의 메시지였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어리둥절합니다.]
…제길. 그러고 보니, 이놈은 영어를 모르겠네.
하지만 반응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이, 이 미친 영감탱이가!!"
"노망났냐!!"
"미쳤어!! 어?!"
어느새 다가온 최불룡과 수하들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해져 있었다.
그들은 멍하니 내 손가락을 보며, 역정을 내고 있었다.
왜 저래…?
혹시 이것 때문인가?
나는 그들을 향해 손가락의 방향을 돌렸다.
덜렁덜렁.
흔들리는 중지를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든다.
이게 양놈들이 쓰는 욕이라던데… 쓰는 나도 기분이 좋지 않은 걸 보니, 왜 욕인지 알 것도 같다.
근데, 생각보다 반응이 폭발적이다.
"미, 미친!!!"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어?!"
"영감! 너무한 거 아니야?!"
아무래도 저놈들은 이게 뭔지 아는 모양이다.
어떤 놈은 나랑 똑같이 중지를 드는 녀석도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를 향해 중지를 세우며 대립했다.
…이 자식들 어렸을 때 공부는 잘했던 모양인데, 전부 유학파인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놈들이 달려왔다.
"뒈져라 영감!!"
…진짜 노인 공경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이군.
나는 그들과 맞부딪혔다.
콰콰쾅!
확실히 버프를 받는 것과 안 받는 것의 차이는 크다.
한 방에 죽어 나가던 녀석들이 3방, 4방씩 견디고 있었다.
더군다나 멀리서 힐까지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쯧, 저 성직자 놈들부터 어떻게 해야겠는데.
나는 곧장 그림자 단검을 착용해 그림자 놀이를 사용했다.
슈우욱.
익숙한 어둠의 대지 위에서 나는 빠르게 성직자의 그림자를 찾았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젠장, 누가 성직자야…?"
무수히 많은 어둠의 구체들은 얼굴만 띄우고 있었기에 누가 성직자 인지 알 길이 없었다.
더군다나 모두 험상궂게 생겨서 그놈이 그놈 같았다.
아무래도 이것이 그림자 놀이의 단점인 듯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무 그림자에서 튀어나와야 했다.
1분의 시간제한 때문.
내가 나타난 곳은 성직자들과 가장 멀리 있는 곳이었다.
제길, 찍었는데 성직자가 아니네.
놈들은 갑자기 내가 사라지자 긴장을 하고 있었다.
우선 나는 앞에 있는 놈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콰콰쾅-!
[살인자 '칠십칠불이' 님을 척살하였습니다.]
폭음을 듣고 다른 놈들이 달려왔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이 막혔잖아?"
도망치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나타난 곳이 막다른 길이었다.
어떻게 나타나도 이런 곳만 나타나는 거지… 나도 참 팔자가 기구하단 말이야.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이놈아. 그럴 시간에 방법을 생각해봐."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기어 올라가라고 말합니다.]
아, 또 까먹을 뻔했군.
아무튼 나이가 문제다.
내가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이렇게 깜빡하는 일이 없었을 텐데.
나는 곧장 [스파이더 클라이밍]을 사용해 벽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미친! 저건 또 무슨 스킬이야?"
"저래서 살아남았던 거네."
"진짜 정체가 뭐야?"
진짜 정체라… 그냥 평범한 할아버지인데.
"이 망할 영감탱이가!!"
[초감각]으로 더욱 밝아진 귀가 최불룡의 목소리를 정확히 짚어냈다.
아무래도 화가 난 모양인데, 그래도 그렇지 내가 어른인데 말버릇이….
"불타는 화염검!!"
…뭐?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화염의 검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제기랄. 저걸 쓸 줄은 몰랐는데.
어쩔 수 없이 나는 벽을 박차며 허공을 날았다.
최불룡이 날린 검기가 바위와 만나 폭음을 일으켰고, 밑에는 까마득한 불룡파 놈들이 개미처럼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나는 최불룡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파라라라락!
자신을 공격하려는 줄 알았는지 그는 대검을 들고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노리는 것은 그가 아니다.
취익!
"이, 이게 뭐야!"
첫 제물이 될 성직자의 몸에 거미줄이 붙자, 나는 줄을 당기며 떨어지는 방향을 틀어버렸다.
콰아아아앙!
[선량한 유저 '구십두불이' 님을 살해하였습니다.]
[악명이 106만큼 올랐습니다.]
…이번엔 악명이 오르네.
"미, 미친!"
바로 옆에 있던 성직자 놈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몸에 버프를 걸었다.
다른 성직자들도 마찬가지. 서로가 서로에게 버프를 걸며 한 곳으로 뭉치고 있었다.
뭉치면 산다는 말이 있긴 한데… 어디, 이걸 맞고도 살 수 있나 보자고.
"썬 로드."
퀸 스파이더를 구이로 만들어버렸던 스킬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터져 나오는 힘과 함께 이동속도가 폭발하는 것이 느껴졌다.
쿠아아아앙!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사이를 종횡무진 했다.
한발씩 내딛을 때마다 불기둥이 치솟아 오르며 폭주했고, 비명이 들려왔다.
그야말로 불지옥이었다.
[선량한 유저 '팔십한불이' 님을 살해하였습니다.]
[악명이 111 상승하였습니다.]
[악명이 123 상승하였습니다.]
…
…
악명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랐다.
심지어 10명을 죽였을 때는 이런 메시지도 떴다.
[선량한 유저들을 너무 많이 죽여 살인자 상태가 됩니다.]
[마을에 들어서면 경비병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사망 패널티가 3배 증가하고 사망 시 100% 확률로 아이템을 떨어뜨립니다.]
…괜히 죽였나?
후회되진 않았다.
지금 성직자 놈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프로메테우스가 말한 계획에는 성직자가 없는 게 훨씬 좋았다.
두두두두두!
마침내 썬 로드의 시간이 끝나고, 주변은 어느새 용암지대가 되어 있었다.
놈들의 입은 떡 벌어졌고, 최불룡은 주먹을 쥐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덤비진 않겠군.
아무래도 나와의 차이를 실감한 모양이다.
나는 침묵 속에서 성직자들이 떨어뜨린 아이템을 줍기 시작했다.
수확을 할 때는 노동요가 빠질 수 없는 법.
나는 내 18번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야~ 야이야~♬ 내 나이가 어때서~♬"
흥겨운 노래와 함께 잠깐의 시간이 지났다.
띠링-!
[가방이 가득 찼습니다. 인벤토리를 비워주시기 바랍니다.]
쳇. 더 줍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무리였던 모양이군.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려야 했다.
이젠 자신들의 차례라고 생각했는지, 그들은 어깨를 흠칫 떨고 있었다.
"…쫄기는. 가방 비우고 올 테니 기다려라."
나는 윈디아로 향하는 포탈을 열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 * *
점멸되는 시야와 함께 내가 서 있는 곳은 윈디아의 영주성 옆이었다.
저 멀리 바로 윈디아의 광장이 보였다.
"오, 이거 신기한데. 그럼 어디 가까운 상점에…."
"살인자다! 잡아라!"
…엥?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경비병들.
그들을 보며 나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살인자 상태라는 사실 말이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고개를 저으며 길안내를 시작합니다.]
"제기랄."
이래서 프로메테우스가 날 막았던 건가.
나는 그들을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소란에 윈디아는 떠들썩해졌다.
"살인자?"
"살인자가 여길 어떻게 온 거지?"
"허상의 날개도 없이 들어온 건가?"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은 신경 쓰지도 못했다.
순찰을 돌던 경비병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잡기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문제는.
"헤이스트!"
저 빌어먹을 마법을 경비병들도 쓸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치겠네."
경비병들이 아까보다 두 배의 속도로 쫓아왔다.
솔직히 죽일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면 또 악명이 올라 살인자가 되는 악순환만 반복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는 동문에 이르고 있었다.
"젠장. 여기도냐."
역시나, 그곳을 지키던 경비병들도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사자후를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사자후? 그 방법이 있었군.
그들의 이동속도가 너무 빨라서 거미줄은 맞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자후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크허어어엉!"
[사자후의 기운이 대상을 위압합니다.]
앞을 막던 경비병들이 움찔하는 사이, 나는 빠르게 동문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쫓아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재빨리 수정이에게 귓속말을 했다.
-잭슨: 수정아, 어디냐.
-크리스탈: 괜찮으세요?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오셔서 얼마나 걱정했다구요!
-잭슨: 난 괜찮으니 걱정 말거라. 그나저나 살인자 상태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크리스탈: 살인자 상태요? 설마, 살인자가 되신 거예요?
-잭슨: 그렇게 됐구나. 지금 쫓기는 중이다.
-크리스탈: 세상에… 그거 3일 동안 안 풀어진다는데.
-잭슨: 뭐…?
…낭패다.
갑자기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크리스탈: 하지만 빨리 풀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같은 살인자 유저를 죽이면 악명이 줄어들어 풀린다고 하더라구요.
-잭슨: 그래…?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 *
"끄응, 아니 형님 꼭 이렇게 도망가야 하는 겁니까?"
부두목 한불이가 끙끙거리며 거미줄에 매달린 채 앞서가는 최불룡을 향해 물었다.
"얌마, 다른 방법 있냐?"
"…아뇨. 없죠."
최불룡은 동생들과 함께 거미줄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영감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고, 도망을 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희들의 숫자가 훨씬 많아요. 저희들이 쉬지 않고 공격한다면 결국 영감도…."
"그만해라."
"…죄송합니다. 형님."
한불이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아니다.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 영감탱이가 터무니없이 강해. 그건 인정해야한다. 철용아. 적을 인정해야 우리도 강해질 수 있는 거야."
본명이 박철용인 한불이가 대답했다.
"…예, 다음엔 좀 더 힘을 키워서, 반드시 복수하겠습니다."
"그래. 지금 그 마음 잊지 마라. 우리의 원동력이 될 테니까."
두 사람의 눈이 이글거렸다.
지금의 그들은 복수의 신이라도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였다.
* * *
"후우, 간신히 따돌렸네."
마침내 나는 경비병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그들은 눈에 불을 켜고 따라왔지만, 내가 방심한 틈을 타 거미줄로 발을 묶어버리자 그들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벼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어서 계획을 실행하라고 말합니다.]
"이놈아 좀만 기다려라. 이런 건 원래 통쾌하게 해야 하는 법이야."
벼랑 밑을 내려다보니 예상대로 떼를 지어 올라오는 불룡파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저곳에서 탈출하려면 거미줄을 타고 올라오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그들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리며 악마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드디어 첫 번째 놈이 올라왔다.
…역시 첫 번째는 저놈인가.
최불룡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꽤나 힘들어 보였지만, 그는 곧 숨 쉬지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저승행 열차를 태울 거거든.
퍼어억!
"어억?!"
공중 2회전 뒤돌려차기를 맞은 녀석의 몸이 붕 뜨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미친 영감탱이가~!!!!##!$"
비명 같은 메아리와 함께 벼랑으로 떨어지는 최불룡.
그것을 보며 당황하는 부하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거미줄 앞으로 다가갔다.
"내 사람을 건드린 죄는 크다. 이 개새들아."
후우우욱, 하는 소리와 함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요리사의 기초스킬 불 뿜기였다.
틱.
거미줄이 끊어지는 소리.
"끄아아아악~~!!!#!$%%"
"이 개 [email protected]@%#^&*I"
"노망난 영감탱이가[email protected]^$"
벼랑 밑에서 엄청난 욕설들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띠링-! 띠링-! 띠링-!
[살인자 '불룡이' 님을 척살하였습니다.]
[악명이 509 감소합니다.]
[살인자 '한불이' 님을 척살하였습니다.]
[악명이 256 감소합니다.]
…
악명이 감소하는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